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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죄악의 자리에서 미련두지 말고 떠나야 해요 = 에스라10;1-17(180819)
PW : 믿음 BIW : 떠나라 AG : 이방인 아내들
TS : 믿음은 죄악의 자리에서 미련두지 않고 떠나는 것이다.
똥파리가 사자의 생명의 은인
밀림의 왕으로 불리는 사자는 일단 사냥을 하면 먹이로 위에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는 소화가 될 때까지 1주일이고 2주일이고 잠만 실컷 잡니다.
사람도 그렇듯이 사자도 잔뜩 먹고 자게 되면 소화불량에 걸려서 나중에 치명적인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하지만 사자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럼 사자가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돕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똥파리입니다.
똥파리는 사자의 귀, 다리, 배, 머리 등 여기저기 달라붙어 사자의 피를 빨아 먹습니다.
사자는 자면서도 본능적으로 온몸과 다리, 꼬리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운동을 하게 되어 소화를 원활하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똥파리는 사자의 생명의 은인인 셈입니다.
똥파리는 사자의 무료 운동 코치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똥파리와 같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똥파리 덕분에 우리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더 재미있어지고, 짜릿하게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똥파리들이 우리들의 삶에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픔이 기쁨으로, 상처가 영광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쉴 틈 없이 찾아오는 똥파리에 감사하고, 귀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요?
“하나님께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인내를 주기보다는 인내를 발휘할 기회를 주신다.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라고 성장하며 변화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의 기도를 하게 합니다.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크게 웃으며 삽니다.
P4.
국가나 사회나 회사나 기관이나 교회나 개인적으로 무언가 확 바뀌는 계기가 있다.
이른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는 계기가 있다.
유대인들에게도 터닝 포인트가 되는 계기가 있다.
유대인들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는 계기는 바로 유다 왕국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질질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정말로,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 중심사상으로 바뀌게 된 동기는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뀐다.
바벨론 70년 포로생활 이전과 이후는 하늘과 땅 차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달라진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뀌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ALL-IN하게 된다.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을 줄 알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출애굽시키고 가나안 땅에 있는 7족속들을 쫓아내고 가나안 땅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나라를 건국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노략질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끊임없이 이방인들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굿굿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실 줄로 알았다.
그런데 유다나라는 바벨론에게 망하게 되었고, 포로로 질질 끌려가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70년 동안 바벨론제국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히브리민족이 이방인에게 멸망당해서 이렇게 처참한 포로생활을 해야만 되었을까?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버리시고 바벨론에게 멸망하도록 방치해 두셨을까? 왜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끌려와서 마음 놓고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토라도 읽지 못하게 되었을까? 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우리 히브리민족이 이런 몰골을 당해야만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바벨론에 질질 끌려가서 70년 동안 처참한 포로생활을 하면서 지난 조상들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조상들의 삶과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 결과는 단 하나의 요인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온갖 태양신, 달신, 별신과 같은 바벨론의 전통종교를 섬기면서 우상숭배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바벨론지역은 바벨론 전통종교의 본산지이다.
곧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만들어낸 본산지이다.
태양신과 달신과 별신들이 각 지역마다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그모스, 몰렉, 밀곰, 다곤 등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바벨론에서 니므롯을 태양신으로, 세미라미스를 달신으로, 담무스를 별신으로 탄생한 바벨론전통종교에서 각 지역으로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퍼져나가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은 유대민족에게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서 그토록 좋아하고 흠모하면서 섬기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와 아스다롯의 본산지인 바벨론으로 보내서 그토록 좋아하는 태양신, 달신, 별신들을 마음껏 섬겨보니 좋더냐?’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전통종교의 본산지인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면서 큰 깨달음을 받게 된다.
유대인들은 ‘정말로 우리 히브리민족이 목숨 걸고 섬겨야 될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구나.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철저한 자기 개혁, 종교개혁을 단행해 나가는 것이다.
철저한 자기 개혁,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단행한 것이 바로 머리를 단발머리로 자르는 것이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상징인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된다.
