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내용은 보도된 뉴스와 칼럼을 바탕으로 각색된 추리소설입니다.
강민준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담배 연기 대신 한숨을 내뱉었다. 이수연이 서류 뭉치를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배, 이거 봤어요? '삼전닉스 레버리지 ETF'. 심사 기간이 스물아흐레예요. 보통 이런 상품은 최소 두 달, 길면 반년도 걸려요."
민준은 미간을 좁혔다. "누가 의뢰했지?"
"익명이에요. 다만 이 문서 하나 남겼더라고요." 수연이 내민 종이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누가 서둘렀는지, 왜 서둘렀는지 밝혀주세요."
두 사람은 먼저 거래소를 찾았다. 담당자는 시종일관 사무적인 태도로 답했다.
"저희는 규정대로 심사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동시에 진행한 것도, 절차상 문제는 없었습니다."
"동시에 진행하면 서로 검증할 시간이 줄어들지 않습니까?" 수연이 물었다.
담당자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답했다. "그건...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었습니다."
금융감독원 청사에서 두 사람은 이찬진 원장과 마주 앉았다. 그는 예상보다 순순히 입을 열었다.
"급하게 준비한 건 맞습니다. 고환율 때문에 시장이 흔들리고 있었고, 뭔가 대응책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왜 하필 레버리지 상품이었죠?" 민준이 물었다. "위험을 키우는 상품으로 불안을 잠재우려 했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찬진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벽에 붙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수연이 화살표를 그리며 정리했다.
"용의선상에 올릴 만한 인물이 셋이에요. 거래소 담당자, 금감원장, 그리고 이 상품을 처음 제안한 기획팀장."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누군가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고 가려는 순간, 우린 진짜 그림자를 놓치게 돼."
"무슨 뜻이에요?"
"생각해봐. 거래소는 지침 탓을 했고, 금감원장은 시장 상황 탓을 했어. 기획팀장을 만나면 아마 '위에서 승인했으니까'라고 하겠지. 모두가 톱니바퀴야. 누구 하나를 빼내도 기계는 계속 돌아가."
그날 밤, 민준은 사무실 옥상에서 참새 세 마리가 가로등 불빛 아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수연이 옆에 다가와 섰다.
"결국 범인은 못 찾는 건가요?"
"아니, 찾았어." 민준이 낮게 말했다. "범인은 사람이 아니야. '서두름을 용인하는 구조'였어. 심사 기간을 단축해도 문제없다고 판단한 관행, 동시 심사로 서로 책임을 나눌 수 있다고 여긴 관성,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근본 대책 대신 임기응변으로 덮어온 습관. 그게 진짜 몸통이야."
수연은 잠시 말이 없다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쓸 보고서엔 뭐라고 적어야 하죠? 기소할 개인이 없잖아요."
민준은 참새들이 사라진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답했다.
"제도를 기소해야지. 사람은 그 안에서 그저 자기 역할을 했을 뿐이니까. 진짜 재판이 필요한 건, 스물아흐레 만에 완성된 그 서두름 자체야."
보고서 마지막 장에 수연은 이렇게 적었다.
"이 사건에 단독 피의자는 없다. 그러나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서두름을 방치한 모든 이가 공범이다. 재판소가, 곳간지기가,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도 침묵한 우리 모두가."
민준은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창밖에서 참새 소리를 들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갈흰이는 밥그릇 앞에서 눈치를 볼 것이고, 이단지는 볕 좋은 자리를 찾을 것이며, 참새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이었다. 다만 그 아래, 사람들의 세상만은 여전히 무거운 그림자를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