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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고우우흥(苦雨偶興)」 장맛비 속에 우연히 흥이 일어나>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 소개하는 16세기 거제도 유배객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오언배율(五言排律) 「고우우흥 기유(苦雨偶興 己酉)」 즉, ‘기유년 장맛비 속에 우연히 흥이 일어나’는 고달픈 거제유배 생활의 소회를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담담하면서도 비장하게 읊은 56구(句) 280자 28운(韻)의 장문의 대작이다. 저자 정황 선생은 을사사화(1545년)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서 피어난 조선 시대 유배 문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조선전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유헌(游軒) 선생은 올곧은 선비로서 그의 지조와 절개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결국 13년의 거제도 귀양살이 끝에 1560년 49세의 일기로 배소에서 사망했으나 그가 남긴 유배문학과 도학의 가르침은 지금까지 후세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이번 작품 「고우우흥(苦雨偶興)」의 핵심 내용과 문학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다. 내용 전개상, 전체 56구(句)를 나누어 5단락으로 요약해 보면, 먼저 [1~10구]에선, 장맛비가 내리는 유배지의 풍경을 묘사했고 [11~20구]에선, 거제도의 험난한 자연과 유배객의 신세을 서술했으며, [21~30구]에선, 억울하게 죄를 짓게 된 이유와 옛 현인들의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자신을 투영했다. 또한 [31~40구]에선, 청렴한 지조와 조정(임금)을 향한 그리움을, [41~56구]에선, 귀향의 소망과 유배가 풀리기(解配)를 바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1) 「고우우흥(苦雨偶興)」 작품의 핵심 내용은 이러하다. 처음 도입부의 시(詩)에선, 거제도라는 '외로운 섬(孤嶼)'에서 장맛비(苦雨)를 맞이하며 느끼는 쓸쓸함과 연군(戀君)의 정서를 담았다. 이어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찾아왔지만, 화자는 절해고도에 갇혀 홀로 고독과 아픔을 삼키며 시를 짓고 있다. 그리고 매화와 미인의 대비를 그렸다. 매서운 추위를 딛고 눈앞에 피어난 '매화'를 바라보지만, 정작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미인(임금 또는 고향의 가족)'은 아득히 멀리 있어 만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드러냈다. 결국 시각적 여운을 남기는 구조를 통해, 유배객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만날 수 없는 대상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을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노래했다.
(2) 이 작품만의 문학적 특성은 이러하다. 먼저 '고우(苦雨)'와 '우흥(偶興)'의 역설적인 조화를 보여준다. 괴롭고 지루하게 내리는 장맛비를 뜻하는 '고우(苦雨)' 속에서 도리어 우연히 시적 흥취가 일어났다는 '우흥(偶興)'을 제목으로 삼았다. 이는 유배라는 가혹한 현실적 고통(苦)을 문학적 승화와 사색의 계기(興)로 전환하려는 선비의 내면적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전형적인 한시 구조와 시각적 여운을 구사했다. 기구(起)-승구(承)-전구(轉)-결구(結)의 짜임새 있는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마지막 구절에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잔잔한 시각적 잔상을 남기며 여운을 극대화하는 세련된 기법을 구사했다. 또한 전통적 미인(美人)이라는 모티프를 변용했다. 자신은 외로운 섬에 있고 아름다운 대상은 멀리 있다는 설정을 통해, 단순한 남녀 간의 정을 넘어 유배 문학의 핵심인 '연군지정(戀君之情)'을 은유적으로 고양시켰다.
○ [「고우우흥(苦雨偶興)」의 문학적 ‧ 교육적 특징]
정황(丁熿) 선생의 오언배율 「고우우흥(苦雨偶興)」은 궂은 장맛비(苦雨)라는 부정적 환경 속에서 도리어 내면의 문학적 흥취(偶興)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거제 유배시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문학적·교육적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문학적 특징으로 먼저 ‘물아일체와 초연한 태도’를 들 수 있다. 끝없이 내리는 장맛비라는 외적 억압과 고립을 원망하기보다, 자연의 섭리로 수용하며 유배객의 고독을 예술적 감흥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절제된 시상 전개’다. 감정을 가감 없이 분출하는 대신, 오언배율 특유의 엄격한 형식미와 대구(對句)를 통해 유배의 슬픔과 그리움을 담담하고 깊이 있게 표현했다. 그리고 ‘청고(淸高)한 선비 정신’이다. 세속의 권력과 부귀에서 멀어진 채,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글을 쓰며 마음을 닦는 선비의 맑고 높은 지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 교육적 특징으로 먼저 ‘역경 극복의 의지 학습’을 들 수 있다. 최악의 환경(장맛비, 유배)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정신적 여유를 찾는 모습을 통해, 학습자에게 '회복 탄력성'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가르친다. 또 ‘지역 유배 문학의 가치 발견’이다. 거제도라는 구체적인 공간적 배경과 유배인의 실상이 어우러져, 조선 시대 변방 유배 문학이 지닌 독자적인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을 이해하는 훌륭한 텍스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귀감’이 된다. 실제로 거제도 유배지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학문 연구에 힘썼던 정황 선생의 삶과 연계되어, 문학이 곧 삶의 수양이자 실천이었음을 보여주는 교육적 귀감이 된다.
