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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화 글로벌 1~1화
레벨 9로 시작했으나, 나의 영어는 창대하리 2024 09 05
2002년,나는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이 되고 나서 드디어 영어를 정복해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토익이다, 토플이다 친구들이 영어 시험을 보러 다닐 때에도 난 그런 것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른이란 나이가 되니까 인생을 완전히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으로 세계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영어를 해야한다. 나에게 영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난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회사 근처에 강남 YBM 어학원으로 직행해 원어민 강사 반을 신청했다. 신청서를 확인하더니 데스크의 여직원이 말했다.
“원어민 반에 들어가려면 레벨 테스트를 받아야 하니 잠깐 기다리세요.”
그 말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영어라고는 고등학교 때부터 담을 쌓고 살았던 나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안내된 작은 방으로 들어가 다소곳이 기다렸다. 곧 갈색 머리의 뚱뚱한 외국인 여자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외국물 먹으며 영어 공부한 적 있느냐, 가족이 몇 명이냐, 정체가 뭐냐 등등. 일단 아는 영어로 머리 굴려 가며 최대한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지에 뭔가를 표시했다.
테스트 끝나고 다시 안내 여직원을 만났다.
“지금 실력으론 원어민 반에서 공부하기 어려워요. 먼저 한국인 선생님 수업을 들으세요.”
여직원은 원어민 반은 대략 9등급의 레벨이 있는데 내 영어 실력으론 그중 가장 낮은 레벨도 듣기 어렵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솔직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학창 시절 줄곧 만화책만 끼고 산 게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이야. 고등학교 때 ‘언더그라운드’ 학생들은 영수(영어, 수학)를 포기하는 게 유행이었고, 유행에 민감했던 나 역시 분위기에 편승해 영수 보기를 돌같이 하지 않았던가. 철없던 시절을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고 일단 일보 후퇴.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낮에 받았던 질문 문항을 꼼꼼히 정리한 후 영어사전 찾아가며 모범답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역삼에 있는 YBM 어학원으로 갔다. 잘생긴 파란 눈의 외국인 남자가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내리라 결심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물론 간밤에 밤새가며 준비한 그럴싸한 영어로 말이다. 내심 흡족해하고 있는데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레벨 9. 아아, 가장 낮은 레벨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반은 도대체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 고수여야 들어갈 수 있는 걸까. 살짝 두려운 마음이 생겼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외국인 강사에게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뭐. 기대와 설렘으로 첫 수업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와 설렘은 곧 사라졌다. 약간 예상하긴 했지만, 교실에 들어온 원어민 교사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치껏 이해한 바를 종합하자면 ‘담임 선생님 이름은 알버트, 그의 고향은 호주 멜번’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분위기상 그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활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회화만 조금 안 될 뿐 문법과 어휘에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강남 YBM 여직원의 말대로 역시 수업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엉뚱한 페이지를 펴놓고 헤매고 있는 나에게 옆자리 학생이 딱하다는 듯 말했다.
“기초 문법을 들은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어때요?”
내가 어떻게 이 반에 들어왔는데 그렇게 쉽게 물러날 성싶으냐. 난 웃으면서 꿋꿋하게 버텼다. 같은 반에 유일하게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남학생이 있었기에 나름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 항상 한국말로 대답하던 그 주근깨투성이 남자애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반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나는 슬슬 걱정되었다. 언제 실력이 탄로나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한 수업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인간 김새봄. 이 정도 일에 좌절할 순 없다! 대학도 대략 열 번은 떨어졌지만 결국 당당히 학사모 눌러쓰고 졸업사진 예쁘게 찍었던 내가 아닌가.
“김새봄. 넌 할 수 있다! 영어가 뭐 별건가? 영어권 사람들은 거지도 쓰고, 세 살짜리 아기도 쓰고, 문맹도 쓰는 건데, 며칠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좋아, 해보는 거야!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글로벌 1~2화 ‘솰라솰라 파티’에 초대받다
영어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많은 외국인들과 수다를 떠는 장면을 종종 상상했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영어학원을 다닌 지 3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담임선생님 알버트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학원 옆 웨스턴바에서 외국인 강사들이 주최하는 파티가 있으니 놀러 오세요.”
