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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
2023년 2월 일 / 요 12:23-26
요 12:23-26 /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24)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이 나는 죽어야 한다. 내가 죽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밀알 하나가 그대로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한 알의 죽은 밀알에서 많은 밀알이 맺히듯이 새 생명들을 풍성하게 거두게 될 것이다. 25) 만일 너희가 이 세상에서 너희 목숨을 사랑한다면 너희는 그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이 세상에서 너희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너희의 목숨이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될 것이다. 26) 만일 그들이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와서 나를 따르라고 전하라.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서 높이실 것이다.
■ 통나무집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 그리스도인이 35년동안 다른 곳에서 살다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을 방문하였다. 이제는 황폐해진 오두막을 향해 걸어 올라가면서 어렸을 때 농장을 가로지르는 개울을 따라 몇 개의 호두를 심었던 기억이 났다. 냇가에 내려갔을 때 그는 우뚝 솟아 아름답게 줄지어 서 있는 호두나무들을 발견했다. 그순간 다락방안에 몇 개의 호두를 숨겨 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것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였다. 그래서 깜깜한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이곳 저곳을 뒤지다보니 정말 호두가 그대로 있었다. 얼마나 큰 차이인지! 숨겨 놓았던 것들은 그저 말라 비틀어지고 먼지가 덮인 호두에 불과했지만, 심어 두었던 것들은 무성하게 자란 푸른 나무들이 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셨다. 아주 작은 밀알이지만 땅에 심겨져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이 썩으면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눈이 밖으로 나와 싹을 틔우고 크게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담겨 있는 밀알이라도 땅에 심기우지 않으면 싹을 낼 수도 없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나도 한 알 그대로 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는 자신의 죽음을 마음에 두셨다. 인류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아주 중요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예수님이 천국의 보좌에 앉아 계실 때는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 안에만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을 비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 오셨다. 사람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땅에 묻혔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부활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함께 포함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땅에 떨어져 죽으신 한 알의 밀알이 되자 예수님 안에 있던 생명의 씨앗이 이 땅에 생명없이 살면서 아무 소망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떨어져 열매로 맺혔다. 유대인, 이방인 가릴 것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새생명의 열매가 맺혔다.
새 생명은 사람들 안에 있는 불안을 평안으로 바꾸어 주었다.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주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었다. 마귀의 자녀요 진노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요 사랑받는 자녀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을 위해 죽으신 한 알의 밀알이심이 전해지고 그 기쁜 소식을 듣고 또 다시 많은 열매가 맺혀진다. 이 천년을 내려오면서 이 일이 계속 반복되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영생을 소유하는 생명의 번식이 일어났다.
■ 한국교회사 초기에 알려지지 않은 헤론(John W. Heron)이라는 의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지만 한국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래서 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에 신선한 감동을 준다. 헤론은 미국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수재로서 그 대학의 교수직을 사양하고 1885년에 내한하여 의료선교사로 헌신했다. 한국에 온지 5년 뒤 1890년 여름에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다른 선교사들은 휴가를 떠났지만 그는 폭염 속에서도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가 더위와 과로에 지쳐 결국 이질에 걸려 3주간 앓다가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놓고 선교지 한국에서 짧은 생을 마쳤다.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사에 유례없는 부흥을 가져오는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한 곳에서 이처럼 희생하고 순교한 이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 생명의 열매가 많이 확산되는 길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방법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셨다. 생명의 열매가 사람들에게 맺히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죽는 길 외에는 없다. 예수님은 멸망해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열매가 맺히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신 한 알의 밀알이었다.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다.
