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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예레미야(7)/배역
제목 :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성경 : 렘 3:1~18
찬송 : 287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0807 낙양교회 수요예배
렘 3:1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2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렘 3: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렘 3: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렘 3:5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렘 3: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렘 3:7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렘 3:9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렘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렘 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렘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렘 3: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하나님은 우상 숭배로 더러워지고 오염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다시금 아내로 맞이하려고 하십니다. 신명기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분이 부끄러움을 품고 음행한 백성에게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손을 내미시며, 내가 너희 남편이라고 공포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그분의 마음을 이용하거나 배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65~66장에서 선포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마지막 심판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그때가 임하기 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그에게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십니다. 쓰라린 가슴을 뒤로하고 우상에게서 마음을 돌이켜 나에게로 돌아오라고 손을 내미십니다. 따라서 이 제안을 받은 유대 백성은 예레미야 44장이 전하는 바와 같이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할 자들이 아니라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반응하는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배교한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백성이 돌아오면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유다는 스스로 결단해 여호와께로 발길을 돌이킬 일만 남았습니다. 그 백성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예레미야서에는 ‘돌아오다’(슈브)라는 단어가 125차례 사용되는데, 그중에서도 3~4장에서 20 차례 사용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하고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자격조차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패역한 자기 백성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아갈 자격이 없는 자들(1~5절)
율법은 이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했을 경우, 첫 남편과 재혼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신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신 24:2 그 여자는 그의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신 24:3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또는 그를 아내로 맞이한 둘째 남편이 죽었다 하자
신 24:4 그 여자는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보낸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범죄하게 하지 말지니라
이스라엘은 첫 남편 하나님을 떠나 둘째 남편 우상을 섬겼으니 하나님께 돌아올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렘 3:1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절은 이런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남자가 아내를 내보내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면, 그가 그녀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느냐?’
여기에서 무엇보다 인칭을 잘 살펴야 하는데 ‘그녀가 그에게로’가 아니라 ‘그가 그녀에게’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신명기의 이혼법에 근거합니다. 신명기 율법에 따르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그 여자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법은 아내를 내보내냈던 전 남편이 그 여자를 다시 아내로 맞이할 수 없도록 규정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유업으로 주신 땅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1절의 마지막 두 소절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그런데 네(여성)가 많은 애인과 놀아나고도 내게로 돌아오려 한다.”
이것은 굳이 율법의 규정이 없더라도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은 부부 사이가 아무리 허물이 없고, 모든 것을 본인의 결정에 따라서 결혼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한다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한계를 그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일단 이혼해서 다른 남자와 살던 여인은 원래 남편에게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결코 결혼은 장난이 될 수 없고, 결혼과 이혼에는 그만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는 어린아이 장난처럼 싫다고 해서 헤어지거나 좋다고 해서 다시 결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결혼 관계를 더럽히면 그 땅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농사가 되지 않고 과일들이 열매를 맺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유다 백성들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뻔뻔스럽게 아무 소리 없이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렘 3:2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렘 3: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레미야는 그 행음 정도가 ‘창녀의 낯’을 가졌다고 할 정도로 심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눈을 들어 헐벗은 언덕을 보라고 말합니다. 주석가들의 해설에 따르면 그 언덕은 대상들이 여행하는 곳으로, 가나안 종교 의식에 따라 하늘의 비와 땅의 곡식을 얻고자 난잡한 성행위를 일삼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바알을 숭배하며 하늘의 비와 풍요가 있기를 기대했지만 얻은 것은 가뭄 뿐이었습니다(3절).
북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를 보십시오. 그들이 풍요를 원하여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3년 6개월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소나기도 늦은 비도 다 그치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다 백성도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얼굴이 뻔뻔했습니다.
√렘 3:4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그러나 유다 백성은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뻔뻔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가벼운 태도로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라고 말했습니다(4절).
죄악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렘 3:5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더 나아가 그들은 속으로 ‘하나님이 영원히 분노하시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음행을 계속 저질렀습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 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인내하시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역이용해 그분을 거짓으로 대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지만, 사실상 이들은 하나님께 돌아갈 자격조차 없습니다. 가끔 “하나님은 회개하면 다 받아주시니 우리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라는 식의 뻔뻔한 생각으로 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 돌아갈 자격조차 없습니다.
√악행의 결말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자들(6~11절)
예레미야의 사역은 요시야 왕 13년에 시작되었습니다(1:2). 이 말씀은 비교적 예레미야의 사역 초기에 선포된 것입니다.
요시야 때 북쪽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고 남쪽 유다도 멸망을 향해 가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교해서 말씀하시면서 남쪽 유다가 이미 멸망당한 북쪽 이스라엘 보다 더 악하다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렘 3: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여기에 나오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북 왕국이고, 여기까지가 북 왕국의 행동입니다. 그 다음부터가 남 유다의 반응입니다.
√렘 3:7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렘 3:8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북 왕국을 보고 남 왕국은 전혀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9~10절도 봅시다.
렘 3:9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렘 3: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들은 교육을 무척이나 강조합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으면 미련한 역사를 반복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역사는 계속 반복됩니다. 단순하게 개인적인 시행착오로부터 집단적인 또는 국가적인 또는 더 광범위하게 온 인류적인 차원에서 수없는 어리석은 역사가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즉 역사를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배역한 이스라엘이 반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렘 3: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앞서 6~10절까지는 북 왕국을 보고서도 남 왕국이 전혀 배우지 않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는 11절에서 실상은 차라리 북 왕국 즉 배역한 이스라엘이 남 왕국 즉 반역한 유다보다 의로움이 나타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북 왕국의 사례를 직접 목격한 남 왕국이 최소한의 교훈이라도 배웠다면 북 왕국과는 달았어야 합니다. 죄를 범한 자들이 징계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라는 외침에 겉으로만 뉘우치는 척하면서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욱 가증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훈을 받고서도 변화하지 않고, 눈물만 흘릴 뿐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이러한 책망을 받아도 마땅한 것입니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 때문에 심판받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12~18절)
√렘 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3: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북(이스라엘)으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명령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이스라엘이 패망한 이후 북쪽에 남은 자들에게 선포한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 14절과 연결해 해석하면 남 유다를 포함한 통일 이스라엘을 향한 선포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핵심 메시지는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선포입니다. 아직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13절은 그들이 어떻게 음행했고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했는가를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화자는 자매들(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을 향해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14절). 하나님과 두 자식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식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렘 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렘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4절에서 화자인 여호와께서는 ‘나는 너희 남편이라’고 공적으로 선포하십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돌아온다면 그들은 시온을 향해 나아올 것인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 가운데 빠짐없이 골고루 그 성의 남은 자들을 데려올 것이며, 그들을 이끌어갈 목자들을 주어 그들을 지식과 분별력으로 양육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
√렘 3: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그들이 함께 이르리라
특별히 16절 내용을 주시하게 되는데, 갑자기 언약궤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미래의 남은 자들은 더 이상 여호와의 언약궤를 말하거나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 선포하는데,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언약궤의 부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공동체 가운데 임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여호와께서 기업으로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관건은 ‘돌이킴’입니다. 오직 돌이킴에 미래가 있고, 돌이킴으로써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돌아갈 자격이 전혀 없는 자들에게 회복을 말씀하시고, 돌아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전심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용서는 법으로도, 도덕으로도, 합리성으로도 설명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처벌을 당해야 할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죄를 지은 백성에게 돌아오라 부르시며 회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의 말씀을 들었다면 주님께 돌아가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다시는 죄악에 거하지 않겠노라 약속하며 결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배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당신과 원수 된 우리를 자녀 삼으사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 속에서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