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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현존 최고(最古) 은일전집(隱逸傳集)!
《논어》에는 ‘일민(逸民)’이라는 부류가 등장한다. ‘사(士)’의 계급으로서 현능하고 재질을 갖추었다면 마땅히 정치에 참여하고 관직에 나아갈 수 있으나 조정이나 지도자의 눈에 띄지 않아 빠뜨려 누락된 채 살아가는 부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누락’되었다기보다는 도리어 세속을 떠나 초연한 절조를 지키며 자신이 처한 당대의 정치에 비판적이거나 소극적, 또는 거부의 행동으로 버티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마땅히 유가보다는 도가의 뜻을 신봉하게 되고 이 도가가 현학을 거쳐 도교로 발전하면서 그에 따라 이들도 신선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여겨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의 부류에도 속하는, 범위가 확대된 한 집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속세를 벗어나 은둔하는 경향의 고사는 도가적인 색채가 강하게 풍기며 위진남북조 소설의 주류 가운데 하나인 지인소설(志人小說)의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중국 고대 도가문학과 필기소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고사전》은 지인소설이 종래의 사전문학(史傳文學)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된 소설양식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도기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고사전》에 실린 고사 가운데 일부는 후대의 여러 문인들이 전고(典故)로 즐겨 사용해 그 영향력이 자못 크다. 그리고 《고사전》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은일전집(隱逸傳集)’으로 《후한서(後漢書)》 〈일민열전(逸民列傳)〉의 성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대부분의 후대 정사(正史)에서 〈은일전〉을 따로 입전(入傳)하는 기풍을 조성했다.
지식인의 지조와 절개란 무엇인가!
황보밀은 건안(建安) 19년(214)에 태어나 삼국시대 조위(曹魏)를 거쳐 서진(西晉) 무제(武帝, 司馬炎) 태강(太康) 3년(282)에 생을 마쳤다. 《진서(晉書)》 본전에 따르면 그는 평생 병고에 시달렸음에도 눈에서는 책을 떼지 않았고, 손에서는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詩), 부(賦), 뇌(?), 송(頌), 논(論), 난(難) 등 모든 문체에 주옥같은 글을 지었고 이에 따라《고사전》, 《일사전(逸士傳)》, 《열녀전(列女傳)》, 《제왕세기(帝王世紀)》 등 주옥같은 문장을 남긴, 위진시대 가장 박학다식한 문학가이며 역사가이자 문장가이며 의학가로서의 업적을 남긴 대단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황보밀이 채록한 고사의 기준은 엄격했다. 징사(徵士)이되 벼슬을 거부한 경력이 있는 자여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웠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공자와 사마천이 그토록 칭송했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반고(班固)가 높이 여겼던 공승(?勝)과 공사(?舍)라 할지라도 그는 채록하지 않았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으면서 절의를 지켰지만 “고마이간(叩馬而諫)”하여 ‘자굴(自屈)’ 행동을 했다는 이유였고, 두 공 씨는 신망(新莽)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 면에서는 위대하나 일찍이 출사(出仕)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분에 어떠한 흠집도 없어야 하는 인물만을 고사로 한정했던 것이다. 이는 곧 황보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철저하게 투영하고자 한 것이며, 그 무렵 지식인의 ‘추세축리(趨勢逐利)’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 것이다.
서로 마구 죽이기 막장시대 현대인 영혼의 힐링책
《고사전》을 읽노라면 여기에 실린 고사 모두가 실은 황보밀 그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그러하였고, 황보밀 그 자신이 징사(徵士)이자 고사(高士)였으니 그런 사람들만 골라 ‘고사’라는 부류에 넣고 편찬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철저히 한평생 세속적인 성공과 인연을 멀리하고 높은 절개와 지조로 일생을 살아낸 고사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가난은 선비의 상(常)이요, 천함은 도의 실(實)이다. 이 둘을 얻어, 죽을 때까지 근심이 없는 것, 이것이 부귀하면서 신(神)을 어지럽히고 정(精)을 소모함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낫겠는가?”라는 황보밀의 일갈은 부귀와 명예, 세속적 성공에 급급한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오늘날과 같이 상처받고, 경쟁하고, 헐뜯기는 시대에 힐링의 치료약으로 쓸 만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실려 있다. 그저 조용히 한 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