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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14강 -2 (2011. 4. 4.)
往復序(왕복서)7.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六 正宗分(정종분)
第二, 如來現相品(여래현상품)
一, 雲集衆의 請法(운집중 청법)
1, 疑念請法(의념청법) (1) 德用圓滿(덕용원만)
(2) 體相顯着(체상현착)
2, 引例請法(인예청법) (1) 化用普周(화용보주)
(2) 因德深廣(인덕심광)
전통적으로 우리가 강원에서 경학을 공부하는데 이것 아주 필수적인 겁니다. 불교 안에서 우리가 산다면 주지를 하든지ㆍ포교를 하든지ㆍ무슨 불사를 하는데, 예를 들어서 건물을 하나 세우는데 거기에 대한 어떤 기본 사고. 기본 사고의 틀도 경에서 나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속인들이 지어놓은 절들을 우리가 보면 그냥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지어놓은 절은 달라요. 이것이 근본의 사고가 이미 이런 과거에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훈습이 돼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아주 기본 중의, 불교에 있어서는, 어떤 불교의 미술을 하든지ㆍ불교의 조각을 하든지ㆍ불교의 염불을 하든지ㆍ뭘 하든지 간에 불교의 기본은 經ㆍ律ㆍ論(경률론) 三藏(3장)과 바로 이 禪의 전적들. 불교의 고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 정말 우리가 중요시 여기고, 평생을 늘 공부해야할 그런 겁니다.
여기도 보면 無竭之涌泉(무갈지용천)이라고 그랬잖아요.
다 함이 없는 샘입니다. 끝없이ㆍ끝없이 흘러가 아무리 퍼내고 퍼내도, 다 하지 않는, 그런 샘물과 같은 것이 경전이다. 이 經이라고 하는 글자 속에는 말하자면 불교의 모든 전적들이, 책들이 전부 다 이속에 포함되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참 이런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면, 무얼 하는 데도 그것이 전부 기본이 되고 밑천이 돼가지고, 써도ㆍ써도 다 함이 없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貫玄凝之妙義(관현응지묘의)하고
攝無邊之海會(섭무변지해회)하며
作終古之常規(작종고지상규)하니
佛及諸王(불급제왕)을 並稱世主(병칭세주)요
法門依正(법문의정)을 俱曰妙嚴(구왈묘엄)이라
分義類以彰品名(분의류이창품명)하야
冠群篇而稱第一(관군편이칭제일)이라
깊고 깊은 미묘한 뜻을 꿰뚫고, 가없이 드넓은 회중들을 포섭하며, 아주 먼 옛날의 항상한 법규를 지으니, 부처님과 여러 제왕을 아울러 세상의 주인이라 일컫고, 법문과 의보와 정보를 함께 미묘한 장엄이라 한다. 뜻의 종류를 나누어 품의 이름을 드러내어 여러 편의 첫머리에 두어 제일이라 일컫는다.
貫玄凝之妙義(관현응지묘의)하고, 玄凝之妙義라. 아주 깊고 깊은 미묘한 뜻을 꿰뚫고, 화엄경은 그렇습니다. 다 꿰뚫고 있습니다. 너무 깊은 의미여서 사실 우리가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 그대로 이해를 다 못하고, 또 이해를 다 못하다보니 다 설명을 못한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고, 부족함으로 남지만 경은 그렇게 미묘한 뜻을 다 꿰뚫고 있습니다.
攝無邊之海會(섭무변지해회)라. 無邊之海會를 포섭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海會라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회중이지요. 대웅의 모임입니다.
법회입니다. 이 화엄경에는 우리가 世主妙嚴品에서 보았듯이 의미도 깊지만, 그 등장하는 인물들. 世主 = 세간 주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야말로 無邊이지요. 그리고
作終古之常規(작종고지상규)라. 저~ 아주 먼 예부터 내려오는 아주 常規. = 떳떳한 규칙. 항상한 법규다 이 말입니다. 항상한 법규. 이것은 정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그런 법규 역할을 하고 있다.
佛及諸王(불급제왕)을 並稱世主(병칭세주)라.
부처님, 그리고 그동안 世主妙嚴品에 등장했던 많고 많은 신장들ㆍ왕들.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이들을 모두 합해서 세상 주인이라고...
法門依正(법문의정)을 俱曰妙嚴(구왈묘엄)이다.
법문과ㆍ또 의보ㆍ정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ㆍ그리고 우리들 자신ㆍ그리고 부처님ㆍ부처님의 세계ㆍ그리고 부처님의 법문. 이런 모든 것이 이 화엄경에는 다 포함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다 무르녹아 있으니까 그것을 다 함께 일컬어서 妙嚴 =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 부처님의 세계가 그렇고ㆍ부처님의 법문이 그렇고ㆍ부처님의 모습이 그렇고요.
그래 法門依正. 이것이 다 이 화엄경에는 정말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오히려 너무 많고ㆍ너무 아름답게 갖추어져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지요. 그 다음에
分義類以彰品名(분의류이창품명). 그랬습니다.
義類를, 뜻의 종류를 나누어서 품의 이름을 드러냈지요? 세주묘엄품ㆍ여래현상품ㆍ보현삼매품 등등 여러 가지 품 제목들이 그런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冠群篇而稱第一(관군편이칭제일)이라. 그 여러 품들 중에서 제일 위에 두었기 때문에 第一이라고 일컬었다. 그것은 별 이야기 아닙니다. 그 다음에
3, 경과 품의 제목을 결론짓다[雙結二目(쌍결이목)]
斯經(사경)이 有三十九品(유삼십구품)하니
此品(차품)이 建初(건초)라
云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운대방광불화
엄경세주묘엄품제일)이라하니라
이 경이 39품이 있으니 이 품이 처음에 있다. 그러므로 대방광불화엄경 세주묘엄품 제일이라 한다.