● 다음 ‘咸’ 운목의 오언배율(五言排律) 「고우우흥(苦雨偶興)」 1549년(기유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암 조광조의 문하로서 사림의 절의를 지킨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장시, 「고우우흥 기유(苦雨偶興 己酉)」 즉, ‘기유년 장맛비 속에 우연히 흥이 일어나’는 고달픈 유배 생활의 소회를 고사(故事)를 인용하여 담담하면서도 비장하게 읊은 56구(280자)의 대작이다.
이 시는 정황 선생이 명종 3년(1548년) 정미사화에 연루되어 거제도 고현동으로 유배된 이듬해인 1549년(기유년) 여름, 그치지 않는 긴 장맛비(苦雨)를 바라보며 자신의 억울한 처지와 우국충정, 그리고 비록 억울하게 죄인의 신분으로 거제도 땅으로 유배를 왔지만, 다시 해배 복권되어 국가를 위해 다시 쓰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글이다.
**「고우우흥 기유(苦雨偶興 己酉)」** 즉, ‘기유년 장맛비 속에 우연히 흥이 일어나’ / 정황(丁熿 1512~1560)
*[1~10구] 장맛비가 내리는 유배지의 풍경
霾霖苦不斂 흙비와 장마가 괴롭게도 걷히지 않으니
終日下𩁺𩁺 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구나.
屋蓋疏因漏 지붕은 성겨서 빗물이 새어들고
庭蕪翠未芟 뜰의 잡초는 푸른데 깎지 못하였네.
善遮千里霧 천 리에 뻗친 안개는 시야를 잘도 가리고
甘祕萬尋巖 만 길 바위손은 달게도 숨어 있구나.
雨脚如麻大 굵은 빗줄기는 삼 껍질 늘어놓은 듯 뽐내고
雷威喪匙咸 천둥의 위엄은 숟가락을 떨어뜨릴 듯 장엄하다.
地膿恐天腐 땅은 진물러 썩고 하늘마저 부패할까 두려우니
陽遜奈陰饞 양기(陽)는 물러가고 음기(陰)의 탐욕을 어찌하랴.
*[11~20구] 거제도의 험난한 자연과 유배객의 신세
颶怒陵爲動 폭풍(태풍)이 노하니 언덕이 뒤흔들리고
潦淫海不鹹 큰물(홍수)이 넘쳐나 바닷물 싱겁구나.
且捐傷黍稷 기장과 조 곡식이 상하는 것은 버려두더라도
爭惜倒松杉 쓰러지는 소나무와 삼나무는 참으로 안타깝네.
水月煙腰閴 수월리(거제 지명) 안개 낀 산허리는 고요하고
鷄龍暝色巉 계룡산(거제 지명)의 어두운 빛은 험준하도다.
烏兒西隱隱 오아(烏兒: 거제 오아포)는 서쪽에서 은은하고
柚子北氾氾 유자도(柚子: 거제 유자섬)은 북쪽에서 둥둥 떠 있는 듯하네.
追寇無臣虎 외적을 쫓아낼 호랑이 같은 신하는 없고
用皮有木杋 껍질을 쓸 만한 돛대 나무만 있구나.
*[21~30구] 억울한 죄와 옛 현인들의 고사
孤懷長白髮 외로운 마음엔 흰머리만 자라나고
浪跡誤靑衫 떠도는 신세는 푸른 관복(관직)을 그르쳤네.
孔子主籧瑗 공자도 위나라에선 거백옥의 집에 묵었고
公孫因景監 공손앙(상앙)은 환관 경감의 주선으로 진왕을 만났다네.
