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유형18)
충주 원평리 3층석탑(유형235)
역사는 기록과 유물로써 존재한다고 한다. 20리 마다 한 그루씩 심어 이정표를 대신했다는 시(스)무나무 아래 미륵댕이 마을 그 한켠에 우람한 부처님이 마을을 굽어보고 계신다. 바로 옆에는 석불상에 비하여 다소 작게 보이는 석탑(충북유형235)도 함께 있어 구색이 맞다.
양발을 복련(覆蓮)의 대좌와 몸체 사이에 깎아 끼우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방법을 택했다. 보통은 지대석에 양발을 새기던지(예, 정읍 망제동 석불) 아니면 몸체에 같이 새겨넣는(예, 담양 분향리 석불) 방법을 쓰는데 말이다.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내려뜨려 손바닥을 보임)을 보이는데 반하여 시무외인(施無畏印, 들어서 손바닥을 보임)을 보여야할 오른손은 가슴께로 들어 올려 다소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통견의 다소 둔감해 보이는 법의는 고려시대에 이 지방의 불상이 갖는 특징을 온전히 표현해주고 있으며 푸근한 인상의 얼굴 그리고 양감(量感)이 꽉 찬 양 어깨에서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를 연상케 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전국에는 360여 채(砦, 불상을 세는 단위. 軀(구)를 쓰기도 한다)의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석불과 마애불 그리고 180여 채의 '문화재자료'에 해당하는 석불과 마애불 그리고 지정되지 않은 500여 채의 석불상이 있다.
여기에서는 전각에 모셔진 석불상을 제외한 160여 채 정도의 지방문화제로 지정된 석불과 마애불 중에 몇 분을 모셔 소개하고자 한다. 국가나 절집에서도 국보나 보물에 갖는 관심은 그나마 지방문화재나 문화재자료보다는 낫다. 그러나 아래 급수에는 거의 무관심 상태인 곳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요즘에는 각 지자체나 사부대중이 지방문화재 급의 석불에 갖는 관심이 높아 다행이다.
누군가의 관심으로 오늘 우리가 부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잘 보존 보호하여 후대의 어느 누군가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여 드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좋은 말씀을 기다린다.
- 현근스님(전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
첫댓글 잘 정비된 폐사지의 석탑 석불을 보는 것도 심신을 쉬어가게 합니다..
석불과 석탑 뒤의 주산이 부드럽게 병풍을 둘렀네요. _()_
요는 못가본 곳이당.... 올 해 꼭 가봐야겠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