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발병에서 임종까지의 시간별 경과를 정리하면 이렇다. 1월 20일 오전 11시 고종은 촉탁의 안상호가 배진한 뒤 아침 식사를 했다. 오후 3시에 가미온담탕을 복용하고 가미오카와 도가와의 진찰을 받았다. 오후 9시엔 소화제로 가미양위탕을 복용했다. 밤 10시엔 저녁 식사를 했고, 전의 김형배와 촉탁의 안상호의 진찰을 받았으며 12시와 1월 21일 새벽 1시 사이에 자다 발병했다. 전의 김형배가 청심환을 처방하고 도가와가 참궁해 진찰했으며 새벽 2시 30분에 안상호가, 4시 53분엔 가미오카가, 5시 30분엔 모리야스 하가가 배진했다.
독살과 관련한 구체적 기록은 윤치영의 일기다. 기록은 고종의 시신을 목격한 명성황후의 사촌 동생 민영달이 중추원 함의 한진창에게 한 말을 듣고 적은 것이다. 1920년 10월 13일자 기록은 독살 혐의를 몇 가지로 분류했다.
① 건강하던 고종 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 후 죽었다.
② 고종 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 사람들이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③ 민영달과 몇몇 인사는 약용 솜으로 고종황제의 입안을 닦아내다 황제의 이가 모두 구강 안에 빠져 있고 혀가 닳아 없어졌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