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의 첫사랑 이야기
아내와 교전 & 냉전이 이어지길 일주일이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밝은데 이런 짓만 하면서 우중충한 집구석에서 어두운 마음으로 들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다 싶어, 오늘(12.6.일)은 일찍 집을 나섰다. 행선지도 안 정하고 송내역까지 지하철 1호선을 타러 가는 길 약 600m를 천천히 걷는다. 걷다, 서다, 해를 쳐다보다, 생각에 잠기다... , 시간은 많고 갈 곳은 없다.
천천히 걷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난봄부터 걸음 속도가 현저히 늦어지고 유연하지 못해지더니 오른쪽 다리는 그 정도가 심해 발끝으로 땅을 자주 찍어 보통 걸음에도 낙상할까 두려운 지경이니 의식 없이 그냥 걸음이 느리다. 딱히 갈 곳도 바쁜 사연도 없는데 빨리 걸으면 뭘 하겠는가 마는... 이 병 때문에 아내에게 수많은 지적도,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아내의 의도는 올바르게 걸음을 교정해서 바른자세 하라는 말씀이고, 나는 병이 왔으니 진찰과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 서로 달랐다. 전문의 찾아보는 게 늦었다고 아내를 원망할 맘은 없었다.
혼자 이웃한 S대학병원 신경과에서 진찰결과 파킨슨병은 아닌 게 확실하고, 아마 많이 마신 술의 위력이 쌓여 척추 쪽에 문제가 생긴듯하다며 사지가 유연하지 못하니 척추 부위 MRI를 찍어보잔다. 3년 간 한 푼도 못 벌어 아내의 승인을 받아봐야 겠다고 했다. 진찰의사는 가운데 이름자만 달랐다. 'ㅈ이 들어 있어 동성동본인가 싶었다.' 나와는 다른 호감 가는 이름과 얼굴에, 박사. 교수님! 아주 미남이었다. 내가 병세에 대해 조리있게 이야기 하지 못하고 설명이 길다며 "나도 말좀 합시다!"라는 핀잔도 먹었지만 진료를 잘 마치고 웃으며 헤어졌다. MRI는 치료 경과를 봐가면서 생각해 보자며,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는 약을 처방 받았고 복용하고 있다. 저녁에 한 알을 먹고 잔 다음날 새벽부터 매일 밤 겪던 발가락에 쥐(경련)가 나는 증세는 없어졌다. 상용하는 약 -혈압약에 더해 또 하나가 늘었다.
두 개의 병명이란다. 마비성 보행장애. 척수질환.
길가 의자에 앉아서 초등 남여 동기들 몇 명에게 전화해 봐도 '나 지금 너 보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을 못 찾았다. 오나가나 슬픈 각시라더니... 이 기분으로 어디 가면 환영 받겠는가?
조금 일찍하지만 경동시장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니 지금 혼자 출발해서 경동시장 '안동국시'나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같이 자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내가 나이 더 먹은 죄(?)로 내게는 어려운 사이지만...
같은 직장에서 10년을 지냈으나 열댓 살 나이 차이가 있어, 보고 싶을 때 전화하지 않고 자제하면서 가끔은 소식을 물어보거나, 그러다보면 먼저 전화를 걸어줘서 안부를 물어주는 그런 사이의 친구다! 짝사랑하듯 내가 호감이 가는 그런 이 친구! 용기를 냈다. 용기가 나기도 했다.
전화를 하니 반갑게 받아준다. 마침 쉬고 있으니 만나잔다.
"~... 경동시장 지하에 안동국시 먹으러 갈 수 있을까?"
"예! 좋습니다"
호박. 감자. 새우. 바지락. 쌀, 해물국수등 여러 국수를 먹어왔지만 그래도 이집 국수가 감칠맛이 있다. 스무 살 이전까지 어머니, 누님들의 가족사랑의 깊은 정성이 들어 있는 그런 솜씨! 그 맛이 나서다. 집에서 나올 때 기분과는 달리 입에 침까지 돈다.
제기역 전철에서 내려 청량리 방향 - 약령시장을 지나는데 모바일 벨이 울렸다. 12:30 약속인데 이 친구가 먼저 와서 전화를 해왔다. 전화로 어디쯤인가? 내 위치를 묻는데 큰 키의 신사가 말소리에 어울리는 몸짓을 보이면서 한 50m 정도 저 앞에서 얼찐거린다.
"앞 쪽에서 그쪽으로 올라가는 중이라! 아! 강박사! 보여!"