외국인 파티에 초대를 받다니. 아아. 그때처럼 흥분된 날이 또 있을까. 강사들이 학원 옆의 지하 바를 하룻저녁 빌려 하는 파티로 우리나라로 치면 ‘일일 찻집’ 같은 거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영어도 못 하는데 어색해서 어떻게 가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영어를 못하니까 가는 거야!”
그렇게 설득했건만 아무도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할 수 없이 혼자서 파티에 갔다.
“Hi!”
파티 장소에 도착하니 알버트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로 가서 음악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40평쯤 되는 웨스턴 스타일의 지하 바에 영어 강사뿐만 아니라 일본인 강사들과 일본어반 학생들도 예닐곱 명 와 있었다. 알버트는 나에게 다른 영어 강사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대강 주섬주섬 인사를 끝낸 후 알버트에게 알버트가 가르치는 다른 반 학생들이 많이 오냐고 물었다.
“How many students would come to your class today?”
“새봄을 포함해 딱 두 명 왔어요.”
알버트는 자기 반 학생을 소개해 주었다. 다른 반에서 온 여학생과 알버트, 그리고 나는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영어 강사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국인보다 외국인의 수가 더 많아졌다. 그러자 어색해진 한국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알버트의 다른 반 여학생도 슬그머니 일어서서 나갔다.
“나는 영어도 잘 못하고….”
그녀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게 어찌나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두리번거렸다.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바람이 났다.
“Hi, my name is 새봄. What’s your name?”
나는 바에 있는 모든 외국인에게 말을 붙였다. 통성명을 하고 난 후에는 수업 시간에 배운 문장이란 문장은 모두 사용해 보았다. 그래봤자 고향이 어디냐, 어디에 사는냐, 한국 온 지 얼마나 됐느냐, 이 정도 문장이 다였지만. 그래도 말이 통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론 밑천이 떨어져서 대화가 금방 끊기긴 했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편 외국인이 알고 있는 한국말을 총동원해서 내게 질문을 해왔다. 그러면 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어디에… 살…아요, 새봄?”
“취미…가 뭐…에요?”
외국인들이 어린애 같은 말투로 질문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손짓발짓 해 가며 대답을 해주었다.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외국인들은 다른 테이블에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거나 춤을 추며 즐겼다.
밤 12시쯤 되자 빌린 바의 예약 시간이 다 되었다. 외국인들과 즐겁게 떠들던 나는 12시 종이 울리기 전 신데렐라처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한국인 학생은 유일하게 나 혼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근처 나이트클럽으로 2차 가는데 같이 갈래?”
새로 사귄 친구들이 친근하게 말했지만, 나는 고민이 되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춰본 지 족히 10년은 된 것 같았고, 바에서도 춤추자는 알버트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했기에 댄스가 주목적인 나이트는 아무래도 조금 망설여졌다. 그때 옆에 있던 뉴질랜드 할아버지 선생님 스콧과 몇몇 강사들이 간단하게 커피 한잔하고 집에 간다고 하기에 나는 그들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스콧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무척 즐거웠다. 내가 절대적으로 회화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냅킨에다 그림을 그려가며 간신히 의사소통했지만 말이다. 스콧 할아버지는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비영어권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보통 2년 주기로 거주지를 옮기는데, 한국에 온 지 이제 2년 정도 됐단다. 한국말은 거의 하지 못하지만, 그는 ‘걸어 다니는 검색창’, ‘움직이는 백과사전’ 같았다. 내 전공이 미술이라고 이야기하자 미술에 대한 주제로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스콧 할아버지는 한국의 예술가들뿐 아니라 현대 작가들을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가수 GOD의 해체설도 알고 있었고,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가요도 모조리 따라 부를 정도였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태어난 나라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이란….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나에게는 무리가 따르는 하루였지만, 이 신기하고 즐거운 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열중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이렇게 신선한 공기가 내 삶에 충전되다니. 하여튼 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영어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영어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느낌 때문에.
