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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 불교하면 무상과 무아를 연상할 정도가 되니.. 무아는 나는 없다는 것으로 분명히 아는 데..
무아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무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얘기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효진 : 그렇네요. 저 역시 무아, 무아.. 하다보니. 어느새 무아잖아.. 하면서 그냥 지나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무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무아의 의미는 먼저 <잡. 1-33. 비아경>에 나오는 '5온의 주인이라고 알고 있는 나는 나가 아니다[비아]' 에서..
그런 나는 없다는 '무아'가 나옵니다.
이때 무아란 일반인은 물론 철학이나 종교에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자아는 없다는 것이죠.
엄청난 말이니.. 말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무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마음으로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 <잡. 33. 비아경>에서
<33. 비아경>에 "(색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하였는데..
색은 무상하다고 알 수 있지요. 실유이든 아니든 항상하지 못하고 변하고 바뀌고 있으니..
그런데 그렇게 항상하지 못하고 변하는 것이 왜 괴로움으로 직행하느냐는 겁니다.
해서 저라면
색은 항상하지 못한다.
그렇게 항상하지 못하는 것은 무아이기 때문이다.
색이 무아임을 깨닫는다면 열반에 이를 수 있는 도구를 잡은 것과 같다.^^
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렇게 고에 침묵하면서.. 열반을 넣어 가르치는 불교가 대승불교의 3법인 입니다. ㅎㅎㅎ^^
다시 <33. 비아경>을 보면 세존께서는
세상에서는 주장하는..
5온의 각각에 대해 그것이 나다 라는 물질론자[과학자] 주장과,
5온 안에 나는 없고 5온의 주인인 나 아트만이 있다는 우파니샤드[힌두교] 주장,
5온과 함께 자아[지바]가 있다는 자이나교 주장을 먼저 말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어떤 나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가르치십니다.
석가세존은 늘 당시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게 있고.. 그것이 잘못되었으면
분명히 그것은 잘못이다 라고 가르치시는데..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 스스로 색수상행식에 그와같은 주인인 나가 있는지를 관찰하여 없다는 것을 통찰하도록 권합니다.
서연 : (작은 소리로) 그런 사람을 피곤한 사람이라 하지요.^^ 석가모니는 엄청 피곤한 분이예요!
효진 : (그 말은 들은 듯) 그러기에 대승불교에서는 새삼 믿음을 강조하는 겁니다.
석가모니는 당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가르치신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체험을 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믿자 라고..
그런 대승불교 자세에 대핸 상좌부는 믿음을 강조하면 다른 종교와 무엇이 다른가..
그건 석가세존의 뜻과 다르다며 비판하고 있구요.
암튼 경 내용은..
'세상에서는 5온을 나라고 하는 데.. 5온은 무상하게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나는 없다[무아]' 입니다.
서연 : 아직도 이해가 안되요..
5온.. 그중 하나인 색[몸]을 보면.. 색 안에 있든 뇌 안에 있든.. 그 주인은 이 나가 틀림없는데.. 어떻게 나가 없다고 하나요?.
1. 무상경(無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 관하라.
이렇게 관하는 게 바른 관[正觀]이다.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 무아]'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효진 : 색의 주인으로 나가 있다고 하려면.. 나라고 불릴 대상인 색은 잠시라도 존재해야만 할 겁니다.
그런데 색이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고 있다면 그 중 무엇을 가리켜 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세존이 뻥치고 있는 걸까요?.. 실은 색은 순간이라도 멈추고 있는 데.. 그것을 무시하며 쉬지 않고 변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서연 : 쉬지않고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선생님을 분명히 보고 있듯이, 나 역시 나의 몸을 보고 있잖아요.
효진 : 하나 물어보지요. 기독교에서는 죽어서 심판을 받아 천국에 또는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지요.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천국에 머물고 있을 겁니까?.. 어린이 모습? 아니면 스무 살 모습.. 서른 살.. 구십 살 모습?..
성형 수술하기 전 모습인가요?..
