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불교학계에 작은 경사가 났다. 인생 후반기에 불교학자로 거듭난 3명의 박사가 탄생한 것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집에서 손자나 볼 나이에 학구열을 불태워 박사학위를 취득, 학문의 길로 접어든 새내기 불교학자 세 사람은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참고자료 한 페이지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전 페이지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나이에, 젊은 사람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국내 최초로 명상학 박사가 된 세 사람의 공부 이야기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세 새내기 박사의 이름은 이춘호(67), 서현희(60), 정순영(56). 젊었을 적 출가를 생각했기도 했고, 불교공부를 하기 위해 수행처와 스승을 찾아 헤매기도 했으며, 사업을 하면서도 늘 나는 누구인가에 천착했던 세 사람은 고희를 바라보거나 환갑을 전후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열정과 젊음을 가진 주인공들이다.
국내 첫 명상학박사가 된 3인. 왼쪽부터 서현희, 이춘호, 정순영 박사.
최고령인 이춘호 박사는 ‘한국 명상가들의 절정 체험과 삶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로 명상학 박사가 됐다.
대불련 활동을 했고 정법회 거사림에서 불법을 익힌 이춘호 박사는 10년 동안의 공부 끝에 명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25년간 각종 명상을 수행했다. 학위 논문은 그동안의 수행과 명상지도자들과의 인간관계가 빚어낸 아름다운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많은 수행자가 살아가면서 직면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명상처를 찾게 된다. 이 논문은 깊은 명상 중에 경험하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좌절과 통한, 깊은 참회와 가슴 열림의 환희가 고스란히 육성에 가깝게 게재되어 있다. 평소에 체험하기 어려운 절정 체험은 시간과 공간도 잊고 무아를 경험하거나 공을 체득하는 것에서부터, 정묘한 빛과 소리를 맞이하게 되고, 영적 존재를 친견하는 축복과 깊은 이완과 전생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보거나, 꿈속에서 꿈꾸는 자기를 의식하는 자각몽, 신체의 원초적 에너지가 영적 에너지로 폭발하여 승화하는 쿤달리니 체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듣거나 읽기만 해도 드라마틱한 절정 체험을 간접으로 경험할 수가 있다. 때로는 소식도 없이 찾아온 반가운 손님처럼 다소곳이 경험되는 행복도 있다.
삶의 근본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오랜 세월 수행해온 한국의 대표적 명상 대가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내게 한 것은 이 논문이 갖는 가치 중의 하나이다. 또 명상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명상 전반에 걸친 자세한 연구는 명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명상인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 논문은 연구자의 ME, 체선, 마음 수련, 동사섭, 아봐타, 간화선 등의 체험을 살려, 이원규, 용타큰스님, 이승우, 이구상, 혜봉, 이여명, 수연당, 비구니스님, 김경식, 민형기, 묘원, 나병성, 김연수님 등 명상가들의 수행과정과 절정 체험을 진지하고도 역동감 있게 분석해 보이고 있다.
서현희 박사는 ‘족쇄(Saṁyojana)와 성인(Ariyapuggala)의 관계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명상학 박사가 되었다. 소녀시절부터 ‘삶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가 남달리 사무쳤던 그는 그 해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갈구하는 삶을 살았다. 출가를 생각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결국 깨달음은 ‘남김 없는 번뇌 제거’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빨리어 문헌을 바탕으로 ‘족쇄와 성인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빨리 문헌에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이며, 열반을 성취한 사람을 지칭하는 아라한에 주목했다. 아라한을 포함한 사성인[예류자, 일래자, 불환자, 아라한]은 붓다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해탈을 실천해 나아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성인의 한 형태라는 점에 착안해,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벗어나야 할 많은 번뇌들 가운데 열 가지 족쇄의 연구에 천착한 것이다. 족쇄는 사성인의 과위(果位)를 구분하고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사성인은 열 가지 족쇄의 점진적인 제거를 통해서 성취됨에도 불구하고 실제 수행 현실에서는 열 가지 족쇄가 간과된 경향이 있으며, 족쇄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지 못한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족쇄에 관한 국내 연구는 거의 없었다. 간혹 족쇄에 관한 연구가 있다하더라도 성인과 관련되어 부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 족쇄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논문은 찾을 수 없었다.
