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광수 교수의 100분 토론에서의, 발언이 화제다. ‘요즘은 예쁜 여자아이들이 공부도 더 잘한다. 예쁘지 않은 것은, 게으르다는 것이다. 마음보고, 반했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등의 말들이 그렇다.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마 교수는 참 솔직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분명, 이 사회의 반응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닐 텐데 번번이 이렇게 너무나 솔직(?)해서 공방의 대상이 되다니 말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다. 마 교수의 솔직함은 때론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오로지 외모 지상주의, 말초 신경 중심주의, 소위 말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가치 판단의 기준을 두는 부패한 과학 논리의 당면에 불과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생각에만 그치고 체면과 수치심 품위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당당히 말한 부분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이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솔직함만을 강조하여 이런 것들을 위선이라 하는 것, 또한 오만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많았다.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은 대단한 미인이었다. 중학교 때 대하 드라마 「토지」에서의 서희 역으로 나오는 모 탤런트와 쌍벽을 이루며 학교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그녀를 만난 건 고1 때다. 자연스런 쌍까풀의 커다란 눈, 하이라이트를 준 듯 반듯하게 자리 잡은 코, 앙다문듯한 작고 도톰한 입술, 검게 윤나는 머릿결, 비음 섞인 목소리, 게다가 물 나무처럼 쑥 자란 키 등 그녀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 친구의 단짝은 문학소녀였다. 반 친구들은 학급에서 얼굴은 별로였지만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친구를 단짝으로 삼은 그녀를 향해 수군거렸다. 자기가 더 돋보이기, 위해 저러고 다닌다고 뒷말을 했다. 심한, 경우는 한쪽은 백치미를 보완하고 한쪽은 미모를 보완하기 위해 저런다고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 모두 마녀사냥식으로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그렇게 몰아간 건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에 난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이런 선입견들을 깨고 진정한 친구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일이 생겼다. 그것은 무용 시간에 창작 작품을 발표할 때였다.
물잠자리가 날개를 접고 수면 위에 잠시 정지한 듯 그녀는 무대 위에 섰다. 가벼운 빗방울이 튀듯 음악이 깔리자 스텝을 밟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긴 다리를 곧추세우고 새들이 날듯 팔을 가벼이 움직였다. 음악이 빠르게 바뀌자 무엇이 닥쳐온 듯 이리저리 몸을 옮겼다. 도망치듯 뒷걸음치다 휘휘 돌다 무대의 한 귀퉁이에 무너져 두 손을 내저었다. 엎드려 앉아 흐느끼는 어깨는 들썩이고 있었다. 다시 평화를 찾은 듯 여린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자 그녀가 일어났다. 힘들게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걷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두 손을 가슴께로 모으자 음악도 멈추었다. 박수 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를 하듯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더 서 있었다.
그녀의 춤을 보며 아이비(송악)를 떠올렸다. 혹한의 겨울에도 벽돌 틈새를 언 손으로 부여잡고 자신의 키를 키우는 열정의 초록 온도계를 말이다. 추위에 파르르 떠는 이이비 이파리처럼 그날 그녀의 입술도 떨리었던 것 같다.
한 마리의 새처럼 춤추고 싶었던 그녀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그만두어야만 했던 그 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춤 속에 녹아 있었다. 그녀의 춤을 지켜본 후 그녀가 진정 아름다워 보였고 그녀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 후 난 미모의 그녀와 글솜씨가 유난히도 남달랐던 또 한 명의 친구와 함께 3년을 함께했다. 특별한 재능도 뛰어난 외모도 갖지 못한 내가 끼어 우리는 더욱 완벽에 가까운 삼총사가 된 게 아닌가 했다.
긴 손톱에 새빨간 메니큐어, 코나 혀 배꼽, 유두에 한 피어싱, 굽 높은 하이힐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찬사를 보내는 이들을 경멸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의 취향마저 획일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회에서는 나만이 옳다고 고집할 수는 없다. 젊어 한때라면 봐 넘길 수도 있겠다 싶은 아량도 생긴다. 하지만 그들도 링컨의 말처럼 사람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외모 꾸미기만큼 하는 일에 소 적극적인 사람, 그 끼와 열정들을 발전적인 일에 쏟는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는 걸 말이다. 또한 튀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평범한 사람이 있어야 사회가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닐까.
초록이 짙어지는 오월에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피어난다. 때죽나무꽃 이팝나무꽃이 그렇다. 연초록이거나 꽃이 먼저 피는 나무에서는 노랑이나 분홍의 꽃들이 저 홀로 아름답게 돋보이지만 짙은 녹음에서는 차라리 수수한 흰 꽃이 더욱 빛을 발한다. 자연은 이 이치를 너무나 잘 아는 듯하다.
아름다운 사람들아. 초록을 닮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 그대들은 더욱 빛난다. 하지만 푸른 행운목도 십수 년 만에 꽃을 피워 올리듯 차곡차곡 쌓여가는 열정의 꼬투리가 익어 터지는 날 나도 한 번은 꽃 피우고 싶다. 누군가의 가슴에서 되새김질 되는 그 글 한 줄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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