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19,1-2.11-18; 마태 25,31-46
+ 찬미 예수님
비도 오는데 미사 나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나, 야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길을 여러 가지 말씀하시는데, 핵심은 마지막에 나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용하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 25장의 말씀인데요, 제1독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고통받는 이웃을 예수님처럼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에서 염소로 분류된 이들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남에게서 먹을 것을 빼앗거나 입을 옷을 빼앗거나 감옥에 가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에게 고통을 가한 이들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예 복음에 나오지조차 않습니다. 염소로 분류된 이들의 잘못은, 아무것도 안 한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이들의 잘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201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교황님께서는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세월호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세월호 리본을 달았습니다. 반나절쯤 뒤에 어떤 이가 다가와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비극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습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은 중요한 어록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왜 진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1독서의 말씀을 심각하게 거스릅니다.
우리를 거룩함의 길로 초대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이 사순시기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민감해지라고, 그것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