물론 수염도 깎아서도 안 된다.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은 온갖 우상숭배를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향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겠노라고 결단하면서 단발머리로 바뀌게 된다.
흔히 예수님에 대한 그림들, 성화(聖畫)를 보면 단발머리로 그린다.
예수님의 머리를 단발머리로 그리는 이유가 바로 바벨론포로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다.
예수님도 철저한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유대인의 교육을 받고, 유대인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단발머리 모양이 되는 것이다.
오늘 묵상하는 말씀은 바로 터닝 포인트가 되는 바벨론포로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물론 시작은 바벨론 포로기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에스라, 느헤미야, 스룹바벨과 같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돌아오기 전부터 이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회복된다.
돌아온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이제는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 토라를 삶의 원천으로 삼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준을 세워서 살아야 한다.’라는 신앙개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대단한 결단을 촉구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가운데 유대인남성들이 이방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제사장 그룹에서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제사장이요 학사 출신인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방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죄악을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때는 초겨울이다. 아홉째 달 키스레브월(Kislev)월 20일에 온 유대인들이 모인다.
키스레브월은 유대인력으로는 9월이고, 태양력, 현대인 달력으로는 11월이다.
이 시기는 기후가 우기로서 큰 비가 내리는 때이고 추운 겨울로 들어가는 때이다.
큰 비가 내리는 추운 겨울이지만 에스라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면서 이방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유대인 남성들을 향하여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여러 개혁자들이 동참하면서 엘람 사람 야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찾아와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라고 하면서 개혁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한다.
에스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가냐가 한 말을 그대로 지킬 것을 맹세하라고 한다.
이들이 추진하는 종교개혁은 이방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유대인 남성들은 이방인 여인들과 그의 소생들을 함께 쫓아내라는 것이다.
이방인 여인들과 여인들의 소생들은 예루살렘 성에서, 유대 땅에서 떠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떠날 수 없다.
①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어떻게 떠나라는 말인가?
나는 남편을 지극히 사랑한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았는데 이제 신랑을 떠나서 유대 땅을 떠나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② 우리가 유대 땅을 떠나면 우리 자녀들에게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만들게 된다.
엄연히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자녀들에게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란 신이 원하는 것이겠는가?
③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살지 못해서 우리 고국과 친정에서 살아온 습관대로 살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여호와 하나님의 방식으로, 유대인으로 개종해서 살면 되는 것이지 않나?
D4.
①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는 하나님.
유대인 남성들과 혼인한 이방인 여성들은 지금까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국에서, 친정에서 살아온 것처럼 살아왔다.
자신들이 배운 그대로 자식들에게 그대로 가르쳐 왔다.
하지만 예루살렘성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아서 새로운 개혁운동이 일어난다.
그 전에는 친정으로 살았던 것처럼, 자기 고국에서 살았던 것처럼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이제는 시대적인 상황이 바뀌어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연성을 가지게 된다.
느헤미야13:23-27절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라고 하시는 말씀을 보면 유대인 남성과 혼인한 이방인 여인들의 죄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녀들에게 유대인의 언어와 습관과 전통과 신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럼으로 인해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만 해결되면 구태여 이방인 여인들에게 떠나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혼인한 이방인 여인들은 신랑이 되는 유대인의 언어와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들이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언어 그대로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전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방인 여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와 삶의 풍습을 그대로 따라 살아갈 뿐 아니라. 고국에서 섬기던 자기 고국의 신들을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전하면서 이방인의 신을 섬기고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북한에서 살던 사람들이 탈북하여 자유대한민국에 찾아온 이들이 대략 32000여명이 된다.
32000여명 중에서 60∽70%가 여성이다.
이들은 북한에서 태어나서 북한의 교육을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심지어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김씨3부자의 우상화 교육을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고 듣고 배우면서 자란 것은 오직 김씨3부자의 우상화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자유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은연중에 몸에 밴 김씨 우상화 교육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낳아서 키울 때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들이 교육받았던 그대로 애들에게 교육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 남성과 결혼한 이방인 여인들이 자녀를 낳아서 키우면서 자신들이 보고 듣고 배웠던 것들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배운 것이라곤 고국에서, 친정에서 배운 것들이 전부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여인들에게 유대인 남성과 혼인하여 낳은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되는 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② 히브리 민족화 되어 가도록 하시는 하나님.
