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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쓴 소설입니다.
이곳에 글을 올리기 위해 보름여간을 기다렸다는...
출석체크로 미션하고 등업에 또 5일여 기다리고...
거침없는 충고 귀담아 듣겠습니다.
제발 끝까지 읽어주시고 코멘트좀... 간절하나이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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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없는 공허함속에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나오는 나는 내가 도무지 누구인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하는 이런 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앞길이 창창한 이 중학생님은 차라리 게임이나 열심히 해서 프로게이머가 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날씨는 따뜻해져 개나리가 피었고 조금 있으면 듬성듬성하게 심어져 있는 벚나무에도 꽃이 만발할 것 같았다. 어둠속에서 그렇게 조명을 받은 개나리가 노란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척 터벅터벅 걸으며 나의 발끝만을 쫓았다. 개나리란 본래 꺽어도 아프다 말 못하고 스스로 누군가에게 말을 걸 줄도 모르는 한낱 식물이 아니던가. 바람이 불어 황사가 온다고 했던 아침뉴스의 기상캐스터의 말이 생각난다. 터벅터벅 걷는 내 발은 그렇게 무심하게 학교를 벗어나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은 학교 앞에 하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가 반대방향으로 한 정거장 더 가는 것은 비단 자리에 앉고 싶은 얕은 욕심이 있어서 만은 아닌 것 같다. 매일 아침이면 만나는 중학생 소녀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비슷한 시간대에 버스정류장에서 만나 같은 방향의 버스를 탔다. 더군다나 그녀는 우리학교 다음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듯, 내가 한정거장 거슬러 올라가 버스를 탈때면 가끔씩 그녀가 눈에 띄곤했다. 종종 그녀도 나를 알아보는 듯 했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그저 바라만 보는 나만의 소녀인 것이다.
무심결에 걷던 내발을 향하던 나의 시선이 마법에 걸린듯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아침에 만났던 소녀. 그 소녀가 여러사람 가운데서 예쁘고 귀여운 교복을 입고 나를 바라본다. 나와 눈을 마주치면 언제나 멋쩍은듯 시선을 피하던 소녀가 오늘은 무슨일인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 발을 멈추고 소녀가 점점 저벅저벅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어.”
느끼지 않던 개나리나 벚꽃의 꽃향기가 소녀의 입에서 은은하게 퍼져나와 나의 코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그 향기의 원천인 소녀의 입술이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순간의 짜릿함에 귀가 쫑긋서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다. 드라마나 므흣한 동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손을 이렇게 올려 소녀의 머리칼속으로 넣어 소녀의 뒷머리를 잡는다. 다른손은 소녀의 허리로 향하고 아, 혀로 어떻게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지. 순간 놀라 눈은 감았는데 눈을 떠야하나 말아야 하나.
“지훈아, 일어나야지!”
지훈아, 일어나야지? 지금 그 소녀와 입맞춤 중인데 들리는 이 목소리는 뭐지? 한참 그 소녀와의 입맞춤이 고조되어 서로가 서로의 입을 탐닉하고 그녀의 가슴으로 손이 가고 있는 이 중요한때에 도대체 무슨 개뼉다귀 같은 일이냐고!
순간 눈을 떠 눈앞을 보자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차가운 손이 나의 뱃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악, 뭐냐구 엄마.”
차가운 손도 손이지만 이 징그러운 표정은 또 뭐야. 아악, 그러고보니 그 므흣한 상황에 내 거시기도 커져있는것 같고... 가만 이 끈적한 느낌은 또 뭐람. 이, ㅛㅇㅓㅇㅍㅣㅅㅗㄱㅏㅎㄹㅡㅇㅇㅏㄹㅏㅅ
아, 젠장인지 된장인지... 남자의 비밀을 엄마한테 들킨 것 같아 창피한 것 같기도하고, 그녀와 즐기던 므흣함도 놓쳐 안타깝기도 하다. 양치를 하는둥마는둥 세수를 하는둥마는둥. 아침도 먹는둥마는둥. 일어날때 엄마에게 성질을 좀 내서인지 엄마는 아빠앞에서 내가 요즘 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며 걱정을 하였고, 아빠는 내가 요즘 사춘기라며 이유없이 반항할 때라 대꾸한다. 이유가 없다고? 엄마와 아빠가 밤에 한껏 비밀스런 분위기에 취해있는데 내가 문을 두드리면 좋겠수? 이유가 없다니. 잘 생각해 보셔용, 조금은 얼또당토않는 것으로 울고웃고 할 우리들이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꼭 그런것만은 아니란 말이라구요.
서둘러 교복을 챙겨입고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다? 웃기지 말라구 학교가는데 발걸음이 가벼울리 있겠어? 밤새 내려온 신선한 공기도 그저 내겐 차가운 공기일뿐이다. 아직 떠오르지 않은 해는 나보다 더 게을러 저 멀리 커다란 산 뒤에 숨어있다.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뜀박질로 변해 두정거장즈음 되는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다. 빨리 가면 그녀를 더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림반 활동을 줄이는게 어떠니?”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그림을 접고 일단 공부나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미술선생님의 보살핌 속에 그림을 그려오고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는데는 이리저리 재료비가 많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사용하고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지난 1년여 동안 그려오고 있었지만 예고로 진학하지 않기로 결정된 이상 그림을 그리는데는 많은 시간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공부에 집중하기로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운좋게도 예쁘장하고 착하면서 실력있는 여선생님을 만나 그림에 눈을 뜨게 되고 그려온게 1년여. 선생님과의 만남도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그림을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또 왜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선생님 역시 열심인 나의 모습에 나에게 미소로 답하곤 하였다. 어쩌면 이다음에 결혼을 하더라도 선생님과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싶단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에 흥미를 느끼게 해 준 당사자가 눈앞에서 그림보다 공부에 집중을 하라니 슬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렁그렁 눈에 눈물이 맺혀 흐를 것만 같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었다.
