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고 나니 내 앞에 원초적인 그의 모습이 나타난 느낌이다. 갖은 언어로 신화화된 외피를 벗은 한 인간으로서의 붓다를 보는 것 같다. 2천5백 년의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붓다를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니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연말연시에 학과의 학생들과 내 생애 처음으로 인도 불적지 성지순례를 했다. 믿음 가득한 수많은 사람들이 붓다가야를 비롯한 성지를 채우고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비로소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강성용 지음)을 통해 생생한 그의 육성을 대하게 되었다.
수백 수천 권에 달하는 붓다에 대한 전기나 초기불교의 이야기는 대개 그가 어떻게 출가하여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고, 어떤 법문을 하며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것은 물론 우리가 알고자 하는 붓다에 대한 모든 것이다. 그런데 오랜 기간 이러한 기술(記述)들을 접하다보면 과연 있는 그대로의 붓다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복원된 그 옛날의 붓다를 만나게 되었다. 저자 또한 독자들에게 ‘최초기의 불교’라는 말로 그 원형 복원을 제시하고 있다. 흡사 신학에서 복음서를 분석, 예수의 말씀인 Q자료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고전인도학의 전문가로 인도철학에 정통하기 때문에 인간 붓다를 조명해 내는 데에는 적임자다. 저술 곳곳에 드러나는 산스크리트, 빠알리 등 고전 인도어에 정통한 모습은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붓다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육성이 기록된 언어와 당시 삶의 현장에 관한 고고학적 유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언어야말로 고고학적으로 축적된 역사와 문화의 보고다. 붓다가 사용한 언어가 유사-마가디라고 하는 것과 어머니 마야부인에 대한 명쾌한 해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빠알리나 베다문학에 대한 이해는 붓다의 원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저술 전체가 흡사 당시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조망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저자가 1장에서 제시하는 붓다가 되기 이전의 이야기들, 자이나 전통에서 쉬라마나 이해하기, 다르마와 까르마, 이원론과 해탈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붓다의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파악하게 한다. 그 가운데 불교와 같은 시대에 나온 자이나교의 지바(jīva, 생명)나 까르마(karma, 業)에 대한 이해를 통해 불교 교의의 기반이 확연히 드러난다. 다르마(dharma)가 “베다 시기의 아리안들이 아리안 사회 안에서 지켜야 하는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규범체계”라는 언급 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했던 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비로소 그 의미의 모호함이 해결된다.
2장에서는 베다와 붓다의 사상에 대한 연속과 불연속을 파악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가 인도의 토양 속에서 어떻게 발아되었는지 그 배후인 비옥한 환경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사제집단이 거쳐야할 이상적인 인생의 네 단계를 말하는 아쉬라마(āśrama)의 전통적 배경과 붓다의 출가, 베다의 언어학적 학문체계와 불교의 구전 전승이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의 법륜이 바로 아리안의 오랜 무사적 전통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인도의 상징물로도 쓰이는 짜끄라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가 “붓다가 해탈을 얻은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가르침의 짜끄라’를 돌린 사건”이라고 하는 이 전승은 정치와 종교의 깊은 관계도 보여준다. 전륜성왕은 이상적인 양자 관계의 최고조에 달한다. 이처럼 저자는 붓다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치며 생생하게 우리를 그 시대로 빠져들게 한다.
이러한 전(前) 이해가 끝나면 붓다의 모습이 드러난다. 3장에서 시작되는 물음이 그것이다. 붓다의 윤회와 까르마에 대한 고민, 고생(duḥkha, 苦)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일상과도 같은 것이지만 인도의 전통 속에서 숙성된 고민이라는 점에서 더욱 생생하다. 그런데 붓다의 초선 경험이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나간 들판의 잠부나무 그들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것이 붓다가 언급한 중도의 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오늘날 교학으로 접하는 논리화된 니르바나(Nirvāņa, 열반)는 역사 속에서 너무 화석화된 이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저자는 “붓다가 가르친 해탈에 이르는 길에서는 바로 윤회의 원인인 갈구를 제거하면 윤회를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까르마가 누적되어 있는지는 부차적인 질문이 되고 만다”는 언급은 기존의 불교적 전승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설명을 은행잔고와의 대비를 통해 설명하는 점은 참으로 기발하다.
이제 붓다의 핵심 가르침인 4제8정도가 4장에서 제시된다. 저자는 이 교의가 한 번에 깨달은 것으로 보는 몰역사성을 경계한다. 오늘날 컨텍스트 중심의 사유가 경전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점과 일치한다. 이들 교의가 “붓다가 긴 시간에 걸쳐 제자들을 지도하고 신자들을 가르치면서 정형화되고 정리한 결과”라고 한다. 참으로 탁월한 견해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근대 한국의 신종교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8정도가 일반 신자들을 향한 것이 아닌 점, 그리고 이후 불교의 발전 과정에서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현상 등은 적절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 카스트 제도의 현실과 붓다가 취했던 입장을 붓다의 가르침에 입각해 보여준다. 교단을 운영하기 위한 현실주의적인 붓다의 판단과 선택은 본 저술이 보여주고자 하는 붓다의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다. 12연기의 처음 ‘본디 모름(무명)’이 해석을 통한 추가된 항목이라는 점과 12연기 자체가 후대의 전승에서 정리된 것이라는 점은 명쾌하게 이해된다.
저자는 이제 5장을 통해 불교라는 종교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깨달음의 사건이 일어난 후, 제자와 교단의 형성 과정을 추적한다. 제자의 습득 과정에서는 붓다가 스스로의 깨달음을 확신하는 흥미진진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죽음의 극복과 초월성과의 관계가 불교철학사 전개의 핵이 됨을 보여준다. 제6장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붓다와 최초의 붓다 사이에 놓인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 것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언어의 다양한 층을 발굴하면서 어디까지 그 원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결국 오늘날 전승된 교의와 붓다의 생각과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된다. 그리고 붓다 당시 인도의 정신세계의 한계 내에서 붓다의 깨달음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로써 붓다는 우리 옆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붓다라는 인물은 어쩌면 지금의 시공간 속에서 인간적 한계 상황에 놓인 우리가 고민하고 사유하는 그것과도 같은 맥락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독자들도 붓다를 만나러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갈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