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는 잘못없다' 제목에 대한 호기심에 평소 보고 싶었던 연극인데요. 마침 문화예술창고 '마주'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진문화공감터로 향했습니다.
'의자는 잘못 없다'는 선욱현 각본의 창작극으로 2002년 초연되었는데요. 문화예술창고 '마주' 김미라씨가 연출해 당진의 관객들에게 선보였다고 합니다.
'의자는 잘못없다'는 소유욕과 무소유에 대한 관념들과 예술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연극인데요. 간단하게 스토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의자는 잘못없다'는 불황속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중년의 남자와 실연의 아픔을 지닌 문제의 의자를 만든 가구점 주인 딸, 특별한 것 없는 의자에 반해 터무니없는 가격 30만원에 의자를 사려는 남자,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임신 중에도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으며 컵라면을 먹어야 했던 유산을 경험한 그의 아내, 4명의 인물들이 한 의자를 둘러싸고 벌이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명예퇴직 당한 후 시험 준비를 하고 있던 남자 강명규는 우연히 한 가구점 앞을 지나다가 본 의자를 소유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가구점 주인인 문덕수는 미대지망생인 딸 문선미가 만든 작품이라 팔 수 없다고 합니다. 쉽게 포기 할 수 없었던 강명규는 문선미가 없는 틈을 타 경기 불황으로 힘들어하던 문덕수를 설득하고, 30만 원으로 구매하는 조건에 3만 원의 계약금으로 계약합니다.
이를 알게 된 강명규의 아내는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라 안 된다며 반대합니다. 문선미는 차라리 그냥 돈을 내지 말고 의자를 가져가라고 이야기합니다. 문덕수는 본인에게도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합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는 점점 험상 궂어집니다. 결국 끝이 나지 않는 실랑이를 벌이며 네 사람 모두 본인 입장만을 강요합니다. 결국 문덕수가 강명규의 집에 쳐들어오고 이후, 마술 같은 일들이 펼쳐집니다.
'의자는 잘못없다'를 관람하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갔는데요.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 그리고 예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감식안의 의미와 예술품에 대한 가치와 자본으로 환원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의자를 바라보는 네 사람의 시선은 그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았는데요. 연극에서 발생하는 희비극적인 상황들은 인간내면의 문제의식을 유쾌하게 비틀며 관객들에게 또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의 배경은 일상적 묘사들로 채워지다가 갑자기 가상의 세계로 전환되기도 하는데요. 갈등의 절정에서 이들이 무협지 속 한 대목처럼 머리와 치마를 휘날리며 서로 싸우는 장면은 희극적이면서도 인간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이 전해집니다.
연극의 대사말 '나는 이 의자가 갖고싶다!', '당신! 우리집 통장잔고가 얼마인지 알아?', '자존심? 그런거 없어요...', '당신이 내딸 작품을 그렇게 좋아한다니까 내가 이돈 받는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주는 거라면 그건 저도 싫어요.', '이 의자는 아직 가격표를 달지 않았습니다. 즉, 살 수 없는 물건이란 말입니다.'라는 그의 대사는 이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의자를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과 이해관계를 통해, '소유란 뭘까?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뭘까? 우린 정말로 그것을 가진 것일까?'란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문화예술창고 마주(대표: 강주경)는 당진으로 이주하며 연극무대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우들이 무대에 서고자 하는 열정으로 만든 전문연극단체라고 하는데요. 연극을 보는 내내 연기자들과 기획자의 모습에서 풋풋함과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한편 문화예술창고 마주는 '그녀들만이 아는 공소시효', '논두렁연가', '이색이가', '그 여자들 다시 통닭을 먹다' 등을 공연했으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3년째 운영 중이고, 가족소통프로그램, 주부힐링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데요.
특히 꿈다락으로 진행한 '초록수호대, 연극으로 만나는 Eco-Art'는 문화예술을 통해 만나는 환경프로그램으로 지구를 사랑하는 당진시의 초등학생들과 '초록수호대'를 결성해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는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보고 그 내용을 예술적 활동으로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문화예술창고 마주는 꾸준한 예술활동 뿐 아니라 당진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얼마전에 연극으로 만나는 주부힐링프로그램 '그녀는 예뻤다'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에 지쳐 있던 주부들은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미래의 내를 기대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하는데요.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부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았다고 합니다.
'의자는 잘못 없다'를 연출한 김미라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이번에 공연한 '의자는 잘못없다'는 의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남자의 소유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연출을 하며 문득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연극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18살에 처음 극장에 가서 "등신과 머저리"라는 작품을 보고 연극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강명규가 의자를 갖고 싶어 했던 것처럼 저도 꼭 연극이 하고 싶었습니다. 의자를 바라보는 강명규의 모습과 내가 다를 바 없었던 거지요. 그렇게 18살에 처음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올해가 연극을 만난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쭉 배우로 활동했고, 올해는 실종아동예방교육연극 '좋아요 꾹 당진이'를 시작으로 두 번째 연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전 아무래도 배우로 활동 할 때가 더 행복한 것 같아요. ㅎㅎ 앞으로 당진에 좋은 연출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저도 계속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을테니까요. '의자는 잘못없다'는 올해 개관한 문화공감터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연극입니다. 옛당진시네마를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공감터의 공연장은 대학로 소극장처럼 아늑한 맛이 있어 좋았습니다. 이 연극을 보신 분들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보던 그때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앞으로 문화공감터에서 다양한 연극이 많이 공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진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커피숍에 가는 것처럼 문화공감터를 통해 문화가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