과연 우리는 천국에 가면 서로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요.
중국 신선 모습을 보며 수염이 하얀 노인들이신데.. 천국에 가서 영원히 죽지 않고 노인으로 살고 싶으세요?^^.
서연 : 정말.. 천국이 있다고 해도 문제가 있군요!. 신선처럼 가족이 모두 노인이라면?.. 웃기는 일이네요.
그렇다고 노인은 없고 젊은이들만?.. 그것도 웃기고..
효진 : 그런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몸은 늙어도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 하듯..
나라는 모습[아상]은 우리 몸과 함께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청춘처럼 여기고 있기에
별 이상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겁니다.
이해가 되는지?..
서연 : 몸과 따로 생각 속에 나라는 상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니까 그 상은 늙지도 않는다는 거지요?.
몇 살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네요, 정말..
나는 도대체 나를 몇 살의 모습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 거야!.
아는 건 이 순간까지 인데.. 늙은 모습은 아닌 것 같아요. 아~ 그래서 마음은 청춘이라고 하는 거구나!^^
효진 :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나는 있다고 하지만.. 나라는 상(想)은 세우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어요.
상은 한자로 생각할 '상(想)'과 '서로 상(相)'이 있어요. 서로 상을 보면 나무와 눈이 있지요?.
여기서 나무와 눈은 색입처와 안입처가 아닌.. 색경과 안근입니다. 둘의 차이는 알지요..^^
근과 경은 존재요, 입처는 심연생인 법입니다.
이렇게 외부에 존재하는 나무를 눈으로 본 것을 '상(相)'이라 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어와 있는 것을 '상(想)'이라 하지요.
이렇게 알고 있으면 <금강경>에 나오는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은
'상(相)'이 아니라..
'상(想)'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면 4상은 마음에 있는 나라는 이미지이지.. 외부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 날 때.. 음미해 보세요.^^..
그 나[4상]는 어디에 있다고 여기고 있느냐는 겁니다.
서연 : 생각을 하니까.. 생각하는 나는 거기에 있다고 여길 뿐이지요. 말하자면 머리 뇌 속에?
효진 : 뇌 속에 나가 있다면.. 뇌가 망가지거나 멸하면 나는 덩달아 없어질 수 밖에 없지요?.
서연 : 그렇게 되겠지요.. 그럼 그건 단멸론이네요!
또는 지금은 뇌 속에 머물다 뇌가 죽으면 나와서 다른 뇌 속에 들어간다고 하면 윤회론자가 되는 거구요.
그런데 나는.. 죽으면 몸이 죽은 후에도 내 혼이 이 세상을 얼마 동안 떠돌다.. 사라질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요.
효진 : 단멸론자들은 5온인 육신에서 나라는 의식이 생기므로 욕신이 죽으면 덩달아 나라는 의식이 따라 사라진다고 주장하지요.
그들 역시 나라는 의식은 몸과 달리 존재한다고 여기는 겁니다.
단멸론이든 윤회론자이든.. 그들은 5온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비물질인 자아가 존재한다고 하고 있지요.
그것을 자아 실제론이라 하여..
석가모니께서는 그런 자아는 없다며 무아론을 가르치시는 겁니다.().
그러니 무아론은 자아가 그냥 없다는 게 아닌.. 세상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런 자아는 없다는 것이죠.
하여 석가세존의 가르침은 그것을 바꾸도록 인도합니다.
자아라고 하려면 자아라고 불릴 분명한 존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게 전제예요.
장미 꽃이라 불리려면 장미라 불리는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장미꽃이라 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이것이 나다라고 하려면 5온이 분명히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1. 무상경>에서 보듯.. 색, 수상행식 어느 하나 변하지 않는 게 없어요.. 이것이라고 붙잡을 수가 없어요..
그러기에 5온이란 홀로램처럼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하는 겁니다.
몸과 영혼을 포함하여 생각하는 식이 있는 데..