실력이 없다고 내게 호된 질책을 하는 것일까. 내게 어떤 나쁜점을 발견하고 싫어 진 것은 아닐까. 그것이 아니면 또 무엇일까. 괜히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 괴롭다. 슬프다. 눈물이 흐른다. 근거없는 배신감마져 들어 더 이상 뭐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복잡한 감정에 슬퍼했던 어제의 미술실에서의 감정이 떠올랐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면 한창때의 소년소녀들이 학교라는 감옥으로 가기위해 모이는 버스정류장이 나타날 것이다. 육중한 몸으로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버스가 마치 순수한 소년소녀들 사이에 있는 변태 바바리맨 같이 느껴진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어와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일까? 언제나처럼 버스정류장의 뒤쪽 악기상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소녀. 언제나 나를 조롱하듯 그녀는 차분한 모습으로 일찍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헐레벌떡 이렇게 뛰어오는 볼품없는 나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그 소녀. 도도한 소녀의 자태에 약간의 흠이라도 날까 말도 못 걸겠다. 젠장. 그냥 간밤의 꿈속이 그리울 뿐이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학교로 향하는 버스가 오자 그 콩나물 시루속을 향해 비슷비슷한 교복의 학생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학생들, 좀 뒤로 가봐. 뒤로.”
소리치는 버스기사 아저씨도 꺄악꺄악 거리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도 매일아침 등교길은 이렇게 전쟁터나 마찬가지임을 증명해 보였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이렇게 날 전쟁터로 내 몰고 있는 줄은 알고나 있을까. 어렵게어렵게 마지막 학생까지 버스에 오르면 버스기사아저씨는 아무런 표정없이 기어를 넣고 가속발판을 밟는다. 그런데 이것도 기술이라 가속발판을 밟았다가 제동기를 밟으면 관성에 의해 버스에 탄 사람들은 버스의 뒤쪽으로 조금씩 밀리게 마련이다. 이러길 몇차례 여기저기서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버스안은 어느새 콩나물시루보다 더해 빈틈없이 메워지고 눌리어 압축된 땅속의 지층과 같이 밀착이 된다.
뒤로 밀리고 밀리던 나는 비좁은 그곳에서 불편한 자세를 고쳐잡기위해 몸을 살짝 비틀자 흠짓 놀라고 말았다. 도도할것만 같던 그 소녀가 눈앞바로아래 불편한 모습으로 나와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손을 앞으로 하여 불편한 신체접촉을 피하고 애써 나를 외면하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이 또 귀엽기도 하고 샴푸인지 비누인지 모를 향기에 도취되어 머릿속이 아찔하다. 그러자 문뜩 간밤에 꾼 꿈이 기억이나 나의 그것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거시기냐구. 그것은 내 머릿속과는 무관하게 제멋대로 커지질않나 제멋대로 토악질을 해대질 않나. 사람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 정말 일등감이다. 변태로 몰려 남몰래 즐기던 그녀를 바라보는 즐거움마져 날아가 버리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애써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불러보아도, 진지한 자세로 수학공식을 떠올려 보아도 솟아오르는 그것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녀가 이 걸 알아채면 어쩌지. 혹시라도 몸에 닿으면 어쩌지. 순간 마주치는 그녀와의 시선교환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어색해진 그녀가 시선을 회피하고 나 역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그녀에게 들릴 것만 같다.
비좁은 사람들 틈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누가 열었는지 빽빽한 콩나물시루에 신선한 공기를 쏘여주고 싶었는지 창문을 열었고 그 바람을 내가 느끼고 있었다. 창밖에는 회색건물이 가득차 있었지만 작은동산을 끼고 달리던 버스가 노란색 개나리 돌담길을 돌자 한껏 봄 냄새가 나는듯했다. 아, 바로 앞에 있는 그녀의 샴푸향기인가? 이 봄향기를 그녀도 느낄수 있을까. 나는 이제 엄마의 키보다도 확연하게 컸고 올해도 작년같이 키가 훌쩍 커버리면 아빠보다도 더 커질 것만 같다. 나의 키가 이렇게 쑥쑥크고 있다는 것을 엄마아빠는 알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들어 정신을 차렸을땐 어느새 학교에 이르러 정거장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번 정거장이 내가 2년여간 수없이 내려왔던 정거장이지? 이다음은 그녀가 수없이 내려온 중학교 일테고. 그다음 정거장은 어디일까. 또 이 버스는 어디까지 가는 버스일까. 이윽고 뒷문이 열리자 봇물터지듯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정작 나는 무엇 때문인지 내리질 않고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멍하니 저만치 교문앞에 서있는 학생주임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불독! 친구들은 저 선생의 무서움때문인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저 불독선생은 늦잠은 자고 싶지 않을까? 괜히 일찍와서 애들 괴롭히기나하구 말야. 그렇게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푸느니 차라리 집에서 잠이나 더 자지 그래.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우리학교 학생들이 버스를 빠져나가고 버스 안은 비교적 한산해졌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거울로 버스안을 한번 살펴보는가 싶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뒷문을 닫는다. 이젠 그 소녀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주로 남아 있는 버스 안. 평소 같으면 나혼자만 외딴 곳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할법도 했지만 오늘따라 아무려면 어떠랴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와 밀착해있던 그녀도 옷매무새를 다잡고 의자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창밖을 바라본다. 멀어지는 우리학교의 교문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다음 정거장에 다다르자 대부분의 버스승객이 내렸다. 항상 보아오던 그 소녀도 내렸다. 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교문을 향해 잰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직은 여자라기보다 소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 소녀를 무심코 바라보았다. 버스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과 밖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마주친다. 이 버스는 어디로 가는 버스일까.
