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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여신, 요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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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남신들보다 훨씬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 주신들에 속하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알테미스 여신들 외에 뮤즈라는 문화의 여신들이 있다. 이들은 아홉 명의 자매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우스와 므네모시네(記憶)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뮤즈란 음악의 신이라는 뜻이지만 음악 외에도 문학, 과학, 역사, 천문, 그 외에도 향연과 무용, 사교적인 모든 환락과 예술을 담당했다 한다. 뮤즈들은 아폴론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여신들 중에는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운명의 여신들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운명의 실을 잣다가 가위로 싹뚝 자르기도 하는데, 세 자매로 구성된 이 운명의 여신들은 테미스(지혜) 여신의 딸들이었으며 테미스는 제우스의 두 번째 부인이자 보좌역을 하는 여신이었다.
운명의 여신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복수의 여신들도 있다. 이들은 공적인 재판을 피하거나 그것을 무시하는 자들의 죄를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늘로 벌하는 신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그 머리카락이 올올이 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다. 동양의 지혜가 맹목의 신앙을 비판하는 마지막 때의 사회현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복수의 여신들보다 더 무서운 신이 그라이아이(老女)라는 백발의 여신들이었다. 이들은 고르곤이라고도 불린 메두사의 자매들인데, 태어날 때부터 백발을 가지고 태어나 그렇게 불렸다 한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모습의 처녀였으나 아테나 여신을 모욕하고 그 아름다움을 겨루다가 무서운 모습의 고르곤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메두사라는 이름은 여왕이라는 뜻의 이름이며, 그녀의 자매들인 그라이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입과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눈과 입을 가지고 서로 번갈아가며 그것을 사용했다 한다. 하나의 입과 눈을 공동으로 사용했다는 뜻인 것이다.
하나의 입과 눈이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 시대의 언론기관을 의미하는 것 같다. 백발의 여신들은 같은 언론기관을 통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 시대의 종교적 대모(代母)들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백발의 여신들이라 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숲과 자연 속에 사는 많은 님프라는 여신들이 있었다. 신이라기보다 요정으로 불리는 님프들도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요정이 '에코'였다. 에코는 숲과 언덕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사냥을 즐기거나 숲속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한다. 또한 알테미스 여신이 이 에코를 좋아해서 사냥에 늘 데리고 다녔는데, 에코에게는 한 가지 나쁜 버릇이 있었다 한다. 말이 너무 많아서 잡담할 때건 입씨름을 할 때건 늘 생떼를 쓰거나 남들의 말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지껄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의 비밀스런 애인을 찾아 숲속을 헤매던 헤라 여신을 붙잡고 수다를 떠는 바람에 헤라가 제우스를 놓치게 한 결과를 낳았다 한다. 화가 난 헤라는 그녀가 더 이상 수다를 떨지 못하게 하고, 다만 누가 먼저 말을 해야 그 뒤를 따라서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다. '에코'는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요정 에코는 숲속에서 사냥을 즐기는 나르키소스라는 미남청년을 만나 짝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한 마디도 말을 할 수 없는 에코는 나르키소스가 먼저 말을 해야 그 말을 받아서 할 수 있었고, 또 나르키소스는 요정이나 여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냥에만 정신이 팔린 청년이었다. 요정 에코는 말도 못하는 상사병으로 인해 나날이 야위어가고, 급기야는 절벽의 바위로 변해 산을 찾는 사람들의 외침만 따라서 부르는 메아리가 된 것이다.
나르키소스는 그 후에도 많은 요정들의 사랑을 물리치고 냉담한 청년의 기질을 버리지 못했다 한다. 그러자 님프들이 복수의 여신에게 호소했고, 복수의 여신은 나르키소스의 냉담함을 심판해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반하는 고통을 당하게 했다 한다. 숲속의 아주 깨끗한 샘물이 나르키소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그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 시작한 나르키소스는 그 샘가를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그림자만 드려다보다가 여위어 죽고 만 것이다.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한 송이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나르키소스의 신화는 대표적인 그리스 신화로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나르키소스와 에코의 신화는 이 시대를 향해 무엇을 상징하고 있을까?
