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혼에 자식과 원수 되지 않으려면
눈 감는 날까지 움켜쥐어야 할 보루-백작가TV 어른심리통
https://youtu.be/WpuyyGj637c?si=FsBzrwkUvmjd5_fn
반갑습니다, ‘백작가TV 어른심리통’입니다.
장성한 자식들이 세상살이 고단하다고 눈물지을 때,
가슴이 미어져 내가 평생 가꾼 마지막
그늘을 걷어내어 주고 계시진 않나요.
기억하셔야 합니다. 자식의 짐을 덜어주려
내 삶의 든든한 뿌리까지 흔들어 버리는 순간,
우리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노년의 평온함은
가을날 낙엽처럼 힘없이 바래져 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젊은 시절, 이런 철학적인 상상 적어도
한두 번쯤은 해보셨을 테지요.
"만약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는 외딴섬으로
홀로 긴 유람을 떠나야 한다면,
오직 단 한 가지 물건만 가방에 넣을 수 있다면
무얼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떤 이는 밤을 밝혀줄 낡은 등불을 고를 테지요.
어떤 이는 매일 아침 차를 끓여 마실 작은 주전자를 고르겠지요.
그동안 읽지 못한 고전 책을 몇 권 가져갈 수도 있겠고요.
오늘 저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황혼을 지나고 계신 나의 동반자,
시니어 어르신께 가슴을 겸허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나 드려볼까 합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황혼길에서,
내 삶의 품격과 평온함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우리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할 세 가지 보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평생을 자식이라는 찬란한 별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태워 빛을 내어준
우리 오공 육공, 그리고 칠공세대 어르신들에게
이 세 가지는 결코 노욕이나 이기심이 아닙니다.
내 삶의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낼 생존의 열쇠이자,
역설적으로 자식과의 소중한 인연을 파멸로
이끌지 않을 유일한 연민의 선이지요.
오늘 그 담담하고도 현실적인
사유의 시간을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생의 마지막 날까지
결코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내가 눈을 뜨고 잠드는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주도권,
바로 '주거 자율권'입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고 외로움이 안개처럼 밀려오면,
이 주거의 권리가 자식들의 경제적 상황이나 편의에 따라
너무나 쉽게 침해받곤 하지요.
통계청의 주거실태조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고령층의 무려 82.3%가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지금껏 살아온 나의 집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고립되지 않고 내가 익숙하게 거닐던 산책로,
문안 인사를 나누는 세탁소 주인,
손때 묻은 가구들이 존재하는 공간이 주는 심리적 면역력은
노년 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버팀목이지요.
하지만 자식들은 흔히 "어머니,
손주 유치원 등하원 길만 좀 도와주세요,
근처로 이사 오시면 저희가 매일 들여다볼게요"라며
달콤하고 은근한 제안을 건네옵니다.
프랑스의 문豪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에서
"인간이 자신의 익숙한 영토를 떠나는 순간,
영혼은 가장 취약한 상태로 노출된다"고 말했습니다.
자식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평생 쌓아 올린
이웃과 관계망을 모두 잘라내고,
자식의 아파트 옆 동으로 낯선 이주를 감행하는 순간,
노년의 주체성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집니다.
특히 한쪽 배우자와 사별한 뒤 찾아오는
지독한 고독감에 취해 "큰 집 처분하고 우리랑
합쳐서 넓은 집으로 가요"라는 자식의 꾐에 빠지는 것은
인생 후반전의 가장 치명적인 악수가 됩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심층 면접 결과를 보면,
자녀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시니어 중 절반 이상이
"내 집인데도 방 한 칸에 유폐된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고 가슴을 칩니다.
자식들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만이
내 유일한 세상이 되는 순간,
나는 내 삶의 고고한 주인이 아니라,
집안일을 대행해 주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집을 줄여 남은 현금이 자식의 통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지요.
내 거처를 지키는 것은 내 존엄의 마지막
요새를 사수하는 일입니다. 공감하시나요.