마 16:21-28 /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일과 거기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그 일이란 예수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절히 말하였다.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23)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터인데 그때에 각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심판할 것이다. 28)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인자가 자기 나라의 왕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된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목사의 신앙을 본받아
▶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을 강조하면서도 우리 개개인이 져야 할 십자가는 특정한 인물인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 기타 특정 인물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늘 밑에서 쉼을 얻거나 열매를 따먹는 것으로 여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분들이었기에 우리도 그들처럼 나름대로의 십자가 길을 가야만 했다. 그래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것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지 그뜻을 알았다면 당연히 걸어야 할 길이 있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라는 말씀처럼 영생을 얻으려면 반드시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만일 좁은 길을 걷지 않고 넓은 길을 걷는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멸망뿐이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자. 김석균 목사가 작사•작곡한 ‘나의 남은 생애’를 보면서 우리 아니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남은 생애는 복음의 편지, 섬김의 향유, 주님의 기쁨, 사랑의 샘물되어 살리라. 일 년을 살 지 한 달을 살 지 모를 나의 남은 생애, 주님이 주신 사랑 주님이 주신 은혜 빚을 갚으며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은혜의 통로, 축복의 통로, 복 있는 사람, 순백의 영혼으로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맡은 일 충성하며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행복한 전도자로 살리라. 나의 남은 생애는 범사에 감사하며 쉼 없이 기도하며, 정직한 예배자, 하늘에 속한 자로 살리라
그러므로 이 시간 이후 우리 모두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좁고 그 문도 작아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별로 없을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자.
1. 한 알의 밀알 토마스 목사
개신교 목사로 두 번째 한국을 노크한 토마스(Thomas 1840-1866)는 1840년 9월 7일 영국 라이어더(Rhayader)지방의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느 날, ‘여러분, 지금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순교하는 신앙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복음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복음을 듣고 영접하고 구원에 감사하는 영혼들을 볼 때 저는 선교사로 부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교하는 신앙으로 곳곳에 나아가 복음전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학교를 찾아온 선교사의 말을 듣던 토마스의 마음은 선교의 열정에 사로잡혔다.
‘주님, 지금까지는 제가 웨일스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제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제 길을 열어주세요.’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런던선교회를 찾아가 중국선교사로 파송해달라고 신청을 했다. 1863년 5월 런던선교회는 토마스를 중국선교사로 파송하기로 했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토마스는 약혼자인 캐롤라인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고, 캐롤라인과 결혼한 후 곧 목사안수를 받았다.
사명의 길에 들어선 많은 분들의 과거 간증을 들어보면 예수님처럼 젊었을 때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슴에 품고 평생 사명자의 길을 걸어간다. 물론 나이가 든 사람도 늦게나마 사명자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로 젊었을 때에 부르셔서 많은 연단을 통해 좋은 일꾼으로 만들어 가신다. 게중에는 이리저리 피하다가 징계를 통하여 돌이키는 경우도 없지않다. 가능하면 뜨거운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 응답하여 곧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만일 이 글을 듣거나 읽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대답하고 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 토마스 부부는 1863년 7월 21일 그래이부센드 부두에서 출발하는 폴메이스호를 타고 중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중국에 도착하였지만 선교 활동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여보, 맛이 없더라도 건강을 생각해서 좀 먹어봐요’ 남편인 토마스의 염려하는 말에 임신하여 입덧에 시달리던 캐롤라인은 ‘입맛이 없어서 음식이 먹히지가 않네요.’라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상가상으로 런던선교회의 선임선교사인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사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도 토마스 부부는 ‘주님, 저희에게 이곳 중국에서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주심으로 위로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중국에서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그렇게 중국사역을 진행하던 토마스는 1864년 3월에 임신한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한구라는 곳으로 출장을 떠났다. 그런데 토마스의 이웃에 살며 친하게 지내던 미국선교사 부인이 갑자기 풍토병으로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곁에서 본 캐롤라인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연유로 캐롤라인은 태중의 아기가 유산되는 고통을 겪었다. 출장을 떠났던 토마스는 일을 마치고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내가 돌아왔소. 그동안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순간 토마스는 섬찟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면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급한 마음으로 ‘캐롤라인! 캐롤라인!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당신 자고 있는 거요?’