얼마나 버스가 달렸을까. 도시를 빠져나온 버스가 이따금씩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기를 몇번. 빽빽하니 자리잡았던 회색건물들은 어느새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하더니, 밭이 눈에 띄고 작은 개울을 따라난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어느 한적한 골짜기에 이르자 모든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기에 나도 따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쉼없이 달렸던 버스가 ‘치이익’하는 한숨을 내쉬고, 무표정하게 운전을 하던 버스기사 아저씨도 ‘휴우’하는 한숨을 내쉬며 버스에서 내린다. 초록으로 덮여지기 시작한 산에 이르러서야 버스도, 버스기사아저씨도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막상 어떻게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가 왜 학교앞에서 내리지 않았을까하는 후회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이내 코로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와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에 약간의 두려움속에서도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게으른 해가 그 뒤에서 한껏 졸았을 그 산. 그 산으로 작은 길이 나 있다. 그 곳으로 가면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안락한 공간이 있을 것만 같다.
어느정도 올랐을까. 조금은 언덕진 곳에 억새밭이 펼쳐져 있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내가 걸어왔던 길을 바라보았다.
‘내가 지나온 길이란 말이지!’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고 그 빈자리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억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야를 좀 들어 보면 저 멀리 버스차고가 눈에 들어왔고 밭을 갈아엎는 트랙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면 저쪽편 산이 눈에 들어오는데 듬성듬성 피어있는 분홍빛 진달래가 유난히 눈에 띈다. 김소월이 저 꽃을 보고 시를 지었단 말이지? 진달래꽃라는 시. 그저 예쁘기만 한데 어떻게 그런 아련한 이별을 떠올리고 그런 시를 지었다는 것인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달래꽃이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듯 주변에 흩어져 있다.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불어오는 봄바람에 진달래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 같다. 그래, 하늘은 어떻게 생겼지? 밝은색 하늘빛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어라, 정말 손을 길게 뻗으면 잡힐듯 싶다.
머야 이거. 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고 감상적인거지? 나한테 이런면이 또 있었나. 에이, 쪽팔리게 머야. 계집애도 아니구. 하지만 어떠랴. 이곳은 그 누구도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고 난 그런 자유로움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가방을 옆에 두고 이대로 뒤로 누워 저 위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모습들이 머리속에서 그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내가 그 그려진 그림을 새하얀 도화지에 옮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말한데가 여기여. 여서 오늘 솜씨 자랑 좀 해보자구.”
“허, 그런가? 까투리들아, 게 섯거라. 오늘 특등사수가 오셨다아. 하하.”
“꿩 뿐이겠어. 이 산이 제법 되서 노루도 나온다니까.”
얼만큼 누워있었을까. 한참이나 봄을 느끼고 있었는데 산 아래쪽에서 웬 중년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참. 뭐야. 이 지훈님께서 봄을 느끼시고 계시는데 훼방이라니. 마음같아선 내가 총을 뺏고 내 쫓고 싶었지만 이 지훈님은 아직 중학생 신분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상대는 둘이라구. 내키진 않지만 이대로 있는 것보단 보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루라구? 한번도 노루를 본적이 없는데 보고도 싶어지는데. 이 산 넘어에는 또 뭐가 있을까. 갑자기 산을 오르고 싶어져 서둘러 옆에 둔 가방을 둘러메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이름모를 나무들의 가지들이 앞을 가로 막아서면 손으로 헤쳐지나가고 또 그러면 어김없이 그 가지들이 교복을 후려치기도하고 뺨을 후려치기도 하였다. 짜식들, 왜 지들을 건드리냐 이거냐? 어리석은 것들. 이 몸은 지엄하신 지훈님이시란 말이다. 너희들이 알아서 비켜야 하지 감히 길을 막으니 그런것 아니더냐. 알아서 순순히 길을 비켜서면 얼마나 좋으냔 말이다. 마치 세상 사람들처럼. 수학공식을 못 외워 혼내는 선생님처럼. 머리가 길다며 나무라는 불독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이끌림에 오르는 순간 작은 계곡을 넘어 저쪽의 능선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언가를 입에서 오믈오믈하는가 싶더니 이쪽을 바라보던 두마리의 사슴같은 그것. 아까 포수들이 말하던 노루인가보다. 아니, 내가 노루를 보다니.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재 보는 노루인 것 같다. 엄마와 새끼인 가족인가? 조금은 덩치가 큰 한마리와 작은체구의 또다른 한마리였다. 커다란 한마리는 나를 보는가 싶더니 서둘러 저쪽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 달아났고 작은 놈은 조금 움직이는가 싶더니 나를 힐끗 쳐다보고 다시 커다란 녀석을 쫓아 깡총깡총 뛰어갔다.
“수줍어 하기는...”
난 총도없고, 노루를 어떻게 해 볼 요량도 아닌데 말이다. 마치 아침에 만났던 그 소녀같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산꾼이 된 것처럼 두걸음 정도되는 길이의 나뭇가지를 든 나는 조금은 뾰루퉁해져 나를 가로막고 있는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조금만 더 가면 빽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그곳에 원래 나의 집이 있는 것처럼 이리 휙 저리 휙 나뭇가지를 거침없이 휘둘러 대며 발에 힘을 주어 걸었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자 나 자신도 놀라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다니. 마치 상상속 영화에서나 있음직한 햇볕이 들지 않는 소나무 숲이 한걸음쯤의 폭의 산길을 따라 저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산을 한동안 올라서인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다가와 내 몸을 식혀주고 있었다. 산림욕, 산림욕 한다지만 나만큼 제대로 산림욕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런 숲을 발견한 내가 마치 콜롬버스가된 모양으로 신이난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가 아닌것도 같다. 고기부페집에서 보았던 수정과 위에 동동 띄워진 잣. 그 잣나무 인 것 같다. 보진 못했지만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솔방울이 아닌 그보다 몇배는 커다란 잣열매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듬성듬성 햇살이 잣나무 숲을 비집고 들어와 그렇게 어둡지 만은 않았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둑어둑한 것이 조금은 음산한 느낌마저 드는 이곳이 신기하면서도 왠지 마음에 든다. 어둑어둑한 저 곳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나타날 것만 같다.
