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서울. 이십 대를 보낸 이곳을 다시 찾았다. 나는 서울을 세 번 정도 이사하며 살았는데, 첫 번째는 가장 저렴했던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살짝 더 들어가야 했던 고시촌이었고, 두 번째는 조금 성장해 밤이면 야경이 아름다웠던 당산역 인근에 살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 글의 주인공인 '후암동'의 바로 옆 동네 '청파동'에서 거주한 뒤, 서울에 질릴 대로 질려 제주도로 내려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서울에서의 살. 그리고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나빴던 청파동의 기억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아픔들을 모두 털어냈다. 그리고 단단하게 굳은 유화 그림에 밝은색을 덧칠하듯, 안 좋았던 기억 위로 좋은 추억들을 채워 넣었다.
골목골목 아리따운
후암동
후암동은 독일문화원,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 등 굵직한 교육 시설들이 있고, 언덕배기에 노후화된 주거지구와 고급 단독주택, 상가 등이 모여 혼재한다. 최근에는 이 일대 일부를 재개발해 제2의 아스테리움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곳은 언덕 아래의 후암시장을 시작으로 계속 오르다 보면 그 끝자락에 금경사가 있고, 남산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또 남산도서관 위에는 우리가 잘 아는 '남산 타워'가 있어 여행하기에도 너무나 좋다.
후암동과 가장 가까운 역으로는 서울역이 있고, 그 근처에는 시인 김소월의 호를 따서 1984년 제정한 소월길이 있다. 소월길 북쪽으로는 남산도서관, 남산식물원이 존재한다. 마치 미로처럼 결국 남산으로 이어지는 후암동. 어쩌면 후암동의 매력은 남산의 줄기를 타고 여러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게 아닐까 싶다.
청파동에 거주할 때, 후암동을 자주 여행한 적이 있다. 음, 물론 여행이라기보단 마실에 가깝겠다. 후암동과 청파동은 놀랍게 숙명여대입구역을 중심으로 단 한 블록을 넘으면 만날 수 있는 장소인데, 분위기는 청파동과 사뭇 달라 늘 부러워했다. 청파동은 확실히 대학교 근처여서 그런지 주거 단지가 많았고, 예쁜 카페 같은 곳보다는 저렴하게 한 끼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많았다. 그에 반면 후암동은 연애하는 커플들이 가기에 너무나도 좋았다. 물론, 나도 그런 연유로 후암동을 찾았다. 다국적의 다양한 식당이 즐비하고, 멋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진 카페들이 존재했던 후암동. 남산 타워를 향해 산책하는 동안에도 후암시장과 그 외에 다양한 것들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내게 놀러 가기 좋은 동네로 기억된다.
그런 후암동을 다시 찾았다. 이곳을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 이유는 너무나도 확고했고, 당연했다. 바로 '홍철책빵'을 가기 위해. 노홍철은 내게 연예인이였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언제나 빛났던 형. 나는 그를 꼭 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이벤트를 통해.
무언가를 미친 듯이 한다면
옛날에 홍철이 형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면 미친 듯이 하라고, 주변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하라고. 그러면 뭘 해도 될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모토로 짧은 시간 큰 성장을 했다. 작년과 올해 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일궈냈다. 그렇기에 더 홍철이 형을 보고 싶었다. 내가 해낸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그 마음을 홍철이 형도 알았을까. 인스타그램에 그가 글 하나를 올렸다. 바로 '홍철책빵'으로의 초대에 관한 것을. 한 타임에 28명씩을 뽑아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보낸다는 그의 글에 나는 사연을 면접 보듯 길게 적어 제출했다. 간절했기에, 너무 보고 싶었기에 그랬다. 그 간절함이 통한 걸까? 전화가 왔다.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전화가. 그렇게 나는 곧바로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아무런 고민조차 없이.\
이번 이벤트는 이탈리아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두 명의 와인베이커 '실비아'와 '잭'이 홍철책빵에서 직접 만든 와인을 소개하는 시음회를 하는 행사였다. 그와 동시에 노홍철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새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자리였다. 홍철스러운 이벤트와 재미를 추구하는 그의 모토가 고스란히 담긴 이 행사가 나는 너무나도 기대됐고, 홍철책빵의 입구인 차고지를 지나며 그 기대감은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역시는 역시
역시는 역시였다. 자리에 착석을 하고 네 장의 티켓으로 음식과 와인을 바꿔 먹으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큼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다. 그저 홍철이 형과 직접 얼굴을 보며 대화하고, 즐기는 순간들. 그 모든 게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다. 완벽했다. 그리고 낮부터 와인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단합되는 시간이 홍철스러웠고, 훌륭했다. 모든 게 완벽하고 좋았던 시간.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역시는 역시구나'라는 말을 내뱉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았다. 내가 지금 달려온 길을 더 열심히, 더 빠르게 달려야겠다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올해가 더욱 기대됐다.
두 시간 동안 그저 완벽하게 보낸 시간. 이곳에서 얻은 것은 추억 이상의 것들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며 나와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두 명의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과 형성된 유대관계가 너무나도 좋았다. 어쩌면 이마저도 홍철이 형의 계획이지 않았을까?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쌓고 이어가는 것. 그것마저 그 다운 발상이란 생각에 나는 웃음이 났다. 좋지 못한 기억으로 떠난 서울. 하지만, 다시금 좋은 기억으로 돌아온 서울. 나는 이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져가 다시 달려보려 한다. 그러면 또 분명 재미난 일들이 펼쳐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