이렇게 말을 하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토마스는 ‘아-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캐롤라인이 누워있는 곳에는 핏자국이 여기저기에 뒤엉켜 있었다. 그의 아내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캐롤라인! 내가 왔소. 눈을 떠 봐요. 내가 왔단 말이오.’
그러나 싸늘한 몸으로 누워있는 아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캐롤라인은 아기가 유산된 후에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가운데 이미 일주일 전에 혼자 죽어간 것이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토마스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 고통으로 인하여 그는 선교에 대한 회의에 빠져갔다. 마치 미친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캐롤라인! 나를 두고 당신 혼자서 가면 어떻게 하오. 하나님! 캐롤라인은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기를 유산시키고, 혼자서 죽어갔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까? 내가 여기에 왜 왔는데요. 중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고향과 부모를 떠나 이곳까지 왔는데. 당신이 내게 한다는 것이 고작 이것입니까? 내 아내와 자식을 데려가는 것이 당신의 뜻이냐고요? 저와 캐롤라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선교사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저도 데려가지 왜 저 혼자만 이렇게 남겨두셨습니까?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계시지만 말고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하나님 당신은 사랑이시라고 했잖아요. 정말 당신이 사랑이신 분이 맞아요? 그런 분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거예요.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인지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 좁은 길에는 뜻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하여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하는 이의 발걸음에 올무를 놓는다.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여러 올무처럼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거나 뒤돌아서기보다는 올무를 딛고 일어서는 강인함으로 무장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말로는 쉽게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는 정말로 겟세마네 동산이요, 골고다 언덕이며, 모리아 산이다.
2. 꺼져가는 토마스 목사의 가슴에 다시 성령의 불을 붙게하신 하나님
■ 토마스는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많은 날을 헤매어 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분노와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토마스는 런던선교회에 편지를 썼다.
‘처음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 2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그는 런던선교회에 선교사 사직서를 제출하고 중국 해상세관에 통역으로 취직하였다. 세관에 취직한 그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일하는 것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에 토마스는 우연한 기회에 조선인 동지사(冬至使) 즉, 조선시대에 동지를 전후하여 중국에 공물을 갖고 보내던 사신 일행을 만나서 조선 내에서의 가톨릭교도들에 관한 수난을 듣게 되자 토마스의 마음에는 또다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조선에서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며 순교의 피를 흘리고 있다는 동지사의 말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이제부터 나의 선교지는 조선이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어!’
토마스의 마음은 조선에 대한 선교열정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으로 마음을 불태우고 있을 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윌리암슨 선교사가 그를 찾아왔다.
‘토마스! 계속하여 세관에서 통역하는 일만 할 생각이오? 당신이 아내를 잃은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를 잃은 아픔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중국어와 러시아어, 몽골어 등의 언어에 능통한데 하나님께서 왜 당신에게 이러한 언어의 재능을 주셨을 것 같소. 복음을 전하는 것에 사용하도록 함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아도 세관에 사표를 내려던 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 믿음이 좋아서 이곳 중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된 줄 알았는데, 아내 캐롤라인의 죽음 앞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제 약한 모습을 보면서 제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자식을 무덤에 묻는 아픔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이제 실감이 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잠시도 저 스스로 설 수 없는 자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토마스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복음전하기 위해 준비된 결연한 모습이 보였다.