自宜梁傅去 양왕의 스승(가의)이 쫓겨 가고 나니
焉有漢文讒 어찌 한나라 문제의 조정에 참소가 없었겠는가.
富貴已聞命 부귀는 이미 하늘의 명에 맡겼으니
鬼神猶動諴 귀신도 오히려 나의 정성에 감동하리라.
山河容罪戾 산천은 이 죄인의 몸을 받아주건만
天地屬槍欃 천지는 혜성(창참: 재앙의 징조)의 기운에 속해 있구나.
*[31~40구] 청렴한 지조와 조정(임금)을 향한 그리움
糊口玉餘斗 겨우 입에 풀칠하며 쌀 한 말만 남았고
隨身書半函 몸에 지닌 것은 책 반 상자뿐이네.
昌黎心皎皎 한창려(한유)의 마음은 달처럼 밝았고
漆室手攕攕 칠실 고을 처녀의 가냘픈 손은 나라를 걱정했네.
只畫殷生字 다만 (허공에) 은호(殷浩)처럼 글자만 쓰고
空成魯廟緘 쓸데없이 노나라 사당 주인의 입 다물기(신독)를 본받네.
兩遷天漠漠 두 번이나 유배지를 옮기니 하늘은 아득하고
三度燕諵諵 세 번이나 제비가 지저귀며 해가 바뀌었구나.
望折邇昌德 창덕궁(임금 계신 곳) 바라보며 애간장이 끊어지는데
情勤專作碞 애타는 충정은 오직 바위처럼 굳건하도다.
*[41~56구] 귀향의 소망과 유배가 풀리기를 바라는 기대
許多朝岫蔽 수많은 아침 산봉우리가 눈길을 가리고
半片夕陽銜 조각난 붉은 석양만이 산에 걸려 있네.
桑梓悲遊子 고향(桑梓)을 그리는 나그네는 슬프기만 한데
壠丘覲狡毚 고향 무덤가엔 교활한 토끼만 얼씬거리겠구나.
月通季鷹思 밝은 달을 보니 채소와 고기 맛을 그리워한 장한(계응)이 생각나고
鴻滯子卿縿 기러기 발에 편지를 매달았던 소무(자경)처럼 갇혀 있네.
誰料璞中璧 돌 속에 감추어진 보배로운 구슬이,
不如冠上瑊 갓 위에 장식한 가짜 옥(瑊)보다 못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肅心牽稼穡 경건한 마음은 농사짓는 일에 끌리고
歸意滿雲碞 돌아가고픈 마음은 구름 낀 험한 바위산에 가득하네.
蛇足安來異 뱀의 발을 그리는 쓸데없는 짓을 어찌 다시 하겠으며
虎鬚將得凡 호랑이 수염을 만지는 위험한 일을 대수롭게 여기랴.
龍泉埋古獄 보검(용천검)이 옛 감옥 자리에 묻혀 있으니
冤氣繞幽礛 그 원통한 기운이 그윽한 돌밭을 감싸고 있도다.
行效窮河使 머잖아 은하수의 끝을 찾아간 사신(장건)처럼 되어
仙槎替海帆 신선의 뗏목(선사)을 타고 바다의 돛배를 대신해 돌아가리라.
창덕(昌德)은 한 편의 작품에는 淸漢이라고 되어 있고 嵒은 거처를 편히 함을 嵒으로 썼다.(昌德一作淸漢 作嵒居寧之作嵒)
[주1] 거백옥(蘧伯玉) : 위(衛)나라 대부(大夫) 거백옥(거伯玉)은 명망(名望) 있는 정치가였다. 공자가 당대에 가장 존경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며 공자의 후원자(後援者)이기도 했다. 거백옥(거伯玉)은 나이 50에 49년 인생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했다. ‘잘못이 있으면 즉시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란 고사성어와 ‘잘못을 고친다.’는 ‘개과(改過)’가 나온 것이다.
[주2] 공손(公孫) : 상군(商君) 위앙(衛鞅)은 위(衛)나라 공자 출신으로 본래 성은 공손(公孫)이었다. 젊어서부터 형명(刑名)의 학문을 좋아했으며 나중에 위(魏)나라의 재상인 공숙좌(公叔座)를 섬겨 그의 집에서 집사로 있었다. 공숙좌가 죽자 위나라 혜왕이 그 뛰어남에 죽이려 하자 진나라로 도망가 환관 경감(景監)에게 의탁하고 진(秦)나라 효공(孝公)왕을 만나 강대한 국가를 만들어 통일 패업의 기초를 다졌다.