유대인들의 자녀들이 유대인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유대인과 유대인이 혼인하여 낳은 자녀는 자연히 유대인이 된다.
또한 유대인 여성과 이방인 남성이 혼인하여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는 유대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 남성과 이방인 여성이 혼인하여 자녀를 낳았을 때, 그 자녀는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 여성이 낳은 자녀가 유대인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방인 여성이 유대인으로 개종하면 가능하다.
그 원인은 유대인 여성으로 개종해야만 자녀들을 유대인으로 양육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유대인들과 혼인한 이방인 여성들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바로 유대인으로 개종하지 않은 이방인 여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유대인의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이방인 여인들이 자녀들에게 유대인의 교육을 시키지 않고 이방인의 교육을 시킨 결과가 여인들의 고국 언어와 문화와 신앙은 그대로 습득하여 배워서 알고 있는 반면에, 유대인의 언어, 습관, 전통, 신앙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유대인의 언어를 할 줄 아는 자녀들이 없는 것이다.
유대인 언어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유대인의 삶도, 신앙도, 전통도, 습관도 없다는 증거가 된다.
오늘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방인 여인들은 히브리민족과 혼인한 여인들이다.
이 여인들은 히브리민족과 혼인한 것은 맞지만, 다른 여인들과 차이가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요인은 이방인출신 여인으로 히브리민족과 혼인했다면 히브리민족화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히브리민족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가르치지 않고, 자기 고국과 친정에서 사용하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그대로 자녀들에게 교육시키면서 이방인화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아니기 때문에 떠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예루살렘성에서 떠나야만 되는 것이다.
이방인 여인들이 유대인 남성들과 혼인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룻기에는 두 이방인 여인이 등장한다.
오르바라는 이방인 여인, 룻이라는 이방인 여인이 등장한다.
두 여인 중에서 오르바 여인은 모압 땅을 떠나지 못하고 친정과 고국으로 돌아가는 여인이지만, 룻은 모압이라는 고국과 친정을 떠나서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보아스를 만나고 오벳을 낳아서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된다.
마태복음1장에도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 4명의 이방인 여인이 등장한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는 이방인 출신 여인들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방인 여인들이 유대인 남성과 혼인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 여인들이 많다.
어쩌면 히브리민족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방인 여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난다.
리브가도, 레아와 라헬도, 빌하와 실바도, 야곱의 며느리들도, 모세의 아내인 십보라도, 모세의 후처인 구스 여인도, 여리고성의 라합도 이방인 출신 여인들이다.
히브리 남성이 히브리 여성과 혼인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더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히브리 남성들이 이방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사례가 많다.
그렇지만 히브리 남성과 혼인한 이방인 여인들이 신랑을 따라서 히브리민족이 되어 지지 않고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한 고국과 친정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고국과 친정에서 살았던 삶의 방식을 따라서 언어도 바뀌지 않고, 습관과 전통도 바뀌지 않고, 신앙도 바꾸지 않는다.
도리어 신랑을 자신들의 섬기는 신들을 섬기게 만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솔로몬의 많은 이방인 아내들이 그랬고, 많은 왕가의 여인들이 그랬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자기들이 섬기던 신앙과 언어와 습관, 전통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수 있다.
이런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여인은 룻과 같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고국과 친정에서처럼 살겠다고 고집하게 되면 오르바와 같은 여인이 되어서 예루살렘 성에서 떠나라고 하는 개혁에 따라서 자식들을 데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다.
유대인 남성들과 혼인한 이방인 여인들은 자기가 오르바와 같은 여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룻과 같은 여인이 될 것인가를 선택해야 되는 것이다.
자신이 오르바와 같은 여인이 되겠다고 선택했다면 자신이 낳은 자식들을 데리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룻과 같은 여인이 되겠다고 선택했다면 자신이 유대인이 되겠다고 개종하고 자신이 먼저 유대인의 교육을 받고, 자녀들에게도 유대인의 교육을 받도록 해야 되는 것이다.
