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源堂 日記-- 와인과 陰陽五行
2012年 11月 1日 木
단풍이 멋들어진 남서울C.C.에서 정기라운드를 마치고,
새로 생긴 분당의 명소라는 술집을 가지는 회원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이미 원고청탁을 받은 상태고, 고민을 하던 차,
내심 “와인과 陰陽五行”을 염두해 두었었기에, 와인생각이 났다.
혹자는 “神의 물방울이라 했던가? 예수의 피라 했던가?”
와인은 인간이 만들어낸 술중 가장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며,
그 깊이나 폭에 있어서 비견될 술이 없는 듯하다.
그만큼 와인은 와인의 수 만큼 다양하며,
설사 생산자가 같은 연도의 와인이라 하더라도
(좋은 와인들은 병입된 순서에 따라 번호가 부여되며 소량 한정생산을 한다.)
오픈한 연도(병입된 시기로부터 몇 년후에 마시느냐)와 마시는 사람의 감정상태,
다양한 잔의 형태, 장소, 그리고 누구랑 마시느냐, 등등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거기에 와인의 의지도 포함이 되니 그 변화무쌍함이란?
즉,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왜? 무엇을 마시느냐(나누느냐?) 에 따라 달려있는 것이다.
와인쎌러를 열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와인 두병을 선택했다.
한병은 보르도, 한병은 부르고뉴...
90년대 초 프랑스 빠리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접하게된 와인은
방학이면, 보르도지역과 부르고뉴지역을 방황케 했다.
뿐만이 아니라, 10년 가까이 프랑스 전 지역의 와인산지를 순례케 했으니,
와인이 나에게 특별한 자극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와인을 따기 전은 마치 어린아이가 포장된 생일선물의 리본을 푸는 것처럼
설레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와인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친구나 애인에 가깝다.
만약, 애인이라면 그에 걸 맞는 야한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병입된 해로부터 와인은 병속에서도 숙성되며 잠을 자며 꿈을 꾼다.
조심스레 콜크를 따올리면, 그 동안 병속에서 잠들어있던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조심스레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녀는 미소를 띠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 이 미녀(와인)는 나에게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며, 또 어떠한 말을 건네올까?
미녀(와인)를 받아드리기 전에 내 마음도 함께 열어본다....
“그대 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내 마음이 열려야 그대를 만난다.”
와인과 陰陽五行
自然 森羅萬象이 陰陽五行 아닌 것이 없다했다.
와인에도 예외일 수 없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와인을 다 언급할 수는 없다.
레드도 있고, 화이트도 있고, 로제도 있고, 샴페인도 있고.....
각 나라마다 와인도 가지각색이고, 지방에 따라 와인의 종류도 가지가지다.
하여, 오늘 오픈한 프랑스의 보르도와 부르고뉴 지방의 레드와인에 국한하여
“가볍고 피상적인 의미에 있어서 陰陽五行”과 연관하여 생각해보려한다.
실로 오랜만에 혼자 즐기는 늦은 가을밤의 정취에 빠져보려는 것이다.
어차피 일기다.
서두가 없으며 나열에 불과하다.
결론도 없는 늦은 밤 취객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결론이 필요하랴..,,,
와인에 던져보는 것이다.
와인을 陰과 陽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와인에 있어서의 陰과 陽의 구분은 그 와인의 토양과 기후, 포도나무의 수령과
포도의 종류와 그 당도와 산미, 복합적 측면에 있어서의 밸런스 그리고
그 와인의 생산자외의 물성적, 취향적 특성등에 의해 나누어지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고급와인일수록 陰的성향이 강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陽的인 와인은 이미, 또는 쉽게 발산되어 그 생명이 짧으며,
이미 만개하여 그 내면은 쉽게 허무하고, 생장소멸의 시간 또한 빠르다.
반면, 陰的인 와인은 병입 이후에도 오랜 시간을 통해 숙성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오픈한 상태에서도 마치 단단한 차돌과 같아서 그 응집력을 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화려한 만개에 다다르는 시간도 길뿐 아니라 陰에서 출발하였기에 보다 많은 정보와
포텐셜을 지니며, 변화과정에도 陰陽이 교차 반복되며 변화하여
그 만개의 유지 또한 길며 마침내 그 화려한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五行으로 표현하자면, 상대적으로 충실치 못한 와인들은, 예를 들면,
木에서 火로 변화되는 과정에 있어서, 허약한 木에 근거한 허약한 火의 발현이거나,
그 변화되는 시간과 과정이 단순하고 심지어 생략되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반하여,
충실한 와인들은 水에서 출발하여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며 木의 시간을 지나면서
마치 오랜 시간을 거쳐 성장한 거목이, 다양하고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은
웅장함을 보이다가, 火의 영역에 이르러서 변화무쌍함을 보이며,
마치 아름다운 수컷공작의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쳐 보이는 극치에 이르다가,
金에 이르르면, 마치 수려한 단풍의 모습과 같이 타오르며, 조용히 물러나며 여운도 길다.
마치 金이 火를 포장하는 모습일까? 나의 와인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한 시기인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의 生長收藏의 시간은 당연히 상대적으로 길며,
심지어 각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도, 陰陽이 교차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와인에 있어서는 그 여운마저도 크고작은 陰과 陽이 교차되며,
그 기억마저도, 평생을 가는 것이다.
