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국수를 좋아합니다.
칼국수, 잔치국수, 비빔국수, 막국수, 콧등 치기 국수, 우동, 짬뽕까지
국수 종류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냉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물론 냉면 종류도 함흥냉면, 평양냉면과 진주 냉면까지 꽤 다양합니다.
아내는 그중에서도 메밀 함량이 많은 평양식 냉면을 좋아하지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 아내의 행복을 제 삶의 목표로 정하고 살아갑니다.
물론 제 아내는 절대 믿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지껄이면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은 긴가민가 하니까요.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부부 싸움을 할 땐 세상에 둘도 없는 웬수가 되니까요.
그래도 항상 스스로에게 마인드컨트롤을 건답니다.
'난 아내를 사랑한다!'
'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난 아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오랜 부부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단 하나의 '생존 법칙'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땅은 제법 넓은 편입니다.
물론 헐랭이 농사꾼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일을 줄이려고 항상 땅이 남아도는 거지만...
어쨌든 그 땅에 제 '사랑'을 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구상은 이랬습니다.
'저 넓은 땅에 메밀을 심는 거야.
메밀은 촘촘히 심으니 잡초 자랄 틈이 없겠지?
봉평 메밀밭을 가보니 잡초 하나 없더만...
하지만 잡초가 생겨도 상관없을 거야.
메밀은 구황 작물이라 흉년에도 잘 자라는 작물이라니까
까짓 잡초가 기승을 부려도 잡초 사이에서도 잘 자랄 것 같은데......'
라고 제 편한 대로만 생각하고 메밀을 심기로 했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유기농 메밀로 가루를 만들어 메밀국수를 뽑아주면 아내도 감동 먹지 않을까?'
아내의 의심을 한방에 사라지게 만들 겁니다.
상상만 해도 짜릿합니다.
메밀은 땅을 갈아엎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저 씨앗을 훌훌 뿌린 다음에 쇠스랑으로 슥슥 문질러 흙과 섞어주면 된다고 합니다.
사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농사짓는 헐랭이 농사꾼에겐 두둑 만드는 일이 제일 고된 작업입니다.
그러니 메밀 농사는 거저먹는 농사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군요.
땅을 갈지 않고 굳은 땅에 메밀 씨앗을 뿌리니 산비탈 밭에 비가 내리면 씨앗이 빗물에 쓸려 사라집니다.
그렇게 반 이상의 씨앗을 수장시키고 싹을 틔웠지만
메밀보다 잡초가 더 빨리 자라 듬성듬성이라도 잡초를 뽑아야 했습니다.
헐랭이 농사꾼이지만 잡초밭을 만들면 마을에선 멍석말이라도 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잡초와 싸우면서 반 이상을 겨우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아... 달밤의 메밀꽃이라니......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이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이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소설가 김동리 선생은 이효석을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말했답니다.
이효석의 소설은 차라리 시에 가깝다는 평이었겠지요.
메밀꽃이 지면서 메밀이 달렸습니다.
까만 사각뿔 모양의 메밀입니다.
그런데 또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더군요.
제가 사는 동네에선 메밀 농사를 지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니까요.
처음엔 까맣게 익은 메밀을 알알이 손으로 훑어 수확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까맣게 익은 메밀과 푸릇한 덜 익은 메밀이 섞여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메밀이 너무 익어 땅에 떨어지거나 새들이 쪼아 먹기도 한 모양입니다.
그제야 메밀을 베어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절반 정도는 땅에 떨어지거나 새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말린 메밀을 털어내는 작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베어 말린 메밀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수확한 메밀을 햇빛에 바짝 말려 도정을 하면 됩니다.
메밀의 까만 겉껍질을 벗겨내는 도정 작업을 해야 우리가 먹는 메밀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충청도 지역엔 메밀 도정을 해주는 방앗간이 없습니다.
이장님에게 물어보니
"그거 강원도나 가야 있을겨어. 근데 얼마나 수확한겨어?"라고 되묻더군요.
