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은 선교 사명을 깨닫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본기도
하느님,
모든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구원되기를 바라시니
수확할 밭에 일꾼들을 많이 보내시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하느님의 백성이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사로 힘을 얻어
구원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사야가 그려 보인 마지막 날의 모습,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은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거기에서 주님의 길을 배우며 평화롭게 사는 것입니다. 전쟁 기술은 배울 필요도 없고, 칼과 창은 쳐서 농기구로 만드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티나의 상황을 보면서, 이사야 시대의 그곳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은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아하즈 임금 때는 아람과 북 왕국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로 쳐들어왔고,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다음 히즈키야 임금 때는 아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성읍이 정복되었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았으나 다른 모든 지역이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런 전쟁을 겪었기에 오히려 전쟁 없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이사야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금 유다인들과 팔레스티나인들이 서로 죽이는 모습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로마인들은 유다인들을 몰아냈고, 중세에는 십자군 전쟁도 있었으며, 지금은 지금의 전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유다인들보다 덜 호전적이어서 그들을 덜 죽인 것도 아닙니다. 유다인들과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들, 근본적으로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인데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기도의 날은 이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를 위한 날이지만, 오늘의 독서를 들으면서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가 참으로 ‘복음화’되어 주님의 길을 배우고 서로 맞서 칼을 쳐들지 않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첫댓글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이사야서 2, 5)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마서 10, 15)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