아니? 365일 무휴라 안 했었나...? 이 안동국시집이 들어 있는 지하시장 전부가 문을 잠물쇠로 걸어잠그고 휴무다. 들뜬 입맛만 다시고 돌아서서 두어 달 전에 수유리 사는 고향 친구가 밥을 사준 조금 떨어진 곳의 그 보신탕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이 친구가 청량리 역 앞 맛집 - 00국시집으로 가잔다. 운동 삼아 걸으면서. 밀린 숙제를 풀듯이 내 지금의 심경부터 이런저런 이야기, 안부, 그리고 옛 동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청량리 역사에서 이문동 쪽으로 틀어 미주아파트를 지나고, 좌측에 그 00국수집 간판이 보인다.
들어서니 손님이 가득하다. '역시! 명품 국수를 만드는 집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가 없다며 잠시 대기하라는 주문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이내 자리를 배정 받았다.
닭고기국물. 멸치국물국수 두 가지. 멸치국시를 선택할 걸...! 이 유명하다는 닭국물국수는 내게 맞지 않아 무지 아쉬웠다. 김치가 맛있어 국수맛보다 김치맛으로 한 그릇 다 비웠다아직 이른데... , 일찍 점심부터 먹었으니... , 당구 한 판 치고 나서 면목동 동원시장 골목안 순댓국집으로 옮겨 그기서 소주 한 잔 하고 헤어지자며 만장일치로 (ㅎ) 스케쥴을 짰다.
국수집에서 청량리 역사 쪽으로 내려오다 오른 쪽 상가(B1)에 있는 당구장에 들어가니 우리 또래의 쥔과 친구인 손님 한 분이 연습당구를 치고 있다. 인사를 하고 있자니 또 우리 또래의 손님이 세 패나 들어온다. 이 집 손님들은 우리 세대의 당구 추억에 목마른이들이구나하는 감이 왔다.
시작하면서 내가, "보안경을 안 쓰고 와서 오늘은 승산이 없다!"며 짜는 소리를 했더니,
"저도 안경을 벗을 까요? 하! 하!"라며 응수해 온다.
듣기만 해도 내 맘이 즐겁다. 근시가 안경을 벗으면 내가 이기지만 말이나 되나? ㅎ
얼마 만에 서로 마음을 알고 또 배려하며 아름다운 농담도 건널 수 있는 이 친구와의 만남인가! 그냥 즐거웠다.
신경과 약과 쌓인 스트레스로 몸과 맘이 조화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니 예상대로 첫판은 쉽게 내줬다. (15년 전까지는 내가 몇 알을 더 놓았었는데... 아! 이제는 모든 게 안 되는구나! 조용히 또 나는 무너진다.) 세월의 짐을 어찌 내가 다 질 수야 있겠는가! 둘 째 판은 내가 이기고 그리고 정복했다는 자만심인지 결선에서는 그냥 무너졌다. 아마 둘 째 판은 이 멋진 신사가 스러져가는 이 신세를 봐줬을 것 같기도 하다. 미루어 짐작컨데...
첫 판 중간에 "상무님! (이 친구는 아직 그렇게 부른다.) 저 첫사랑 만났어요!" 아! 그래! 그 이야기가 오늘 당구게임에 안주가 되겠다! 해봐!
세 게임을 치고 우리는 전철로 청량리에서 면목동 동원시장에 갔고, 순대술국을 시켜 놓고 각 일 병만 하자는 약속을 저버리고 세 병으로 마쳤다. 이제 나는 알콜에 에스카레이션이 되어 "한 병만 더 하자!"했는데, 내 제안을 이 친구가 점잖게 눌렀고, 나는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전철역으로 향했다. 사가정역까지는 한 코스.
"우리 착한 친구들끼리 망년회 함 하지? 히비끼 17년산 위스키 한 병 있는데... 더치페이로?"
"좋습니다. 처음 정한 날이 아니고 다음 어느 날로 미뤄져도 좋으니 꼭 연락 주세요! 꼭요!"