斯經(사경)이 有三十九品(유삼십구품)하니, 이 경이 39품이 있다.
此品(차품)이 建初(건초)라. 세주묘엄품이 앞에 있다 이겁니다.
故云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고운대방광불화엄경세주묘엄품제일)이라하니라. 그러므로 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제 이 서문이 끝나고 바로 들어가는 구절이 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 순서대로 하면 大方廣佛華嚴經ㆍ第一ㆍ世主妙嚴品 ←이렇게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옛날에 한문 방식으로는 世主妙嚴品ㆍ第一 ←이렇게 되었습니다. 요즘 쓰면 전부 第一ㆍ世主妙嚴品 ←이렇게 바꾸어야 옳지요. 사실은... 그래야 우리에게는 쉽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往復序. 대충,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저는 혼자 읽을 때는 참~ 깊고 오묘한 맛을 느끼는데, 또 설명하려니 그것이 영~ 설명을 해놓고도 ‘이것이 아닌데ㆍ이것이 아닌데...’ 하고 늘 부족함을 느껴서... 그래서 또 어떤 스님이 발기를 해서 우리가 강의 전에, 그 서문 속에 다 포함 되어 있으니까 이것을 한 번 읽고 강의에 들어가는 것을, “매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아주 좋은 안을 내서 읽습니다. 오늘도 읽어보니까 새삼 맛이 나고 좋습니다.
드디어 世主妙嚴品이 다 끝나고, 권수로는 제6권 正宗分(정종분)에 들어섰습니다. 앞에는 序分(서분)이 됩니다. 서론에 해당 되고, 오늘부터 비로소 본론에 해당 되는데요. 그것을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正宗分. 그랬습니다. 이것을 부연해서 설명하면, 正敶宗旨(정진종지). 이렇게 됩니다.
正說宗旨(정설종지). 해도 좋아요. 화엄경이 설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
화엄경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 여기에서부터, 如來現相品(여래현상품)부터 시작된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서론인데도 열 석 달이나 걸렸습니다. 참 大經은 대경입니다. 이제부터 본론에 들어가는데요. 말하자면 “근본취지” 바른 의미를 여기서 바르게 이야기하고 있다ㆍ종지를 바로 설 한다ㆍ바로 편다. 그런 뜻입니다. 화엄경의 종지를 지금 바로 이야기한다. 여기서부터 이제 군더더기 없이 바로 여기서부터 “근본취지” 에 들어간다. 그런 뜻이 正宗分 이런 뜻입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六 正宗分(정종분)
第二, 如來現相品(여래현상품)
一, 雲集衆의 請法(운집중 청법)
1, 疑念請法(의념청법)
(1) 德用圓滿(덕용원만)
爾時(이시)에 諸菩薩(제보살)과 及一切世間主(급일체세간주)가
作是思惟(작시사유)하사대
云何是諸佛地(운하시제불지)며
云何是諸佛境界(운하시제불경계)며
云何是諸佛加持(운하시제불가지)며
云何是諸佛所行(운하시제불소행)이며
云何是諸佛力(운하시제불력)이며
云何是諸佛無所畏(운하시제불무소외)며
云何是諸佛三昧(운하시제불삼매)며
云何是諸佛神通(운하시제불신통)이며
云何是諸佛自在(운하시제불자재)며
云何是諸佛無能攝取(운하시제불무능섭취)며
39품 중에 第二, 如來現相品인데요. 여래가 모습을 보이다. 그렇지요.
여래가 모습을 보이다. 그랬습니다. 모습을 보이다. 했으니까 어떻게 생겼고ㆍ키는 얼마이고ㆍ귀는 어떻게 생겼고ㆍ눈은 어떻고, 이런 것을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데, 若以色見我(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불능견여래) 그랬습니다. 화엄경에다 대면 아주 저~ 밑에 중학생 급 정도 밖에 안 되는 금강경에서도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만약에 색으로써, 육신의 어떤 모습으로써 또는 설법하는 소리로써 나라고 이해한다면, 그 사람은 사도를 행한 것이다ㆍ외도다ㆍ미신이다. 또 凡所有相 皆是虛妄(범소유상 개시허망) 그 앞의 사구게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금강경에서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항차 화엄경이겠습니까?
여래가 모습을 드러내다. 하는 그 모습은 이제 바로 곧 등장합니다.
一은 雲集衆의 請法이라 그랬습니다. 그동안 다섯 권이라고 하는 아주 방대한 내용. 그것만 해도, 서론만 해도 다른 경전 몇 권 되는데, 거기에 이 법회에 모이는 대중들이 雲集. 우리가 “운집목탁” 그렇게 하지요?
사람을 모을 때 “운집시킨다.” 그 런 표현을 합니다. “대중운집” 이런 표현도 하고요. 앞에 그렇게 많이 모였었습니다. 그 분들이 법을 청하는 겁니다. 법을 청하는데 여기 네 단락이 있는데 이것이 40종류의 질문입니다.