‘윌리암슨! 사실은 얼마 전에 조선의 동지사를 만나 그곳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조선에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예수를 믿는 것으로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오작통이라고 하여 한 가족이 예수를 믿으면 다섯 가족이 죽임을 당하는 등의 핍박을 당하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제 마음은 어떻게 하면 제가 조선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저는 중국에 복음전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조선에 복음 전하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 눅 12:49 / 나는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나는 불이 이미 붙어 있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 부흥(고형원 작사, 작곡) /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 우리의 우상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 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 오 주님 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 부흥2000(고형원 작사, 작곡 진리의 성령님) /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 가슴 정케 하소서 / 오소서 은혜의 성령님 하늘 가르고 임하소서 거룩한 불꽃 하늘로서 임하사 타오르게 하소서 주 영광 위해 /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에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 땅 가득 불어와 / 흰옷 입은 주의 순결한 백성 주의 영광 위해 이제 일어나 열방을 치유하며 행진하는 영광의 그날을 주소서
피종진 원로목사님은 ‘성령의 불길’이란 설교에서 이렇게 설교하셨다. ❶ 소멸의 불로 역사하신다(사 4:4). 성령은 ‘소멸하는 영’으로써 성도들의 심령의 죄를 소멸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또한 마귀도 소멸시켜 주시고(계 19:20), 질병도 소멸시켜 주신다(출 15:26, 사 58:8).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이와 같이 성령은 소멸의 불로 역사하신다. ❷ 능력의 불로 역사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아놓고 있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성령은 ‘능력’을 의미한다. 성령은 위로부터 오시는 능력이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성령은 능력의 불로 역사하신다. ❸ 응답의 불로 역사하신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6-38)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가 끝나자 즉시 불을 내리셔서 응답의 불로 역사해주셨다.
■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창시자 윌리암 부드(William Booth, 1829-1912)의 가슴에도 이 불이 붙어 있었다. 한번은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가 그를 왕궁으로 초청했다. 왕이 윌리암 부드의 손을 잡으면서 ‘당신은 참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영국 사회가 밝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칭찬을 했다고 한다. 부드가 왕궁을 떠날 때, 에드워드 7세가 방문록에 싸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부드가 이렇게 썼다. ‘폐하, 어떤 사람의 야심은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야심은 더 높은 명성을 얻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야심은 더 많은 황금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유일한 야망은 더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3. 선교지를 향하여
■ ‘오-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럼 당장 조선에서 나를 찾아온 두 사람을 만나게 해 드리지요.’ 윌리암슨의 말에 토마스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윌리암슨의 안내를 받으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 두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이 분은 토마스 목사입니다. 인사하시지요.’
윌리암슨의 말을 들은 두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저는 김좌평입니다. 저는 최선일입니다.’하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토마스 목사입니다. 저는 조선에 가서 야소(예수)교를 전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에 가서 야소교를 전하겠다는 토마스의 말에 놀란 두 젊은이는 ‘예- 예 -- 안됩니다. 조선은 지금 박해가 심해서 야소를 믿던 우리도 목숨을 걸고 피해 왔습니다. 조선에 있다간 칼날에 맞아 죽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젊은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토마스 목사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칼날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순교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다시 조선으로 갑시다.’
‘글쎄. 돌아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라니까요.’ 두 젊은이는 손을 내저으며 만류하였다. ‘그건 다시 사는 겁니다. 거듭나는 거지요.’ 젊은이들은 토마스 목사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듯 어안이 벙벙하였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하고 토마스 목사가 말을 꺼내자 ‘마태복음?’하면서 젊은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경을 안 가지고 계십니까?’ 없습니다. 조선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책과 교리문답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도 성경을 갖기를 원합니다.’ 두 젊은이가 합창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성경책을요? 저를 조선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제가 그들에게 성경책을 갖다 주겠습니다.’
결국, 두 젊은이는 토마스 목사의 말에 감동하여 조선으로 떠날 것을 결심하였고 윌리암슨 목사는 토마스 목사에게 다량의 한문성경을 공급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1865년 9월 4일에 토마스 목사는 두 젊은이와 함께 다량의 한문성경을 실은 목선을 타고 제1차 한국방문 길에 올랐다. 중국의 지포를 출발한 그들은 10일 만에 황해도 창린도 자자리 군포에 도착하였다.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을 본 토마스는 ‘안녕하세요. 저는 야소교 목사입니다. 이 책은 야소교 책입니다. 받으세요.’ 외치면서 그들에게 성경을 내밀었다.