몇걸음을 걷자 잣잎이 두껍게 쌓여 오솔길이 푹신푹신하게 느껴져온다. 발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침대위에 풀썩하고 눕는느낌이리라. 알수없는 신비스럽고 황홀한 이 분위기에 사로잡혀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숲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멀리 넘어져 있는 고목이 팔을 들어 나를 반긴다. 마치 오래전 언젠가 겪었었던것 같은 이 느낌. 이 모습을 어떻게 그리면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자연스레 들었다.
잣열매가 있으니 숲에 사는 동물들에겐 더 없는 먹이가 될 터. 다람쥐가 나무와 나무를 뛰어다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신기한 녀석이다. 가벼운 자신의 몸을 자랑하듯 이 나무의 가지에서 훌쩍하고 뛰어올라 반대편 나뭇가지에 착지하는 것이 못내 부럽기까지 하다.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잣의 향이 코를 자극해 머리를 맑게 정화시켜준다. 신선한 공기가 듬뿍 나의 폐 속을 헤집어 맑게 해주는 것 같다. 절로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세상에, 전부가 그림이 아닌가! 이 모든걸 어떻게 한폭의 그림에 넣지?
얼마를 걸었을까. 몸도 식었고 갈증이 나기 시작해 일부러 침을 생기게 하여 목을 넘기기도 여러 차례. 여전히 신기한 숲이었지만 계속적으로 뻗어있는 길이 한정 없을 것 같다. 처음 숲에 들어섰을 때의 시원함은 이제 없어지고 오히려 추워지는 것 같다. 주변을 살피던 나는 나도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길을 따라 잣잎을 보며 걸을 뿐이었다. 갈증으로 나오지도 않는 침에 짜증이 밀려오고 그런 짜증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샘물이다. 어둑어둑한 이 숲에 눈에 띄게 굵은 햇살이 내리쪼이고 그 한가운데 옹달샘이 위치하고 있다. 조로로록하고 조그만 돌을 때리며 소리를 내는 샘물하며, 산새가 다가와 물 한모금 마시고 물속에 뛰어드는 모습까지 눈에 보인다. 내가 뛰어 달려가자 목욕을 즐기던 이름모를 산새가 놀라 퍼드덕 날개짓을 하며 멀리 달아났다.
난 서둘러 물이 솟아나는 옹달샘에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어 손으로 땅을 짚고 코를 박았다. 아차, 등에 맨 가방이 때는 이때라 미끄러져 내려와 다시 허리를 세웠다. 이번엔 서두르지않고 조심스럽게 물을 먹으려는데 다시 가방이 슬금슬금 내려와 약을 올린다. 요놈보게. 급한 마음에 옹달샘을 독차지하고 새를 내쫓는 나에게 가방이 나무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허리를 들어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코를 박고 시원한 샘물을 입으로 빨아들여 목으로 한모금 한모금 넘겼다.
‘꿀꺽, 꿀꺽, 꿀거덕.’
나혼자만 들리는 물 목넘기는 소리겠지만 그 청초한 소리가 온 숲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크게 한숨 돌리니 마치 햇볕이 엄마의 품인양 따스하게 품어 주었따.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신다. 엉, 근데 뭐지? 뭔가 앞에 있었던것 같은데. 물을 마시던 나는 눈을 치켜뜨자 옹달샘에 비친 맞은편의 그곳에 있는 어리어리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놀라 고개를 들어 그 형채를 확인한다. 헉, 뭐야. 난 놀라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노루다. 아까 보았던 새끼노루인 것 같다. 녀석도 놀랐는지 한두걸음 뒤로 물러서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애써 나를 외면하던 소녀의 눈동자와 닮은 것 같다. 옹달샘 같이 맑은 눈동자에 옆에 달린 귀가 귀엽게 팔랑거린다. 녀석의 모습을 가까이 보고 있음에도 더욱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몸을 앞으로 내밀기 시작한다. 녀석도 고개를 내밀고 한두걸음 걸어 내게 다가온다. 벌렁벌렁거리는 콧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기다란 눈썹이 소녀의 눈썹같이 느껴진다. 점점 그렇게 우리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듯 싶었는데 아차, 몸을 앞으로 기울이다가 중심을 놓쳐 물에 빠질뻔하였다. 기우뚱 거리는 나의 몸에 손을 샘물 안으로 넣어 중심을 다시 잡았다. 기우뚱하는 나의 모습에 놀랐는지 녀석이 다시 한두걸음 뒤로 물러선다. 언제나 서두름은 상대를 한걸음 물러서게 만들어 더 멀어지게 하는가 보다. 이런 때를 일컬어 과유불급이라고 하나? 과유불급이란 단어를 설명하던 국어선생의 짧고 뭉뚝한 일명 정신봉이 생각나는 건 뭔지. 나 4차원인건가.
