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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콜로새 1,21-23 루카 6,1-5
작은 일탈이 용납될 수 있는 조건
로마로 유학을 갔을 때 한국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언어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머리가 좋기 때문에 언어만 되면 공부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방학 때 DVD를 빌려 자막을 띄워놓고 영화를 돌려보며 이태리 말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TV 시청이나 영화를 보는 것에는 말을 배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만 들리고 안 들리는 말은 끝까지 안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방법보다는 읽고 쓰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들을 매일 외웠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설픈 실력으로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는 내가 말할 때를 위해 도움이 되었고, 읽기는 들을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조금은 빨리 이태리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화책만 주구장창 보는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신학생이 성경을 읽어야지 만화책을 보느냐고 판단을 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 신학생이 저보다 말을 더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일상에서는 말을 참 잘했습니다.
첫 방학이 되었을 때 저는 신학적인 용어들은 많이 알고 있었으나 일상에 필요한 말들은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생은 처음부터도 아이들과 잘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말을 잘하니 공부도 잘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니 스트레스가 적어서인지 영성생활도 참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일탈도 크게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도 큰 죄인데 남의 밀 이삭을 훔쳐 먹으니 바리사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는 제자들을 두둔하십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작은 잘못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사제들만 먹을 수 있는 제사 빵을 집어먹은 일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율법이 존재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지만 예수님은 그 율법을 바꾸셨습니다.
제가 미사하면서 제대에 성혈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성작을 건드려서 성작이 흔들려 그 안에 있던 성혈이 제대에 흐른 것입니다.
당시 괴로울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족한 것도 없고 세상에서 더 바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과 미사를 하고 있던 중이니 주님과 이웃을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대 위에 흐른 성혈을 보며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내가 부주의해서 예수님의 성혈을 제대에 뿌렸구나!’
땅바닥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어도 주님의 성체성혈을 조심스럽게 간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행복한 조건들은 더 이상 저에게 아무 위안도 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지금 죽게 된다면 지금까지 지켜왔던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소홀히 여긴 것에 대한 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안식일은 하늘나라이고 행복입니다.
행복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행복하고 그분을 잃으면 다른 무엇으로도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로 여겨야합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행복해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은 비록 율법을 어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허기를 채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율법만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했습니다.
물론 죄는 예수님을 몰아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피해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더 함께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작은 일탈은 또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일주일을 주님 뜻대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면 쉬는 날 하루쯤은 늦잠 자고 TV나 영화를 보며 게을러도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로만 맞추어져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9월6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6,1-5
사람을 살리기 위한 안식일 규정!
이스라엘에서 재배되던 7대 주요 농작물로는 밀, 보리, 포도, 무화과, 올리브, 석류, 대추야자를 꼽습니다.
그중에서도 밀은 유다인들이 주식으로 삼았던 빵의 기본 재료로 가장 으뜸가는 작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동 지방에서는 몇 천년 전 부터 곡식을 경작해왔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 유적지나 예리코 등지에서 불에 탄 밀알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 주부들은 매일 맷돌로 밀을 갈아 빵을 구웠습니다.
미풍이 불어오는 어느 봄날, 안식일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파릇파릇한 밀밭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구원자 예수님의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의기양양·사기충천한 얼굴로 씩씩하게 밀밭 사이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큰 뜻을 품은 제자들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뱃속에서 흘러나오는 ‘꼬로록’ 소리를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자연스레 제자들의 눈길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부드러운 밀이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덜 여문 부드러운 밀알은 비벼서 날것으로 먹기도 했었습니다.
제자들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밀이삭을 훑어 입으로 가져갔던 것입니다.
사실 신명기에 따르면,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웃의 밭에 들어가 밀이삭을 자르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신명기 23장 26절)
그러나 그날은 안식일! 바리사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2)
바리사이들의 외침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침소봉대’(針小棒大)였습니다.
말 마디 그대로, 바늘을 몽둥이라고 과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추수 행위나 노동 행위도 아니고, 지나가며 밀 이삭 한 두가지 잘라 먹은 것을 가지고 안식일 규정 운운하니,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쪼잔하고 천박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바리사이들 앞에 예수님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사무엘 상권 21장 1~7절을 인용하며 다윗과 그 일행이 겪은 사건을 소개하십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루카 6, 3-4)
이스라엘 성전 성소에는 봉헌된 열두 개의 빵이 하느님께 바친 제물로서 일 주일 동안 접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나면 사제들만이 그 빵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그의 일행은 빵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굶주렸고 다른 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빵을 준 사제 아히멜렉도, 율법학자들도, 성경조차도 다윗과 일행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필요에 따라 율법은 유연성있게 적용될 수 있고 용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을 비롯한 제반 율법을 해석할 때는 자구 하나 하나에 연연할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율법을 바라봐야 합니다.
한 인간 존재가 처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을 고려하며 율법을 적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율법의 주인은, 안식일 제정의 원천은 바로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강론>
(2025. 9. 6. 토)(루카 6,1-5)
<하느님의 계명은 사랑으로 지켜야 할 ‘사랑의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1-5)”
1)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는 말씀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의지가 율법의 근본정신이다.” 라는 뜻이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라는 말씀과 사실상 ‘같은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계명들과 율법들을 내려 주신 것은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일에 계명들과 율법들을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해서 인간들을 억압하는 멍에가 되어버린다면, 또는 인간들을 죽이는 도구가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큰 죄가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악법은 법이 아니다.”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악법은 법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악법을 지킬 의무도 없고, 그런 법은
빨리 폐지해야 합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악법도 법이다.”가 무슨 대단한 진리인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말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독재자들이나 좋아하는 말이고, 선한 정치인들은 악법을 모두 찾아내서 폐지하려고 노력합니다.
2)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십계명에서 안식일 계명을 보면, 그 계명은 분명히 ‘약자 보호 계명’이고, ‘사랑의 법’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탈출 20,8-10).”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여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너의 소와 나귀, 그리고 너의 모든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여 너의 남종과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였고, 주 너의 하느님이 강한 손과 뻗은 팔로 너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었음을 기억하여라.
그 때문에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5,12-15).”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였음을 잊지 않고 종들도 모두 똑같이 쉬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안식일 계명의 목적입니다.
<이렇게 안식일 계명 자체는 악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그 계명을 잘 지키겠다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세부 규정들’이 악법이었습니다.>
3) 바리사이들이 정해 놓은 세부 규정에는 사람에 대한 자비도 없었고, 사랑도 없었고, 오직 율법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만 있고, 자비도, 사랑도, 사람도 없는 규정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라는 말씀은,
“자비와 사랑이 율법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율법을 지키는 일은 자비를 실천하는 일이어야 한다.”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자비 없는 율법은(무자비한 율법은) 폭력이 될 뿐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먼저 먹을 것부터 주는 것, 그것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율법주의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방임주의에 빠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안식일 자체를 부정하신 말씀이 아니라,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변호하면서 하신 말씀은,
당신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배고픔을 보라는 뜻인데. “배고프면 안식일을 안 지켜도 된다.”가 아니라,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먹을 것을 주어라.”입니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니, 안식일을 안 지키겠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교만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