‘에그머니, 이상하게 생긴 코쟁이가 어떻게 우리말을 하지?’ 주민들은 토마스 목사가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들었다. 토마스 목사는 백령도 부근의 섬을 2개월 반 동안 돌면서 섬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가르쳤다. 토마스 목사는 동시에 섬 주민들에게 많은 조선말을 배웠다. 토마스 목사가 돌아간 후 관가에서는 성경책이 법으로 금하는 천주학쟁이들의 책이라고 하여 백령도 참사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회수하도록 하였는데 그때 거두어들인 책이 99권이나 되었다. 토마스 목사 일행은 서울로 가서 전도할 생각으로 범선을 타고 한강을 향하였으나 난데없는 폭풍으로 접근치 못하고 표류하다가 북경으로 되돌아왔다. 이 일로 1866년 4월까지 북경에 머물던 토마스 목사는 조선의 동지사 일행을 만나 친숙한 교제를 나누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동지사인 평양감사 박규수 대감을 만나 ‘저는 야소교 목사 토마스입니다.’
‘오-오! 어떻게 조선말을 잘하시오? 놀랍소이다.’ ‘작년에 조선에 가서 배웠습니다.’ ‘난 박규수라고 하오.’ ‘지난번에 조선에 가서 천주교 박해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소이다.’ ‘저는 또 조선에 갈 생각입니다.’ ‘조선이 그렇게 좋더이까?’ ‘저는 조선에 가서 야소를 전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마구 뜁니다. 대감에게 제가 이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토마스 목사가 박규수대감에게 선물한 책은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이었다. 그가 조선 동지사인 박규수대감을 만나고 나올 때 누군가 따라 나와 작은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토마스 목사가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고 주춤거리던 그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달아나듯이 뛰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받은 종이쪽지를 읽던 토마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종이쪽지를 들고 있던 토마스 목사의 두 손이 가슴에 모아졌다. 그곳에는 ‘백령도에서 뿌렸던 야소교 책을 꼭 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후로 조선선교에 대한 토마스 목사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고 어떻게든지 조선에 갈 방법을 찾아 나셨다.
그때 천주교인들이 핍박을 당하여 피로 얼룩지고 있었다. / 그 사건의 발단은 러시아 군함이 원산에 들어와 통상압력을 하였다. 조선의 조정은 이러한 압력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때 천주교도였던 승지 남종상이 대원군을 찾아가 한 가지 방도를 제안하였다. 러시아를 격퇴시키려면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것은 프랑스 신부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신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천주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원군은 러시아 함대만 격퇴시키면 천주교의 포교를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유림이 들고일어났다. 이것으로 대원군은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 함대가 스스로 물러갔다. 그때야 나라의 위기를 이용하여 포교의 자유를 얻으려 했던 남승상의 속셈을 알게 된 대원군은 분노하여 천주교를 사교로 간주하고 책을 불태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만 천주교를 믿어도 다섯 가구 모두 처형되는 오작통을 실시하였다. 그뿐 아니라 누구든지 서양인과 만나는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고, 천주교도를 고발, 체포하는 사람들에겐 포상했다. 이것이 8,000명의 천주교도들이 처형되고 9명의 프랑스 신부가 처형된 병인년 박해의 발단이었다(병인양요).
