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오리배미 / 정성려
모내기철이 다가왔나 보다. 논에 물을 가두어 논바닥을 고르는 농기계소리로 사방이 떠들썩하다. 다랑이가 아닌 모두 넓고 번듯한 논이어서 몸집이 큰 농기계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닌다. 한 필지정도는 두 시간도 채 안되어 곱게 골라 놓고 빠져 나온다. 농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농기계가 대신하여 농사일을 원활히 해나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산업현장으로 빠져나가고 농촌 인력의 고령화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는데, 이를 해결해줄 농기계의 출현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변두리에서 이렇게 논과 이웃하고 살자면 도심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있다. 이를테면 논은 개구리들의 놀이터지요. 특히 밤이 되면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요란할 정도로 들려오곤 한다. 예민한 사람은 밤잠을 설치며 짜증을 내겠지만, 나는 자장가로 들려 기분 좋게 잠이 든다.
네댓 살 미운 나이 때 ‘비가 오면 개구리가 우는 이유’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때 그뿐이었다. 그 뒤,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동화책에서 ‘청개구리의 울음’을 읽고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말씀 속에 숨은 의미 즉, 말을 잘 들으라고 그 이야기를 해준 것까지도 알았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개구리도 변한 걸까? 요즘엔 밤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날에도 무리를 지어 합창을 하곤 한다. 물을 가두고 농기계로 평평하게 골라놓은 논이 침대처럼 포근하고 좋아서 그럴까. 이렇게 개구리가 울 때면 철없이 아버지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죄송한 생각이 든다.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 가고 싶고, 남쪽으로 가라고 하면 북쪽으로 가고 싶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청개구리를 많이 닮았었나 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모내기철이 되면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진다. 일손을 잠시 멈추고 논둑에 앉아 희뿌연 담배연기 뿜으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농기계가 일찍 발달했더라면 고생도 덜하시고 얼마나 좋았을까.
오리배미라고 부르는 논이 있었다. 배는 불쑥 나오고 목이 가느다란, 오리를 닮아 오리배미라고 불렀다. 오리배미의 한쪽에는 사시사철 땅속에서 물이 샘물처럼 솟아났는데, 별도로 도랑을 만들어 그 물을 졸졸 흘려보냈다. 그 시절 주된 식량이었던 보리를 늦가을에 갈아 수확한 뒤 벼를 심는 이모작 논이 많았는데, 오리배미는 보리를 심기에는 토질이 맞지 않아 오직 한 해, 한 번, 모내기만 하는 논이었다. 다른 논에 비해서 수확이 적은 논이었지만 그렇다고 묵혀 둘 수도 없는 처지였다.
오리배미에 모내기를 하려면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논갈이와 써레질을 할 소에게 신경을 많이 쓰셨다. 여물을 한 차례 더 주며 소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어주셨다. 그 때는 아버지께서 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의미를 생각도 해보지 않았는데, 40년이 지난 이제야 알았다. 아버지는 당신이 힘들 것보다 푹푹 빠지는 수렁을 오가며 써레질을 할 덩치 큰 소가 더 안쓰러웠던 것이다.
지게에 써레를 얹어 등에 지고 소를 몰고 나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가벼운 발걸음이 아니었다. 소도 오리배미로 일하러 가는 줄을 알았을까. 힘든 일을 척척 해내던 소였는데 걸음을 주춤거리며 눈은 끔벅끔벅 인상을 썼다. 가기 싫어 버티는 것이었나 보다. 이럴 때는 ‘이랴! 이랴!’ 호통을 치는 대신 ‘쯧쯧! 쯧쯧!’ 혀로 소리를 하며 소고삐에 맨 줄을 소의 엉덩이에 대고 살살 흔들어 신호를 보내면 소통이 되어 소의 행동이 조금 빨라졌다. 아버지와 소는 말보다 표정을 주고받으며 참 잘 통했다.
막걸리 담은 주전자를 들고 울안 텃밭에서 딴 오이와 풋고추를 된장과 함께 챙겨 새참으로 내던 그날, 나는 아버지께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논둑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지친 모습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바짓가랑이를 돌돌 말아 올렸지만 무릎 위까지 푹푹 빠지는 수렁은 그마저 소용없이 옷을 진흙투성이로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수렁에 푹푹 빠진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옮기며 써레질을 하시던 아버지는 등이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헉헉대며 써레를 끄는 소도 거품을 한 입 문채 커다란 눈을 껌벅껌벅 치켜뜨며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아버지는 당신도 힘들 테지만 소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힘든 중에도 가끔 소의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셨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또렷이 그려진다. 논둑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곧 나갈 거라고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지쳐서 축 늘어진 몸을 논두렁에 부리고, 새참으로 가져간 막걸리보다도 담배가 더 맛이 있었는지, 진흙 묻은 손으로 담배부터 꺼내셨다. 담배를 물고 뽀얀 연기를 내뿜는 아버지의 모습은 힘겨운 한숨을 토해 내는 듯 했다. 아마 힘겨운 아버지의 한숨에 땅도 함께 울었을 것이다.
장남으로서 한 평생을 흙과 씨름하며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과 당신의 자식 6남매를 감당하기에는 무척이나 버거웠을 것이다. 산더미만큼이나 큰 짐을 지고 아버지는 흙과 함께 사셨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지만 그런 처지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 없이 흙과 이야기를 나누며 집안의 대소사를 다 해내셨다. 그런 분이기에 형제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고, 자식들로부터 때늦은 사랑을 받고 있다. 힘겨웠을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았는데, 이제 아버지는 우리 곁에 아니 계신다.
[정성려] 수필가. 2011년 대한문학 등단. 영호남수필 부회장.
전북수필, 전주문협, 완주문협, 표현문학, 전북여성문학, (사)한국편지가족 전북지회 회장
전국편지쓰기대회 은상.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행촌수필문학상, 완산벌 문학상
2022년 올해의 수필인상
* 수필집 《엄마는 거짓말쟁이》 《커피와 숭늉》 《가을여자》
2월에 부탁해 원고를 받았고, 내용에 부합될 시의적절한 때를 기다렸다가 이제 게재합니다.
지난 주 운암의 산에 갔다가 마주 친 제비꽃, 마른 풀더미 속에서 갸웃 얼굴 내민 꽃이 눈물겹게 기특했었는데요, 사방은 흰 꽃들과 물오른 나무들이 피워내는 연록, 연두의 계절입니다. 나무마다 연두연두하며 물들어 가는 벅찬 봄입니다. 연록 중에는 곧 시작될 모내기를 앞둔 어린 모도 빼놓을 수 없지요. 봄은 흰 꽃들과 연두의 세상이 확실해요.
아버지의 오리배미, 여럿 자식들 키우시느라 땀에 흠뻑 젖은 등, 진흙 묻은 손, 돌돌 말은 바짓가랑이는 정성려 수필가의 아버지이자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곧 모내기 철이 될 텐데요, 아버지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