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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 개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1818년 출판한 철학서적.
2. 상세
초판은 1818년 말 발행, 2번째 버전은 1844년에 1818년 초판을 편집한 버전으로 발행했다.
쇼펜하우어의 책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하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는 제목에서도 나와있다시피 '의지'와 '표상'.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란 일반적인 의미의 의지 외에도 자신이 마음속으로 갈망하는 것, 혹은 고집같은 무언가까지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의식하는 의지부터,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원초적인 것, 예를들면 생존본능같은 것 까지도 모두 의지로 보았다는 말이다.
그는 이 '의지'란 개념을 탈출해야만 하는,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무언가로 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이데아를 깊게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기에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예술적,철학적으로 천재인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미(美)적 해탈은 아직도 시간제약을 받아서 불충분 한 것이라고 한다.
'표상'이란 영국 경험주의-칸트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인데, 이는 어떤 물체나 대상에 대해 가지는 '심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표상이란 "의지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의 연장선인데, 그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부정하여 인식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는 그의 염세주의적 사상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있다. 그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악'이라 말하며, 이 때문에 그 어떤 노력을 한다 한들 결코 관능적 쾌락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는 모든 물질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긍정함으로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여 마음의 평화를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여러모로 그의 철학관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그가 주장하는 철학은 불교사상과 많이 닮아있다.
그는 살아생전 서양 사상보다 인도 철학(우피니샤드)과 불교를 더 긍정적으로 봤다.이는 아마 그의 사상이 그것과 많이 유사했기에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그는 사물,생명체 등등 세상 만물의 본질은 우리가 그것이 어떻다 하고 정의내리는 게 아니라 개념 그 자체에 있다고 봤다.
어떤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 그의 생각,사상등 '표상'을 이어받아 이게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의지'라는 것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유로워져서 세상 만물을 본질로서, 개념으로서 보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라는 것이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주제이다.
http://m.saramilbo.com/a.html?uid=19606
의지는 목적도 없고 끝도 없이 움직여가며 그러므로 만족을 모른다. 삶의 불행은 결국 세계의 본질인 의지에서 연원한다. 의지가 존재하는 한 불행은 소멸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곳에 비극과 잔인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동물의 상태에서 그것은 잘 드러난다. 약육강식의 원리만이 영원히 존재한다. 개체의 소멸에 대해서 자연은 냉담하다. 개체의 고통이나 죽음은 종의 보존을 위해서만 가치가 있다. 동물은 죽음을 절망적으로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고통 자체이다.
쇼펜하우어
칸트를 통해 칸트를 넘다
Arthur Schopenhauer
출생 - 사망 1778.2.22. ~ 1860.9.21.
흄의 인과관계의 필연성 비판에서 시작된 ‘지식의 근원’에 대한 질문은 칸트에 의해 철학적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촉발한다. 즉 지식의 근원은 경험이지만 경험 자체가 지식은 아니며, 경험이라는 재료가 인간의 선험적 개념들(a priori concepts)에 의해 조직된 것이 지식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칸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즉 우리 인간이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이라고 보는 것은, 칸트의 인식론에 의하면, 단지 사물의 외양인 현상(phenomenon)에 지나지 않으며, 이른바 ‘물자체(Ding an sich)’는 결코 인간의 인식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접근할 수 없는 물자체가 감각기관을 통해 지각되는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쓸 때 보이는 방안의 시계와 같은 사물은 물론 매일 같이 지내는 가족조차도 우리는 그 실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현상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일단 상식적으로는 부자연스러운 주장이다. 우리에게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그의 명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에서 칸트의 이 부자연스러운 인식론을 뒤집으려고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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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리는 인정받기 전에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첫째 조롱 받으며, 둘째 반대에 부딪히고, 셋째 자명한 것으로 간주된다.”
쇼펜하우어가 태어난 곳: 그단스크로 불리는 단치히. <출처 : Wikipedia>
쇼펜하우어는 1788년 2월 22일 지금 폴란드에 속해 그단스크(Gdańsk)로 불리는 오래된 도시 단치히(Danzig)에서 태어났다. 한자동맹에 속해 있던 자유도시 단치히가 프러시아에 합병되자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함부르크로 이주하였다.
국제무역에서 성공한 상인이었던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의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이점은 쇼펜하우어의 이름 ‘Arthur’가 독일, 영국, 프랑스어에서 같은 철자로 쓰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805년 아버지가 사망하자(자살인 듯) 쇼펜하우어는 2년간 더 함부르크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 괴테와 친분이 있었던 문필가 어머니는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문학살롱을 열었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죽음을 순식간에 잊고 사교계로 진출한 어머니와는 서로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고 혹평하는 등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았다.