40가지의 질문입니다. 이 40가지 질문은 우연히도 부처님 치아가 40개입니다. 그리고 부처님 “齒間放光(치간방광)” 이라고 하는 말이 곧 나옵니다. 입으로부터, 齒間. 이빨 사이로부터 광명을 놓았다. 여기에 곧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경전의 구성이요? 하~ 너무 아주 치밀하고ㆍ너무 조직적이고, 그야말로 자로 재도 얼마나 정확하게, 0. 00미리 오차도 없는 그런 아주 조직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 우연히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40問을 하나씩ㆍ하나씩ㆍ하나씩, 이렇게 소개 했는데 설명이 아주 좀 깁니다. 그런데 疑念請法이라. 누가 일어나서 “질문 있습니다.” 하고 이렇게 청하는 것이 아니고, 세간 저들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겁니다.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 법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다. 이제 대중들이 다 모여서 정돈도 다했고, 예를 들어서 세계 올림픽이 열릴 때, 그 왜 “선수 입장” 이 있지요? “선수 입장” 그것을 보면 꼭 이 세주묘엄품 대중들이 등장하는 모습하고 거의 유사합니다.
한참 걸리지 않습니까?
온갖 풍악을 잡히면서ㆍ온갖 깃발을 다 들고, 그렇게 계속 모이지 않습니까? 이제 그렇게 다 모여서 전부 제자리에 다 정돈이 되었습니다. 이제 조용합니다. 다 모여서, 다 자기 표현들 다 했고요. 그 다음에 이제 모였으면, 사람의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뭔가 부처님에게 이 좋은 법석에서, 뭔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疑念請입니다. 생각으로 청법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법을 청하는데...
爾時(이시)에, 그 때에
諸菩薩(제보살)과, 모든 보살과
及一切世間主(급일체세간주)가, 그리고 一切世間主. 앞에서 등장했던 그 많고 많은 세간의 주인들이 作是思惟(작시사유)하사대, 이러한 사유를 지었다ㆍ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이것이 법을 묻는 것인데
① 云何是諸佛地(운하시제불지)? 그랬습니다. 云何是, 무엇이 모든 부처님의 땅인가? 이것은 지위라고도 할 수도 있고ㆍ땅이라고도 할 수도 있고, 땅이라는 의미도 있고ㆍ지위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ㆍ경지, 부처의 경지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 많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 질문이 云何是諸佛地? 무엇이 諸佛의 地냐? 이 地라고 하는 것은, 첫째 요즘 봄이 돼서 우리가 그것을 더욱 확실히 느끼는데 땅은 모든 것을 생성 시킵니다ㆍ만물을 생성시켜요ㆍ만물을 생성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또 유지를 시켜줘요. 우리는 땅을 밟고 있고, 건물도 땅을 밟고, 건물을 세우고, 비행기가 설사 하늘로 차고 올라가도 땅을 차고 올라가는 겁니다.
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地자가 맨 앞에 있습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이냐? 근본이라는 뜻도 되고ㆍ경지라는 뜻도 되고ㆍ지위라고 하는, 부처의 지위가 과연 무엇이냐? 그래서 이 地자 하나만 가지고, 佛地라고 하는 이것만 가지고 佛地經(불지경)이 있습니다.
佛地經. 또 그 경전을 부연 설명한 佛地論(불지론)이 있습니다. 佛地經이 있고ㆍ佛地論이 있고, 거기엔 이 佛地라고 하는 이 낱말 하나만 가지고 아주 길게 설명을 하고 있어서, 우리가 제대로 알려면, 불지론을 포함한 불지경을 보면 더 좋겠지요. 이러한 내용들은 저 뒤에 가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② 云何是諸佛境界(운하시제불경계)? 그랬습니다.
무엇이 諸佛의 境界입니까?ㆍ무엇이 諸佛의 境界입니까?
境界. 이것은 佛地德(불지덕). 德을 境界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경지의 德이 어떻게 표현되느냐? [여래출현품]에 잘 나와 있고, 또 [문명품]에도 잘 나와 있고, [불부사의법품]이라고 또 있지 않습니까? [부사의품] 에도 아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런 데에 가면 부처님의 경계를 超勝(초승), 아주 뛰어나고 수승한 것이다. 라고 해가지고 열 가지 비교할 수 없는 경계를 쭉~ 이렇게 [불부사의법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거기가면 쭉~ 이 40문이, 40종류의 질문이 결국은 앞으로 전개되는 화엄경 내용의, 말하자면 제목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40내용을 하나ㆍ하나 풀어가는 것이 말하자면 ‘앞으로 나올 화엄경이다ㆍ많고 많은 화엄경이다.’ 이렇게 봐도 좋습니다. 그래서 이것, 이 마흔 가지 질문은 참 중요한 겁니다. 그 다음에
③ 云何是諸佛加持(운하시제불가지)? 그랬습니다.
무엇이 諸佛의 加持이냐? 더할 加자ㆍ가질 持자입니다. 우리는 여기 경전에도 “가피” 라는 말을 간혹 씁니다만, 加持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사실은 뜻은 같습니다. 부처님이 수승한 힘을 가지고, 말하자면 힘을 지니고 있는 것ㆍ그 힘이 우리에게 까지 미치는 것, 부처님의 수승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加持인데, 그것이 우리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에, 그래서 “가피” 라는 표현을 쓰고, 간혹 加持라는 말도 쓰고 그렇습니다. 이것도 [불부사의법품] 거기에 자세히 설명이 있고, 또 [십지품] 중에서는 법운지에 설명이 잘 되어 있고, 그 다음에 [이세간품]이 있습니다. 입법계품 바로 앞에 있는 이세간품에 또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전부 이것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④ 云何是諸佛所行(운하시제불소행)? 그랬습니다.