천천히 몸을 뒤로하여 옹달샘에 짚었던 손을 꺼내자 녀석이 다가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나를 살펴본다. 가만가만 움직여 물에 묻은 손을 교복에 아무렇게나 닦고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자 나를 살피던 녀석이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자 옹달샘에 작은 너울이 진다. 길게 늘여진 녀석의 미려한 목선과 소녀의 목선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마시는 모습이 귀엽고 종긋 솟아올라 움직이는 귀가 귀엽다. 충분히 물을 마신듯한 녀석이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켜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도 더이상 놀라 뒤로 물러서지 않고 다가오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가까이 다가선 나는 손을 서서히 들어 녀석을 향해 뻗었다. 녀석도 그 기다란 목을 늘여 나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으려한다. 순간 내가 갑자기 움직이면 물러서겠지, 손을 빠르게 움직여 잡으려하면 녀석이 달아나버리겠지. 천천히 손을 뻗자 녀석이 촉촉히 젖어있는 코끝으로 나의 손끝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으며 다가온다. 간질간질 간지러운 느낌이 손끝에서 느껴져 다가오고 이내 온 몸으로 퍼져 짜릿해진다. 어느정도 나의 체취를 확인하였으리라 생각이든 나는 한걸음 더 다가가 손을 더욱 뻗어 녀석의 볼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소녀의 볼을 보듬으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녀석의 고운 털이 부드럽다. 처음엔 무심코 녀석의 볼을 보듬어 주었지만 이젠 그것도 부족해 녀석의 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한올한올 녀석의 털에 대한 감촉이 손바닥 전체로 느껴져 푸근해져 온다. 그 소녀의 머릿결도 이와 같을까. 녀석의 따듯한 체온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몇번을 쓰다듬은 나는 더욱 다가가 녀석을 꼬옥 끌어 안아보았다. 겁을 내며 도망가지 않는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전해져오는 녀석의 체온이 서늘해진 내 몸을 따듯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꼬옥 끌어안자 서로의 볼에 대한 촉감하며 체온이 전해져 온다. 이봐, 느껴져? 내 심장이 이렇게 요동 치고 있는게? 요동치는 심장이 운율감있게 귓가를 때려온다.
녀석을 끌어안았던 나는 잠시후 손을 풀어 녀석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옹달샘 한가운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물고기도 없는 저곳에 뭐가 있다고 저리 쳐다보지? 난 녀석이 응시하는 곳을 같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곳. 과연 그곳에 무언가 있었다. 물도 투명하고 그것도 투명했지만 한가운데 새까만 점이 움직움직거려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운데 점점이 완두콩처럼 배열된 것이 움직이는게 신기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얼음같은 물이 피부에 닿아 차가왔지만 개념치않았다. 그리고 양손을 벌려 물속에 넣고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양손이 모이자 그곳엔 흐물흐물 물컹물컹 그것의 느낌이 손바닥으로 전해져 왔다. 물이 쪼로록 손의 틈을 타고 흘러내리고 이내 그것만이 손에 남자 그것으로 부터 느껴지는 감촉이 사뭇 새롭다. 물컹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이것의 안쪽에는 과연 무엇인가 꿈틀꿈틀대고 있다. 마치 그 꿈틀대는 것에 손바닥이 간지럽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 같다. 몸을 돌려 양손에 보이는 그것을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녀석은 고개를 내밀어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려한다. 똘망똘망한 녀석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쫑긋 솟은 귀가 움직움직 거린다. 소설이나 게임속의 요정의 귀가 이런 모습일까.
“알아? 도룡뇽알이야.”
그러자 녀석은 이번엔 저벅저벅 걸어 또다른 쪽으로 향한 길로 몇걸음 걷더니 나를 바라본다. 마치 따라 오라는 듯이.
“뭐야? 따라 오라구?”
소녀의 부름인데 어찌 거부하랴. 나는 녀석의 눈빛에 이끌려 서둘러 신발을 신고 녀석이 걷고 있는 쪽으로 다가가 같이 걸었다. 나는 숲이 주는 신선한공기와 여유로움을 느끼며 걸었다. 휘파람을 불며 걷기를 잠깐, 갑자기 녀석이 멈추어 무언가 뚤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번에도 무엇인가 싶어 나도 녀석의 고정되어있는 시선의 끝을 잡았다.
“뭐지?”
작은 돌이 위치한 그곳에는 수많은 개미가 작은 개미굴에서 빠져 나오며 일대 거창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개미들이 떼어낸 작은 흙덩어리들이 이만큼이나 수북이 쌓여 그들이 이룩해낸 대업을 대변하고 있었다. 종종 발끝을 걸어 넘어트리기도 하는 돌은 그들에겐 뛰어난 지지석인 모양이다. 무너지지않는 돌에 근거하여 저 안쪽에는 그들의 안락한 집이 거미줄처럼 뻗어있을 것이고, 또 그곳엔 부지런히 집을 짓는 성인개미들의 보살핌에 알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게 열심히 자신의 일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부지런한 그들은 이미 개미와 배짱이라는 동화가 나왔을 정도로 누구나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는 모습이 가련하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돈이 나오나? 이들처럼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 볼품없는 나의 그림을 돈을 받고 팔수 있을까. 하긴 녀석들은 돈이 필요 없지 않은가. 그저 자신의 후손들이 안락하게 자라나 무리가 번성하기를 바랄뿐일테지. 안락한 것은 무엇이고 또 번성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안락함이란 비바람이 부는 집밖이 아닌 집안이고, 번성한다는 것은 동족이 늘어나는 것? 다른 개미들의 도둑질이 있어도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는 힘? 그런것들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 감정들이 저들에게 있을까? 곤충들도 감정이 있을까. 기뻐하고 슬퍼할까.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면 사람들처럼 관절이 아파 요통이고 동통이고하는 것들은 없을까. 아마도 내가 발로 짓이겨 저들을 괴롭힌다면 녀석들중 일부는 죽을테지. 또 일부는 더듬이가 떨어져나가고 발이 떨어져 나갈테지. 그러면 저 굴속에 있을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은 어쩌나...