③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고백하고 인정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방인 여인들이 예루살렘성과 유대 땅을 떠나지 않고 계속 신랑과 자신이 낳은 자녀들과 함께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당연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용하는 히브리 언어, 문화, 습관, 전통, 신앙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인들이 낳은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히브리 언어, 문화, 습관, 전통, 신앙을 가르치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그러면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삶, 곧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했던 과거의 고국, 친정, 고향, 신앙을 오직 믿음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과거의 삶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방인 여인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는 촉구에 따라서 떠난 여인들도 많이 있었는가하면, 반대로 여전히 예루살렘성과 유대 땅에 그대로 머물렀던 여인들도 많았음을 볼 수 있다.
이방인 여인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방인 여인들이 떠난 것은 아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비롯한 유대 종교개혁자들이 이방인 여인들은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떠나라는 말에 따라서 떠난 여인들도 있는가하면 떠나지 않은 여인들도 있다.
자기 고국과 친정으로 떠난 여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자기 고국과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언약이 되기로 결단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개종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계속 남아 있는 여인들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다,
이 여인들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땅으로 찾아오신 구원자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온갖 이적들을 직접 체험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 여인들은 이방인 여인들이었지만, 히브리민족화 되어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여인이 된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이방인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방인 여인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히브리민족과 혼인하여 히브리민족의 자녀를 낳고, 히브리민족화 되어진다.
우리나라는 이제 한민족,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다문화시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문화시대, 다양한 민족들이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국가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문화 속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문화시대에 살다보면 다양한 타민족의 종교들도 급속하게 파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교, 무슬림들이 우리 한반도에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현상이다.
무슬림인들이 우리나라 사람과 혼인하여 자녀를 낳으면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이슬람교를 강요한다.
이슬람교와 무슬림들, 교회의 목사님과 같은 이슬람교의 지도자 이맘(Imam)들이 한반도에 물밀 듯 몰려오고 있다.
이맘이라는 사람들은 이슬람교회의 황금사원으로 알려져 있는 모스크에서 알라 신을 향한 예배를 인도하는 특별히 교육받은 이슬람교의 지도자이다.
이들이 각 대학교들과 각 지역에 급속도로 확장되어지고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 한다. 무슬림들은 테러분자들이다.
이슬람교는 거짓된 평화의 종교이다. 이슬람교는 테러와 폭력의 종교이다.
특히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을 알라를 위해서 살인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럼에도 평화라는 가면을 쓰고 물밀 듯이 우리나라 속으로 파고 들어오고 있다.
다문화라는 명분으로 무슬림들이 들어와서 우리 한민족을 이슬람화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에스라. 느헤미야와 비롯한 유대의 종교개혁자들이 히브리민족화 되지 않은 이방인 여인들을 떠나라고 촉구한 것처럼 이슬람교도들, 무슬림들은 한반도에서 떠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민족을 지켜 나갈 수 있다.
한국교회를 지켜 나갈 수 있다.
L4 & B4
신앙인이 아니었던 영혼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기 전의 삶을 포기해야 되는 것이다.
과거 세상에서의 삶을 떠나서 새로운 신앙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모든 것들을 맡기고 예수님을 새로운 삶의 주인으로, 영혼의 주인으로, 자신의 삶 전체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모셔 드리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될 수 있다.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은 유대인들과 혼인한 이방인 여인들을 떠나보내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이방인 여인들은 각기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방인 여인들은 예루살렘 성에서 자기가 낳은 자식들까지 데리고 떠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민족화된 여인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 여인들은 떠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일까?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죄악된 자리에서 떠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더 이상 죄악된 자리에서 미련 떨지 말고 떠나서 이제는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이방인 여인과 같은 죄악의 자리와 혼인했다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그 혼인을 파혼시키고 온전히 삼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강권적으로 권고하고 계시는 말씀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죄악된 자리, 세상의 자리에서 떠나서 하늘의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① 다시 한 번 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보혈,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을 믿음으로 다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아니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없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고 예쁘고 멋지고 탐이 날 정도로 좋아보여도 썩어지고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땅의 것들은 썩어질 것들이다.