글로벌 1~3화 점점 용감해지고 있는 나의 영어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나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배운 간단한 기초영어를 너무나 써먹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래서 아무 데서나 외국인을 만나면 반갑게 달려가 인사부터 했다.
예전에, 해외 한번 나가지 않고 한국에서 공부한 것만으로도 영어를 잘하게 된 사람이 TV에 출연해서 영어 공부의 비결을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모르는 외국인한테 말을 거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서 “어머, 어머. 어떻게 그럴 수가?”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 역시 영어 쓰는 맛에 한 번 재미를 들이니까 그런 용기백배의 일이 벌어졌다.
“Hi, Where are you from?
“My name is 새봄, What’s your name?”
“Where do you live in Korea?”
“What do you do?”
“How long have you been in Korea?”
물론 고작 대여섯 마디의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정말 많이 더듬거렸는데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나중엔 자연스러워져서 어떤 외국인에게 한국 사람치고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까지 들었다.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영어 배운 지 한 달도 안 된 애가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고? 새봄, 너 제 정신이니?”
모르겠다. 평소에 무슨 일이건, 좀처럼 기죽지 않는 내 성격도 한몫한 것 같고, 또 얼른 영어를 마스터해서 세계여행을 가야겠다는 동기가 있으니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렇게 외국인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이 웃으면서 대답해 주는 것도 좋았고, 배운 영어를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나는 지하철이나 서점, 길거리 등에서 만나는 수십 명의 외국인들과 비슷비슷한 대화를 반복했다. 외국 사람들도 그렇게 말을 붙이는 철딱서니 없는 한국인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중동인(내 기억으로는 이란 사람)은 남대문에서 액세서리를 사서 중동에 판매하는 수입상이라면서 나의 인사에 반갑게 응해줬다. 그는 “일본은 액세서리가 너무 비싸고, 중국은 질이 떨어져서 한국 물건이 좋아요”라며 묻지도 않은 사업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외국 사람을 너무 피한다는 불평을 털어놓기도 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몇 달 전에는 독일의 축구 감독을 만났는데(정확히 감독인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내 영어 실력이 하도 짧아서 멋대로 해석한 바에 따르면), 그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미리 시찰하러 왔다고 했다.
“지금 시작하는 당신 영어, 좋아요.”
그는 내 서툰 영어를 칭찬해 주면서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남대문 문구점 잉크 코너에서 만나 명함까지 건네받은 호주대사관 직원 빌 할아버지, 관광 온 독일, 영국, 프랑스 젊은이들, 일본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다는 잘생긴 영국 꽃미남 앤디와 그의 하와이 미남 친구 제리, 호주에서 관광 온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 등등.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니 한국 거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말을 걸었을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말을 받아주었다. 신기하게 단 한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상냥한 미소까지 지으며 묻지도 않은 얘기들을 들려주려 했다.
외국인 강사 파티에 다녀온 이후로 나의 영어는 점점 용감해졌다. 아마 그날 이후부터 외국인과 벽 허물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열심히 배우면서도 외국인과 대화 한마디 못 하는 것은 외국인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 때문일 것이다. 편하게 다가가야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비록 기초도 기본도 안 된 영어였고, 영어 원어민들이 듣기에는 엉망진창 영어였겠지만 그것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데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외국인과 말문을 트는 데 필요한 건 내 환한 미소와 적극적인 성격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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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봄씨!
보기와 다르게 돌파력이 강하네 !
누구나 하고 싶은 모슾인데, 잘 해오셨네요, 부럽네
늘 건강한 시간 갖고, 좋은 글 부탁 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진 회장님, 읽으셨군요.
친구들을 생각하며 옮겼는데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책 제목처럼 여러 나라 친구들 이야기가
댜양하게 느껴졌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