한참이나 개미굴을 쳐다보던 나는 이내 시무룩해져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 일었던 개미굴을 망가트리고 싶단 생각은 이내 사라져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곧이어 그 작은 노루가 나를 따른다.
그래도 그 안쪽에 있는 여왕개미는 살아남을 테지? 열심히 만들어낸 집속에 앉아 산란을 하고 있을 여왕개미겠지. 아마도 녀석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수많은 개미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겠지. 그리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른척한채 일을 강요하고 있을거야. 아마도 개미들은 그들의 조상중 일부가 그렇게 죽어가고 힘들었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른다. 그저 여왕개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겠지. 획일성은 아마도 여왕개미의 그런 지위에서 출발하는 것일께다. 녀석은 안에서 일개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을거야. 얼마나 쳐 먹으면 그렇게 많은 알을 낳을수 있겠어? 그러면서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 개미의 고통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을거야. 마치 사람들이 사는 그 곳 처럼.
생각의 끝을 쫓아 또 다른 생각을 이어가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뒤따르던 노루가 이내 나를 앞질러 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아기 노루가 가만히 고목이 된 듯 한곳을 응시한다. 나는 또 녀석이 무엇인가를 발견했나 싶어 그곳을 바라본다. 어라? 이곳에도 개미가 있다. 아까와 같이 수북이 쌓인 개미가 떼어낸 흙덩어리들.
이런 개미굴은 십여걸음을 걸을때 마다 있었다. 허, 참. 신기할세. 그렇게 개미굴을 쫓아 오르는 산길은 어느새 잣나무숲은 없어지고 태양이 저 높은 곳에 걸려 나와 작은 노루를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연거푸 개미굴을 찾아 오르는 산행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나를 쫓아와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맺히게 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그저 재미있는 산책으로 느껴져 올 뿐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멈추는 녀석. 또 개미굴을 발견했으려나 생각 할 때...
아차, 이게뭐야. 햇빛에 반짝이는 비늘을 가진 뱀이 각진 삼각형 얼굴을 자랑하며 둥글둥글 또아리를 틀고 코앞에 있는 노루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삼각형을 가진 뱀은 살모사란 기억이 났다. 독이 독할수록 삼각형이 또렷하다는데.
“아악!”
아차 싶어 나는 노루를 비탈진쪽으로 밀치고 나도 냅다 뛰었다. 녀석도 나의 비명소리에 위급한 상황임을 눈치 채었는지 이만큼이나 비탈진 곳을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말이 내려오는 것이지 칡덩쿨이 무성한 비탈진 산에 발을 내딛으면, 허공에 뜬 칡섶으로 인해 푹하고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결국 떼굴떼굴 구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내 신발이 벗겨져 겨우 양손으로 신발을 움켜쥐고 녀석과 함께 비탈진 산을 굴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긁히는 얼굴도 신경을 못쓴채 그저 가파른 비탈진 산을 급하게 내려오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굴러내려온 우리는 능선과 능선이 만나는 계곡이 다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하하하하하!”
얼굴을 긁혀 피가나고 쓰라렸지만 또아리를 튼 뱀에 놀라 이렇게 내려온 것이 웃기고, 또한 똘망똘망 쳐다보는 녀석의 모습이 웃기다. 녀석도 재미있는지 깡총깡총 뛰며 제자리를 맴맴 돈다. 나는 그렇게 마음껏 웃어재키곤 뒤로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장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좋다. 어짜피 지금 이곳엔 도화지가 없지 않은가. 그저 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지금을 잘 기억해두고 싶다.
이 그림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었다가 새하얀 도화지에 천천히 옮겨야지. 언제나 상황은 내가 하고 싶은데로 돌아가지 않지 않았던가. 천천히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다음에라도 있을 것 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그림을 그릴 재료를 구할 수 있을 거야. 지혜. 지혜란 단어가 떠올랐다. 어쩌면 서두르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찾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오늘의 기억을 잘 기억해 두는 것일 게다.
그렇게 누워 한참을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불현듯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대로 누워 오랫동안 있고 싶긴하지만. 가슴 한켠에서 점점 커져오는 그 생각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나의 이런 혼자만의 싸움에 골몰할 때 무엇인가 이마에 다가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것이 느껴진다.
“야앗!!”
갑자기 눈을 뜨고 크게 소리를 질러 아기노루를 혼내준다. 우린 또 그게 재미있어 한참이나 웃었다.
한참이나 크게 웃었더니 모든 시름이 다 사라진듯하다. 웃다지친 나는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작은 냇가로 내려가 긁힌 얼굴을 닦고 쓰라린 손등과 개울에 비친 얼굴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아팠지만 그런데로 참을만하다. 이런 쓰라림 없이 이런 재미있는 일을 경험할 수 있을까. 마치 인생처럼 말이다.
얼굴을 어루만지던 나는 계곡위쪽 저쪽의 수풀사이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었다. 수풀의 움직임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그곳에서 반쯤 나온 낯익은 노루의 상체가 보였다. 녀석의 엄마겠지. 몇시간이겠지만 어미노루는 없어진 아이를 찾아 헤매었던듯 싶다. 행여 사람이 놓은 덫에 걸리진 않았을까. 못된 사람들에게 걸려 몹쓸 짓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어 탈이 나진 않았을까. 세상에 어미들은 그렇게 마음 졸이며 살아가는가 보다.