두 번째로 우리의 손아귀에 힘을 주어 쥐어야 하는 것은
'경제적 경계선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일입니다.
우리는 부모라는 가혹한 굴레 때문에,
자식이 사업에 실패했거나 내 집 마련이 어렵다고 울먹이면
내 통장의 금고를 너무나 쉽게 열어주곤 합니다.
하지만 다 자란 성인 자식의 경제적 위기를
내 울타리 안으로 들여와 대신 짊어지는 순간,
내가 평생 일군 노후의 평화는 물론이고
자식 세대까지 동반 파산하는 비극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지요.
얼마 전 대기업에서 수십 년간 헌신하며 임원까지 지내고
은퇴하신 60대 후반의 어느 정직한 가장의 눈물 어린 사연을 마주했습니다.
은퇴 후 남은 연금과 조그만 상가 하나로
부부가 소박하게 봉사활동도 다니며 여생을 완성하려던 참이었지요.
그런데 3년 전, 무리하게 스타트업을 창업했던 차남이
투자 유치에 실패하고 신용불량 위기에 처하자
부모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는데
매정하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자식의 청을 받아들여 울타리를 열어준 대가는 실로 잔인했습니다.
아들의 채무를 보증 서주고, 급기야 상가를 처분해 자금을 대주었지만
사업은 끝내 회생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부부에게 남은 것은 매달 들어오는
연금의 절반 이상이 자식의 빚 상환과
대출 이자로 자동 이체되는 참담한 현실뿐이었습니다.
들어오는 소득보다 빠져나가는 지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노년의 '적자 생존'이 시작된 것이지요.
자식은 미안해하면서도 "부모니까,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주면 반드시 성공해서 갚겠다"는
맹목적인 요구를 멈추지 않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시 〈단계〉에서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도록 돕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자식 스스로의 힘으로
바닥을 치고 일어설 때만 발현되는 법이지요.
금융감독원의 자산관리 데이터를 보면,
은퇴 후 자녀에게 자산을 무리하게 증여하거나
대출을 지원한 가구의 빈곤율은 독립적인
경제를 유지한 가구보다 무려 3배 이상 급증합니다.
자식이 사업에 실패했든, 결혼 자금이 부족하든,
다 큰 성인을 부모의 주머니로 구원하겠다는
생각은 오만이자 착각입니다.
자식에게 내어준 돈은 결코 돌아오지 않습니다.
부모의 마지막 잔고가 영이 되어 더 이상 쥐어짜
낼 즙이 없을 때야 자식은 비로소 독립을 배울 것입니다.
내 경제적 울타리를 칼날처럼 차단하는 것,
그것이 자식을 거친 세상의 사자로 생존하게 만드는
진짜 사랑이며 내 노년을 지키는 마지막 철학이지요.
세 번째는, 가장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움켜쥐어야 할 '자산 통제권'입니다.
"어머니,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은행 스마트폰 뱅킹이나
복잡한 세금, 부동산 관리는 저희가 알아서 대행해 드릴게요.
그저 편안하게 용돈 필요하실 때 말씀만 하셔요."
자식들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효자의 얼굴로
이런 기특한 제안을 해올 때,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셔야 합니다.
"아니, 명의는 어차피 내 명의인데 자식이 공인인증서
관리 좀 해주는 게 무슨 대수랴" 하고 쉽게 생각하신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가장 위험한 고행길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관계가
너무나 끈끈한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3자와 금전 분쟁이 생기면 법의 잣대로 이성적인
소송이라도 벌일 수 있지만, 핏줄로 얽힌 자식과
자산이 꼬여버리면 남들보다 해결하기가
수천 배는 더 고통스럽습니다.
자식은 천륜을 저버릴 각오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달려들 수 있지만,
늙은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전과자가 되거나
길거리에 나앉는 것을 끝내 눈뜨고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영리한 기만을 다 알면서도
결국 피눈물을 흘리며 물러서게 되고,
평생의 자산을 연기처럼 날리게 되는 것이지요.
