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한 말과 흘러간 시간 ― 윤석중의 「넉 점 반」 다시 읽기
― 윤동재
넉 점 반
― 윤석중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 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 점 반
넉 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니나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 점 반이래.”
윤석중의 「넉 점 반」은 엄마의 심부름으로 시각을 알아 오던 아기가 이것저것 구경하고 노느라 해가 진 뒤에야 돌아와, 이미 지나간 시각을 알려 주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흐름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아기가 되풀이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사이에 흘러가는 시간이다. 말은 처음 그대로 남지만 시간은 달라지고, 그 결과 아기는 들은 말을 끝까지 기억하고도 심부름에는 실패한다. 작품의 의미는 이 어긋남에서 나온다.
먼저 주인공이 ‘아이’나 ‘어린이’가 아니라 ‘아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시간의 흐름과 심부름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할 나이의 인물이라면 같은 행동이 부주의나 책임의 문제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아주 어린 존재라는 인상을 주는 ‘아기’는 그 행동을 불성실이 아니라 감각적 몰입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명칭이 독자가 판단할 때,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그 실패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아기가 되풀이하는 말은 ‘넉 점 반’이다. 이 말은 첫 연에서 영감님의 대답으로 한 번, 가운데 네 연에서 두 번씩, 마지막 연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난다. 1―2―2―2―2―1의 대칭이다. 첫 연의 한 번은 기억해야 할 말의 각인이고, 가운데 여덟 번은 그 말을 잊지 않으려는 되풀이이며, 마지막 한 번은 기억한 말을 엄마에게 건네는 회수이다. 따라서 가운데 연들의 되풀이는 리듬을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고, 아기가 심부름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분꽃을 물고 흥얼거리는 연에서도 이 말은 놀이의 소리로 대체되지 않고 그 앞에 그대로 놓인다. 아기는 끝까지 심부름의 말을 붙들고 있다.
그러나 되풀이와 되풀이 사이에서 시간은 흘러간다. 이를 드러내는 시어가 ‘한참’이다. ‘넉 점 반’이 한 지점을 가리키는 시각이라면, ‘한참’은 길이를 잴 수 없는 지속이다. 아기는 닭 앞에서는 서서, 개미 앞에서는 앉아서 구경하고, 잠자리는 따라다니며, 분꽃은 따서 입에 문다. 바라보기에서 따라가기로, 다시 직접 놀기로 나아가는 이 변화는 아기가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눈앞의 대상에 따라 몸을 바꾸며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되풀이되는 말은 매번 같지만 그 사이에 놓인 행동은 매번 다르다. ‘한참’은 아기에게는 몰입의 깊이이고, 독자에게는 처음의 시각이 지나간 시각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알리는 단서이다. 해가 졌다는 진술은 이 경과를 확정한다.
두 흐름은 마지막 연에서 만난다. 아기는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한다. 첫 연에서 영감님에게 물을 때와 마지막 연에서 엄마에게 말할 때 모두 ‘시방’이 쓰이지만, 두 ‘시방’이 가리키는 때는 서로 다르다. 아기는 말을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말이 제때 전달되어야 현재 시각으로서 효력을 가진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횟수로는 대칭을 이루는 처음과 끝의 ‘넉 점 반’이 의미로는 비대칭이 된다. 같은 말이 처음에는 정확한 정보였고 끝에서는 어긋난 정보이다. 마지막 한 번의 회수는 기억의 성공과 심부름의 실패를 동시에 드러내며, 앞의 모든 되풀이를 다시 읽게 만든다. 작품의 웃음도 여기에서 나온다.
이 어긋남을 알아차리는 것은 아기가 아니라 독자이다. 작품에는 두 종류의 발견이 있다. 아기는 닭과 개미, 잠자리와 분꽃을 통해 세계를 감각적으로 발견하고, 독자는 그 행동들을 시간의 흐름과 이어 말과 현실의 어긋남을 발견한다. 둘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아기가 몰입했기 때문에 시간이 흘렀고,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독자의 발견이 가능해진다. 시인은 아기를 꾸짖지도, 깨닫게 하지도, 엄마의 반응을 보여 주지도 않는다. 설명을 비워 둠으로써 발견을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넉 점 반」의 성취는 천진함의 묘사나 실패가 주는 웃음에 있지 않다. 되풀이한 말과 흘러간 시간을 ‘각인―되풀이―회수’의 형식 안에 겹쳐 놓아, 아기가 깨닫지 못한 것을 독자가 스스로 발견하게 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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