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소유하고 풍요롭게 존재 하라,
-스콧 니어링-
물은 차면 그릇의 크기와 상관없이 넘치고
바람은 세기만큼 무게를 흔든다,
이 얼마나 정제된 한계인가,
그림자는 빛을 따라 사물의 정체를 섬긴다,
적게 소유(所有) 하고 풍요롭게 존재(存在) 하라,
듣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를 느끼는 언어다,
우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에 너무
허기져 있고 집착하는지 모른다,
소유의 개념은 실속의 개념과 다르다,
꺼내 보기 전에는 근사한 포장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달은 차면 기울고 물은 차면 넘친다,
하지만 한치 인간의 속은 욕망으로 채워진
밑빠진 독과 같아서 여간해서는 만족이란
언어를 기억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어제 난 점심에 찬 밥을 물에 말아서 먹었다,
찬이라 봐야 묵은 김치 하나지만 밥은 달고 맛났다,
맛으로 먹기는 부족했을지는 모르지만
한 끼 식사로는 정말 달고 맛있는 점심이었다,
어쩌면 허기가 절반의 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때마다 진수성찬이어야 근사한 식사는 아니다,
삶은 철저하게 현실이고 적응해 나가는 능력이
삶이고 인생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서 생존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가로막는 건 가난해서도
못 배워서도 아닌 지나친 욕망이 그것을
그르 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만족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다,
지족안분(知足安分) 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질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이어야지 그것이
목적이 될 때 그것에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물질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여건
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화가 되는 건
사는 일이 노동이 되고 노동에서 노동으로
끝나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움 행복이 전제되지 않은 일은
사는 게 그저 노동일뿐이다,
가벼운 것을 높이 뜰 수가 있지만 무거운 것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적게 소유(所有) 하고 풍요롭게 존재(存在) 하라,
어쩌면 무소유(無所有)의 사상이 아닐까 싶다,
무소유란 전혀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