그리하여 프랑스는 자국인의 신부를 학살한 것을 항의하고 압력을 행사하려고 프랑스 함대를 조선에 원정가도록 하였다. 이때 마침 토마스는 통역으로 동행할 것을 제의받았다. 통역으로 동행할 것을 수락한 토마스는 조선에 가져갈 성경과 전도지를 준비하여 소식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토마스 목사!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소.’ ‘윌리암슨 목사님, 왜 프랑스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 거죠?’ ‘프랑스 배는 오지 않는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반도지나에 변란이 일어나서 그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고 합니다. 대신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무역을 위해 조선으로 간답니다. 그 배에 통역관으로 승선하여 합류하는 것이 어떻소?’ ‘오! 그것 잘되었습니다. 지금 선장을 만나보면 안될까요?’ ‘성미도 급하십니다. 마침 지금 그곳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같이 가봅시다.’ ‘선장님! 이분은 조선말을 잘하시는 토마스 목사입니다.’ ‘안녕하시오. 우리는 한양으로 가서 무역을 할 계획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평양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평양감사가 저와 친분이 있어서 도와준다고 약속했는데요. 아직 조선과 무역을 시작한 나라가 없는데, 누군가 도와준다면 통상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글쎄, 그럼 평양으로 가도록 합시다.’
4. 사도 바울처럼 순교를 향하여
■ 1866년 8월 9일 토마스 목사는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목적지인 평양에 가기 위하여 대동강을 출발하였고, 제2차 조선선교여행에 오른 토마스 목사는 이번 조선여행에서 선교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뱃머리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8월 21일에 포리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배는 미국배로 조선과 무역을 하려고 왔습니다.’
주민들은 프랑스배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한 듯하였다.
‘하나님께서 조선을 사랑하십니다. 자! 이걸 받으세요. 성경책입니다. 여러분에게 선물로 드립니다.’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자 수많은 사람이 배 위에 올라와서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이때 나누어 준 성경이 500여 권이나 되었다. 그리고 제너럴셔먼호가 북상하여 석호정까지 올라왔을 때 토마스 목사는 배의 갑판으로 나와 ‘야소 (예수)를 믿으세요! 야소를 믿으세요!’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던져 주었다. 이때 4일간 머물면서 100여 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주었다. 제너럴셔먼호가 석호정에서 만경대까지 다다르자 팽팽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조선에서는 그 배가 닿는 곳마다 문정관을 파견하여 목적지와 항해의 목적을 물었다. 통역으로 승선한 토마스는 목적지가 평양이며 통상을 원한다는 것을 밝혔다. 제너럴셔먼호에서는 양식과 땔감을 요구하였고 조선에서는 그것을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제너럴셔먼호의 미국인 선장은 조선인 이익현을 협상을 하는 것처럼 속여 배로 유인한 다음 그를 억류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토마스 목사는 선장에게 ‘이러면 안됩니다. 어서 저 사람을 보내주시오.’
‘당신은 상관마시오. 내가 선장이요.’
‘정말 조선과 교역을 원하신다면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저들은 곧 내 말을 듣고 통상을 요구해 올 것이오.’
‘이건 비겁한 짓입니다. 빨리 저 사람을 보내고 저들에게 잘못을 사과하시오.’
그러나 선장은 토마스 목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익현의 억류로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은 소극적이던 자세를 버리고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틈에 박춘권이라는 부교(副校)가 이익현을 제너럴셔먼호에서 구출하였다. 대포로 공격을 하던 제너럴셔먼호 선장은 조선 군사들의 공격이 거세지자 퇴각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홍수로 불어났던 물이 줄어들어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배는 모래에 좌초되었다.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던 조선의 군사들은 일제히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순간 토마스 목사는 ‘야소’, ‘야소 믿으시오!’, ‘야소!’ 소리치며 배 안에 있던 성경을 군사들에게 던졌다.
‘잠깐, 항복하겠으니 우리를 돌려 보내주시오.’ 배 안에 있던 선장이 외쳤다.
‘항복하면 돌려보내 주겠소.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대포는 조선의 군사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선장의 비열한 처사에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싣고 셔먼호에 접근하여 불화살을 쏘아대었다. 배에 떨어진 불화살로 셔먼호는 불타기 시작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강으로 뛰어내렸고 목숨을 건져 뭍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성난 조선의 군사들에 의하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강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배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서도 누군가 한 손에 백기를 들고 ‘야소, 야소!’ 외치면서 성경책을 던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의 옷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순간 두 팔을 높이 든 토마스는 ‘야소!’ 큰소리로 외치더니 강물에 뛰어내렸다.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온 그를 목 베이려고 누군가 칼을 쳐들었을 때, 부교인 박춘건은 그를 생포하도록 명령하였다.