땅의 것들은 죽을 것들이다.
날아가는 독수리도 떨어뜨릴 수 있는 엄청난 권력도, 세상에 온갖 부러움을 한 몸에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명예도, 세상에서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학문세계도, 얼짱, 몸짱이라는 건강한 외모들도 언젠가는 썩어지고 죽어지는 것들이다.
으리으리한 재물도, 부귀영화도 썩어질 것들이다.
으리으리한 교회당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들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무너질 것들이고, 썩어질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천재지변을 한번만 일으키면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아무리 좋고 대단하다해도 단 하나도 천국으로 가지고 가지 못한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업적을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고, 배설물로 버렸노라고 고백하고 있디.
우리가 천국에 갈 때는 세상에서 쌓아놓은 업적을 단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다 세상에 버려두고 단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믿는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믿음 하나 가지고 천국으로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원한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산다고 고백하면서도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탐욕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흔히 믿음이 좋다고 하는 분들이 모세가 살았던 120세까지 살겠노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꽉 붙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가고 싶다.
물론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살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목사답게 살고 싶다.
오래 장수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자녀들, 손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그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면 오래 장수하여 사는 것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이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 하나는 바로 주님의 십자가보혈을 믿는 믿음 하나뿐이다.
② 믿음으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똑 바로 바라보는 신앙인은 날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선 믿음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회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산다고 고백하면서 회개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이다.
화인 맞은 양심으로 사는 것이다.
세상의 죄악된 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삶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의 눈으로 똑 바로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누가 회개하라고 가르쳐 주어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 속에서 회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감동을 주시고 역사해 가시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하는 이들에게는 깊은 영혼 속에서 잔잔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성령 하나님께서 아주 잔잔하게 세미하신 음성으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하염없이 회개의 영으로 회개하도록 역사해 가신다.
③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회개의 삶을 사는 신앙인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뿌리이기 때문에 뿌리가 든든하고 강해야 신앙의 나무가 곧고 굳세게 자랄 수 있다.
우리교회에 장미 철쭉이 한 그루 있었다.
제주에서 매형이 주셔서 가지고 와서 화분에 심어서 키우면서 아주 예쁜 장미 철쭉이라는 꽃들을 피워서 너무 좋았는데, 올 해 초에 분갈이를 하려고 봤더니 새로운 뿌리가 하나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제주도에서 가져올 때 뿌리 그 상태였던 것이다.
새로운 뿌리가 내려야 나무가 왕성하게 자랄텐데 새로운 뿌리가 내리지 않은 것이다.
결국 새로운 뿌리가 내리지 않아서 말라 죽고 말았다.
나무를 많이 키워보면서 자라지 못하고 말라 죽는 나무들을 보면 뿌리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서 말라 죽는 것을 본다.
뿌리가 없거나 약하면 아무리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거름을 준다 해도 나무는 말라죽게 마련이다.
나무를 삽목한다 해도 삽목한 나무 가지에서 먼저 뿌리가 내려야 싹이 나고 자라게 된다.
뿌리가 내리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죽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의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뿌리가 곧게, 굳게, 넓게, 강하게, 높게 내려서 퍼져 있어야 잘 자라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게, 폭넓게, 높게 읽고 느끼고 고백하고 깨달아야만 신앙인의 나무는 자라는 것이다.
살아 있는 나무는 아무리 고목이라 해도 싹이 나고 자라게 마련이다.
아무리 늙은 어르신이라 해도 살아계시는 분들은 손톱, 발톱, 머리카락, 수염은 자라게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 신앙인의 나무는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영이 살아서 자라게 된다.
신앙인의 나무가 자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고,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든 믿음이 자란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신앙이 자랄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들에게는 은혜와 능력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믿음은 죄악의 자리에서 미련두지 않고 떠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되는 믿음은 죄악의 자리에서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고 당당하게 떠나서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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