1809년 쇼펜하우어는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1813년 예나 대학에 논문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의 네 가지 근원에 관하여(Über die vierfache Wurzel 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를 제출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814년부터 드레스덴에 머물면서 쇼펜하우어는 학위논문을 확장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쓰기 시작하여 1819년 약관 31살에 출판을 하였다.
1820년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 자리를 얻은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인기강의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강의를 개설하였으나,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불과 5명만이 수강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쇼펜하우어가 신랄하게 비판하였던 헤겔의 명성에 그의 철학교수로의 행로는 처음부터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1825년 베를린 대학에서 다시 한 번 강의를 시도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다. 1831년 콜레라유행을 피해 베를린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한 쇼펜하우어는 생전에 다시 대학 강단에 서지 않았다.
물자체와 현상과의 관계 칸트에 대한 비판
“칸트의 철학을 철저히 공부하는 것이 이 강의를 듣기 위한 유일한 전제이다. 독자가 이외에도 신과 같은 플라톤을 학교에서 배웠다면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욱더 준비되고 예민해 질 것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독자가 베다(Veda)경전을 읽는 축복을 받았다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서문)
쇼펜하우어는 물자체와 현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칸트를 비판하였다. 우선 이 양자가 ‘원인-결과’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본 칸트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인과관계란 경험세계 속의 사건들 간의 관계이므로, 경험 저편에 있다고 가정되는 물자체는 결코 그 어떤 것과도 인과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대상들의 법칙성을 혼동하는 문제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이미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피히테와 헤겔 등의 독일관념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지적한 바가 있었다.
둘째, 칸트가 우리의 인식능력이 접근할 수 없다고 본 물자체가 실은 결코 인식영역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관찰은 이론적 작업에만 몰두하는 철학자들이 범하는 흔한 오류, 즉 인간의 인식이란 항상 숙고된 것이라는 착각을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약 한 세기 후에 등장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역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의 모습(Ludwig Sigismund Ruhl가 1815년에 그린 쇼펜하우어 초상화). <출처 : Wikipedia>
나는 동물 하나를 보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뭘 보고 있니?” 나는 대답하기를: “토끼.” -나는 풍경을 보고 있다; 별안간 토끼 한 마리가 뛰어가고 있다. 나는 “토끼!”라고 외친다. 보고(Meldung)와 외침(Ausruf) 모두 지각과 시각체험의 표현이다. 그러나 외침은 보고와는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외침은 우리로부터 빠져 나간다. - 그것은 마치 비명이 고통에 대하여 갖는 관계와 흡사하다. ([철학적 탐구], 2부 §138)
여기서 보고는 관찰자가 숙고 끝에 내린 인식결과이지만, 외침은 그런 숙고 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은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는 문장이 문법적으로는 옳지만 내용적으로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누가 바늘로 나를 찌르면 나는 ‘아야!’하고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나는 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는 등의 ‘괴상한’ 문장을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타인의 비명이나 찡그린 얼굴표정을 보고 나는 그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비트겐슈타인은 위의 ‘토끼!’의 예에서 외침이 우리 몸에 대해 갖는 관계는 비명이 고통에 대해 갖는 관계와 흡사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 외침과 몸, 비명과 고통은 실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외침의 경우 어떤 물체를 지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패턴매칭), ‘토끼.’라고 발화하는 3단계의 인식행위가 아니라, 지각으로부터 외침까지 전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행위를 의미한다.
내가 나의 몸을 움직이는 추동체로서의 의지, 물자체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외과수술의가 환자를 보듯 제3자의 입장에서 인식할 수도 있지만, 1인칭 시점에서 즉 내적 지각을 통해서 접근할 수도 있다.
즉 나는 욕망과 집착, 기대 등을 통해 나의 몸을 움직이며, 이런 행위 후에 나를 돌이켜 보았을 때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과 다른 무엇이 있음을 짐작한다. 쇼펜하우어는 이처럼 나를 직접 행동으로 몰아넣는 인간의 근원적 욕구 전부를 통칭하여 ‘나의 의지’라고 불렀다.