몸과 그 식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것으로 찰라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촉하여 느끼고 상(想)을 만들고 있어.. 대상이 외부에 상(相)처럼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가 인식하는 이미지는 그 물자체[相] 아닌.. 우리 인식 능력에 의해 필터링 된 이미지일 뿐으로..
대상의 참 모습은 있는 지 없는지도.. 무엇인지.. 모릅니다.
서연 : 그렇다면 우리는 완전히 허구적인 세계[마야]를 만들어 놓고 살고 있다는 건가요?
효진 : 그렇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는 데.. 그건 아니죠.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보다 더 미시적인 세계는 덮어두고.. 분자가 화합하여 만들어 논 세상이라고 봅니다.
분자가 만들어지면 그리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시대에는 기체, 액체, 기체와 기운 네가지를 기본 분자[원소]로 보아..
그것들은 변하지 않으며 자체 고유 특징과 특성이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분자는 쪼개져 원자가 되니 기본 원소가 108개.. 그 이상의 원소가 있고 그들이 화합하고 있다고 보지요.
그렇다 해도 우리가 접하는 기본적인 성질은 분자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원소[분자]가 화합한 세상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분자 세계는 당연히 불완전한데.. 그런 불완전한 분자가 항상하기를 바란다면 고통이 사라질 수 없다는 겁니다.
해서 고통이 멸한 곳으로 가려면 분자의 세계는 물론 원자의 세계 역시 벗어나야 되지요.
분자와 원자 세계를 부정하는 세계.. 그곳이 바로 무아가 됩니다.
물론 이것은 예를 든 것이지만.^^.
서연 : 그러니까..
분자 세계라 하는 곳은 생멸이 있고, 증감이 있지만..
분자 세계를 너머서면 불생불멸이며, 부증불감이고 불구부정이.. 더럽거나 꺠끗하다고 할 수 없다.. 되는 거군요..
효진 : 그렇지요^^(정말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건가?)
이야기 포인트를 조금 돌리면..
그런 분자 세계를 세존께서는 존재 세계라 하고, 존재를 보며 존재를 너머선 세계를 법 세계라 합니다.
존재 세계는 무엇이든.. 그것은 불완전한 것으로 생멸하고, 증감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최고 신인 브라만이나 타 종교에서 최고 또는 유일하다고 말하는 신은 존재이기에..
우리가 잴 수 없는 엄청난 시간이나 공간이지만.. 겁이란 시간이죠..
언잰가는 태양이 멸하듯..
그 신도 멸하겠지요?.
그러나 그 존재를 존재가 아닌 법으로 바라보는 세계가 있다면..
공간적으로는 무량이요, 시간적으로는 무수인 빅뱅에서 출발한 우주라 불리는 존재 세계라면..
마음이라는 비존재인 법 안에 다 담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서연 : 그렇긴 하지만.. 석가모니는 인간이고, 기독교의 신은 유일신이라 하듯 창조주는 모든 피조물을 만드셨잖아요?.
석가모니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벗어날 수 없다구요.
효진 : 잠깐.. 마음을 아주 편안히 하고.. 천천히.. 천천히.. 생각해 보아요.
인간을 신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신을.. 누가 만나 보았나요.
지금 사람은 창조주의 피조물이라고 누가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서연님의 마음[의식]이 그리 말하고 있어요.
신이 일체 피조물을 만들었다고 아는 그 마음이.. 서연님이 생각하는 유일신보다 작다고 봅니까?.
서연 : ..?..
효진 : 그리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다" 라는 문장이 참이라고 하려면..
누구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증거를 가져와야만 하는 데..
그것의 증거라는 게 몇 명의 인간이 기록한 바이블 같은 책에 나오는 주장이라면..
그게 힌두교도나 증산교인에게도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까?
젊은이들이 교회 밖으로 나가도 침묵하는 신.. 착한 사람만 골라 겁을 잔뜩 주는 신.. 그게 현실 아닌가요..
자기보다 훌륭한 신은 만들지도 못하는 신을 어찌 전지전능하다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피조물이다 라는 게 사실임을 증명하는 투명한 증거를 대 보세요.
