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의 유래를 알아보자 '삼천포는 경상남도 진주 밑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인데 이 도시 이름이 우리말 속담에 등장하게 된 유래가 재미있다.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장사를 망쳤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가 계양역에서 진주행과 삼천포행으로 갈라지는데 이때 객차를 잘못 갈아타서 진주로 갈 사람이 삼천포로 가는 기차를 타는 수가 종종 있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원래 하려든 일을 벗어나 엉뚱한 길로 빠질 때, 삼천포로 빠졌다고들 한다. 지금은 삼천포와 사천이 합쳐져 사천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지만, 삼천포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삼천포는 지나치기만 한곳이다. 하룻저녁 머물며 삼천포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다. 특히 시조시인 박재삼을 낳은 그의 문학적 삶도 더듬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니까.
삼천포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는 일이 먼저였다. 하루저녁 머물 장소는 깔끔하고 편안한 곳이어야 좋다. 지은지 얼마되지 않은 호텔이면 금상첨화다. 때마침 좋은 곳이 나타나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되었다. 여장을 풀고, 오늘은 숙소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 과일, 우유, 빵.. 한 잔의 커피로..
여행은 늘 선택을 요구받는다. 첫 번째는 목적지다. 어디를 선택할까? 그 다음은 언제 가야하나, 며칠 동안 해야할까? 가는 곳에서 어디를 주로 보아야 할까? 그러면서 지도를 보고, 장소를 물색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그 과정에서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이 번에는 처음 일정을 영광에서 장성 조용헌의 글방 休休山房을 거쳐 담양, 곡성의 조태일시문학관과 전주한옥마을에서 완주 오성한옥마을의 플리커 책방과 두베카페에서 커피향을 즐긴 후 시골 어머니를 찾아뵙고 오는 일정이었는데 하루 전날 갑작스럽게 장소를 변경하여 출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현지에서 방향을 바꿔야 하는 상황도 맞이한다.
남해에서도 보리암에서 남해안 해안도로를 돌면서 아름다운 카페와 각나라의 마을이름으로 그 나라의 모습을 연출한 곳들을 살펴보기로 했지만 시간의 차질로 그러지 못했다. 삼천포는 어릴적부터 익히 듣던 익숙한 장소다. 꼭 한번 머물고 싶었던 곳이다. 이렇게 낯 선 곳과 낯 선 잠자리에서 조용한 생각에 머물다 보면 기이한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크지 않은 우리나라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각자의 다른 삶들...이것은 숙명이라고 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늘의 뜻이 아니고는 어찌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태어나 사는 고향이 다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오늘은 이 아름다운 삼천포에서 낯 선 품을 안고 평안한 잠을 자자. 그리고 내일 이곳에서 올라오는 일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으로부터 삼천포에 빠져 보자.
4.15일 새벽.. 이미 어둠이 사라지고 동쪽 하늘에선 새 희망의 일출을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발길 따라 걷는다. 삼천포의 새벽 향기는 어떤 향기로 내게 다가올까? 바다내음, 출렁이는 파도소리 타고 밀려오는 바다 향기는 어떨까? 한가한 도심의 도로를 타고 주변을 둘레둘레 바라보며 향기를 찾아 거닌다. 코끝을 스치는 도심의 냄새, 도심의 냄새는 시골의 냄새와는 다르다. 도심은 쉬지 못한다.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차들의 행렬과 유흥업소들들의 영업은 지속된다. 쉬지 못한 도심의 냄새는 투명하고 맑지 못하다. 지쳐 있는듯한 피곤한 냄새가 난다. 복잡한 도시, 크면 클수록 새벽향기는 없다.
비교적 한가한 곳에 자리잡은 숙소지만 이곳도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다. 낯 선 곳을 거닌다는 그 설렘과 그래도 태양은 이곳에도 변함없이 힘차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걷다보니 저 멀리 동쪽 하늘에서 희망의 태양이 비추고 있다. 일출은 그 날의 힘찬 출발을 알리는 신호다. 모든 만물을 깨우는 시각이다. 그것이 이치다. 태양이 솟아 오름과 같이, 태양이 힘차게 깨어나듯이 만물도 깨어나라는 신호다.
