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원곡동 다문화거리다. 지하계단을 빠져나오자 마자 태국이나 필리핀, 중국의 어느 거리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니, 국적불명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다문화거리에서는 세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경기도 안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외국인 밀집지역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원곡동을 중심으로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내국인과 합법적 이주민, 비정규 체류자가 함께 모여 사는 대표적인 다문화마을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다문화거리의 상징물
원곡동에는 내국인을 비롯해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 베트남인, 방글라데시인, 인도네시아인, 태국인, 필리핀인, 스리랑카인, 네팔인, 우즈베키스탄인, 나이지리아인, 케냐인 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휴일이면 서울, 수원, 인천, 화성 등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친구나 친지를 만나기도 하고 자기 나라의 생필품을 구해가기도 한다.
다문화거리 전경
그러다보니 거리에는 자연스레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쉼터와 식당, 식료품점, 여행사, 은행 등이 들어서게 됐다. 가게 간판은 한국어보다는 외국어가 더 많다.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인도어 등 생경한 글자로 씌어진 간판이 가득하다. 휴대폰 매장 앞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씌어진 입간판이 서 있고 은행 간판도 한국어가 아니라 중국어다. 아랍어가 적힌 노래방도 있다.
세
계 각국의 전화카드
다양한 인종이 몰려드는 거리인 만큼 먹거리도 여러 가지다. 거리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낯선 음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큼하면서도 매콤한, 그리고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망고스틴
과일가게는 동남아여행에서나 보던 과일들로 가득 차 있다. 과일의 여왕으로 불리는 망고스틴, 과일의 왕자라 불린다는 두리안, 가지에 열매가 열린 모습이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용과, 달콤한 맛으로 가득한 망고 등등 형형색색의 과일들은 보기만 해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이게 만든다.
두리안
길거리 음식도 풍성하다. 하지만 한국의 그것과는 종류가 사뭇 다르다. 떡볶이와 어묵, 튀김 대신 기름에 튀긴 중국식 꽈배기와 과자, 연변순대, 만두, 양고기꼬치, 닭발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음식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만 하다.
기름에 튀긴 중국신 꽈배기
골목골목마다 각국의 식료품점도 자리 잡고 있어 한국 마트나 시장에서는 구하기 힘든 식재료도 구할 수 있다는 점도 다문화거리를 찾을 만한 이유다.
중국 식재료점
외국인이 자기네 전통 방식으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도 150곳을 훌쩍 넘는다. 베트남, 태국, 인도, 네팔,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많은데, 아무래도 현지인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다보니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음식이 아니라 현지 스타일 그대로의 음식을 판다. 그래서 아시아나 인도를 장기간 여행하고 돌아온 배낭여행자들이 현지에서 먹었던 음식을 잊지 못해 찾는 일이 많다고 한다.
네팔음식 파코라와 만두인 사모사
세계 3대 수프라는 태국의 똠양꿍과 네팔식 탄두리치킨, 베트남 쌀국수인 포, 중앙아시아식 케밥과 양꼬치 등이 인기 메뉴. 방글라데시식 양고기 카레, 생원두와 우유를 섞어 끓이는 인도네시아식 커피, 스리랑카식 튀김요리 등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원곡동 다문화거리다.
게다가 이곳 음식점들은 주머니가 가벼운 외국인근로자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서울 강남이나 이태원은 물론 동대문에 밀집한 외국 음식점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탄두리 치킨
이국 음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면 이젠 본격적으로 안산 여행에 나설 차례다. 가장 먼저 가볼 곳은 경기도미술관이다. 원곡동 다문화거리에서 승용차로 10분이면 닿는다. 드넓은 잔디밭 위에 지어진 미술관은 복잡한 거리에서 벗어나 한 숨 돌리며 여유를 가지기에 좋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는 ‘산수 너머’로 4월 1일까지 연다. 금강산 답사를 통해 현대 진경 판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류연복의 12폭 금강산 병풍, 경주 홍룡폭포를 필묵의 힘찬 기세로 제작한 박대성 등 산수를 재해석한 작가와 작품으로 꾸몄다. 박물관 내에는 베트남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연유를 듬뿍 넣은 달짝지근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쉴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 전경
그림에 관심이 많다면 단원전시관을 찾는 것도 좋을 듯.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전시장으로 꾸몄는데, 다양한 전시를 열고 있어 미술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단원전시관 전시실
안산시 본오동에는 최용신 기념관이 있다. 최용신(1909~1935) 선생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실제 여주인공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농촌마을인 샘골(泉谷·현 안산시 상록구 반월동)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전 생애를 농촌계몽에 바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이다.
최용신 거리의 기념물
선생은 샘골 아이들을 ‘조선의 빛’, ‘조선의 싹’이라고 불렀고, 일본어를 국어로 알던 아이들에게 조선어가 국어라 일러주어 조국에 대해 눈을 뜨게 한 인물이다. 기념관에는 최용신 선생의 건국훈장, 상록수 초판본(1936년), 당시의 성경 등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기념관 아래 최용신 거리에는 최용신과 아이들을 소재로 제작한 실물 크기의 동상이 서 있다.
최용신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
성큼 다가온 봄을 느끼고 싶다면 안산식물원으로 향해보자. 열대식물원에서는 야자나무, 팬지 등 220여 종의 열대 식물을 만날 수 있으며 중부전시관, 남부전시관 등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각종 식물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