무엇이 諸佛의 所行이냐? 행할 바ㆍ행하는 바냐? 부처님의 행위는 뭐냐? 이겁니다. 하는 짓은 뭐냐? 이 말입니다. 부처님이 하는 짓은 뭐냐?
이것도 역시 저 뒤에 나가면 [불부사의법품]에도 나와 있고, [여래출현품]에는 “無碍行(무애행)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걸림이 없는 행이다.” 해가지고 아주 자세히 나와 있고, 大悲攝生(대비섭생)이라. 부처님의 행위ㆍ부처님이 하시는 일,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 할 때는 大悲攝生이라 그랬습니다. 대자비로써 중생을 섭수하는 일이다. 아~ 참! 좋은 표현이지요.
부처님은 딴 사업 없습니다. 부처님의 所行.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그저 큰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는 일이다. 불교에 대한 답이 거기에 다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의 所行이 뭐냐? 결국은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는 것이지요.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뭐냐?ㆍ불교가 하는 일이 뭐냐?
衆生攝受(중생섭수)하는 것입니다. 衆生攝受하는 것. 경전에 그렇게 아주 大悲攝生이다. 그리고 또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大智造緣(대지조연). 부처님이 하시는 일은 큰 지혜로써 인연을 지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참 좋은 말입니다. 大悲攝生도 좋은 말이지만, 大智造緣. 큰 지혜로써 인연을 지어가는 것. 큰 지혜로써 인연을 지어가는 것도 결국은 그 취지는, 중생제도에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출현품]이라든지 [불부사의법품]에 자세히 설명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⑤ 云何是諸佛力(운하시제불력)? 그랬습니다.
무엇이 부처님의 힘이냐? 이것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10력이 있었지요?
지난 시간 유인물에 處非處智力(처비처지력) 이라든지, 이런 부처님이 갖고 있는 특별한 열 가지 힘. 이것을 뜻하는 것이고, 그것도 [불부사의법품]에 부처님의 광대한 힘이 열 가지가 있으니 해가지고 쭉~ 나옵니다. 그 다음에
⑥ 云何是諸佛無所畏(운하시제불무소외)?
이 無所畏라는 말이 대승경전에 참 잘 나오는데요. 이것은 정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이 많습니다. 저도 항상 강의를 하면서 사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대중 가운데 어떤 실력자가 있는지?ㆍ어떤 안목을 가졌는지?ㆍ글도 저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간혹 있을 것이고ㆍ불교의 안목도 저보다 더 높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ㆍ세상 경험도 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사실이 그렇고요. 그래서 그런 것을 생각하면요? 늘 두려운 것이지요. 늘 몸이 사려지고요. 사실은 큰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ㆍ부처님은 그런 문제를 다 넘어선 사람이다.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無畏ㆍ無畏, 無畏라는 말이 그렇게 많습니다. 無所畏. 두려워하는 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저는 한참 동안을 이 無所畏. 부처님은 두려운 바가 없다. 이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 이야긴가? 늘 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알고 보니까 참 우리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항상 두려워해야 됩니다. 두려워하는 이것이 맞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두려워해야 되고ㆍ차를 모실 때 우리가 항상 관세음보살 부르고ㆍ늘 조심하고요. 어떤 안전한 길도ㆍ어떤 익숙한 길도 항상 조심하고ㆍ항상 관세음보살 놓치지 말고 다니는 자세. 이것 참~ 필요 하거든요. 그처럼 우리가 어떤 자리에 가서, 어떤 어린 아이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성질을 가지고 있을지 아나요?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유치원생ㆍ초등학생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뤘다가는 큰코다칩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 이것 참, 정말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두려워 할 줄 아는 이것이 사실은 중요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 부처님은 어떤 분야에 있어서ㆍ어떤 면에 있어서도 두려움이 없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시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소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것. 그런 이야기도 있지요. 여기 [이세간품]에 들어가면 열 가지 두려움 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일곱 번째
⑦ 云何是諸佛三昧(운하시제불삼매)? 그랬습니다.
우리가 三昧ㆍ三昧, 三昧라는 말을 얼마나 잘 씁니까? 선정이라는 말도 잘 쓰고 그러는데 이 三昧는 하나의 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정품] 칠불삼매ㆍ부처님 삼매ㆍ사자빈신 삼매ㆍ해인삼매ㆍ화엄삼매-10종삼매.그 다음에 심지어 [십정품] 열 가지 선정.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도하고 그렇습니다. [불부사의법품]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⑧ 云何是諸佛神通(운하시제불신통)? 그랬습니다.
이것도 십정ㆍ십통ㆍ십인품. 우리가 그렇게 외우지요? 십통 이라는 것이 열 가지 神通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들어가면 여기에서 질문한 것이 앞으로 전개되는 품ㆍ품마다 여기의 질문을 아주 광장설로 대답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십통품] 내지 [불부사의법품] 이런데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아홉 번째는
⑨ 云何是諸佛自在(운하시제불자재)?
부처님은 자유자재하신 분이다. 所作爲已未無碍成就(소작위이미무애성취)라. 하는 것은 당신 뜻대로 아무 걸림 없이ㆍ아무 걸림 없이 모든 것을 다 성취한다. 우리는 뭘 하려고 하면 아~~ 장애 많지요. 장애 투성이지요.
