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한 술수를 경계하자
근래에 종종 스스로 자기가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며 일반사람들을 현혹시켜서 그들을 미궁에 빠트려 사욕을 취하면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패가망신 등의 피해를 주는 일들이 있어왔다.
그런데 1719년(숙종 45년)에 스스로 일컬어 성인(聖人)이고 또 공자(公子)라고 하면서 요망한 술수를 부려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고 사욕을 채우려는 일이 있었다는 기록(金城賊徒擬律議)이 한포재 이건명 선생의 문집 등에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1719년에 금성(金城)에 사는 평민 신의선(申義先)이 스스로 성인(聖人)이라 일컬었고, 회양(淮陽)의 백성 윤풍립(尹風立)은 스스로 공자(公子)라고 일컬으며 요망한 술수를 부리자 백성들이 이에 앞 다투어 신봉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였다.
세상에는 언제나 이처럼 요망한 술수를 부려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사욕을 취하려는 악인들이 있는 것이니 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생각건대, 이는 인간은 어느 누구나 타고난 원죄(原罪)로 인하여 죄악의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이것이 심하면 이런 사악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스스로 평소에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 이런 사기술책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에도 이단(異端)의 종교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니 이런 위험은 상존하는 것이다.
금성의 적도를 의율하는 일에 대한 의론〔金城賊徒擬律議〕
지금 이 금성(金城)의 적도(賊徒)는 애초에 요망한 술수를 가탁(假托)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고 의혹시키려는 데에서 나왔으니, 비록 극악무도한 역적에 견줄 만한 것은 아니지만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서 검을 차고 백주대낮에 관아의 문밖에서 제멋대로 행동한 것은 은연중에 관리를 위협하는 뜻이 있는 것이므로, 보통의 절도범에 비하면 정상이 불측합니다. 그리고 금성의 수령이 아전과 백성들을 불러와 무기를 들고 대적하게 한 것은 갑작스러우며 놀랍고 두려워 도적의 실정이 무슨 목적인지 어느 정도 긴박한지를 상세히 알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의 처치하는 방도는 반드시 천천히 죄상을 알아보고 경중을 적절하게 해야 하니, 그러한 뒤에 형법이 지나치게 적용되는 근심을 면할 수 있고 또 죄인을 빠뜨릴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삼가 포도청에서 의논하여 판단한 것을 보면 죄수들의 옥안(囚之案)에 대해 본래의 실정을 캐내어 조목조목 나열한 것이 매우 상세하며 경중의 차등이 있으니, 형조에서 논단한 바에 비하여 마땅한 듯하고 또한 괴수는 죽이고 따른 무리들은 다스리는 법도와도 부합함이 있습니다. 오직 밝으신 저하께서 자세히 살펴 재단하여 처리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주-1] 금성(金城)의 …… 의론 : 금성의 평민 신의선(申義先)이 스스로 성인(聖人)이라 일컬었고, 회양(淮陽)의 백성 윤풍립(尹風立)은 스스로 공자(公子)라고 일컬으며 요망한 술수를 부리자 백성들이 이에 앞다투어 신봉하였다. 금성 현령 조하기(曺夏奇)가 신의선의 족당(族黨)을 가두어 다스리려고 하였는데, 신의선이 칼을 잡고 광언(狂言)하여 마치 주문으로 축원하는 바가 있는 듯하였다. 이에 조하기가 놀라 군사를 모아 포위한 뒤 신의선을 때려죽이고, 윤풍립ㆍ신명립(申明立)과 따르는 무리 5, 6명을 잡아 순영(巡營)에 보고하였다. 이후에 조사해 보니 무지한 백성으로, 특별히 모의한 일이 없었다. 그러자 정언(正言) 박필정(朴弼正)은 조하기가 그 사건을 허황되게 떠벌려서 조정을 놀라게 했다는 이유로 잡아다 추문하기를 청하였는데, 이후에 영의정 김창집의 차자로 인하여 조하기를 석방하고 그 옥사(獄事)를 서울로 올려 보내어 포도청에 회부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국역 숙종실록 44년 윤8월 11일, 45년 1월 29일》, 이 의(議)는 기록에 보이지 않지만, 1719년(숙종45) 11월 23일에 윤풍립은 베고 나머지 무리들은 모두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으니, 그 이전에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국역 숙종실록 45년 11월 23일》
[주-2] 군복을 …… 것이므로 : 《국역 숙종실록》 45년 11월 23일 기사에 “현령 조하기가 신의선 친족을 가두자, 신의선이 이에 윤풍립과 그 아들 신명립 등을 거느리고서 말을 타고 활을 차고 손수 칼을 잡고 관문(官門)에 나아갔는데, 이는 대개 관리(官吏)가 그 신(神)을 두려워하여 가둔 사람을 석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였다.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8권 / 수의(收議)>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전형윤 채현경 이주형 유영봉 (공역) | 2016
金城賊徒擬律議
今此金城賊徒初出於假托妖術。誑惑愚民。則雖非惡逆之比。其着軍服騎馬佩劍。白晝恣行於官門之外者。隱然有威脅官吏之意。其視尋常竊盜。情節叵測。而至於金城官之令招吏民。兵戈從事者。想由於 O倉卒驚㥘。而賊情之淺深緊歇。有未暇詳知者矣。卽今處置之道。必須徐究情犯。適輕適重。然後可免濫觴之患。且無漏網之慮。而竊觀捕廳議斷。其於諸囚之案。鉤得本情。條列頗詳。輕重有差。比秋曹所論似爲得當。而亦有合於殲魁治從之道。惟在离明審克而裁處焉。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6
2024. 8.22.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