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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32
개혁자 느헤미야
본문 느헤미야서 3장을 읽으면 도대체 느헤미야서 3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문을 누가 달았으며 누가 기둥을 달았는지 등등 성전 건축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가 나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평범하기도 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같은데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느헤미야서 3장 기록의 특징은? 성벽공사를 수입산의 석재와 최고급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누구 누구가 바쳤다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사람들의 공사구간을 비교적 담담하게 기록했다. 즉, 성벽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했는가? 어떤 사람들이 했는가? 그 무게를 두고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하나님은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바쳤으며, 건축을 위해 값지고 비싼 재료를 얼마나 투자했는가라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움과 돈에 중심을 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동참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합당한지를 보여준다.
가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분이나 그동안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분들 모두에게 다 중요한 말씀이다.
1.소명의 원리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성벽을 재건하면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1절에 나와 있다.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이 일에 나섰다.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제사장의 형제들이 함께 일어났다. 그들은 성전이 아닌 성벽을 건축하는 일이었다. 어떻게 대제사장과 그 가문이 이 일에 참여하였는가? 당시에 성전은 건재했다. 제사드리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피폐하고 안정되지 못하다면 제사장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도 백성의 지도자로서 이 일을 제의 받았을 때에 이 일도 동일한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께서 이 일에 나를 필요로 한다고 여겼다.
우리기 흔히 생각키로는 굳이 대제사장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매우 바빴을 것이다. 또한 거룩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집례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일에 자신의 옷을 벗고 땀을 흘리는 노동을 했다. 성경에서 대제사장이 땀흘리는 성벽재건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이색적이다. 제사장들은 성벽과 성문을 달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봉헌했다. 성별하였다.
백성들의 마음에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한마음이 되는데 발판의 역할을 했다.
*목사님 집회인도/교회 공사중/설교-함께 노동에 동참/설교보다 더 큰 은혜를 끼쳤다.
이 대제사장들이 한 일은 양문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양문이란 양의 문으로 제사장이 제물을 바치기 위해 제단을 향해서 나아갈 때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입니다. 이것은 제사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제사장이 해야 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래서 그 일은 제사장이 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자신의 집들과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성전에 가까운 곳을 담당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부르심에의 확신을 가졌다. 우연히 얼떨결에 내가 이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나를 부르셨고 나와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신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우리가 이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보수하고 재건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일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삶과 일터가 바로 성벽을 보수하는 일이다.
*같은 일이라도 기쁨으로 충만한가? 아닌가? 하는 일이 판가름난다.
*집 옆의 가게에 주인이 바뀌었다/
인사를 극진히 한다. 감을 사러 갔다-최고 맛있는 것 갖고 갖고 가세요! 이 사람은 뭔가를 아는 사람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것을 하면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안다. 장사가 잘 될까? 않될까요?
*가정주부, 교사, 직원으로 일하는 것, 혹은 자영업, 학생 -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다. 이 땅위를 사는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아무도 이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다. 우리 흘리는 땀은 거룩한 것이다. 우리의 수고는 참으로 값진 것이다.
*교회에서 사역을 위해 많은 사람들과 대화/
성경공부, 순모임, 사역에의 동참을 권유해 보았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이나 아내가 어떤 일을 요구 할 때에/
공통점/바빠서, 다음에, 미룬다/아쉬웁다/안타깝다/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황금과 같은 시간-우리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황금처럼 가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감당할 때이다.
즉, 내가 좀 힘들고 피곤해도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이 생기면 바쁜 와중에서도 시간을 내어야 한다. 때로는 힘에 부쳐 피곤하고 다음에 미루고 싶어도 공동의 유익을 위해 힘을 내어야 한다. 이처럼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인한다.
*어떤 목사남/집회인도 시골교회/할일이 많았다/먼저 런닝을 입고 노가다를 했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 데 한 사람은 짜증을 내면서 일하고, 한 사람은 휘파람을 불면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옆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매사에 짜증을 내며 불평하면서 일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글쎄, 뭐 어쩌다 보니까 내 신세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겨우 벽돌이나 굽고 있소} 또 한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성전의 한 모퉁이를 건축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다 거룩하다. 이 일을 결정지우는 중요한 문제는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에 따라 판가름난다.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냐? 아니면 주지 못해 하는 일이냐? 하나님께서 이 일을 내게 맡기셨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기쁨도 있고 열매를 거둘 수 있다.
2.협동의 원리
본문에는 적어도 43개의 단체(부족)와 75명 이상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직업에 따라서 분류하면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직업은 15가지 이상이나 됩니다. 즉, 이 성은 한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느헤미야는 자신이 가장 수고했을 것이다. 최고의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 사람들이 자신에게 위임된 일을 신분과 직업과 귀천을 구별하지 않고 기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일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땀과 눈물의 수고이다.
이 땅 위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친구가 함께 하면 참을 수 있다. 외롭지 않다.
우리가 서로 마음을 모아 협력할 때 무슨 일이든지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협동의 힘입니다.
한미 연합사령부에서 해마다 하는 최고의 기동훈련이 있다. 팀 스피리트/협동 혹은 합동훈련이다. 북한의 김일성의 표현에 의하면 피가 거꾸로 쏟는 것과 같은 긴장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저마다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자발적으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 각 개인은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면서 마침내 이 위대한 사역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4장 9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9-12절).
1절에는 대제사장이 등장합니다.
8절에는 금장색(대장장이)과 향품 장사가 등장합니다.
12절에는 예루살렘 지방을 다스리는 사람들, 즉 정치인들이 등장합니다.
29절에는 동문지기가 나옵니다.
31절에는 상고가 등장합니다.
상고란 장사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있어서 성경이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잡다하게 나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일에는 차별이나 귀천이 따로 있을 수 없음을 가르친다.