[주3] 창려(昌黎) : 한유(韓愈), 중국 당나라의 문인·정치가(768~824).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본적지는 하북성(河北省) 창려(昌黎)인데 송대(宋代)에 창려백(昌黎伯)이라는 작위를 추증(追贈) 받았으므로 한창려(韓昌黎)라고도 부르며,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사육 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문(古文)을 주장하였다. 시문집에 《창려선생집》 등이 있다.
[주4] 가의(梁傅)와 한유(昌黎) :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간신들의 참소로 유배를 가야 했던 인물들로, 정황 자신을 대입했다.
[주5] 은호(殷生)와 소무(子卿) : 허공에 글씨를 쓰며 답답함을 달래거나, 오랑캐 땅에 갇혀 절개를 지킨 인물들을 통해 지조를 강조했다.
[주6] 노묘함구(魯廟緘口) : 노나라 사당의 입을 봉한 인형. 공자가 주나라를 관장하고 후직의 사당에 들어가니 세 번 그 입을 봉한 인형이 있었고 그 등에 “옛날 말을 신중히 한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노나라의 사당이 아닌 주나라 사당이라는 의의를 제기한 글도 있다.
[주7] 선사(仙槎) : 신화 중에 해상 및 은하수를 왕래하는 대나무 뗏목
[주8] 박중벽(璞中璧) 불여관상감(不如冠上瑊) : 돌 속의 진짜 진주(올곧은 사림)가 갓 위의 번지르르한 가짜 옥(권력을 잡은 간신)보다 대접받지 못하는 거꾸로 된 세상을 한탄했다.
● 내용인즉, 먼저① 배경부터 살펴보면, 기유년(1549년)은 거제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다. 정황 선생은 1547년 정미사화 때 사림을 숙청하려는 소윤 세력(이기가 주도)에 대항하다 압송되어 곤양으로 유배되었다가 1548년 거제도로 이배되었다. 시제에 나오는 '기유(己酉)'는 거제유배 이듬해인 1549년을 가리킨다. 거제도 고현(당시 거제 읍치)의 계룡산 기슭에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여름 장마를 맞이하며 느낀 소회를 적었다. 둘째② 자연 현상(장마)에 투영된 암담한 조정의 현실을 걱정했다. "양기세력이 물러나고 음기세력이 탐욕을 부린다(陽遜奈陰饞)" 한시에서 '양(陽)'은 군자, 사림, 임금의 총명을 뜻하고 '음(陰)'은 소인배와 간신을 뜻한다. 끊이지 않는 장맛비와 흙비(霾霖)로 해가 보이지 않는 현상을 통해, 간신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사림들이 핍박받는 정치적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기장과 조 곡식이 상하는 것은 버려두더라도 쓰러지는 소나무와 삼나무는 참으로 안타깝네.(且捐傷黍稷 爭惜倒松杉)” 한시에서 곡식이 상하는 것보다 나라의 기둥이 될 재목인 소나무와 삼나무(훌륭한 사림 선비들)가 쓰러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우국충정이 잘 나타나 있다. 세 번째③ 거제도의 실제 지명을 여럿 활용했다. 시 중간에 등장하는 水月(수월리), 鷄龍(계룡산), 烏兒(오아포, 지금의 가배량), 柚子(유자도) 등은 모두 거제도의 실제 자연환경과 지명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것이다. 배소(유배지) 주변의 험하고 쓸쓸한 풍경을 묘사하여 고립감을 극대화했다. 넷째④ 다양한 중국 고사의 인용을 통한 신세 한탄을 했다. 정황 선생은 대문장가답게 억울하게 유배당하거나 세상에 쓰이지 못한 중국 현인들의 고사를 대거 인용했다. 결론⑤ 굳은 절개와 복귀를 소망했다. 마지막 구절의 "용천검이 옛 감옥에 묻혀 있다(龍泉埋古獄)"는 비록 지금은 억울하게 죄인의 신분으로 거제도 땅에 묻혀 있지만, 언젠가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대장부의 기개를 보여준다. 그리고 장건이 뗏목을 타고 은하수에 닿았던 것처럼(仙槎替海帆), 이 지긋지긋한 유배의 바다를 건너 임금의 곁으로 돌아가 국가를 위해 다시 쓰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시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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