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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박수현
내가 사는 아파트를 낀 소방도로 모롱이에 찻집 단풍나무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그 집을 기준으로 조회시간 애들처럼 삐뚤빼뚤 줄 서 있는 가게들, 한쪽으로 선미머리방, 둘레수선점, 엄마손분식, 윤가네감자탕, 고운양품점, 장미세탁소와 나리노래방이 있고 맞은편엔 휴치과, 재민이발소, 온누리약국, 파닭한마리, 청미래식당, 세계마트 그리고 싱싱자전거방이 있다 어느 한갓진 소읍처럼 누가 오가는 기척도 귀엣말로 건넬 듯 다닥다닥 매달린 가게들이 요즈음 새 간판을 다느라 분주하다 풍년방앗간 자리에 파리바게뜨와 베스킨라빈스가, 그 옆 미미꽃집은 팡세 아 모아로 상호를 바꾸었다 국수나무가 문을 닫고 개업기념 50% 특가라고 미스사이공 스카이댄서가 아오자이 자락을 펄럭인다 학사문방구 자리엔 24시 GS편의점이 길고양이처럼 호동그랗게 눈을 뜬 채 밤길을 살핀다 목동남로라는 새 도로명보다 칼산우성이라 말해야 쉽게 알아듣는 택시기사들, 비가 오면 진창이었다는 이곳에 다코야키 푸드 트럭이, 땅콩 볶는 수레가 다국적 간판을 읽어내느라 잠시 두리번거린다 팡세 아 모아 꽃집이 한나절 생각에 잠긴 동안 매미 소리가 잦아들고 바람이 마른 플라타너스 잎들을 몰고 내달린다 엔제리너스 문을 밀다가 나는 문득 유리창에 단풍잎을 붙이던 단풍나무찻집과 단풍잎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파리바게뜨에서 크루와상을 집다가 뜬금없이 퐁네프다리의 연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한 가게 안에는 포인세티아가 붉고 가을을 건너뛴 저쪽 가게 너머에는 첫눈이 내린다 그 사이, 또 새 간판이 올려지고 미미꽃집과 단풍나무찻집과 잊힌 이름 하나를 설핏 접어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서정과현실》2018.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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