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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6장 19-24절 하늘에 쌓아둔 보물
마음이 세상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자신의 보물을 쌓아놓고, 마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놓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땅에 있는 사람은 땅에서의 목표를 이루고자 자신의 생애 전부를 그 일에 쏟습니다. 돈이면 돈을 벌고 모으기 위해서, 권세면 자기가 목표한 권세를 얻기 위해서, 인기면 그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자식이면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열심히 삽니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악착같이 그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목표에 도달합니다. 물론 중간에 낙오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목표가 하늘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상을 목표로 열심히 삽니다. 교회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 전부를 다 드립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를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식을 잃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모두를 잃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끝까지 그 나라를 위해 달려갑니다.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 사람도 역시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둘 다 모두 생애가 여기서 끝난다면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한 사람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 사람도 죽음 앞에서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 사람 역시 자신이 한 일의 보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거나 하나님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신이라면 세상적인 사람이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 사람도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이것이 불교적인 가르침일수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도 악하게 살아도 결국 다음 세상이 없다면 인생은 아둥바둥 사는 것이 공허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의 창조주를 기억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이 있고 세상에 살고 있는 자연만물이 있다면 그것들은 그것들을 창조하신 존재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어야 할 곳에 반드시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주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지구상의 자연만물들이 하늘과 땅과 땅 속에도 존재하며 먹이 사슬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잘 짜여져 있고 있어야 할 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각과 이성을 가진 모든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신을 보내신 이유와 자신을 보내신 장소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나무에게는 나무의 역할이 있고 풀에게는 풀의 역할이 있듯이 새에게는 새의 역할이 있고,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에게는 사람만의 특별한 역할이 있습니다.
이 역할을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는 말씀으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인간의 할 일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 다스림이라는 것은 마구 자르고 태우고 없애는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심고, 가꾸고, 기르고 더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과 하나님은 계속해서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고 마귀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한 것입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혼자 먹으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이라고 말했습니다. “너 혼자 이것을 따먹으면 너는 하나님같이 될 수 있어”가 아니라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이라고 하면서 둘이 함께 먹고 함께 하나님같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죄는 개개인이 지을 때보다 함께 지을 때 더 도전적이고, 폭팔력이 크고, 또 파급효과가 큽니다.
마귀의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이 땅의 것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것에만 마음을 쏟고 세상 것을 자기가 가장 많이 가지고 다스리려는 욕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초월한 신의 영역에 이르기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이르고자 하는 시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로, 어떤 사람은 과학으로, 어떤 사람은 예술로, 어떤 사람은 권력으로, 어떤 사람은 돈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부리길 원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에 몰두하고 있는 인간들과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하늘의 상을 얻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19-2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여러분들에게 저축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잠언 6장 6-8절을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게으른 자에게 말씀하시는 교훈입니다. 여러분들은 땅만 쳐다봐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기어다니는 작은 개미조차도 여러분들을 교훈하시기에 충분하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개미는 일을 시키는 두령도 없는데 여름동안 계속해서 일을 하고 또 추수때에 양식을 모으면서 월동준비를 합니다. 이처럼 여러분들 역시 앞으로 닥칠 어떤 환난에 대비로 보험을 들거나 저축을 하거나 적금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그런 것들을 모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줄어든다거나 많이 모을수록 안심이 되고 기쁘다면 그것은 죄악이 됩니다. 왜냐하면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 말씀은 여러분들의 진정한 은행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인 영원한 천국에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집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에 있고 여러분들이 영원히 살 곳은 하늘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저축은 하늘나라에 쌓아두는 사람이 진정한 저축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지를 질문하면서 다가온 부자청년 관원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으로부터 “네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좇으라”는 요청을 들었을 때 자신이 진정으로 하늘나라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하늘이 아닌 땅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근심하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하늘나라와 이 세상에 쌓아두는 것 사이에서 근심하고 갈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근심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세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근심과 갈등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간혹 하나둘 있을까 말까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을 염려하기 때문에 주님을 진정으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의 창고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창고 자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버린다는 의미는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면 언제 어느 때 무엇이든지 간에 내어드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의 마음이며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도 아깝지 않아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아둔다고 해서 금전적인 것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쌓여지는 보물은 금전적인 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의 삶 전체가 하늘나라에 쌓아두는 삶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보물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보물의 전부였습니다. 하늘보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최고의 보물이라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오히려 기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정 예수님만한 최고의 보물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 모든 것을 드린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보다 덜 가치있는 모든 보물들을 예수님이 계신 천국에 쌓아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이라고 여러분들에게 집을 팔고 땅을 팔아서 마땅히 도와야할 가난한 고아원이나 양로원이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할 때 갈등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따르긴 따르지만 내일에 대한 모든 염려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자유와 기쁨과 평강 가운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런 사람이 항상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자기의 가족이나 친구나 그 어떤 사람보다도,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서 복음을 전하러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삶을 살았습니다.
지난 주에 으리 나라 개신교선교사들의 무덤인 양화진에 가서 그런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었던 선교사들의 무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출세와 모든 보장을 버리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조선 땅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에 묻혔습니다. 그들은 무덤을 보러오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200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기록된 교회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온 세상의 구원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수많은 사람들과 선교사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가장 크게는 그 일을 자신부터 시작하셔서 지금까지도 예수님 자신을 죽도록 따르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가 강력하게 여러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또 주변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풍요롭게 누리고, 날마다 맛있는 것을 사먹고, 좋은 집, 좋은 차, 온갖 좋은 것을 누리며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전혀 여러분들의 마음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영적인 초월함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런 것이 분토처럼 버려야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하늘에 쌓아둔 것을 이 땅에 있는 좀이나 동록이나 도둑들이 빼앗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땅의 것만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1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니까 하늘나라가 날마다 그리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진정한 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눈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다시 태어난 사람의 눈입니다. 그의 눈을 천국의 빛에 밝혀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밝히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뚜렷이 보입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모든 것들을 천국에 쌓아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2-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욕심에 어두워져 있고 탐욕에 어두워져 있으며 이 세상의 정욕에 어두워진 눈은 하나님 나라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도 바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땅에 것에 마음을 쏟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4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긴다고 그것은 거짓말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는 없어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재물을 섬기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섬길뿐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재물을 하나님 나라 일에 사용하고,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재물을 모으는 데 이용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천국의 기쁨을 맛보고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최고의 거룩하고 복된 집과 최고의 보물을 상으로 받을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천국의 기쁨은 이 땅의 소유가 많음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쁨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옵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그 성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소유의 모든 것을 천국에 둔 사람으로써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주님께 드리는 것이 여러분들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축복이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과 수많은 앞선 성도들과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그러했듯이 여러분들의 그 헌신과 드림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여러분 안에서, 그리고 세계 속에서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