공부를 해도 장애 투성이요ㆍ불사를 해도 장애 투성이요ㆍ포교를 해도 장애 투성이요ㆍ코딱지만한 절을 하나 절을 하나 운영해도 장애 투성이요. 그런데 부처님은 하는 것마다 已未無碍成就라 그랬습니다. 이미 걸림 없이 성취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도 無量(무량), 혹은 100가지, 이런 식으로 설명을 많이합니다. [이세간품] [불부사의법품] 이런데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⑩ 云何是諸佛無能攝取(운하시제불무능섭취)? 그랬습니다.
능히 섭취할 수 없음. 이 말입니다. 攝取라고 하는 말은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부처님을 조복하지 못하고ㆍ포섭하지 못하고ㆍ취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능히 섭취할 수 없음. 아무도 부처님을 어떻게 할 수 없음이 無能攝取입니다. 어떤 게송에는 無能制伏(무능제복). 이런 말을 썼습니다.
제어 할 制자. 조복 할 伏자. 그 뜻을 보면 ‘아, 攝取라는 말이 그런 뜻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制伏. 제어하고ㆍ조복하는 것.
부처님을 누가 그걸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성난 코끼리도 부처님 앞에 와서는 꼼짝 못했고, 아니, 역사적인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화엄경에서 표현하는 이 비로자나불의 경지야 더 말할 나위 없지요.
그 유명한 앙굴리말라 같은 이들, 참으로 훌륭한 다른 종교인이었는데, 삿된 스승을 만나가지고, 삿된 스승이 그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서 말하자면 지도를 일부러 오도를 한 것이지요.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서 가르쳤는데, 이 순수한 종교인은 그 스승이 시키는 대로ㆍ그 스승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사람을 하나 씩ㆍ하나 씩 죽이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손가락을 잘라가지고 염주처럼 목에 걸고 다니는데, 그런 사람들까지도 부처님은, 역사적인 석가모니ㆍ역사적인 석가모니가 그런 사람을 꼼짝 못하게 했지 않습니까?
참~ 그, 정말 보통 우리가 인간적인 부처님이라고 아주, 대승경전에서 알고 있는 부처님에서 아주 천 미터ㆍ만 미터로 다운 시켜서 보더라도, 그
역사적인 석가모니라고 하는 인물은 그런 인물입니다. 뭐 그런 일이 한 두 가지 있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참
천상천하의 유아독존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하고ㆍ헐뜯지 못하고, 헐뜯고 무너뜨려 봐야 오히려 그것이 그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것. 이것을 부처님의 수승한 법이다. 그래서 이것도 [불부사의법품]에, 뭐 한 번 입만 뗐다하면 열 가지로 설명이 쫙~~ 나옵니다. 거기에 가서 우리가 또 자세히 만나 보도록 하고요.
德用圓滿이다. 일단 열 가지가 끝났고요. 내용을 간추리자면 佛果(불과)에 대한 질문인데ㆍ부처님의 결과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덕의 작용이 圓滿한 내용들을 열 가지로 요약해서 질문한 것.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體相顯着(체상현착)이라. 이것은 顯著(현저)입니다. 體相이 환하게 드러났다 = 顯著. 着자 하고 비슷한 著자가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유의할 것은 着자는 著자로 못 봅니다. 그런데 초두 밑에 놈 者자한 이것은 드러날 著자인데, 이 著자는 着자로 봅니다. 著자는 경전에서는 그냥 着으로 많이 봅니다. 문맥에 따라서 着으로 많이 보는데, 着자는 著자로 못 봅니다. 불교 안에는 그런 글자가 많지요. 예를 들어서 스승 師(사)자도, 사자 獅(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 獅를 스승 師자로는 못 봐요. 절대 못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燃燈佛(연등불) 할 때도 그러할 然(연)자 써서 然燈佛해도 됩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불 火(화)변에 그러할 然자 쓴 태울 燃자. 그것은 그러할 然자로 못 봅니다. 그러할 然자는 불탈 燃자로 얼마든지 봅니다.
(2) 體相顯着(체상현착)
云何是諸佛眼(운하시제불안)이며
云何是諸佛耳(운하시제불이)며
云何是諸佛鼻(운하시제불비)며
云何是諸佛舌(운하시제불설)이며
云何是諸佛身(운하시제불신)이며
云何是諸佛意(운하시제불의)며
云何是諸佛身光(운하시제불신광)이며
云何是諸佛光明(운하시제불광명)이며
云何是諸佛聲(운하시제불성)이며
云何是諸佛智(운하시제불지)니잇고 唯願世尊(유원세존)은
哀愍我等(애민아등)하사 開示演說(개시연설)하소서
그렇듯이 이것은 오자인데, 사실은 顯著라고 써야 옳지요.
여기에 보면 부처님의 體相이 환히 드러나다. 하는 그런 내용인데, 이것은 내용이 간단하지요.
① 云何是諸佛眼(운하시제불안)? 무엇이 부처님의 눈이냐?
② 云何是諸佛耳(운하시제불이)? 무엇이 부처님의 귀냐?
③ 云何是諸佛鼻(운하시제불비)? 무엇이 부처님의 코냐?
④ 云何是諸佛舌(운하시제불설)? 무엇이 부처님의 혀냐?
⑤ 云何是諸佛身(운하시제불신)? 무엇이 부처님의 몸이냐?
⑥ 云何是諸佛意(운하시제불의)? 무엇이 부처님의 뜻이냐?
