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000270) (77,800원▼ 2,000 -2.51%)가 K9 출시를 앞두고 제작한 세일즈 가이드(판매 지침)에서 K9을 세계적인 고급차 브랜드인 BMW 7시리즈보다 우수한 것으로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BMW는 기아차가 K9의 세일즈 포인트로 BMW 7시리즈를 물고 늘어지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BMW와 브랜드 격차가 심한 기아차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으로 판단, 공식적인 대응은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K9의 직접적인 경쟁 차종이 쌍용차의 ‘체어맨W’와 렉서스 ‘GS’, 인피니티 ‘G37’, 링컨 ‘MKZ’, 캐딜락 ‘CTS’ 정도인데, 최고급 차종으로 꼽히는 BMW ‘7시리즈’를 경쟁차종으로 설정한 것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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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비즈가 단독입수한 'K9 세일즈 가이드' 문서 /박성우 기자
10일 조선비즈가 단독 입수한 ‘K9 세일즈 가이드’에 따르면 기아차는 K9가 최고급 브랜드 모델인 BMW 7시리즈보다 우수하다고 밝혔다. 또 벤츠 S클래스,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렉서스 LS460, 재규어 XJ 등을 경쟁차종으로 거론했다.
이 문서는 신차 출시에 앞서 관련 시장 동향과 상품 콘셉트, 판매포인트 등을 정리한 내부 문서다.
◆ 기아차, “K9 전 분야서 BMW 7시리즈 압도” 자화자찬
기아차가 제시한 판매포인트(세일즈포인트)는 스타일·인테리어·퍼포먼스·상품성·패키지·신기술 등 6가지 항목이다. 이들 모든 항목은 경쟁차인 BMW 7시리즈와 수입차로 비교분석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기아차는 공인기관 테스트없이 자체 평가한 6개 항목에서 K9가 BMW 7 시리즈보다 우수하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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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 K9 차체에 대한 정보를 경쟁차와 비교해놨다. /박성우 기자
예컨데 스타일 항목에서 BMW 7시리즈와 재규어 XJ는 전면 그릴 부분의 형태가 대체로 직선에 가깝지만 K9는 보닛 양쪽에 근육같은 캐릭터 라인을 줘 입체감 있는 볼륨감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특히 K9는 경쟁차종과 달리 차량 측면부의 경우 후드와 범퍼가 하나의 면으로 이뤄지는 원스킨 스타일을 적용해 입체감과 역동적인 스타일을 확보했다는 식이다.
K9의 차체는 전장 5090mm, 전폭 1900mm, 전고 1490mm를 기반 설계됐다. 차량의 실내공간의 길이를 의미하는 휠베이스(축거)는 3045mm로 경쟁차인 BMW 740i(3070mm)보다 25mm 짧다. 반면 차량 탑승 시 다리의 공간을 의미하는 레그룸은 BMW 740i(1950mm)에 비해 K9(2135mm)이 총 185mm(앞좌석 25mm·뒷좌석 160mm)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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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주차장에 주차된 'K9'의 모습 /박성우 기자
기아차 관계자는 “K9 세일즈 가이드는 실제 영업사원들의 교육과 판매, 향후 K9 팜플렛, 정보보드 등 판촉물을 만드는 원재료가 되는 중요한 문서”라면서 “문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경쟁차와 참고차량 등 수입 외제차를 언급한 만큼 조만간 전국 각 전시장 영업사원들에게까지 K9을 7시리즈·S클래스와 비교해서 설명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기아차의 이 같은 전략이 알려지자 BMW는 발끈하고 나섰다. 회사 한 관계자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면서 “역사가 36년된 BMW 7시리즈와 이제 처음 만든 K9가 어떻게 비교가 되냐”고 가소롭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K9에 적용된 기술이 대부분 이미 수입차에 적용된 점을 지적하며 “모방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니 기아차가 벤치마킹하는 것에 대해 뭐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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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 K9에는 에쿠스에 장착됐던 콘티넨탈사의 '셀프 실링 타이어'가 장착된다(위), 기아차가 K9의 주요 타갯층으로 40~50대 중반을 잡았다는 내용의 자료 /박성우 기자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 교수는 “세일즈 가이드는 영업사원이 소비자에게 구매를 유도하려고 사용하는 자료이므로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기아차가 좀 더 객관적인 수치나 인증기관의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했으면 좋았을텐데 일방적으로 좋다고 주장해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K9, 실제 경쟁차종인 현대차 에쿠스·제네시스 피하려 가격 낮춰
기아차는 전날 K9 가격을 3.3 모델 5300만~6500만원, 3.8 모델을 6350만~8759만원으로 잠정결정했다고 밝혔다. 5300만원 모델을 기준으로 제네시스(4211만원)보다 1089만원 비싸고 에쿠스(3.8L·6471만~1억356만원)와 비교하면 K9이 더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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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의 'K9 세일즈 가이드'에는 각 부분별 요소마다 BMW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 등의 고급수입차와 비교분석한 표가 붙어있다. /박성우 기자
기아차 관계자는 “K9는 개발단계에서부터 현대차의 에쿠스, 제네시스 등의 모델과의 간섭효과(같은 기업의 제품이 특성·가격 등이 비슷해 서로의 점유율 뺏는 현상)가 우려됐던 모델”이라며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윗선에서) 가격조정에 신경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 발표된 K9 가격을 봐도 에쿠스나 제네시스와의 겹치지 않기 위해 한 점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최근 수입자 가격대별 판매를 조사해 2011년 기준으로 5000만~8000만원대 대형차급 프리미엄 수입차의 판매 비중이 57%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이 기준에 따라 K9 가격대를 정하면 제네시스, 에쿠스와 경쟁은 피하고 수입 대형차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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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의 가격책정에 중요요소가 됐던 프리미엄급 수입차 판매가격 조사 /박성우
전문가들은 기아차가 K9와 BMW 7시리즈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소비자들에게는 고급차와 경쟁하는 것처럼 설명해 K9의 이미지 상승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BMW 7시리즈, 벤츠 S클래스는 몇십년간 역사를 통해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다”며 “K9가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10~15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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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로 공개되는 K9의 공식연비. 3.3L모델은 L당 10.7km, 3.8L모델은 L당 10.3km /박성우 기자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BMW 7시리즈와 벤츠 S클래스가 K9과 비교될 수 없고 결과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K9의 실질적인 경쟁차종은 현대차 에쿠스, 제네시스지만 형제회사라 대놓고 비교할 수 없어 수입차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