명상학 박사 1세대 3총사의 논문집.
서연희 박사의 연구는 족쇄와 성인의 관계 고찰에 목적을 두고, 빨리 문헌에서 나타나는 열 가지 족쇄와 사성인에 대하여 의미, 다양한 용례, 특성 등을 모색함과 아울러 이 둘의 관계를 파악하고 성인의 성취 원리를 도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족쇄와 성인의 관계에 대한 이 연구는 깨달음을 성취해가는 실제 수행실천 과정에서 성인에 대한 바른 견해[正見]를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명상과’ 차원에서도 값진 의미가 있다. 서 박사는 자신의 논문이 다양한 수행법들이 현존하는 불확실한 수행현실에서 명상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다. 문헌연구, 질적 연구 그리고 실험연구를 통한 명상 전반에 걸친 폭넓은 연구는 수행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수행인들에게 명쾌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 박사 중 가장 젊은 나이의 정순영 박사는 ‘정신분열병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명상프로그램 개발과 적용’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 고양정신병원 간호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의 논문은 다양한 실험과 조사에 근거한 논문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두루 알다시피, 명상은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오고, 현재 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즉 명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명상 수행은 많은 제한점들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병의 특성상 심신안정, 현실감 증진, 자기 조절능력등이 매우 필요한데, 이런 점에서 명상의 효과와 맥을 같이 하여 정신분열병 환자에게 명상을 적용한 연구가 부재했던 것이다. 정순영 박사는 자신의 일터에서, 오랜 환자치료의 경험을 살려 정신분열병 환자의 특성 중에 심신 불안정, 현실감 저하, 자기 혼란 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명상프로그램을 개발, 적용하였고 이를 근거로 논문을 작성했다.
프로그램의 특성은 정신분열병이 명상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법이나, 시간, 명상지도 방법 등을 고려하여 편성하였고, 실제 입원한 정신분열병환자를 대상으로 명상프로그램을 적용한 것이다. 적용결과, 명상프로그램이 환자의 증상완화에 도움을 주어 정신증상 완화, 불안및 우울 감소에 효과적이며 결국 삶의 질 향상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고, 만다라 비교 분석에서 자기 조절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은 정신분열병 증상 관리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명상적용은 효과적인 것으로 앞으로 명상프로그램의 계속적인 보완 및 적용을 통한 반복연구를 통한 노력으로 프로그램을 정형화하여 소외된 정신분열병환자의 관리에 도움이 줄 수 있다는 점을 학문적으로 밝힌 드문 논문이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정준영 교수의 지도로 명상학 박사로 거듭난 세 새내기 박사들은 지금 제2의 인생에 부풀어 있다. 명상학을 전공한 학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다음 학기부터 정준영 교수의 배려로 모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모교의 강의를 통해 자신이 연구해온 이론적 성과를 후학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충분한 교수능력을 기르게 된다. 그런 후에는 학문적 바탕이 튼실한 명상학 강의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곳에서 이들은 몸과 시간을 쪼개 뛰어다니게 될 것이다.
또한 명상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가 3명이 배출되었다는 점에서 지도교수와 협의해 명상학회 설립도 구상하고 있다. 학회가 구성되면 학진 프로젝트 수주 등 할 일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자랑스럽게 들고 선 이들의 표정이 발그레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명상학 박사로 거듭 난 자부심과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설렘이 교차하는 표정들이다.
우리나라 명상학 박사 1세대로 기록될 세 연륜있는 새내기 박사들의 그칠줄 모르는 열정의 끝은 어디쯤일까. 명상학, 아니 불교명상학의 그 격이 달라지게 될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