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산동면(山東面)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동쪽은 운봉읍과 장수군, 서쪽은 보절면, 남쪽은 이백면, 북쪽은 장수군과 접해 있다. 면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흐르는 요천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천황산, 연화산, 낙산의 연맥이 뻗어 있고, 남서쪽으로도 시루봉, 말봉, 매봉의 연맥이 뻗어내려 그 사이의 요천 유역에 위치하였다.
천황산[山] 동쪽[東]에 위치한 데서 산동면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일대는 수려한 계간이 많아 선비들의 은거처로 많이 찾는 지역이었다.
산동면 목동리 나뭇골 북쪽에 있는 재간당(在澗堂)도 그중에 한 곳이다.
부안인(扶安人) 진사 김화(金澕 1571 선조 4~1645 인조 23)가 두류산 서쪽 기슭에 있어, 서너 겹으로 둘러쳐진 구름 낀 봉우리를 누대 난간에서 마주 바라볼 수 있어 재간당(在澗堂)을 지어 유유적 삶을 누렸다고 적고있어 관련정보와 일치하고 있다.
특히 조선 시대 학자이자 문인으로 외교관으로도 이름을 떨친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 명종 14 ~1623 인조 1)이 1611년(광해군3) 용성(龍城), 남원부사로 부임해 지내며 두류산 일대를 유람하기 위해 오르며 이곳에 들려 재간당기(在澗堂記)를 남겼다.
기에서 "堂在頭流山西麓 進士金澕居之 處士人也 昇平使君柳公詢之 處士外黨也 有先墓在其麓。省掃 已邀余于在澗堂以饗之 余初到龍城....."라고 적고 시로 그 감회를 흘리고 있다.
문서더미 빠져나와 마음껏 승경 찾으니 / 朱墨抽身恣討幽
한가을 맞이하여 나그네 마음 싸늘하구나 / 客懷憀慄當三秋
《황정경》 잘못 읽은 일 후회할 것 없으니 / 黃庭誤讀不須悔
하계로 귀양 와서도 방장산을 유람하네 / 謫下猶來方丈遊
물가에 핀 시골 매화 미친 듯이 꺾었으니 / 狂折村梅傍水開
나막신으로 푸른 이끼 짓밟는다 꾸짖지 말게 / 莫嗔雙屐破靑苔
훗날 여윈 말 타고 오면 놀라 넘어지리니 / 他日羸驂驚欲倒
거울 같은 물결에 복숭아꽃 흘러오리라 / 桃花流水鏡中來
次在澗堂韻 / 頭流錄
이때 쓴 유두류산록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2월 초에 임지로 부임했는데 용성은 큰 고을이라 공문을 처리하는 데 정신없이 바빴다. 게으르고 느긋한 나로서는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식(寒食)이 가까울 무렵, 승주(昇州) 수령 순지(詢之) 유영순(柳永詢) 이 용성의 목동(木洞) 선영에 성묘하러 왔는데, 나는 불초한 내가 이 고을의 수령으로 있으니 나보다 선배인 순지에게 예모를 갖추어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목동 수용암(水?巖) 근처 수석의 빼어난 경관에 꽤나 마음을 기울였다. 진사 김화(金澕)가 그곳에 살고 있는데, 집의 이름을 재간당(在澗堂)이라 하였다. 재간당은 두류산 서쪽 기슭에 있어, 서너 겹으로 둘러쳐진 구름 낀 봉우리를 누대 난간에서 마주 바라볼 수 있었다.
........순지가 말하기를
,“내가 영남 지방의 감사로 나왔을 적에 이 산을 대략 유람했지만 종자들이 너무 많아서 한 방면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다가 내가 승주로 부임해오게 되어 우연히 이 산과 이웃하게 되었소.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어찌 혼자 쓸쓸히 유람을 할 수 있겠소? 그대와 유람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소.”라고 하였다. 드디어 굳게 약속하고 술자리를 파하였다. 그 뒤에 여러 번 서신을 교환하며 재간당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였다.
3월 27일 정묘일. 순지가 약속한 날에 도착하였다.
28일 무진일. 처음 약속했던 장소에서 다시 모여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기생들이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여 모두들 실컷 취하고 한밤중이 되도록 술자리가 이어져 그대로 시냇가 재간당에서 잤다.
정자주인 김화의 자는 도원(道源) 문정공 김구(金坵)의 후손이고, 충경공 김익복(金益福)의 아들이다. 선조 36년(1603) 식년시에 생원과 진사를 동시에 합격해 참봉제수받았으나 취임하지 않고 심산유곡 같은 이곳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은둔처로 삼았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도촌공(陶村公) 연(沇)과 함께 창의한 의병을 이끌고 여산까지 올라갔으나,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돌아왔다.창의한 공을 인정 1795년(정조 22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증직(贈職)되었고 남원 요계사(蓼溪祠)에 제향되었다.
일대는 연화산의 풍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 물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바위에 부딪히며 갈라져 내리는 물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청량한 소리를 낸다.
