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Any Size We Please
No one was looking at his lonely case,
So like a half-mad outpost sentinel,
Indulging an absurd dramatic spell,
Albeit not without some shame of face,
He stretched his arms out to the dark of space
And held them absolutely parallel
In infinite appeal. Then saying, ‘Hell’
He drew them in for warmth of self-embrace.
He thought if he could have his space all curved
Wrapped in around itself and self-befriended,
His science needn’t get him so unnerved.
He had been too all out, too much extended.
He slapped his breast to verify his purse
And hugged himself for all his universe.
sentinel : 1.보초 2.파수 3.파수 보다
--------
크기는 생각 나름
아무도 그의 외로운 처지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게, 반은 실성한 전초(前哨)의 초병처럼,
터무니없는 극적 황홀경에 탐닉했지만
그는 약간은 수치심 어린 얼굴로,
어둠의 공간으로 두 팔을 한껏 뻗고
무한에 호소하듯 계속해서 두 팔을 완전한
평행으로 뻗치고 있었다. 이윽고 말했다“젠장!”
그리곤 양팔을 당겨서 그 자신을 따뜻이 포옹했다.
그가 주변의 공간을 모두 둥글게 굽혀서,
공간 자체가 공간의 친구가 되게 휘감을 수 있다면,
과학이 그를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너무 나갔고, 지나치게 손을 뻗었다.
그는 가슴을 찰싹 때려 지갑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그 자신을 그의 모든 우주로 포옹했다.
-신재실 옮김-
단상(斷想): 세상 넓은 줄을 모르는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세상 넓은 줄 아는 사람의 세상보기도 우물 안 개구리보다 그리 넓지는 못하다. 사람의 시야(視野)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물”이라는 우리(cage)는 너무 비좁아서 불편하지만, 우주라는 우리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서 불편하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의 시계(視界)가 초래하는 인간의 갈등, 즉 인간의 “외로운 처지”는 딱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시의 인물은 어쩌면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며, 우주의 “극적 황홀경”에 탐닉한다. 전초기지의 초병처럼 실성 수준의 외롭고도 고된 정찰과 관찰에 몰두한다. 우주를 포옹하고 싶고 우주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는 우주에 구애하고 싶은 욕망과 무정한 우주에 등을 돌리고 싶은 원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광막한 우주는 불가사의한 타자(他者)일 뿐, 그의 구애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우주로 뻗었던 양팔을 거둬들이고 그 자신을 포옹한다. 그에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자아(自我)이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가 곧 그의 우주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너무 나갔고, 지나치게 손을 뻗었다”고 느꼈다. 밖으로 뻗기보다 자립(自立)이 먼저다. 예컨대, 사회 참여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자아가 무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그의 가슴을 “찰싹 때려” 자신의 지갑을 확인한 것은 자아 확인의 상징적인 행위이다. 그는 “그 자신을 그의 모든 우주로 포옹했다.” 그는 ‘우주를 위해서’ 그리고 ‘우주 대신에’ 그 자신을 “우주로” 포옹한 것이다. 타자인 우주는 우주를 포옹하고, 나는 나를 포옹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나 상상에 따라 우리 나름의 우주 크기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도 그 나름의 우주 크기를 정하거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재실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