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사전/ 원종희
창문을 열어젖히자 맵싸한 겨울바람이 불어닥쳐 방 안에 뜨뜻하게 고여있던 노인의 체취를 서서히 거두어갔다. 미쳐 지키지 못한 임종의 순간을 복기해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이부자리를 개키시고 어머니는 옷장을 열어 옷가지를 개키셨다. 소각할 유품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이다. 꾹 다문 입술에 그려진 미소와 가족들을 등진 채 앉아 책장만 넘기시던 굽은 등. 온화한 얼굴에 바위 같은 침묵을 두르고 같은 집에 살면서도 늘 홀로 지내시던 분. 슬하에 다섯 남매를 두셨지만 어느 자식 어느 손주에게도 살갑지 않은 분이셨다. 아내인 할머니께조차 평생 그러셨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우리 집으로 모셔온 것이 십여 년 전.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그간 할아버지와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었다. 오간 마음이 없으니 떠나신 자리에 남은 슬픔 또한 크지는 않았다.
쓰시던 이부자리 한 채와 생전에 자주 입으시던 옷 몇 벌, 신발 두어 켤레, 늘 차시던 손목시계를 챙겨 산소로 갔다. 다른 친척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할아버지의 산소는 할머니 바로 곁. 새로 떼를 덮어 아직 불그레한 봉분을 둘러싸고 큰절을 올렸다. 이렇게 다시 만날 걸. 어머이 살아 계실 때 어머이한테 좀 다정스레 대해줬으면 을매나 좋아. 이제는 두 내외 뿐이니 오붓하게 잘 지내시겄지. 큰 고모의 한숨 섞인 바람에 작은 고모가 이죽거렸다. 퍽이나 그러시겄수. 두고 온 가시한테 간다고 빨구댕이로 뛰쳐가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지. 모르긴 해두 아부지라면 지금쯤 평양꺼정은 갔을 걸? 인자와서니께 하는 말이지만 어머이가 말은 안 했어두 얼마나 속이 그랬겠수? 혼례도 못 올린 가시한텐 의리를 지키면서 줄줄이 자식 낳고 평생을 같이 산 마누라는 그렇게 박대를 해?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그제야 아버지가 손사레를 치며 나섰다. 야야,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하면 뭐허냐? 이제 다 가슴에 묻구 저승길 잘 떠나시게 빌어야지. 그래야 우리 자손들이 다 복 받고 살지…….
성묘를 마친 후 예약해 둔 유품 소각장에 들러 할아버지의 이부자리와 옷. 시계를 맡기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부모님께서 씻고 쉬시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을 마저 정돈했다. 앉은뱅이 탁자 위에 쌓인 사탕봉지와 낡은 타구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수북한 신문뭉치를 가다듬어 분리수거용 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었다. 신문 틈새에 낡고 두꺼운 책이 한 권 섞여 있었다. 책등에 인쇄된 글씨가 모두 지워지고 두터운 비닐 표지가 블룩 울 정도로 오래된 국어사전이었다. 남은 짐을 분리수거용 바구니와 몇 개의 쓰레기봉투에 넣어 밖에 내놓자 집안에 할아버지의 흔적이라고는 낡은 사전 한 권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전도 쓰레기와 함께 버리려 했지만 워낙 손때 묻은 물건이라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펼쳐보니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책장에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활자체로 새겨진 글자가 빼곡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신문이 오지 않는 날이면 등을 동그랗게 만 채 몇 시간이고 이 책을 들여다보시곤 했다. 이토록 무수한 낱말이 필요할 만큼 말수 많은 분도 아니셨으면서.
… 정말 그랬나?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6. 25전쟁 전에 이북에서 광산업을 하시다가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어떠셨는지는 당신께서 말을 꺼내신 적도 내가 여쭌 적도 없었다. 북한 소식이 있는 날이면 유심히 신문을 읽으신다는 건 알아도 그곳에 ‘두고 온 가시’가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럼 이산가족인가. 혼례도 못 올리셨다고 했으니 그럼 가족은 아닌가? 생각에 잠겨 책장을 훌훌 넘기다가 파란 볼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낱말에 눈길이 닿았다. 사랑.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책장을 들추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몇 군데 더 그런 표시가 있었다. 사모, 사연, 연모, 연정……. 아름답고 쓸쓸한 글자들의 둘레에 거듭, 꾹꾹 눌러 찍은 자취가 가슴에 와 박혔다.
할아버지는 평생토록 곁을 지켜준 식구들에게 왜 그렇게 무심하셨는지. 자처한 고독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글자들에 표식을 남기셨는지. 무거운 침묵 뒤로 무슨 문장들을 만들고 계셨는지. 때늦은 물음들에 답을 줄 사람이 없었다. ‘유전은 격세유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나와 할아버지는 가까운 혈육이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할아버지의 역사를 모른다. 같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물며 이해에 이르러서야.
문득 깨달았다. 서로를 알고 나아가 이해하려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법인데, 사전이야말로 그런 공감대의 본바탕이자 정수가 아닌가.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곁에 두고 닳도록 읽으신 책이 아름다운 소설이나 논리적인 논픽션이 아니라, 표리 없이 명징하게 정의된 세상을,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누는 ‘사전’이었다는 것은 할아버지 나름의 소통에 대한 갈망이었을지도 몰랐다.
요즘 틈나는대로 할아버지의 사전을 펼쳐보곤 한다. 책장을 넘기며 표식이 남은 단어를 찾을 때마다 노트에 옮겨 적고 있다. 할아버지의 자취를 다 모으면 그 말들로 할아버지께, 젊은 날의 슬픔을 평생 곱씹고 사셨을 섬세하고도 무딘 영혼에 제문을 지어드리고 싶어서이다. 그렇게 하면, 평생 당신의 역사를 몰랐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무심한 손주 나름의 사죄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노력 끝에 결국 철책이 거두어지는 날이 오면, 할아버지가 일하셨다는 북녘에 가서 내가 지은 제문과 함께 할아버지의 사전을 태워 돌려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오늘도 기도처럼 할아버지의 사전 한 장을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