놓기 싫은 악수한 넓직한 손바닥을 놓으면서 그는 내렸고 나는 취기가 슬슬 올라왔다. 그리고 '전철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의 주인공 두 분을 만나 행복에 젖어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 새벽에 깨어나서 전철에서 만난이들 이야기를 먼저 쓰고... 지금 이 첫사랑 이야기를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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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때였어요. 우리 마을 또래 여고생과 외지 고3 남학생이 데이트 하는 게 눈에 거슬려 둘을 불러 놓고, 그 남학생을 혼내주려고 시비를 걸고 있는 참인데 여학생의 여자 친구가 - 첫사랑 수애(가명) - 나타나서, 처음 봐도 말괄량이 테를 내며 "너! 남여가 서로 그런 거지 뭐? 니가 왜? 간섭하고 훼방 놓으려 그러나? 남자답지 못하게///!" 그래서 인연이 되었고 우리 넷-두 쌍-이 같이 놀아나는 사이가 되었지요.
그때 수애는 120 CC 오토바이로 날 태워 제 어머니가 경영하는 식당에 대려가기도 했어요. 그 시절 우리는 120 CC 오토바이는 꿈도 못 꿨잖아요. 그 후 수애 모친과도 엄청 친해졌어요. 날 예쁘게 봐주셨지요. 일전에 모친을 만났는데 저를 알아도 보시고 제 이름도 기억하시고 계셨어요. 그때 이야기를 하시면서 정답게 반겨 주셨어요. 아주요! 내게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고 순수한 이야기예요. 내 첫사랑 이야기는요...!
(이야기하는 동안 이 친구의 얼굴이 보다 환했다.)
우린 만나고 다음해 대학 간다고 공부하면서 잊혀졌고 세월은 흘렀지요. 36. 7년은 족히 지났는데, 근간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외 다른 친구들도 있었는데 서로 몰라봤어요. 손도 안 잡아본 촌뜨기 순살 연애. 젖비린내를 못 면한! 그런 꼬마들 수준의 연애, 첫사랑이라는 추억으로 잊혀졌으니까요!
"~... , 그럼, '강만수(가명)'는 압니까?"
"만수! 가는 내 첫사랑인데...! 아! 만수 걔 잘 컸나? 모르겠네...?
"내가 만수야...!"
나도 몰라봤고, 이 신기한 첫사랑이 내 얼굴을 읽어 가더니 내 손을 다정히 잡아줬어요. 아주! 따뜻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말괄량이 그대로구요. 그리고 몇 번 공개된 장소에서만 만났습니다.
강남 쪽 새로 발전하는 지역 xx에서 치맥 체인점 세 개를 운영한다는데. 소녀 때 보다 더 말괄량이예요. 내 딸 캐미(가명)를 소개시켜 달래서 셋이 만났는데, 나는 대화 속에 낑기지도 못하고 저거끼리 속닥이는 친구가 됐어요. 캐미도 이제 대학 졸업반이라 이모 같은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런 걸까요?
"그 첫사랑 이야기 참! 아름답네!"
열 살 연하 남편과 잘 살고 있고 돈도 잘 버는 사업가로 성공한, 지금은 캐미의 친구고 내 친구예요. 캐미에게는 내 첫사랑이라고 아직 고백(?)하지 못했는데. 손도 못 잡았던 첫사랑! 마누라 알면 뭐 어떨까 마는 캐미에게 영원히 비밀로 하고 싶어요!
***
지금은 청춘이 아니라도, 그때 그 시절 첫사랑과 아름답게 사랑을 나눈 이 친구의 첫사랑 추억은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상무님! 저 兄하고 같이 등기 해 사 놓은 큰 임야가 있어요. 횡성 600 고지 높고 경치 좋은 곳인데, 그기에 내가 배우고 닦은 목수 기술과 새로 면허 따서 한 대 사 놓은 포크레인으로 멋진 휴양 주택 지어 놓을테니 그땐 사모님과 두 분께서 쉬다 가세요! 열쇠 드릴테니까요...!"
다정다감이 내 가슴에 스르르 안겨온다!
힘이 있고 건강이 넘친다. 그칠줄 모르고 삶에 도전하며 열심히 그리고 아름답게 삶을 이어가고 준비하는 친구다. 내 장조카와 한 살 차이니, 내 맘속에는 조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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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결과물이 달콤하지만은 않지 않은가?
이 졸부는 한 지붕 두 가족을 어찌 극복할런가?를 고민 중인데 비해 만수 친구의 첫사랑 이야기는 정말 아름답다.
내 다정한 친구 - 만수의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를 덮는다.
첫댓글 참 좋아.
이런 글로써 내 마음도 그 옛날을 더듬어보게 된...
언제 서초동에도 한 번 오시게.
경동시장까지 갈 일이었으면,
그 중간쯤이 서초동도 괜찮았을 텐데...
나야 토요일 일요일 한 것 없이 늘 사무실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