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님들이 식사대로 200원을 내시는데 토마스의 집에서 고마워하는 이유,
봉사자들의 마음가짐을 다시 새기게 하는 다른 '사랑의 급식소
(제기동 프란치스코의 집)에서 봉사를 한 자매닝의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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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프란치스코 집의 존재이유....
000 요셉피나
유한한 인간에게 시간은 곧 생명임에도, 시간을 시급으로 계산하는 현실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봉사하는 곳이 제기동 프란치스코의 집이다.
몇 백 명분의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한 쪽에선 봉사자들이 그날의 식재료를 분주하게 다듬고, 다른 한쪽에선 씻고, 썰고, 끊이고, 볶는 모습들이, 마치 순박한 어린 시절의 동네잔치 추억도 떠오르고 “헐벗고 굶주린 이가 바로 예수님이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봉사하는 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낯설지 않은 친숙함이 단박에 느껴지는 장소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그 불완전함에 일생을 걸고 수도원에 입회한 수련기 수사님들이, 새빨간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무심한 마음으로 2~300개의 식판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와는 무관한 다른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그들과 나 사이에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그 무엇이 존재함을,
그럼에도 이 순수한 수사님과 뭔가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 발동해 용기를 내 “수사님의 존재 방식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좋은 몫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니,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수사님도 자매님을 만나 기쁘다는 말을 주고받았던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노숙인들은 한 끼의 식사비로 200원을 지불한다. 200원은 그들에게 최소한의 존재감을 상징함이기도 하다. 누군가 우리의 존재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없이 침범해 올 때 우리는 마치 따귀 맞은 영혼처럼 반응하지 않는가, 인간 존엄성이 물질의 있고 없음과 무관함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현실은 매우 그렇지 않다.
“받는 사람의 손길이 존재해야 주는 사람에게 보람이 주어진다.”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처럼, 그들이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 주고받는 것이 다를 뿐, 서로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우리가 봉사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의 선행은 구원의 목적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회개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을, 최근에야 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낫이 풀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우리가 본능을 거슬러 살기위한 매순간의 발돋움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우리의 시선이 변화될 때 노숙인 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환대로 바뀌고, 그들 앞에 놓인 식판은 단지 허기를 채우는 한 끼의 식사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 될 것이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복음 말씀처럼, 제기동 프란치스코 집의 존재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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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속프란치스코회 OOOO 형제회 2024. 2월 월보 - 나눔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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