태양의 아름다움은 붉게 노을 위로 솟아 오르는 용트림을 할 때다. 그 순간은 짧다. 눈 깜작할 사이다. 이미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면 주변을 붉게 물들인 노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삼천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다내음과 도심 특유의 냄새가 뒤섞여 나오는 묘한 향기를 맡으며 숙소에 돌아와 오늘의 일정을 간단히 체크한다.
아침 식사는 삼천포 구항 용궁시장의 횟집으로 향한다. 신항은 지금 한창 새롭게 건설하는 중이다. 적당한 식당을 찾아 매운탕으로 한 상차림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박재삼문학관에 도착했다. 노산공원에 삼천포 앞바다가 훤히 내다 보이는 터전에 자리잡았다. 대지 6,695평방미터에 연면적 645.2평방미터로 3층건물이다. 1층은 안내공간과 전시실, 2층엔 창작실과 소장도서 열람실, 3층은 어린이 도서관 및 휴게 공간이다. 코로나19로 개방이 되지 않아 외관과 3층의 휴게 공간을 두루 살피면서 박재삼의 시세계를 생각해 보았다.
박재삼은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로 이어지는 한국전통 시의 맥을 이어온 작가다. 가난과 시련, 전쟁과 분단, 정치적 혼돈의 시기를 살면서 맺혀 있던 한의 세계를 서정적 아름다움의 미학으로 풀어낸 그의 시에선 아름다움과 슬픔을 승화시켜 나오는 절제된 미학으로 나타나 있다.
노산공원 박재삼의 시비의 천년의 바람이다. 여기서도 그는 지치지 말라고 한다. 바람과 같이..
천년의 바람 / 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3층 휴게 공간에서 삼천포 바다를 응시한다. 박재삼은 삼천포고등학교 때, 삼천포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김상옥이라는 걸출한 시조 시인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타고난 시적 감각을 불태웠다. 통영이 낳은 작가 김상옥 시비는 통영 남망산 공원에 있어 몇 번 들렸다. 박재삼의 꿈을 만들어준 바다, 그는 가난에 시달렸다. 어린 소년에게 그것은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아픔과 슬픔에 좌절하지 않고 삶에 대해, 이상과 꿈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뇌를 했을 것이다. 바다는 그의 위로처였고, 그의 고통을 껴안아 줄 유일한 친구였을 터.. 바다를 보면서 바다처럼 넓은 미래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고통과 고독'고통스러우면 고독이 오고, 고독해지면 성찰이 온다. 그 성찰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박재삼이 그랬을 것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고통과 고독을 견디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었을까>
바
바
박재삼 시, 그 깊은 세계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박재삼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고, 말 소리와 말뜻을 조화시킨 오묘한 운율을 만들어 서민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중략-
이런 그의 시 세계는 15권의 시집과 10권의 수필집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 그는 시를 쉽게 썼다. 쉽게 풀어 이해할 수 있는 시의 언어를 구사했다. 조병화 시인이 쉬운 시를 쓰면서 아름다움으로 풀어냈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풀어냈다.
사랑하는 사람 / 박재삼
어쩌다가
땅 위에 태어나서
기껏해야 한 칠십년
결국은 울다가 웃다가 가네.
이 기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 준
빛나고 선택받은 인연을
물방울 어리는 거미줄로 이승에 그어 놓고
그것을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보태며
나는 꺼져갈까 하네
노산공원을 산책한다. 그의 시비가 있고, 노산공원 끝자락엔 팔각정의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는 출렁이는 파도를 만들며 말없이 철석, 철석거린다. 바닷가로 내려간다. 바닷가에는 한 여인상이 바다를 향해 조각되어 있다. 어떤 여인이었을까?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일까? 아니면 삶에 지친 자신의 모습을 바다에 실려 보내는 여인일까? 아니면 떠나간 여인을 생가하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여인일까? 아무렴 어떠냐. 바다를 보면서 아픔과 슬픔을 실려보낸다면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진정 시킬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속상한 일들이 있으면 바다로 가라. 그곳에서 실컷 울어라. 울다 보면 바다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것이다. 그래 나에게 모든 슬픔은 맡기고 저는 자유로워라.. 그렇다. 바다는 그렇게 넓은 마음을 가진 우리들의 포근한 엄마다. 바다가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