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솔공장(광솔공장)
어쩌다 내나이 벌써 여든셋. 세월은 빠르기도하다,
태버린 고향 마을에 형님분들 영옥이형님과 종철형님이 올해 모두 떠나고나니 우리 동네에서 토박이치곤 내가 제일 어른이되었네!
그렇다보니 우리동네 산 역사를 증명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후대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보탬이되고자 광솔공장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엮어보련다,
다섯살때의 기억을 되살려 의문스러운 장면을 할아버지에게 여쭈어본 생각이난다.
용머리 뒷장터 넓은 공간에 콘크리트 바닥과 벽채가 남아있던 잔해 장면이 보여? 할아버지에 문의한 결과 그곳은 일제 강점기 비행기 기름채취를 하기위한 광솔공장 터라 하시면서 광솔기름 공출하던 곳이라한다, 그리고 엇그제 작고한 영옥이 형님께서도 증명하였다,
광솔이라하면 소나무가지 부러진곳에 옹이부분으로 송진이 뭉처있는 부분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쏘시게용이거나 밤중에 불 밝힐때 댓돌위나 횃불용으로 사용되던 광솔인데 얼마나 많은 광솔을 채취하기위한 사람들이 일제만행에 강제동원되여 공출에 시달렸을까 짐작이간다
우리마을에 이러한 일제 잔해가 있다니 눈여겨 생각해볼 것이다,
하여 인터넷을 찾아보니 전라도 장흥에도 비슷한 사례가있어 내용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비행기 기름하려고 공출해간 관솔기름.
일제 강점기말에 비행기 항공유를 만들기위한 목화씨유, 피마자유와함께 소나무 관솔 기름을 만들어서 공출로 바쳤다, 일제는 심지어 정해진 양을 가저가고도 또와 뒤저서 나오는 목화씨유 피마자유 뿐아니라 개도 잡아서 가저갔다한다,
당시 장흥사람들에 의하면
“일제대 그랑께 인자 그 비행기 지름한다고 그거 인자 간솔 지름을 내라고해, 간솔, 간솔만 따다가 그리믄 인제 간솔만 되제,
소나무 올라가 가꼬 톱으로 잘라가꼬 간솔만 차곡차곡 항아리에다 쟁에 그래가꼬 그놈을 인자 그 항아리 가세다가 황토를 이개가꼬 빼엥 돌려서 볼라야돼 볼라가꼬 양재거름을 인자 방에 찍은 앙재 그놈을 슬슬퍼서 인자 이놈을 한 메칠, 한 사날 때면은 그 간솔이 지름이 나와 가꼬 그 항아리로 하안나 되어가꼬 있어, 그 간솔 지름이, 그래가꼬 공출하고, 공출하는데 워짤꺼여, 할 수 없제, 그라고 인자 목화같은 것을 해 노면은 인자 이것을 제냥을 다줘, 주락한 놈을 다 준단 말이여, 공출을해, 그란디 이 사람들이 인자 다시 새로 나와가꼬 디저가꼬 있으먼은 그냥 가저가 불고, 개도 그냥 요새 같으면 좋은 개는 쩌그먼데 산에다가 저 홀롱 모가지 딱 줄 달아 놔두면 괜찮한다, 아 기양 그 사람들이 오며는 개가 꽝꽝 짖고 나오거든, 그라믄 한사람은 까꾸로 한번 팍 찍어가꼬 있으며는 개가 오무락 까딱을 못해, 그리믄 몽둥이로 한사람은 때려 ,그래가꼬 잡어가꼬 앵기두만 잡어가꼬 마악 가저불제, 무작정하고 아 머슬 할라고 개를 가져갔던가 몰라. 일본사람들이!
이뿐아니라 송탄유나 송근유도 채취에 열을올려 전국 곳곳에서 별짖을 다한 일본놈들 무자비한 만행을 반드시 후대에게 알려야하겠다.
송탄유 채취는 소나무 허리에 브이자 형태로 톱으로 상처를 냄으로써 저렴하고도 손쉽게 송진을 채취하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렇게 채취한 송진은 일제가 벌인 태평양 전쟁의 항공용 송탄유로 제공되였다.
채취한곳은 전국적이지만 주로 평창, 남산, 장암산, 노산에서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일제 강점기 아픔으로 남은 송진 채취목 스토리 텔링을 통한 관광활성화를 위하고 후대에 알리기위한 작업을 하고있다니 늦은감이있지만 다행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