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동안 내 주변의 지인이나 '패션사업'을 하는 사장님들이 한두 박스씩, 때로는 서너 박스씩 보내주셨던 의류들이 있었다.
사무실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었는데 주말에 그 의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예정이었다.
내 작은 승용차에 꽉꽉 채워 서너차례 집으로 날랐다.
토요일 오후 내내 그 일을 했다.
금세 저녁이 되었다.
일요일 오전엔 양천구 목동에 조문을 다녀왔고 오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의류정리'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 네 식구가 달라붙어서 힘을 보탰다.
고마웠다.
차례대로 박스를 열고 의류들을 쏟아냈다.
온 집안에 먼지가 풀풀풀 날렸다.
계속 기침이 나왔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들을 활짝 열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틀었다.
귀에 익은 노래들이 흘렀다.
그 노랫가락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박스를 개봉하면 어느 박스엔 남방만 들어 있었다.
어느 박스엔 면바지만, 또 다른 박스엔 스웨터, 맨투맨, 청바지 등 같은 종류의 의류들만 담겨 있었기에 그 상태 그대로 공동체에 전달할 수는 없었다.
그리 성의 없이 전달하면 차라리 안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장애우 형제자매들은 본디 예민할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더 쉽게 상처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
120%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마음의 선물인지, 마지 못해 재고정리 차원에서 배달된 형식적인 물품인지 그들이 더 잘 알았다.
어눌한 것 같아도 눈치는 백단이었다.
그래서 더 신경 써야했고 마음을 담아야 했다.
그랬다.
모든 박스를 열어 아이템을 확인했고, 칼라와 사이즈까지 체크했다.
그런 다음 하나 하나 재분류하고 구색을 맞춰야 했다.
한 박스 안에 남방도 몇 장, 면바지도 몇 장, 청바지도 몇 장, 스웨터도 몇 장, 가디건도 몇 장 이런 식으로 색상과 사이즈까지
고려하여 재포장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주고도 욕 먹는다.
욕 먹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를 갖고 있어도 멋과 미에 관심이 많을 때인데, 그런 형제자매들의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나의 부주의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선물도 함부로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더 컸고 차라리 안 하니만 못했다.
아무튼 거실과 이 방, 저 방이 온통 흩어진 의류들과 박스, 테이프, 떨어진 택, 벗져진 비닐 포장지, 먼지 등으로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네 식구가 합심하여 차근차근 분류하고 정리하여 재 포장했다.
한두 번 해 본 일이 아니었기에 일이 손에 익은 상태였다.
각종 의류들을 기쁜 마음으로 입게 될 장애우들과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일했다.
또한 비록 재고상품이긴 했지만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의류들이었고, 그런 귀한 제품들을 기증해 준 고마운 분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
아내와 아이들이 힘을 보태준 덕분에 3시간 만에 모두 끝낼 수 있었다.
모든 문을 개방해 둔 채로 작업을 하느라 추웠을 텐데도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임해준 가족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분류와 재포장을 끝냈으니 금주부터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각 공동체에 3-4박스씩 전달해 드릴 예정이다.
작은 정성들이 모아져 어렵고 힘겨운 형제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늘 분주한 일상이지만 짬을 내서 의류도 전달해 드리고 각 공동체의 형편도 두루두루 살펴보려 한다.
'사랑발전소'를 위해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시는 가슴 따뜻한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사의를 전하고 싶다.
활기찬 월요일 아침이다.
여전히 날씨는 춥지만 이번 한 주도 내내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소망해 본다.
이한치한이다.
파이팅.
2011년 2월 21일.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