이렇게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 6근을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는
⑦ 云何是諸佛身光(운하시제불신광)? 무엇이 諸佛의 身光이냐?
⑧ 云何是諸佛光明(운하시제불광명)? 무엇이 諸佛의 光明이냐?
이 두 가지는 앞에서 6근을 이야기한 것을 여기선 하나로 또 다시 身光과 光明을 身口意(신구의) 3업으로 볼 때, 身에 해당 됩니다. 身에 해당 되는 것으로써 몸의 빛. 그리고 또 빛 말고, 몸 빛 身光말고, 그냥 나타난 光明. 광명하고 따로 보는 겁니다. 그 두 가지. 그 다음에
⑨ 云何是諸佛聲(운하시제불성)? 부처님의 음성은 어떠냐?
지금 여러분 덕택에 지난 시간에 회장 스님이 마이크 시설 하겠다고, 그렇게 말씀 있어가지고 당장에 와서 시설 했는데, 소리가 아주 격이 다르더만요. 전번 것 하고 격이 달라요. 저는 그런 것 잘 모르고 살았는데, 이야기 해보니까 너무 편하고ㆍ힘이 덜 들고 좋습니다. 저는 음성이 크게 나쁘다는 소리는 안 듣는데, 대중들 앞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음성이 아주 차랑차랑 하고, 그리고 아주 감미롭고 좋아서 아무 내용이 없어도, 소리만 들어도 아~ 그것 듣고 싶은 그런 음성이 좀 됐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ㆍ그런 망상을 사실은 종종 해봅니다. 그 부처님 소리가 어떨까? 부처님의 음성이 정말 어떨까? 참 궁금하지요. 聲은 身口意 할 때, 口에 해당 됩니다.
⑩ 云何是諸佛智(운하시제불지)? 諸佛智라고 하는 것은 意에 해당 됩니다. 무엇이 諸佛의 지혜냐? 그러니까 6근을 이야기했고, 다시 身ㆍ口ㆍ意, 세 가지로 묶어서 또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 중복이 물론 되겠지요. 중복이 되면서도 아주 열 가지 질문으로 이렇게 탁 묶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체계가 아주, 생각해 볼수록 체계가 잘 잡혀있는 그런 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뒤에 자세히 또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所求(소구)라고 그럽니다. 구할 바. 우리가 구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두 달마스님이나 부처님처럼 됐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서 이것을 所求. 구할 바 다. 그렇게 해석을 합니다. 우리 불자들 가슴에는 정말 항상 부처님이 태양 같은 존재입니다.
꺼지지 않는 태양이지요. 뭐 이렇게 밝은 대낮만이 아니고, 우리 가슴속에ㆍ우리 의식 속에 늘 “부처님” 하면 정말 태양보다도 더 빛나지요.
그래서 저~ 기 뒤에 가면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猶如千日出(유여천일출). 부처님은 마치 천개의 태양이 동시에 뜬 것과 같다. 猶如千日出.
어떤 천 씨 성을 가진 스님이 일출이라고 불명을 지은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지어봐야 별 볼일 없으니까 나중에는 그대로 바꾸더라고요. ㅎㅎㅎ 성이 천 씨입니다. ㅎㅎㅎㅎ 천방지축마골피인데...ㅎㅎㅎㅎㅎㅎ 그래가지고 일출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ㅎㅎㅎ 별 볼일이 없는가 나중에 이름을 바꾼 예가 있습니다. 우리 도반이라서 그냥 웃자고 이야기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마음 속에는 猶如千日出입니다.
자나 깨나 “부처님ㆍ부처님” 그것이 제대로 된 생각이든ㆍ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생각이든 간에, 우리마음 속에는 그야말로 천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 있는 것 같은,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 이런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 부처님 눈은 어떨까? 부처님의 귀는 어떨까? 부처님의 몸은 어떨까? 혀는 어떨까? 부처님의 光明ㆍ光明하는데 진짜 부처님 光明은 어떨까? 이런 질문을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금 까지 우리가 보아왔듯이 그 많고 많은 대중들이 꽉~~ 법회에 모였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 다음에
2, 引例請法(인예청법)
(1) 化用普周(화용보주)
又十方世界海(우시방세계해)의 一切諸佛(일체제불)이
皆爲諸菩薩(개위제보살)하사 說世界海(설세계해)와
衆生海(중생해)와 法界安立海(법계안립해)와 佛海(불해)와
佛波羅密海(불바라밀해)와 佛解脫海(불해탈해)와
佛變化海(불변화해)와 佛演說海(불연설해)와
佛名號海(불명호해)와 佛壽量海(불수량해)와
引例請法(인예청법)이라. 예를 이끌어서 법을 청하다.
化用普周(화용보주)라. 그랬습니다. 교화의 작용이 널리 퍼지는 것ㆍ널리 두루한 것. 이것은 그 묻는 형식이 조금 달라서 그렇지 똑 같습니다.
唯願世尊(유원세존)은 哀愍我等(애민아등)하사,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開示演說(개시연설)하소서. 그랬잖아요. 이러한 내용들을 開示해서 연설 해 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해놓고 그 다음에
又十方世界海(우시방세계해). 이것은 저~ 기가서 十方世界海의
一切諸佛(일체제불)이 皆爲諸菩薩(개위제보살)하사, 모두 다 모든 보살들을 위하사 說, 했습니다. ① 世界海(설세계해). 설해주시나이다. 저 밑에다 갖 다 새기세요. 마지막 줄에다... 무엇을 하는가 하니 世界海. 형식을 좀 달리 해서 그렇지 똑 같습니다. 世界海ㆍ② 衆生海(중생해). 海 하면 뭐지요? 깊고 광활하다.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깊기도 하다. 그런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世界海. 세계라고 하는 말이, 말이 쉽지 이것이 어디 간단한 것이 아니잖아요.