“나,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내가 하는 말을 이해는 하는 것일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애처롭다. 버스에 탄채 교문으로 향하던 소녀의 눈빛과도 닮았다. 쫑긋 세운 녀석의 귀가 움직거리며 나를 바라 보았지만, 나는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내가 지났던 잦나무 숲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구르다시피 내려온 비탈진 산이 보였다. 그리고 양능선 사이로 계곡이 있었는데 그 계곡으로 왼쪽 잦나무숲에서 출발한듯한 작은 도랑이 내려왔고, 그와 대칭적으로 어미노루가 나타난 곳으로 작은 산길이 나 있었다. 아마도 이 도랑은 내가 가방을 놓고 온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듯 싶다.
“잘 지내야 되.”
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뒤를 보지 않고 작은 개울을 따라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걸음을 걷던 나는 아기노루가 궁금해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뒤로 돌아볼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기노루가 내가 돌아보는 것과 때를 맞추어 뒤돌아본다. 저 작은 산길을 따라가면 녀석들의 안식처가 있겠지. 저쪽에 있는 녀석이었지만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있는듯 싶었다. 녀석은 어미를 따라가며 몇번이고 뒤를 돌아본다. 나는 애써 외면하며 다리에 힘을 더욱 주어 개울의 작은 돌들을 힘껏 밟아 눌러 계곡을 따라 올랐다. 진달래나무를 지나치자 나뭇가지가 흔들려 꽃잎들이 허공에 날린다. 나의 발이 그 진달래 꽃잎들을 즈려밟는다.
다행히 가방이 있는곳 까지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고 길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해가 하늘 가운데를 지나 서쪽 하늘로 가고 있었지만 서쪽 지평선너머로 넘어가기 까지는 몇시간 더 있어야 할 듯 싶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느라 힘이들고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물을 많이 마셔두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가방을 둘러메고 신발끈을 다시 강하게 묶었다.
‘타아앙~!’
왼쪽, 오른쪽 신발끈을 묶는데 커다란 총소리가 계곡을 가득메우며 차올라 온산을 뒤흔든다. 놀란 새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나뭇가지를 넘나드는 다람쥐가 놀라 옹이 안으로 몸을 숨긴다. 어둠속 잣나무숲 저편에서 싸늘한 기운이 나의 몸을 엄습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도 하지 않았고 떠밀지도 않았다.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가 올랐던 도랑을 따라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특등사수가 왔다며 설레발을 치던, 산이 제법되서 노루가 나온다던 포수들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무슨일이 있으면 어쩌지. 설마, 그렇지 않을거야. 아니 그 재수없는 놈들은 왜 오늘 같은날 이곳에 온거야. 꿩을 잡아 간다고? 아니 꿩이 지네거야? 숲이 키운 것을. 산에 노루가 지네들 거냐구. 왜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 가냐구. 그저 당신네들 요식행위를 위해 취미생활을 위해 태어난 꿩이 아니고 노루가 아니란 말야. 거침없이 달려드는 나뭇가지들의 습격을 손으로 밀쳐내었지만, 손등으로, 얼굴로 달려드는 모든 나뭇가지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것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거친 산 비탈길을 따라 정신없이 내려오니 아까 녀석과 헤어진 그곳에서 중년 아저씨 둘이 있었다. 한명은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또다른 한명은 엽총을 들어 무엇인가를 조준하고 있다.
“아악!”
나는 안돼란 말조차 생각이 나지 않아 무조건 비명을 지르고 보았다.
‘타아앙!’
또다시 총소리가 온 계곡을 가득 메우며 메아리친다. 나는 서둘러 몸을 날려 총을 겨누었던 아저씨의 몸을 밀쳐내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의 몸이 땅바닥에 뒹굴고 엽총이 땅바닥에 뒹군다.
“아니, 어떤 XX야?”
“누가 여기서 사냥 같은거하래요?”
“얌마. 우리가 사냥을 하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아아, 몰라요! 하여간 안되요. 사냥하지 말란 말예욧.”
땅바닥에 뒹굴던 아저씨는 일어서자마자 나의 멱살을 잡으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나도 지지않고 같이 소리를 질러대었다. 억센 아저씨의 손길에 점점 숨이 막혀와 나는 발버둥을 쳤다. 옆의 또다른 아저씨가 놀라 허둥대며 다가와 애써 나의 멱살을 잡은 아저씨의 손을 풀어내려 한다.
“아아, 이보게. 그만, 그만.”
그리고 뭔가 소곤거리며 말하는 아저씨. 그러자 나의 멱살을 잡았던 아저씨가 멱살을 풀곤 내동댕이쳐진 엽총을 집어들며 아래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걸으며 중얼거린다.
“원, 재수없으려니깐...”
흥, 뭔가 캥기는게 있나보지? 그러니까 저렇게 속닥거리기나하고. 어른들이란 자기들 세계에 갇혀 나같은 사람에게 좀더 자상하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린 우리들은 모른다면서 말이다.
나 역시 씩씩거리며 총을 겨누었던 아저씨를 노려보다 갑자기 생각난듯 고개를 돌려 반대쪽 계곡 산 능선쪽을 향하는 길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그쪽 수풀의 움직임 속에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 고개를 내밀고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는 녀석을 발견한 것이다.
“왜 다시 내려왔어어. 엄마 옆에 있지 않고오!”
달려가 녀석을 얼싸 안은 나는 알아들을리 없는 녀석에게 성을 내고 말았다.
“가자, 엄마한테. 같이가.”
나와 녀석은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리고 말고를 떠나 벌써부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는 다리, 점점 무엇인가를 향해가는 우리. 그곳엔 아마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란 강한 믿음에 무언가에 홀린듯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나나, 가던길을 멈추고 돌아오던 녀석이나, 각자가 가던 길에서 잠시 샛길로 들어섰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헤매긴 했지만 어찌 헤매는 것이 우리뿐이랴. 배고픔도 잊고 다리아픔도 잊고 길을 따라 무작정 걷고뛰어 우린 어느새 산정상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황혼에 물든 하늘과 그것을 머리에 인 대지. 그리고 저 멀리 내가 사는 도시가 있었고, 그 빌딩숲 너머에 붉은 태양이 지고 있었다.