상단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의 신 에로스는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에로스 신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에로스의 또 다른 이름은 큐피트인데 큐피트는 '욕망'이라는 뜻의 단어라 한다. 태초에 카오스(혼돈)로부터 태어난 존재이며 대지의 신 가이아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사랑으로 맺어질 수 있도록 도와 준 신이다. 그래서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보다 더 오래된 신으로 알고 있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에로스테스'라는 복수(複數)의 이름으로 자주 쓰인 것은 에로스가 다산(多産)의 신이기도 하지만 안테로스라는 또 다른 에로스, 즉 동생 에로스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에는 안테로스 제단이 있었는데 이 제단에는 피차의 사랑을 죽음으로 증명하고 죽음으로 화답한 연인들의 상이 세워져 있었다 한다. 안테로스라는 이름은 한 쪽에서만 다른 쪽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相愛), 즉 사랑에 보답한다는 뜻의 이름인 것이다.
그러면 에로스 신은 왜 항상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또 에로스의 화살은 왜 짝사랑만을 생산해 냈을까? 짝사랑 만으로는 불완전한 사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애'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동생 안테로스가 태어나자 비로서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상단의 그림은 파리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나르키소스의 신화에 관한 그림인데, 화가 푸생은 나르키소스 신화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코도 나르키소스도 짝사랑으로 인해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에로스는 기독교 혹은 불교, 유교 같은 특종 종교만 진리라고 주장하는 외골수의 사랑을 뜻하는 것 같다. 모든 종교가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마지막 때의 의미를 아는 것, 그것이 성숙된 '사랑'인 것이다.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훈은 또 있다. 나르키소스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인 리리오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강의 신은 매우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다 못해 한 그루의 월계수 나무가 된 다프네도 강의 신의 딸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그 모습만 들여다 보다가 죽어 한 송이 수선화가 되었다. 또한 나르키소스를 죽게 한 그 샘물은 헬리콘 산에 있었으며 너무 맑고 깨끗해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치기도, 산양들도, 기타의 산짐승들도 접근할 수 없도록 너무 깨끗하기만 한 샘이었던 것이다.
샘물의 생명은 뭇 생물이 와서 그 물을 마셔야 샘물로서의 사명을 다 한다. 그런데 나르키소스의 샘물은 너무 깨끗해서 양치기나 산양, 뭇짐승들이 찾지 않고 오직 나르키소스만 발견한 샘이었던 것이다.
나르키소스의 신화는 자신이 주장하는 진리가 과연 뭇 생명체들에게 생명을 선사할 수 있는 샘물이 될 수 있는가를 살피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자면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의 심판은 하느님의 행위가 아니라 사탄의 행위라고 주장하는, 즉 하느님은 순수한 형이상학적 존재이지 우주인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런 부류의 기독교인들을 상징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여신도 님프도 아니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많은 인간 여자들의 이야기로 눈을 돌려보자.
크레타 섬은 제우스가 어렸을 때 아버지 크로노스에 의해 유폐되어 있었던 장소이고, 제우스가 뭇 신들의 제왕이 된 후에는 에우로페(유럽)와의 사이에서 낳은 미노스가 왕국을 건설해서 고대 그리스의 한 강력한 국가를 이룩하고 있었던 곳이다. 미노스 왕은 제우스 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올림포스 산에 가서 아버지에게 법률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 최초의 왕이었다고 한다. 제우스(기독교)의 아들이 에우로페(유럽)와 결혼해서 낳은 미노스는 이 시대의 미국을 상징한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세운 기독교적 국가이며 민주주의(법)를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크레타 왕 미노스가 메가라 왕국을 포위하고 있을 때, 메가라의 공주 스킬라는 미노스 왕의 늠름한 모습에 반해서 아버지를 배신했다 한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처럼, 적국의 왕 미노스에게 반한 스킬라는 아버지와 나라를 배신하고 적국이 승리하게 만든 결과 아버지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녀는 죽어서 두루미가 되고 그녀의 아버지는 죽어서 독수리가 되어 지금도 두루미로 변한 딸만 보면 공격하고 있다 한다.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한 스킬라 같은 인물도 이 시대에는 있을 것이다.
모든 예언적인 이야기들은 불행한 운명을 피해 가라는 뜻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신화나 그 외의 예언적 스토리들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미리 알려준 불행한 운명을 피해 갈 수 있도록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