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청망청(興淸亡淸)
흥에 겨워 마음대로 즐기는 모양.
돈이나 물건 따위를 마구 쓰는 모양.
폭군 연산군이 재위하다 쫒겨나며 생긴 말이 '흥청망청(興淸亡淸)'이다.
여자와 놀기 좋아하는 연산군은 채홍사(採紅使)라는 관리를 파견하여
조선팔도의 미녀들을 뽑아 기녀로 삼고 이들을 운평(運平)이라 이름지어 불렀는데
당시 이들의 수가 2천 명이 넘었다고 하며 이들에게 줄 숙소가 부족하자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사용하는 숙소를 빼앗아
이들에게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인물이 빼어나고, 가무(歌舞)에 특기가 있으며,
성격이 활달한 운평을 뽑아 궁궐 안에 살게 하였고 이들의 공식 명칭이 흥청(興淸)이다.
흥청이 되면 이들에게는 녹봉과 몸종을 주었고,
그 가족들에게 집과 땅을 주었으며 수시로 점검을 하여 노래와 춤실력이 떨어지거나,
기방 행실이 모자라거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은 흥청은
곧 운평으로 강등시키기도 하였다.
흥청에게는 임금의 총애를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천과(天科)흥청, 반천과(半天科)흥청, 지과(地科)흥청으로 서열을 매겨
분발을 촉구하기도 하였으니 천과흥청의 대표적 인물이 장녹수이다.
연산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흥청들과 놀아났으며
경회루에서 자주 연회를 즐겼다고 연산군일기에 기록돼 있다.
향락을 즐기고 음탕한 생활을 일삼았던 연산군은
폭정의 결과로 중종반정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주었고
결국, 임금에서 군(君)으로 강등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는데
울화병으로 1년도 안 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
이렇게 흥청과 놀아나다 망했다고 하여 백성들은 자제력을 잃어 절제하지 못한 채
오욕락에 취해 사는 모습을 두고 “흥청망청”이라 했는데
기생들의 명칭에서 따온 흥청과 그리고 망한다는 의미의 망청을 결합하여
興淸亡淸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 카페 '에버그린 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