“보여, 저기? 저 도시가 내가 사는 곳이야.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그리고 노을진 하늘과 땅. 첩첩이 병풍을 두른 산들. 가만히 대지를 바라보던 나는 숨을 깊게 들여마셔 몸을 크게 부풀려 한껏 공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내 질렀다.
“야아아아~~!”
누구를 부르는 소리일까. 무엇을 향한 외침일까. 가슴속에 맺힌 무엇에게 난 크게 고함치고 있다.
“호오~~!”
저 멀리 누군가가 나에게 대답을 하듯 메아리가 다가온다. 이산에서도 저산에서도. 그래 너희들도 잘 있구나. 마치 오랜 친구가 나에게 화답하는 듯싶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나 반가움에 설레어하는 것 같다. 옆에 있던 녀석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봐 주며 귀를 쫑긋 세워 움직거린다.
“하하.”
그렇게 잠시 상념에 잠기자니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오는 웃음인지도 모르면서 난 기분이 좋아 웃고만 것이다.
그리고 잠시후 산정상을 올라오는 또다른 저쪽 길에서 수풀이 움직이더니 녀석의 어미가 나타났다. 이제 녀석을 돌려보내 주어야 할 시간. 난 녀석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녀석의 어미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가늘지만 강한발로 땅을 굴러 어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나도 발을 돌렸다. 나도 돌아가야하지 않던가. 아차, 그런데 어쩌지. 어디로 가야 빨리 하산을 할수가 있지? 능선을 따라난 갈림길이 무려 다섯 갈래나 된다는 것을 보고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젠장. ㅣㄴㅏㅎㅅㅡㄹㅏㅍㄹㅏㄷㅔㅅㅍㅣㅇ
망설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데 어느새 녀석이 다가와 또다른 산길로 접어들며 나를 기다린다. 이번엔 녀석의 어미도 녀석의 옆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래? 그쪽이야?”
무슨 생각에서 난 녀석을 이렇게 철석같이 믿는지. 아마도 녀석의 눈이 소녀의 그것과 닮아서? 무작정 녀석이 접어든 길을 따라 갔다. 이내 산길은 어둑어둑해졌고 나도 그들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내려가기 시작한다. 아기노루도 달리고 어미노루도 달리고 나도 달린다. 달리는 걸음걸음이 반복되고 늘어나면, 어느새 잣나무숲이 나오고 억새밭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버스종점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어둠은 대지를 뒤 덮었고 그 가운데 멀리 한대의 버스가 정면의 등을 밝히고 서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심호흡을 하고 난 녀석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한달음에 하산을 완료하고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하니 또다른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꾸다 잠에서 깬 것 같다. 아, 진짜 꿈이었나? 난 어느새 아침에 학교를 가기위해 왔던 버스정류장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다리는 오만근 족쇄를 끌고가는 것 같고, 손등과 얼굴에는 수없이 긁힌 추억이 있었다. 그렇게 난 지친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온 집에는 미술선생님이 와 있었다. 순간 놀라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데 서둘러 미술선생님은 나에게 쉬라는 말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며 한마디를 남긴다.
“지훈아, 언제라도 그림 그리고 싶으면 미술실로 와도 돼.”
그런가요? 하지만 전 선생님이 그런말을 하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생각이었거든요. 인문계고등학교를 간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겠어요? 그냥 오늘의 설레이고 기뻤던 일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을 뿐이라구요. 교복을 어떻게 벗었고 어떻게 씻었고 어떻게 저녁을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결코 15년의 인생길이란 것이 긴 사회경험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또 15년이 결코 짧다고만 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난관과 갈림길이 있었을 것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럴때마다 어떻게든 그 순간을 헤쳐 나왔던 것이다. 때론 사냥꾼이 싫어 길을 떠났고, 때론 누군가가 보고싶어하는 도룡뇽의 알을 보여주었고, 때론 누군가의 위험을 알고 오던길을 되돌아가기도 하였다. 또, 때론 여러갈래의 갈림길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어느 순간엔 다른 누군가가 싫어 쫓기듯 회피하였다. 순간순간마다 닥쳐오는 위험은 내가 예측하기보단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났고, 그럴때면 난 슬그머니 피하기도하고 고집을 피우기도하고 도움을 받기도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그런 순간순간들을 겪어왔던 것 같다. 마치 그 모든 순간순간들을 꿋꿋히 헤쳐나갈 사람들이란 걸 증명하려는 듯이 말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비좁은 버스안에서 어제의 일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는데 늘 보아오던 소녀가 커다란 키의 남학생들 틈에서 힘겨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내 앞에 있던 젊은 회사원인듯한 사내가 자리에 일어난다.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손을 쭈욱 뻗어 소녀의 손을 거칠게 잡아끌어 눈앞의 빈자리에 소녀를 앉혔다. 그리고 무덤덤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노란색 개나리가 활짝피었고 그 사이에 아기노루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향긋한 꽃향기가 나의 코를 찌르고, 상냥한 소녀의 노랫소리가 나의 귀를 간지럽힌다.
“고, 고마워... 어젠 걱정했어.”
첫댓글 우오옹.. 엄청난 길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뭔가 활기차면서 감상적이군요. 아주 좋습니다. 으음.
오옷, 댓글 ㅠ,.ㅜ 감동이어라... 다 읽어주신것만으로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왕~~재밌어요>ㅡ<
ㄳㄳ 재미있다니 저역시 기쁩니다.
잘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