衆生海, 그랬습니다. 衆生海도 다 표현됩니다. 그렇지만 중생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한다면, 이것이 그냥 중생이라는 말 가지고는 부족해요.
그래 海자를 붙인 것이, 이것이 참~ 묘한 겁니다. 衆生海. 바다처럼 깊고ㆍ광활한 세계가 중생세계입니다. 그 다음에
③ 法界安立海(법계안립해). 이 법계가 안치 되어 있는 것.
安立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은 안립법식. 이런 말도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있는 것ㆍ마이크가 이대로 서 있는 이 모습ㆍ세계는 세계가 이대로 성립되어 있는 이 모습. 그런 뜻입니다. 法界安立海.
④ 佛海(불해). 그 다음에
⑤ 佛波羅密海(불바라밀해). 차원이 아주 높지요.
⑥ 佛解脫海(불해탈해). 그 다음에
⑦ 佛變化海(불변화해). ⑧ 佛演說海(불연설해). ⑨ 佛名號海(불명호해), 여래명호 품이 있잖아요. 이런 데서 다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⑩ 佛壽量海(불수량해). 여래수량 품 같은 것. 이것이 앞에서 20문은 결과를 물었다면, 여기는 원인을, 어째서 그런 결과를 가져 왔습니까?ㆍ또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는 그 원인을 묻는 내용이 바로 여기의 뒤의 20문이 됩니다. 이것이 알고 싶은 겁니다. 所知(소지) = 아는 바. 부처님이 아는 바라고 할 수가 있지요. 여기까지 이 열 가지 질문을...
그 다음에 所行(소행)이 됩니다. 부처님이 행하는 것, 실천하는...
부처님의 실천행이 여기 열 가지인데요.
(2) 因德深廣(인덕심광)
及一切菩薩誓願海(급일체보살서원해)와
一切菩薩發趣海(일체보살발취해)와
一切菩薩助道海(일체보살조도해)와
一切菩薩乘海(일체보살승해)와
一切菩薩行海(일체보살행해)와
一切菩薩出離海(일체보살출리해)와
一切菩薩神通海(일체보살신통해)와
一切菩薩波羅密海(일체보살바라밀해)와
一切菩薩地海(일체보살지해)와
一切菩薩智海(일체보살지해)하시나니 願佛世尊(원불세존)은
亦爲我等(역위아등)하사 如是而說(여시이설)하소서
因德深廣이라고 그랬습니다. 因의 德이, 말하자면 부처님이 행하신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부처님이 부처님 되기까지의 원인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因德이라고 그랬습니다. 因의 德이 깊고 넓다. 그랬습니다.
① 及一切菩薩誓願海(급일체보살서원해). 그리고 一切菩薩誓願海.
그렇지요. 誓願이 있어야 됩니다. 원력. 이것이 제일 중요하지요. 저는 천수경에서, 그 짧은 천수경에 원이 그렇게 많은 이유를 정말 아주 절절이 느낍니다. 사람은 원으로 산다ㆍ꿈과 희망으로 산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 딱딱한 나무껍질 속에 있던 새싹도 그 살고자 하는 원이 있기 때문에ㆍ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뚫고 일어 나와요. 또 아무리 겨울 내내 딱딱하게 밟은 흙도 그 연약한 새싹이 뚫고 일어납니다. 이것이 생명력입니다. 이 생명력은 원력입니다ㆍ그리고 그것은 희망감이고ㆍ기대감입니다. 사람에게 희망감ㆍ기대감, 그 다음에 불교적으로 말하면 서원. 이것이 사람이 사는 힘입니다. 근본 힘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이것이 부처님이 행하신 바요.
그래서 서원해(誓願海)라고 그래요. 그 다음에
②一切菩薩發趣海(일체보살발취해). 그랬습니다.
一切菩薩을 發趣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ㆍ성장해 가는 것. 나아갈 趣자지요? 이 趣자가 출발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도 같은 뜻입니다.
③ 一切菩薩助道海(일체보살조도해).정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助道도 필요해요. 공부는 공부할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할 마음이 있다.” 그것이 정도라면, 조건이 또 갖춰져야 됩니다. 그것은 조도입니다. 사실 마음이 대개 강하면 어떤 악 조건도 다 무릅쓰고 공부 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한 예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사실 조건이 좀 갖춰져야 공부가 되지, 안 그러면 어렵습니다. 아까 어떤 스님이 겨울 내~ 감기 걸려가지고 못 왔다는데 그것 보십시오. 그것이 조도입니다. 마음이야 간절하지요. 正은 있어요ㆍ근본은 있어요. 그런데 주된 조건이 마련이 안 돼요.