또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사람도 구별이 없다. 누구든지 부르심에 응하는 자들이 있음으로 그 부르심을 거룩하게 만든다.
그 일을 하나님의 일임을 인정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일에는 모든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직업에 맞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했음과 아울러 우리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뒤로 물러 서지 않았다.
또한 이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지혜롭게 감당했다.
28~32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29-31절).
본문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는 그 다음은입니다.
이것은 일의 순서를 밝히는 단순 나열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말이 "next him, next them"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은 자기가 서야 할 위치에 서서 그 일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옆에 자기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에 서서 그 일을 하고 그래서 이 엄청난 예루살렘 성의 건축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그 다음에"라는 말은 3장 32절 중에 22구절에 걸쳐서 29번이나 강조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무엇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질서있게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성벽재건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예루살렘 성을 열심히 쌓았는데 그 일이 결국 자기들의 집에 유익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의 집이 안전하게 되었고 자기들의 집이 아름답게 단장되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들의 집 혹은 침방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다.
매우 효율적으로 성벽재건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집과 마주 대한 곳을 감당했다는 것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양문을 책임지고 했다는 것과 같다. 더 열심히 책임감있게 일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일은 누비이불과 같다.
조각조각을 서로 끼워맞추면 나중에 하나의 완성된 이불이 되어 기쁨과 만족을 안겨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영적인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렇게 받은 그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은사의 원리입니다. 본문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이 위대한 사역에 있어서 한결같이 적극적인 헌신과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백성들이 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12절 각양각색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단일체를 형성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거대한 과제를 아름답게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는 위대한 작업, 하나님의 일을 방관하고 동참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성경이 왜 이사실을 기록했을까요?
이런 귀족들이 언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비협조적으로 이 일에 방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말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일에 낙심이나 충격을 받지 말고 위임되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사인입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시면, 교회는 하나님이 각양 은사를 주신 여러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몸에 팔,다리, 머리등 여러가지의 지체가 붙어 있듯이 우리들의 교회 속에도 하나님이 여러 가지 재능과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온전히 순종치 못한 바로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후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달란트와 재능을 가지고 주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진실로 헌신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후회가 되겠습니까?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나 더 보람있는 하나님의 사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보다 보람있는 사역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많은 일들 중 한 사람의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일은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공동체 모두가 책임져야 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개인주의나 영웅주의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훌륭한 지도자들이 우상화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위인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웅전이나 위인전들은 위인의 삶이 불필요하게 과장되고 영웅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존경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의 삶에서 그들이 범한 실수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한 사람이 헌신적으로 섬김으로 만인이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얻게 됩니다.
*느헤미야 한사람의 눈물의 금식과 눈물의 기도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의 해묵은 과업을 완수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한 알의 밀알처럼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믿는 자는 모두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한 사람의 헌신이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다.
*당신이 가진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당신은 하나님의 사역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읍니까? 금년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찾아보십시오. 무엇인가 할 일이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받은 은사들이 활용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은 이루어집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이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100% 발휘해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우리의 꿈과 우리의 영성이 한 데 모여서 하나님의 일을 했을 때 거기에 나타날 위대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초대 교회가 그래서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가야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만족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부름심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홀로 외롭게 독야청청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한 형제요 자매이다. 우리가 가진 각각의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날의 교인들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일에 나를 부르셨는가'를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번에는 찬양대나 한번 해 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찬양대, 내일은 주교교사로 집시처럼 전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찬양대에 들어가기 전에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일을 통하여 주님을 성기도록 정말 소명하셨는지?
그리고 주님께서 찬양대의 소명을 당신에게 주셨으면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세입니다.
결론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예루살렘성 건축에 수고한 75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개인이 영광을 거두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신 것입니다 "
교회 일을 해 보신 분들이 왜 교회 일이 힘들다고 이야기합니까? 열심히 일하고도 제일 비판당하기 쉬운 것이 교회 일이기 때문입니다. 월급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치도록 열심히 일하고도 나중에 실컷 비판만 당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각자가 한 일을 일일이 기록함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록하면서 느헤미야는 한 사람을 더 특별히 취급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이 표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용한 일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일을 했고"라는 표현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룩은 특별히 힘써 일했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수고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많은 희생을 했던 한 사람을 느헤미야는 기억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고 기록한 것입니다.
바룩은 다른 그 누구보다 애쓰고 힘써서 자신에게 위임되어진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귀감이 된 사람이다. 모두가 힘들어 지쳐 있을 때에도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음에 지도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 활력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다.
작은 능력으로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느헤미야만 기억하고 격려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중심을 아시고 판단하실 것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시는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그 일에 정열을 쏟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당신은 그 일을 발견하셨습니까?
우리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셔서 그 일에 기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은 단순한 구경꾼에 불과합니까?
주께서 우리 모두가 동참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위대한 성이 다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 한 부분에 내 땀과 정성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는 여러분의 작은 정성을 필요로 한다.
교육관 설비를 앞두고 이 설교를 맞추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에의 헌신뿐만 아니라 목요전도, 금요 순모임, 교회의 크고 작은 일에 의욕적으로 성경적으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주역이 되기를 기도한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적인 사람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성공적인 개인이나, 단체나, 기업의 특징은 분명한 목적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나의 삶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정한 비전과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육군사관학교에서 그의 후배들에게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안전이란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여러분의 젊은 날을 자신의 안전을 찾는데 허비하지 말고 여러분의 삶을 섬김과 봉사의 열정으로 채우십시요" 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다웁게 살렘 성벽과 성문 재건에 모든 사람들과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맡겨진 일에 헌신할 것을 말씀합니다.*이 중에서도 느헤미야에게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사람이 눈에 들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