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을 아버님 어머님 사업관계로 서대문에서 대방동으로 등교를 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교통수단은 주로 시내버스와 전차(지금의 전철이 아님)
였는데 나는 주로 전차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서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와서 다시 갈아타고 서울역에서 대방동까지 전차를 이용했는데 그때의 전차는 속도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시속 7킬로라고 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의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슬로우 였는지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시절을 이야기하면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우선 오늘은 땅콩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굣길! 가끔은 대방동에서 전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하차 후 갈아타지를 않고 그냥 걸어서 서대문 집까지 걸어갈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 서울역에서 염천교까지 가는 길에 허접한 손수레 잡상인들이 엄청 많았다. 그중에 손수레에 볶은 땅콩을 파는 아저씨들이 늘 있었는데 지나다니며 언제나 먹고 싶었던 그 땅콩이었다. 그분들의 장사가 잘되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지금 기억으로 소주잔인 듯 한 컵에 5환인가? 했던 기억이다.
지금은 5환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때 그러니까 60년대 70년대 오환은 참으로 귀한 오환이었다.
서울역을 그렇게 왕래하면서 언제나 먹고 싶었던 땅콩이었지만 나 역시
주머니에는 언제나 교통비뿐이니 손수레 아저씨의 땅콩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미지 인터넷에서 퍼옴)
그런 귀한 땅콩을 내가 주말농장을 하면서 심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심고 있는데 언젠가부터 땅콩이 생산되기는 해도 우리 가족들이 선호하지를 않아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항상 여기 뒹굴 저기 뒹굴 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절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모두가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는 세대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그냥 구색 갖추기로 재미로 조금씩 심어 맛보기 정도로 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면 "라테"라고 이야기하며 비아냥대기 일쑤다
그러나 "라테" 있어 오늘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