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 이임순
글 모집하는 광고를 보니 그녀가 생각난다. 여고 1년 선배인 그는 글을 쓰는 수필가로 활동하면서 식당도 운영했다. 그의 밥집에는 계절 따라 감칠맛 나는 채소가 쌈으로 상에 올랐다. 글에도 갓 잡아 올린 생선이 파닥거리듯 신선함이 있어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소곤거리는 한듯 음성은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어 그녀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뜨개질을 잘하는 그녀는 모자를 뜨기 시작하면 마무리를 해야 손에서 바늘을 놓았다. 틈틈이 글을 쓰면서 문학의 밭도 부지런히 가꾸었다. 지면에 발표되는 작품에는 그녀의 생활이 오롯이 담겼다. 때로는 여린 것 같으면서도 강인한 정신력을 느낄 수 있는 글에서 그이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녀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우리는 글로 소통하고 주변에서 전해주는 소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알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신 있게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글을 썼다. 그녀가 나를 잘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물론 글을 통해서다.
그녀가 사는 지역에서 글을 모집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라 전달 매체가 흔하지 않았다. 오로지 지면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문을 구독했고, 일을 보러 읍내에 나가면 길거리에 있는 정보지를 가져와 샅샅이 살폈다. 오로지 글을 쓰려는 방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바쁜 일상에 묻혀 글을 쓴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밤 수확이 한창이던 때였다. 환경 생활 수기를 써서 우편함에 넣었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데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홀가분하지 않았다.글을 또 썼다. 삼일간 눈을 붙이지 않고 밤수확 하는 간간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내 앞으로 이미 보냈기에 인근에 사는 여동생 이름으로 직접 방문하여 접수했다. 그리고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보살폈다.
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당선 소감하고 사진을 달라고 한다면서 주최측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욕심이 생겼다. 당선패를 내 이름으로 받고 싶었다. 동생은 문학을 하지 않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교수께 전화하여 사정을 이야기했다. 당시는 컴퓨터가 없던 때라 손으로 써서 응모했기에 내 말에 공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나는 곤색 볼펜을 즐겨 썼다. 동생 이름으로 보낼 때는 검정색을 사용했다. 내 이름으로 이미 응모해서 동생 이름으로 낼 수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면서 필체를 대조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흔쾌하게 공감해 주었다. 동생은 대상에 나는 최우수상에 뽑혔다. 심사위원들도 당선작을 고르는데 의견일치가 되었다며 글의 흐름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선배는 자신만만하게 당선 소식을 기다렸다고 한다. 시상 날짜가 지나도 소식이 없어 알아봤더니 광양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그날부터 이를 앙다물었다.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후배인 나보다 좋은 작품을 써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날마다 칼을 가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훗날 선배와 내가 주측이 되어 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을 모시고 순천수필이란 문학 단체를 만들었다. 선생님과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배가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내게 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 내용이 선배의 수필집『도 닦는 여자』에 실린 글에 오롯이 담겨있다.
내가 선배보다 글을 잘 써서 대상, 최우수상에 뽑힌 것이 아닐 것이다. 감성만으로 쓴 그녀보다 직접 체험한 것을 썼으니 나무의 움직임이 춤을 추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방적인 경쟁 상대가 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선배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내 마음도 뿌듯하다.
풍문에 김치공장을 한다는데 어디에서 사는지 궁금하다. 그때처럼 도를 닦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