다른 한편 내가 지각을 통해서 숙고 끝에 내린 대상에 대한 인식은 모두 ‘…으로 보다(see as…)’의 형태를 갖는다. 이때 무엇을 ‘…으로’ 보기 위해서는 항상 일종의 패턴(pattern), 관념(idea), 혹은 표상(representation)이 필요하다. 이처럼 타자에 대한 제3자 시각에서 얻어진 현상은 비트겐슈타인의 외침이나 쇼펜하우어가 맹목적이라고 본 의지의 작용과는 구별된다.
그렇다면 내가 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의지는 더 이상 표상의 세계, 즉 현상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의지는 바로 물자체라고 보아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책 제목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바로 이점, 즉 의지라는 물자체의 세계와 표상이라는 현상의 세계를 모두 이야기하여야만 정상이라는 점을 칸트의 인식론과 대비시켜 말하고 있다.
내가 나의 몸을 움직이는 추동체로서 의지를 물자체로 확인하였다면, 이점은 곧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타인과 인간 이외의 모든 감정 있는 동물에게로 확산될 수 있다. 이 모든 동물에게서 공통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Wille zum Leben)’이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지를 통해 움직이는 존재의 단위를 점차 확대한다면, 개인에서 국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계에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세계의 의지(Wille)는 이 세계의 물자체로서 모든 세계의 움직임은 바로 이 의지의 표현이 된다.
쇼펜하우어 본인이 여러 번 강조하였듯이 이 세계의 유일한 실체로서 브라만(Brahman)을 상정하는 고대인도의 사상과 그의 철학의 유사성은 이제 매우 분명하다.
쇼펜하우어의 세계존재구조.
삶의 고통을 철학적 주제로 선택한 용기 있는 철학자
“마음에 대한 의지의 힘은 건장하지만 눈먼 사람이 앞을 볼 수 있지만 마비된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삶을 욕망하고 기대하고 집착하는 의지는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맹목적이다. 따라서 맹목적 의지에 휘둘리는 인간의 삶 역시 맹목적이며 따라서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목적이 없고 무의미한 쾌락 추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욕구는 필요로부터 즉 결핍으로부터 생긴다. 그것이 충족되면 욕구는 사라진다. 그러나 충족된 욕구가 한가지라면 적어도 열 가지는 거부된 채로 남아 있다. 더구나 욕망은 오래 계속되고 욕구는 한이 없으며 충족은 잠깐이고 그나마도 부족하게 채워지기가 일쑤이다. (…) 그것은 마치 오늘을 연명시켜 삶의 고통을 내일까지 연장시키는 거지에게 베푼 자선과 같은 것일 뿐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4장)
따라서 의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고통을 덜어내는 길이다. 쇼펜하우어가 인도나 초기기독교의 금욕주의에 경도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여기서 쇼펜하우어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의 사상과 불교와의 유사성이 드러난다.
즉 불교의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사성제(四聖諦)를 따르자면,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집착에서 생기고, 고통의 원인은 소멸될 수 있으며, 고통을 소멸하는 길이 있음을 말한다.
삶의 고통을 철학적 주제로 삼았던 철학자, 쇼펜하우어. <출처 : Wikipedia>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불교에 대한 친근감과 그의 철학과의 유사성을 인정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이점을 밝히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보는 고통의 원인은 무명(無明)으로서 무명이란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바로 고통의 원인’이라는 자기지시적(self-referential) 구조를 지니고 있어, 실제로 고통을 벗어나기 전에는 무명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다만 문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점은 의지, 즉 욕구나 욕망이 고통의 원인이라고 본 쇼펜하우어의 직설적인 분석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러나 삶의 고통을 철학적 주제로 선택한 쇼펜하우어의 용기와 정직성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주위에 분명히 드러나 보이는 세계의 고통과 혼돈, 열정, 악에 대하여 이야기한 첫 번째 철학자이다. 이 모든 것을 다른 철학자는 보지 못한 듯하며, 그들은 항상 모든 것을 포괄하는 조화만을 이야기 하여 왔다. 드디어 여기에 우주의 근저에는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는 점을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한 명 있다. (구스타프 융 [기억, 꿈, 성찰])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예술이나 심리학의 영역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의지의 욕구로부터 벗어나 사물의 이데아를 정관할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예술작품의 창작과 향수에 있다고 쇼펜하우어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록 지속적이지는 않지만, 구름 사이로 잠깐 햇살이 비추듯 인생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순간을 의미한다. 쇼펜하우어가 정언명령의 화신 칸트에 대해 독설을 퍼부으며 계몽주의를 비판한 니체에게 영향을 끼친 것도 무리가 아니다.
https://youtu.be/FLK-pBNYd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