또 어떤 스님은 엊그저께 교재를 부쳐왔어요. 저~기 전라도 어디 있다는데 하도 멀고, 오고 가고 힘들어서 다른 스님이 쓰라고 교재를 부쳐왔어요. 부쳐오면서 “도저히 못 다니겠다.” 그것은 신심. 기본 마음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주변 조건이 부족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런 사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데, 正이 있고, 助가 있습니다. 正이 있고, 副(부)가 있고요. 세상사 다 그렇잖아요. 조건이 잘 갖춰져야 됩니다. 그것 중요합니다. 그래 우리는 37조도 품이라고 해서, 그것이 도를 돕는 것이지 완전한 도는 아닙니다. 도를 돕는 것이지, 그 자체가 도는 아니거든요. 공부하는 데도, 공부하도록 돕는 그런 주변 조건이 사실 참 중요합니다. 큰 신심 없어도 주변 조건이 좋으면 범어사에 산다든지ㆍ저하고 부득이한 인연이 있다든지 그러면 체면 보고라도 가서 공부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도 하나의 조건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들도 경전에 다 이야기가 되겠지요.
④ 一切菩薩乘海(일체보살승해). 이 乘자가 대승ㆍ소승ㆍ보살승ㆍ연각승.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乘에는 말하자면 보살이 운용하는 것. 탈것. 글자대로 탈 乘자 아닙니까? 합승이라고도 하고, 우리가 택시타면 소승 탔다고 그러고, 버스타면 대승 탔다고 그러고요. 그런 표현도 하듯이 말하자면 일체 보살이 보살행을 운용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법이라고 하면 제일 쉽습니다. 그 다음에
⑤ 一切菩薩行海(일체보살행해). 그랬습니다.
이것은 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런 일들. 그 다음에
⑥ 一切菩薩出離海(일체보살출리해). 이 出離라고 하는 것은 불교의 아주 중요한 용어인데요. 이것은 말하자면 “생사를 해탈한다ㆍ생사를 벗어난다.” 하는 것도 불교의 과제 중에 참 중요한 과제지요. 그래서 이것은 “생사를 벗어나는 일.” 모든 보살이 보살행도 중요하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를 벗어나는 것. 이것도 불교의 참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래서 出離海. 그 다음에
⑦ 一切菩薩神通海(일체보살신통해). 이것 역시 아는 대로 신통이고요.
⑧ 一切菩薩波羅密海(일체보살바라밀해). 화엄경에서는 10바라밀. 지난 시간에도 말씀이 있었지요?
⑨ 一切菩薩地海(일체보살지해). 이것은 경지. 저 앞에서(1-(1)-①)
佛地 라고 했을 때, 그런 지위하고 같습니다. 그 다음에
⑩一切菩薩智海(일체보살지해). 지혜의 바다. 그랬습니다. 여기까지 설하시나니, 모든 부처님이 보살들을 위해서 이러한 스무 가지 海를 설하시나니 願佛世尊(원불세존)은, 원컨대 부처님 세존은
亦爲我等(역위아등)하사, 또한 저희들을 위하시사
如是而說(여시이설)하소서. 이와 같이 좀 설해주십시오. 여기까지도 다 생각으로 請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所行이라고 해서 말하자면 행할 바. 이것은 거의 행할 바를 이야기한 것이지요.
경전은 요? 특히 대승경전은 우리가 생각하는ㆍ또 우리 상식적으로 누가 이렇게 말을 하고ㆍ그 말을 곧이곧대로 녹음한다든지ㆍ기록한다든지 하고, 또 누가 일어나서 질문하고, 그런 형식을 완전히 초월한 것입니다.
생각한 것도 그대로 설법이요ㆍ무슨 행동한 것도 설법이요ㆍ질문하든 안 하든 그 광경을 쭉~~ 그려 넣은 것도 그대로 설법이고요. 대승경전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생각한 것을 누가 기록했나?’ 이렇게 나오면 아주 곤란한 겁니다. 여기 疑念請이라고 했는데, 청법을 “생각으로” 그렇게 했잖아요. 作是思惟, 이러한 사유를 했다. 생각으로 청했는데, 남의 생각을 어떻게 드러냈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문자로 기록되어 있나?
이것은 화엄경의 그 어떤 근본 취지하고,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너무 아주 형이하학적인 그런 사고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생각을 했든ㆍ누가 말로 했든, 이제 뒤에 보면 광명이 설법을 하고, 광명이 어떻게 설법을 합니까? 그런데 광명이 설법한 게송이 촥~~ 이렇게 나옵니다. 무슨 師子座에서 소리가 나와 가지고, 그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게송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까? 언제 무슨 師子座가 시를 배워서 시를 썼겠습니까? 그런 것 따지면 이 대승 불교가 이해가 안 되고, 그 다음에 화엄경은 더욱 이해가 안 됩니다. 화엄경 같은 것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그런 이치를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서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런 점이지요.
그래서 화엄경은 그 전에 서두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常說遍說(상설변설)입니다. 시간적으로 항상 설하고 있어요ㆍ항상 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도 이 자리에서만 설하는 것이 아니라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과거ㆍ현재ㆍ미래에 항상 설하고 있고, 어디든지, 저 아프리카 오지에서도 지금 설하고 있습니다. 저 북한에서도 설하고 있고ㆍ시베리아 벌판에서도 지금 설하고 있고요. 화엄경의 입장에서 보면 常說遍說입니다. 모든 존재는,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대로ㆍ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대로, 그 모습 그대로가 화엄경이다. 이런 말입니다.
“화엄경이다.” 라고 하는 것을 누가 말해줘야지요.
화엄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이 문자로 된 이 화엄경이, 이것은 정말 방편이지요. 이 방편이, 방편이라는 작은 화엄경이 그러한 진짜 화엄경을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지요. 힌트지요. 일종의 조그마한 힌트에 불과한 그런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화엄경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