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매력적인 여행지이지만, 여수 주변으로도 멋진 곳들이 많다. 최근 TV 프로그램 '윤스테이'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구례는 한옥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여수와 마찬가지로 섬으로 둘러싸인 고흥 또한 신흥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여수에서 고흥까지 도로로 이동할 수 있는 백리섬섬길은 새로운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는 중이다.
한옥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구례
여수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에 있는 구례군은 지리산과 섬진강 사이에 있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곳이다. 교통이 불편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 구례에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한옥들이 모여있다. 최근 방송으로 유명해진 장소는 쌍산재라는 곳으로 삼백 년의 역사를 지닌 고택이다. 이곳은 현재 한옥을 개조해 숙박과 카페를 겸하고 있다. '쌍산재'라는 이름은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고조부님의 호(쌍산)를 빌어 만든 것이라고.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가문의 집인 만큼, 입구부터 예스러운 전통이 느껴지는 곳이다. 2004년 개방 이후 지금까지 숙박 외에 무료 관람이 가능한 이곳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쌍산재
위치 전남 구례군 마산면 장수길 3-2 쌍산재
http://www.ssangsanje.com/
쌍산재를 갔다면 주변에 있는 운조루에 들러보자. 국가민속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이곳은 '남한의 3대 길지'라 불리는 곳이다. 영조 52년 (1776년) 낙안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집으로 7년의 긴 공사기간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긴 공사 기간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이곳의 규모이다. 당시 1,400평의 대지 위에 99칸 저택이 지어졌으며, 조선시대 양반 주택을 대표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안사랑채와 행랑채가 사라졌고 집 앞에 연못이 있었음을 알게 할 정도로 축소되어 있지만, 여전히 조선 귀족의 위세를 느낄 수 있다.
운조루가 있는 오미리 마을은 예로부터 풍수지리 상으로 명당이 모여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금거북이 진흙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의 땅인 금구몰니(金龜沒泥),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땅인 금환낙지(金環落地), 다섯가지 보물이 모여있는 형상의 땅인 오보교취(五寶交聚)가 있다고 알려졌다. 운조루가 지어진 땅은 금구몰니 명당이고, 행랑채 밖 연못자리가 금환락지, 면 소재지 초입에 있는 돌탑이 오보교취의 명당이라고 한다. 이렇게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기에, 조선시대부터 부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집을 지으려 몰려들었다. 그 열풍으로 1940년 대에는 무려 3백여 채가 오미리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옥은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현재 이 마을에 남은 집은 운조루와 귀래정, 구례군향토문화유산 9호로 지정된 곡전재 정도다.
▲ '타인능해 (他人能解)'가 적혀져 있는 뒤주
▲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옛 의복, 민화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한다.
운조루 고택 안에는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큰 뒤주와 집안 내에 죽은 사람을 모셔두는 가빈터, 그리고 한옥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장독대가 눈길을 끈다. 운조루의 큰 뒤주의 아래쪽 마개에는 '누구나 열수 있다'라는 뜻의 타인능해 (他人能解)가 적혀져 있는데, 가난한 이라면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운조루 주인의 마음이다.
▲ 구례군향토문화유산 9호로 지정된 곡전재. 윤조루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방문이 조심스러웠다.
주택의 일부는 소실되었고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낡은 모습이 보였지만, 운조루의 모습은 전주 한옥마을, 북촌 한옥마을에서 보던 한옥과 비교했을 때 그 기품이나 아름다움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집 안에서 볼 수 있었던 한복과 민화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들인듯하여 더욱 눈길을 끌었다. 조선 시대의 전통과 이곳을 지은 인물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져 계속 여운이 남았다.
구례 운조루 고택
위치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103
http://www.unjoru.net/
구례를 대표하는 관광지, 화엄사
구례를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사적 제505호 화엄사가 꼽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이곳은 백제 성황 22년 (544년)에 인도에서 온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창건하였으며, 절 이름은 화엄경을 따서 만들어졌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사찰이 보수되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가장 큰 사건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서 싸운 승병에 대한 보복으로 왜군이 사찰 전체를 전소시킨 일이다. 이후 인조 때 몇 년에 걸친 보수 사업을 통해 대웅전 등 몇몇 건물들이 중건되었고, 숙종 때 현존하는 목조 건물 중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각황전이 건립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도광 대종사의 전면적인 보수 작업에 힘입어 지금의 화엄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화엄사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국보와 보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천연기념물, 부속 암자 등을 거느리는 거대 규모의 사찰로 손꼽힌다. 특히 400년 이상 된 홍매화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화엄사는 3월부터 홍매화가 아름답게 피는 곳으로 유명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건축물 사이로 붉게 빛나는 꽃의 모습은 이곳을 한층 더 아름답게 한다.
굳이 봄에 들르지 않아도 이곳의 볼 거리는 충만하다. 긴 역사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 안을 느긋이 걷고 있는 고양이들을 따라 걷다 보면, 불교의 장엄함이 느껴지는 문화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물 제299호 대웅전, 국보 제67호 각황전, 국보 제35호 사사자 삼층석탑과 석등, 보물 제132호 동오층석탑,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등, 사찰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교의 의미를 담으며 국가의 역사를 빛내고 있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엄숙함이 느껴져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종교와 국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사찰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은 여행이었다.
화엄사
위치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지리산 화엄사
http://www.hwaeomsa.com/index3.php
여수와 고흥을 잇는 연륙연도교, 백리섬섬길
각기 다른 바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여수와 고흥은 교통이 불편해 이동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교량으로 연결되어 연결이 훨씬 수월해질 전망이다. 전라남도가 해양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여수 돌산에서 고흥 영남 간 10개 섬, 11개의 해상교량으로 연결한 '백리섬섬길'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8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는 이 길은 현재 화태대교에서부터 팔영대교까지 총 7개의 교량이 완공된 상태다.
▲ 백리 섬섬길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노을이 질 때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다.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 미국의 오버시즈 하이웨이, 노르웨이 아틀란틱 오션 로드처럼 세계적인 명품 관광 도로를 조성할 목표로 만들어진 이 길의 이름은 여수와 고흥 간의 거리인 '백리'와 섬과 섬을 잇는 바닷길의 순우리말인 '섬섬길'이라는 표현을 더해 친근함을 더했다. 그 이름 따라, 섬과 섬을 달리는 경험은 여수의 돌산대교나 거북선대교를 건널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에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드라이브를 즐기며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을 구경하니, 마치 신선이 된 듯했다. 노을을 따라 달리는 여행은 여수의 다른 곳에 있을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 다리를 건너는 것, 다리를 보는 것 모두 아름다웠던 팔영대교.
백리섬섬길의 하이라이트는 적금도와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팔영대교에 있었다. 너른 바다를 건너는 것도 특별했지만, 차에서 내려 팔영대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드라이브를 한 보람이 있었다. 팔영대교 아래에는 낚시나 차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대교를 바라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하니 차박을 즐기는 이들이 내심 부러웠다. 이 길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간 곳이기에 별다른 준비를 못 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번에는 여수 여행만 준비했지만, 나중에 이곳에 올 때는 여수와 고흥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도록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위 드라이브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