매달 꼬박꼬박 입금되는 주택연금 통장이나 개인연금,
심지어 정부에서 나오는 소액의 수당 통장조차
자식의 손에 위탁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처음에는 자식도 지극한 정성으로 제날짜에
돈을 찾아다 드리고 잔고를 확인시켜 주겠지요.
하지만 인간의 나약한 탐욕은 참으로 간사해서,
타인의 자산이 오랜 시간 내 손을 거치다 보면
그것이 마치 '내 자산의 일부'인 양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자식 자신의 가정에 작은 균열이 생기거나
급전이 필요해지면, "우리 부모님은 당장 쓰실 곳도 없으니
내가 잠시 융통하고 나중에 채워 넣자"며
부모의 통장에 먼저 손을 들이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고전 문학의 정수인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가슴 깊이 새겨보십시오.
큰딸과 작은딸의 화려한 효도 고백에 눈이 멀어,
왕관과 영토라는 자산 통제권을 살아생전에
미리 상속해 버린 리어왕의 결말이 어떠했나요.
그는 결국 차가운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쫓겨나
미쳐버린 채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내 자식이 특별히 못되고 패륜아라서가 아닙니다.
자식의 마음은 결코 부모의 마음과 대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젊은 날 자식이었을 때,
내 부모의 깊은 고독과 경제적 불안을
온전히 헤아리며 살았던가요.
나는 주지 못했으면서 왜 내 자식은 나에게 완벽한
부모의 마음을 돌려줄 것이라 맹신하십니까.
자산의 통제권을 임종의 순간까지 꽉 쥐고 있는 것은
자식을 의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식에게 죄를 지을 기회를 주지 않고,
부모 자식 간의 고결한 천륜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서글프고도 영리한 방책입니다.
서글픈 인간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우리의 노년이란 어쩌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자식과 상처 주지 않을 만큼의 '존엄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소리 없는 성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자
삶의 박자인데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묵묵히 배우고 마음을 다잡으며 나아갈 뿐이지요.
오늘 이 세 가지를 가슴에 꼭 품어주십시오.
내 영혼이 안식할 자리를 지키는 주거 자율권,
자식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지 않는 경제적 경계선,
그리고 내 삶의 생명줄을 스스로 통제하는 자산 통제권.
이 세 가지 보루를 눈감는 날까지
내 손아귀에 단단히 쥐고 계실 때,
우리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당당하고
고고한 어른이 될 수 있으며,
우리의 인생 후반전도 비로소
찬란한 평온에 가닿을 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의 이 사유가 여러분의 소중한 황혼에
단단한 이정표가 되길 바라면서, 이만 영상 마칩니다.
지금까지 ‘백작가TV 어른심리통’이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더 깊고 지혜로운 영상을
제작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편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백작가 TV 어른 심리통 한 줄 평]입니다.
사법연수원의 가사 재판 분석 자료에 따르면,
노년기 부모 자식 간의 소송과 분쟁의 무려 68.4%가
생전의 모호한 자산 위탁과 무리한
증여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모든 주권을 내어주고 차가운 황야로
내팽개쳐진 리어왕의 비극을 답습하지 마십시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몫의 통장과 주권의 고삐를 꽉 쥐고 있는 것,
그것이 자식을 끝까지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위대한 노년의 품격입니다.*

첫댓글
사법연수원의 가사 재판 분석 자료에 따르면,
노년기 부모 자식 간의 소송과 분쟁의 무려 68.4%가
생전의 모호한 자산 위탁과 무리한
증여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모든 주권을 내어주고 차가운 황야로
내팽개쳐진 리어왕의 비극을 답습하지 마십시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몫의 통장과 주권의 고삐를 꽉 쥐고 있는 것,
그것이 자식을 끝까지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위대한 노년의 품격입니다.
오늘 이 세 가지를 가슴에 꼭 품어주십시오.
내 영혼이 안식할 자리를 지키는 주거 자율권,
자식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지 않는 경제적 경계선,
그리고 내 삶의 생명줄을 스스로 통제하는 자산 통제권.
이 세 가지 보루를 눈감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