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편견
<파리의 여인>(챨리 채플린, 드라마,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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챨리 채플린이 만든 영화 가운데 채플린 자신이 등장하지 않은 영화는 <홍콩에서 온 백작 부인>(1967)과 카메오로 잠깐 등장하지만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던 <파리의 여인>(1923)이다. 물론 리틀 트램프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는 실패하였다. 전자에 출연한 계기로 채플린은 말론 브랜도와 소피아 로렌과 좋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고, <파리의 여인>은 그나마 평단으로부터 호평은 받았다. 미국에서는 내용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몇몇 주에선 상영금지를 당했다. 이미 1910년대부터 희극배우로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키드>(1921)의 흥행으로 감독으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던 채플린에게 <파리의 여인>에 대한 대중의 냉담한 반응과 야유는 충격이었다.
채플린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은 도전적이었다. 당시는 1917년에 개봉된 <재즈싱어>로 시작된 토키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던 때였다. 사람들은 무성영화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영화 이론가 벨라 벨라즈는 무성영화가 인간의 내면을 가시화시키는 일에서 매우 뛰어나고, 그러므로 영화는 무성영화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플린 역시 영화의 글로벌한 감상을 위해 그동안 무성영화를 고집해왔는데, 그는 무성영화도 충분히 인간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벨라 벨라즈의 이론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동일한 맥락에서 채플린은 클로즈업과 표정연기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만든 것이 <파리의 여인>이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다소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였다. 장이 겪는 아버지와 엄마와의 갈등, 마리의 심리적인 갈등과 번민, 마리와 백만장자 애인과의 갈등, 그리고 마지막 마리와 장이 만나는 장면에서 장과 마리의 애인과의 갈등, 장의 시신 앞에서 절규하는 마리의 모습 등에서 잘 드러나 있다. 영화적으로도 충분히 이유가 있는 연출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무성영화로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선 다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대중은 영화의 부도덕성을 이유로 영화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파리의 여인>은 채플린이 자신이 만든 영화중에서 가장 아쉽게 여기는 영화로 꼽힌다.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따라서 부도덕하다는 지적은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실제 이야기를 단지 스크린으로 옮겨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기 꺼리는 대중들의 자기 방어적인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채플린은 프랑스에서 한 뮤지컬 여가수가 부유층 인사와 사귀면서 다섯 번이나 이혼하며 재산을 모은 페기 홉킨스 조이스 이야기를 듣고 이 여성을 모델로 삼아 영화를 만들었다.
<파리의 여인>은 두 남녀의 사랑이 부모에 의해 방해받아 결국 서로 다른 운명을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 등장하는 마리는 계부의 반대로 장과 파리로 떠나려고 계획했지만, 장의 아버지가 쓰러지는 바람에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파리로 떠나게 된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마리는 부자가 되었는데,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은 없지만, 부자들과의 사교를 통해 얻은 재산으로 추정된다. 장 역시 후에는 화가가 되어 파리로 와서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마리와 장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마리는 장과의 옛 추억을 되새기며 사랑을 회복하고 마침내 장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그동안 정부로서 사귀고 있던 남자와도 이별을 고했지만, 마리는 장의 엄마가 결혼을 반대하고, 또한 장 역시 마음이 혼동되고 또한 심약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청혼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리는 장을 떠나 다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장은 마지막으로 마리를 본 후에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장이 죽은 후 마리는 장의 모친과 함께 고아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두 남녀의 사랑을 비극으로 몰고 간 원인은 편견이다. 처음에 장의 아버지가 마리를 거절한 이유는 그녀가 재혼한 여자의 딸이었다는 것이고, 장의 엄마가 마리와의 결혼을 만류한 이유는 그녀가 파리에서 도덕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마리는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장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회복하고 보통 사람의 가정을 꾸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사랑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오만과 편견’을 꼽았다. 오만은 높은 자존심을 바탕으로 자신을 실제 이상으로 높이 평가하는 태도를 말하고, 편견은 나의 믿음과 가치관에 따라 상대를 자기 방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부정적인 생각을 일컫는다. 오스틴은 소설을 통해 남자의 오만과 여성의 편견이 깨질 때, 진정한 사랑으로 결실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파리의 여인>에서 장의 부모가 비록 오만함을 나타내 보이진 않았다 해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는 인간의 편견이 어떤 비극적인 이야기로 끝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만은 교육과 학식과 자라난 배경에 대한 자존감에서 비롯하지만, 편견은 믿음 체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편견은 특히 기독교가 다른 종교 혹은 비기독교인과의 관계에서 경계해야 할 태도다. 심지어 믿음의 배경이 다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편견은 나타난다. 대표적인 경우가 개신교인들이 갖고 있는 가톨릭에 대한 편견이다. 종교 혹은 교리가 아닌 생활적인 면에서 나타나는 편견은 훨씬 많다. 편견은 사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나타난다. 교리나 도덕적인 면에 제한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서 처음부터 호감이 가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서 편견이 작용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간은 그만큼 편견에 쉽게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희극 배우로 또 희극 전문 감독으로 알려진 채플린이 자신의 전문 영역과 전혀 다른 비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것부터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 느낀 것이지만, 채플린이 <파리의 여인>을 만들게 된 배경은 토키 영화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니라 무성영화에 대한 신념이었다. 게다가 무성영화로도 인간의 내면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야심으로 가득했다. 이런 야심 때문에 영화 제작은 처음부터 다소 부담이 되는 것이었으리라고 추측한다. 비록 대중적인 흥행은 하지 못했어도, 평소의 제작시기와 비교해볼 때, 13개월이라는 다소 짧은 제작시기를 거쳐 완성된 영화임을 생각해본다면,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확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채플린은 무성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었고 흥행을 하였다. 물론 <위대한 독재자>, <살인광 시대>, <라임라이트>,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등의 유성 영화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