고로 와인에 있어서 그 자체의 氣化變質을 보기위해선
어느 정도의 훌륭한 와인을 대상으로 비교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보르도와 부르고뉴에 있어서의 상대적 모습
보르도 지방의 와인들은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물적이다.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적당한 비율로 브렌딩하는 것이 보통인 보르도는
보다 남성적이며 동물적이며 자신을 드러내며 과시하며, 주로 話者의 모습을 보인다.
주로 자신을 설명하려하며,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웅장한 교향곡의 느낌을 주곤한다.
아무리 동양적인 음악으로 연상을 해보려하나 마땅치 않다.
우리의 表正萬方之曲등에서는 연상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東西의 차이인가?
내 감각에 있어서의 무딤의 한계일까??
주로 木火의 기질이 강하나, 金水의 기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로 太陽이나 少陽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훌륭한 보르도와인에서는
출발은 太陽이지만, 泰陰을 보이면서 본래의 太, 泰陽으로 사라진다.
(太는 물량적, 泰는 정신적)
비해 부르고뉴지방의 와인들은 상대적으로 식물적이다.
단일한 품종의 포도로 다양한 향과 맛을 선사하는데, 보다 여성적이며, 식물적이며,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수줍게 드러내며, 어지간해서는 먼저 다가서지 않고,
聽者의 모습이다. 보다 수동적이며,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걸게하고, 다가오게하며,
실내악이나 소나타의 모습이지만, 정말 훌륭한 부르고뉴에서는 보르도의 스케일을 뛰어넘는
우주 대 서사시의 엄청난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끔이지만, 우리의 만파정식지곡이나, 청성곡의 느낌을 받기도 한다.
주로 金水의 기질이 강하나, 木火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로 太陰이나 少陰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훌륭한 부르고뉴와인에서는 출발은 太陰이지만,
泰陽의 모습을 보여주다 본래의 太, 泰陰으로 사라진다.
이것은 일반적인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비교인데,
보통 보르도에서는 陽의 모습을 부르고뉴에서는 陰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변화과정에 있어서의 차원적, 변화적 단계의 陰陽과는
다른 의미에 이써서의 구별이다.
氣의 측면이라고나 할까......
재미있는 것은 쌩떼밀리옹과 뽀므롤이다.
두 지역의 와인에 비교하자면, 中性的이다. 中和的은 아니다.
陽中陰, 陰中陽 이기도 하고, 하지만, 陽에 가깝다.
그것은 氣와 質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보르도와 부르고뉴에서의 구별은 올드와인에 있어서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陰와 陽의 변화가 복잡하며 반복적이고 다양하고,
마시기 적정한 올드와인에 있어서는, 그 陰과 陽의 구별이 모호해지며,
보르도던 부르고뉴던간에 세월에 지나감에 따라 陽에서 陰으로 진행되며,
결국은 와인은 물과 같이 평온하며, 마시는자를 평온과 안식에 이르게 하는 포용력을
갖추며, 마시는자로 하여금 쉬게하며, 회개하게하며, 마치 부모가 자식을 끌어안는것과
같은 평안함을 주며,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선사하게 된다.
五行的 味覺
와인은 오행(木火土金水)에서의 미각이 다 공존한다.
물론, 와인의 종류에 따라 그 오행적 분포의 성향이 어느쪽에 치우치는가,
또는 두드러지던가, 결여되어있는가의 차이가 있는데,
또 거기에 밸런스(中和)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밸런스 또한 와인마다의 산지의 특성내에서의 밸런스다.
밸런스가 곧 50대 50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 밸런스가 50대 50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그건 이미 밸런스가 아니다.
훌륭한 보르도에서는 마치 火土가 共存하는 모습이며,
훌륭한 부르고뉴에서는 마치 水土가 共存하는 모습이다.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훌륭한 와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지평선이다.
대지의 어머니 품에 안긴 포근함을 느끼며, 밀레의 만종에서 볼 수 있는 석양이 있다.
반면,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훌륭한 와인에서는 수평선을 만날 수 있다.
마치 흑해에서 온 힘을 뺀 상태(무엇엔가 맡긴, 또는 전적으로 의지한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물위에 떠 있는 나의 모습이나,
역시 아득한 수평선에 걸쳐진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이나 석양을 만날 수 있다.
수령이 깊은 포도나무에서 다양한 지층을 뚫고 들어간 뿌리에서 흡수된 다양한 정보들을
포도알에 끌어올려 다양한 향과 맛, 그리고 그 지층을 형성케 하는 유구한 시간을
느끼게 하는 와인의 응축력이란, 다른 술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며,
春夏秋冬의 반복에서 오는 현명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부르고뉴를 더 선호한다.
뭐라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보르도를 마실때에는 그 형체가 더 화려해지는데,
반대로 정신은 공허해지고, 부르고뉴를 마실때에는 정신이 淸明해지고 그 형체의 화려함
은 곧 정신으로 승화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물(水)이 지니고 있는 응고성과 자율성과 中和性이 아닌가하며,
화려한 여름과 엄숙한 겨울 사이에 청초한 봄과 장엄한 가을의 교차가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결정체 사이에 共存하며, 교차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덧 와인병들이 비워져간다. 5시간이 넘어간다.
늦가을과 와인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서두 없지만, 하고 싶은 애기는 더 있다.
와인이 보여주는 빛깔과 촉감, 후감과 소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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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 영동 포도주는 여러가지 조건을 다 갖춘 포도주(목화토금수 음양오행)로서
브랜드명을 세계화 한다면 최고의 포도주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골퍼 박세리와의
스폰계약을 원했던 것일 겁니다.
원당님의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