창조주라 불리는 신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신이라고 인정받으려면 그것 또한 증거가 있어야만 하는데..
그 증거는 그 신을 믿는 종교인들이 받아썼다는 책 안에나 있을 뿐이다 보니.. 그것을 부정하는 자를 만나면..
칼을 들고 생명을 끊겠다고 윽박지르고 협박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만일 그런 식으로 하는 증명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불경 가운데 초기 경전 <아함경> 안에는 최고의 신으로 불리는 브라만이 실은 전생에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선행을 엄청 너무 잘했기에 그 업보로 신.. 그것도 최고의 신이 되어 인간이 보기엔 영겁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타 종교에서 주장하는 유일신이라 불리는 자들 역시 전생에 인간이었다는 게 되네요.^^.
그것을 현대 어느 철학자는 [게임이론]이라 했어요.
게임 이론이란 정해진 에이라는 게임 안에서는 에이 룰이 신이고, 비라는 게임 안에서는 비 룰이 신이라는 거지요.
에이라는 종교와 비라는 종교는 종교라 불리지만 다른 게임처럼 섞일 수 없고..
개인은 자기 입장이나 성향에 따라 에이 또는 비 종교를 선택하는 겁니다.
불교는 출발점이 과거의 신이 아닌 현재의 나입니다.
과거[의 신]에 대해서는 일단 침묵하면서.. 현재 나를 바라보며 출발하는 거지요.
그런 나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 구경에 이르니.. 유일신은 믿는 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나가 사라지더라는 겁니다.
그것을 무아라고 이름했습니다.
무아에 이르고 보니.. 유일신이라 불리는 브라만이나 하나님이나 알라는 유일신이라는 아상이 있더라는 겁니다.
무아를 깨친 자와 유아인 신이 있다면 누가 배워야 할까요?^^.
서연 : (입을 벌리고.. 말을 잊지 못하고 있다)
효진 : (빙그레 웃으며) 이웃 종교에 대해서는..
부처의 뜻은 무아 또는 비아입니다.
하여 부처는 어떠한 신이라도 품을 수 있기에..
어떤 신이라도 그의 가르침을 청할 수 밖에 없으므로..
팔리어 경전인 <니까야>의 시작은 천신이 부처님께 법을 청하러 오는 것입니다.
S1.
천신 상윳따
Devatā-saṁyutta
제1장 갈대 품
Naḷa-vagga
거센 물결 경(S1:1)
Ogh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어떤 천신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난 뒤에 한 쪽에 섰다.
한 쪽에 선 그 천신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당신은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넜습니까”
"천신이여, 나는 머무르지도 않고 너무 다잡아 힘을 쓰지도 않고 거센 물결을 건넜노라.”
"스승이시여, 그렇지만 머무르지도 않고 너무 다잡아 힘을 쓰지도 않고서, 어떻게 거센 물결을 건널 수 있었습니까?”
"천신이여, 내가 멈출 때 나는 가라앉아 버렸다. 내가 (건너려고) 다잡아 힘을 쓸 때 휩쓸려 나가 버렸다.
이처럼 나는 멈추지 않고 너무 다잡아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거센 물결을 건널 수 있었다.”
위 경에 나오는 신이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주장하는 신보다 저열한 신처럼 보인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은 주장일 뿐.. 신의 파워와 크기는 비교를 불허하지요.^^.
솔직히 말해 비교할 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니 위 경에 나오는 신이나 기독교의 유일신이나 힌두교의 브라만은 차이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감히가 아닌 단정적으로
부처님은 인간과 모든 신의 스승[천인사]이라고 호칭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어요.
그리 될 수 있는 바탕은 반복해 말하지만..
무아인 불교와 유아인 종교의 차이입니다.()..
'나는 없다'인 무아의 파워는 세상 일체를 창조했다는 유아인 신을 그 안에 품고 있는 겁니다.()..
서연 : 왜 이리 속이 거북하지요 머리도 좀 아픈 것 같고.. 잠시만..
효진 : (조금 심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