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요한복음1장 12-18절. 조창훈목사강해(칼빈주석에 근거)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란 보편적인 표현은 대조법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은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방인들이 양자의 권한을 획득하고, 구원의 소망으로 부르심 받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 이식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써 양자의 권리를 취득한다. 여기서 ‘이름’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 즉, 복음의 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통해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를 영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카톨릭 교도들은 그 은혜를 활용하거나 거절하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믿음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시는 것이다. 양자의 은혜는 잠재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다. 권세(power)는 완전한, 충만한 효과를 의미한다.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 믿음은 영적인 중생의 결과이다(faith......is the fruit of spiritual regeneration).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다시 지음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faith is a heavenly gift). 믿음은 중생의 일부분이다(faith is a part of our regeneration). 믿음은 그 원천이 되는 중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다시 지음을 받기 전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믿음은 중생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넣으신다. 이방인들이 다시 창조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 중생은 믿음의 결과이다(it is an effect of faith).
우리의 감각에 관한 한, 우리는 믿은 후부터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시작한다(so far as respects our sense, it is only after having believed — that we begin to be the sons of God). 믿음은 양자됨의 시작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it is said to be the beginning of our adoption). 믿음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양자됨의 은혜, 새 생명, 성령의 다른 은사를 생생하게 인식하게 된다.
* 그러나 이 두 순서가 완전히 일치한다(both statements perfectly agree).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서 참된 위격, 실재를 표시한다(that word denotes a real hypostasis, or subsistence, in the essence of God). 그리스도는 우리의 육신으로 옷을 입으셨다. 그리스도는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가지셨다(he had a soul as well as a body).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믿음의 요소가 있다. 첫째로, 두 본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어졌다(two natures were so united in one Person in Christ).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면서 참 사람이시다(one and the same Christ is true God and true man). 둘째로,
인격의 통일성은 두 성품을 유지한다. 그래서 신성은 신성대로, 인성은 인성 그대로 유지한다(the unity of person does not hinder the two natures from remaining distinct, so that his Divinity retains all that is peculiar to itself, and his humanity holds separately whatever belongs to it).
하나님의 본질(eternal essence of God)은 변화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은 계속 영원한 말씀이 되시는 방법으로 인간이 되셨다(the Son of God began to be man in such a manner that he still continues to be that eternal Speech who had no beginning of time).
장막은 에스케노센으로서 장막(tabernacles)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손님으로 우리 가운데 머무르셨다.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과 함께 거하셨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위엄이 육신을 옷 입었다. 그 영광이 육신의 비천함 가운데 숨겨져 있었지만 그 영광을 나타내었다.
그리스도는 본성에 의하여 하나님의 외아들이다(he is the only Son of God by nature).
은혜와 진리는 참된 은혜(true grace)를 의미한다.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외쳤다는 것은 요한이 공개적으로 큰 음성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요한보다 훨씬 월등이 뛰어나시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는 그리스도 위에 쏟아진 은혜로 물을 마신다.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에 우리가 참예한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한다. 율법과 은혜와 진리를 대조한다. 은혜는 값없이 죄를 사하여 주는 것과 마음이 거듭나는 것이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복음으로 우리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계시를 찬양한다. 여기서 “아버지의 품 속”은 인간적인 비유이다. 가슴은 의논의 장소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가장 깊은 비밀까지 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