‘당신은 총 한번 쏘지 않고 책만 던지던데.’
‘저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평양감사는 이들에게 국법을 어기고 사교를 전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였으므로 부교인 박춘권으로 하여금 모두 참수토록 명하였다. 묶여 있는 그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만을 찾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대동강변에서 국법에 따라 한 사람씩 목을 베는 형벌이 실시되었다. 선장과 중국서기인 조능봉, 이팔행이 먼저 목베임을 당하였다.
‘다음 영국 야소교목사 토마스!’하자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박부교의 손이 높이 올려진 순간이었다.
‘잠깐만 이걸 받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이 말에 멈칫하고 놀란 박 부교는 토마스 목사가 내미는 작은 보따리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그러자 토마스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니 용서하여 주소서. 이 일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1866년 9월 3일 27세의 젊은 나이로 토마스 목사는 대동강의 한사정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다.
5. 순교를 통해 수많은 열매를 맺은 토마스 목사
■ 토마스가 죽고 난 다음 33년 이 지난 1899년의 일이다.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 살겠습니다.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던 ‘사무엘 마펫 선교사’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 목사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 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제너럴셔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이 보았습니다. 그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 목사가 포리에서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할 때 박영식이라는 평양감청 경비가 사람들이 버리는 책을 주워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것을 여관주인인 최치량이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았다고 제게 들려주면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로도 토마스 목사에게 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은 원래 천도교였으나 동생 김종권과 함께 교인이 되어 장로가 되고 황명대는 제너럴셔먼호가 불탈 때 ‘야소, 야소’하는 소리를 듣고 평양 초대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토마스 목사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뿌렸던 성경은 살아서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다.
■ 1866년 9월 4일 제너럴셔만호의 사건이 종결된 후 박규수 평양감사는 토마스 선교사에 의해 뿌려진 수백 권의 성경과 전도 책자의 소지자에 대한 체포령과 회수령을 내려 많은 사람이 그 성경을 버렸다. 이때 버려진 성경을 수집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양 대동문 안의 영문 주사의 관직자였던 박영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 걷어드린 성경을 뜯어 벽지로 사용했다. 후에 박영식의 집을 토마스 선교사가 나누어준 성경을 갖고 있었던 평양의 최치량이 구입하여 여관으로 사용하므로 이 여관에 머무는 여행객들은 자연스럽게 성경을 자신도 모르게 접하게 되었다.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1893년 마팻선교사는 평양에 선교부를 두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바로 이 여관에 투숙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집주인인 최치량이 기독교인이 되어 그 여관이 나중에는 교회(널다리교회)로 사용되었다. 최치량은 그 교회의 개척 멤버였다.
이는 마치 사도행전이 재현되는 것 같은 일화로 사도 바울이 2차 빌립보성으로 전도 여행시에 루디아의 집에 유하므로 그 집안이 구원받고 그 처소가 빕립보의 가정교회가 되었던 사실과 동일한 역사이기도 하다.
이 널다리 교회는 후에 크게 부흥이 되어 1903년에 72칸짜리 큰 예배당으로 건축하면서 교회 이름을 지명을 따라 장대현교회로 개명하였다. 이 장대현교회는 평양의 장자교회 역할을 했으며, 한국교회 부흥의 전환점을 가져온 1907년 대부흥운동의 발원지가 되었다. 이는 토마스 선교사의 평양에서의 한 알의 밀알이 된 순교가 장대현교회의 탄생과 그 교회를 통해 발원된 부흥 운동을 잉태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사명’을 함께 부르면서 설교를 마치려고 한다. 이 곡은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목숨도 아끼지 않고 따라가겠다는 신앙고백적인 찬송으로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 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