어우몽이 이를 놓치지 않고 그다운 운치를 이렇게 흘리고 있다.
거울 같은 물결에 복숭아꽃 흘러오는데 / 桃花流水鏡中來
봄비가 부슬부슬 내려 푸른 이끼 적시네 / 春雨濛濛潤碧苔
산과 바위 가를 듯한 높은 노래 있으니 / 別有高歌山石裂
등불 켜고 섬돌에 핀 꽃을 마주하네 / 燭花須對磵花開
三疊體倒前韻 / 頭流錄
정자에 앉고 보면 소나무 그늘을 머금고 떨어지는 폭포 소리에 선경의 분위기가 그윽하다. 그러한 분위기를 그의 시에도 읽어 낼 수가 있다.
시상의 맑기가 얼음과 같으니/맑은 노래도 웃음 속에 엄정하다.
가을 바람에 오늘 저녁도 취하니/산 위의 달은 층층으로 밝구나.
기암절벽의 천년 이끼와 은은한 맑은 물소리가 은둔자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온몸에 한기를 느낄 정도의 서늘한 물소리에 속세를 잊는 무아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 바위벽에 '귀를 싯는다'는 세이암(洗耳岩) 이라고 각인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그의 그윽한 풍류적 삶을 다음시에 나타내고 있다.
한가로운 숲속 생활 어느덧 늘그막이니 /고작 백년 인생인데 가난타고 우울하리오.
깊은 뿌리 키 큰 대나무 심고 열심히 가꾸며/시냇물을 연못에 끌어 여울을 이루었네
林下捿遲鬢已殘 百年誰復厭貧寒 移根長筍成脩竹 引澗通池作激湍
시골 늙은이 술자리는 물고기 반찬이요/두메 아이 손님 대접은 고사리 나물 소찬이네
애오라지 한 골에 묻혀 오두막집에 은거하니/호화로운 행장 무엇하리 천만금이 소용 없구나
野老開筵魚入餐 山童餉客蕨登盤 聊專一壑安蝸室 不用千金買馬鞍
조선(朝鮮)의 역사상 8명의 문장가(文章家)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 1533 중종 28 ∼1592 선조 25) 이 어느날 정읍 내장산(內莊山)에 서 구례 연곡사(燕谷寺)에 가는 길에 들려 세이암에서 마을을 씻으며 시를 읊었다. 대가 가을이었다.
지는 해는 길을 비추고/차가운 샘물소리 나뭇잎 사이로 들려오네
가을산은 온통 같은 색인데/어느 곳에서 외로운 구름을 찾을까.
落日照行逕 寒泉隔葉聞 秋山共一色 何處覓孤雲/孤潭逸稿卷之一
일생동안 고절을 지키며 후생들을 가르친 학자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 1884 고종21~ 1954)이 지리산 주변을 유람하고 두류산유록을 남겼다. 1904년 4월 3 일에 이곳 세이암(洗耳巖)에 이르렀다. 고운(孤雲)이 놀던 곳으로 수석(水石)이 매우 기이하며 이름을 써놓은 것이 많았다고 하며 그 감회를 읊었다.
고인은 귀를 씻었는데/세속 사람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 씻어도 없어지지 않네.
고운이 노닐던 곳이라 하는 곳,/ 돌에 새긴 이름들 어지럽기만 하구나.
高人洗得耳根餘 俗子名心洗未除 云是孤雲遊賞地 刻題石面紛紛如
누구인들 내 가난을 바꾸겠는가? 번잡하게 사는 부자보다 생복한 간한 삶을 택했던 우리네 은거처사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서예가였던 전남 구례 출신인 고당(顧堂) 김규태(金奎泰 1902 ~ 1966)도 세이(洗耳)하고 싶어 이곳에 들리고는 '산에 들어간 긴 속세인연 끊자는 일/귀를 씻음도 부질없는 일이었네.入山便絶塵 洗耳徒勞耳'라고 읊었다. 이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귀를 씻을 필요가 없을 만큼 온통 초자연적이라는 의미다.
대나무 죽순은 자라면 저절로 대숲을 이루고, 물을 모아 이룬 연못물은 바람이 불면 자연 물결을 만드는 곳, 자연을 얻는 부자는 행복하기만 했을 것이다.
처사들의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던 이백(李白) 시에서 그들의 사상을 견주어 볼 수 있다. 그대와 더불어(友人會宿), 대 작(山中與幽人對酌)이라는 제목의 2수를 감상해 본다.
천고에 쌓인 한을 풀어 /한없이 마시는 술에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 밤은 깊어 /밝은 달에 잠도 멀리 가는데
취한채 빈산에 쓰러지니 /천지는 하냥 이부자린듯하구나.
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良宵宣且談 皓月未能寢 醉來臥空山 天地郞衾枕
둘이서 잔 드는 사이 소리 없이 산꽃이 피어 /한잔 한잔 들자거니 다시 한잔 먹자거니
난 위한채 자고파 그댄 돌아가도 좋으리 /낼아침 오고프면 부디 거문고 안고 오시라.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