"한... 반 말 정도......"
이장님은 고개를 외로 꼬며 피식 몰래 웃더군요.
그 웃음의 의미를 진작 알아챘어야 했는데 헐랭이 농사꾼은 그런 눈치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장 가까운 강원도의 방앗간을 찾았습니다.
주천.
강원도 주천면에 메밀을 도정해 주는 방앗간이 있더군요.
다행히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입니다.
그 정도 거리라면 관광 삼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땐 빈손이 아니라 메밀을 자루에 담아 돌아올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도착한 주천면의 방앗간엔 옥수수, 조, 수수를 거피하는 사람들과
고춧가루를 빻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더군요.
접수!를 하고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두 시간 동안 주천 구경을 하면서 주천의 향토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주천면엔 '다하누'브랜드의 한우가 유명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한우 가격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애써 외면하고 또 다른 향토 대표 음식인 '꼴두 국수'를 먹었습니다.
메밀 칼국수인데 지역 사람들은 '하도 먹어 꼴두 보기 싫다'라고 붙은 이름이랍니다.
국수 좋아하는 아내는 입이 귀에 걸려 후루룩거리면 콧등치기로 먹더군요.
전 그닥 땡기지않아 메밀 만둣국을 먹었습니다,
그래도 만두 속엔 고기 향이 배어 있어 먹을만하더군요.
주천 구경을 하고 방앗간으로 돌아가니 여전히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맡긴 메밀 자루가 방아 기계 옆에 치워져 있더군요.
오는 순서대로 자루를 줄 세워 두었는데 열에서 제외가 되었으니 끝난 모양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루를 열어보니 껍질이 그대로 있더군요.
"이거 거피 안 했어요?"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쳐다보지도 않고
"그거 껍질 못 까요!" 하더군요.
"왜요?"
약간 부아가 치밀어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애지중지는 아니지만 저에겐 꿈을 수확한 만큼의 의미가 있는 메밀입니다.
그런데 홀대당하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커지니 전체를 관리 감독하는 사장? 이 다가와 사정을 설명해 줍니다.
방앗간 도정기계는 대규모 도정 시설이랍니다.
커다란 방아 기계의 입구?에 도정 곡식을 쏟아부으면 그 곡식의 무게로 기계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데 너무 적은 양이면 기계를 정상적으로 돌릴 수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 얼마큼 가져와야 가능한 거냐고 물으니 최소한 한 말이나 두 말은 되어야 한답니다.
제가 가져온 메밀의 양은 반 말이 조금 못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울컥!
바보처럼 왜 목이 메는 건지......
저 메밀이 어떤 메밀인데......
한 말이나 두 말을 채워 오라는 사장의 설명에 자루를 메고 뒤돌아서야 했습니다.
주천 읍내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껍질 안 깐 메밀은 아무도 취급하지 않더군요.
이걸 어쩌나......
아내에게 제 사랑을 증명할 기회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내 표정도 좋진 않더군요.
애초부터 사랑 증명이라는 제 말을 귓등으로 들었겠지만 막상 일 년 농사의 수확물이 홀대당하니
결코 좋을 수는 없겠지요.
"이거... "
아내가 큼지막한 봉투를 내밉니다.
"뭐... 야?"
"한우 한 근 샀어. 집에 가서 구워 먹자!"
또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겠지요?
아내를 사랑할 능력은 안되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숯불을 피워 금쪽같은 소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이거 먹어 봐 자기도 먹어 음, 입에서 살살 녹네......
도정 못한 메밀은 밭 가장자리를 따라 뿌려주었습니다.
마치 화장을 마치고 산과 들에 산골 하듯 뿌려주었습니다.
일부는 새들의 먹이로 사라지고 일부는 빗물에 떠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살아남은 일부는 밭둑을 따라 해마다 흐붓한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마치 사랑을 흩뿌린듯한 메밀꽃밭입니다
[출처] 시골살이, 흐붓한 메밀의 추억|작성자 꼭두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