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지금으로부터 약 몇 년 전일까?
가물 가물하다. 1976 년도에 서울시에 합격하여 임용을 하였으니
그러니 1978 년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약 40 여년전의 이야기 이다.
그러니 첫 발령지가 영등포구 시흥2동 사무소이다.
내가 거기 시흥2동에 살았으니, 당연히 그 동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그러니 거기가 경기도 시흥시의 칼바위 밑에다 수재민들을 이주 시켜서 살 수 있도록
집단으로 이주를 시켜 논 곳이다.
정말 한 마디로 빈민굴이다.
거의가 약 5 평정도의 판자촌, 산비탈에다 이주를 시켜 놓았다. 매일 아침 일찍히 동사무소]
앞에 주우욱 늘어서서 밀가루1포대씩 받기 위하여 한 줄로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가난이 무엇인지?
먹고 살려고,그리고 통장이나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새마을 일이나 시켜 달라고 애원을 한다.
여기서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때 동장님의 눈에 들어 ,새로온 신규 직원이 '서무주임'이라는
고참이 맡은 자리를 맡겨 주기도 하였다. ,동장,사무장,그 다음의 순서로 서무주임이라는 자리다.
열심히 하였으나 , 가만히 공직이라는게 곰곰히 생각하여 보니 ....
그 월급가지고는 도저히 먹고 살 수도 없고 그런다고 장래도 그렇고 하여 사표서를 제출
하였다. 이거 나도 앞으로 살아 갈 일이 캄캄하다.
선친은 계시지 ,나의 가족도 4명 ,그 월급 가지고 살아가란 말인가?
아내하고 부업을 하여야 하나 많은 걱정도 하여 보고, 앞으로 살아 갈 길을 많이 생각도 하여
보았다. 결론은 살아 갈 일이 캄캄하다.
동사무소에다 '사표서'를 제출하였으니,나는 그냥 수리 되기만을 기다리고 나의 할 일을 서서히
준비를 할려고 하였다. 그런데 사표수리가 않 되고 , 동사무소를 통하여 영등포구청 총무과
인사계에서 자꾸 구청으로 한 번 들어 오라고 한다.
나는 그냥 사표수리를 하라 하고는, 들어가지를 않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재차,3차 연락이 나에게 들어온다.구청으로 들어오라고 ........
그래서 할 수 없이 영등포구청 총무과의 인사계로 담당주임을 만나게 되었다.
나한테 구청인사계 주임이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차 한 잔 하자고 제의를 한다.그래서 따라서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차 한 잔 을 하면서 나에게 물어 본다.
인사계 주임 왈 " 왜 ? 사표서를 낼려고 하느냐?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등등 자세히
묻는다.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다. "그 월급가지고는 우리 식구 먹고 살기도 힘이 들고
어떤 비젼도 없고 어떤 희망도 없고 등등....." 주우욱 나의 이야기를 다 전하였다.
"그러면 무엇을 하겠느냐? "라고 나에게 질문을 한다. 그래서 "그 전에도 행정직 7급을 공부를
하다가 서울시로 들어 갔으니 계속해서 행정7급에 시험 준비나 할까 ?" 라고 하였다.
그 인사계 주임이 나에게 제의를 한다. "구청에서 공부를 할수 있도록 할 테니,다니면서
공부를 하면 어떻겠느냐?" 구청에서 내가 근무하는 동사무소에 동장이나 사무장에게 명을
하여 나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라는 지시이다.
그래서 시험기간 동안에 오전에만 근무를 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하여 시험을 준비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그 사표서를 수리하지 않아 얼마 있으니 진급이 되고 ,근무 년 수가 5 년이
지나니 월급도 쥐꼬리 만큼이나 오르고 하여 , 그뒤로 진급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구청에서 근무를
하니 근무도 할 만하여 30 여년이 지나도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근무하고 표창도 타고
열심히 근무하여 정년까지 갈 수 있는 뒷 받침이 되었다.
지금의 그때의 이야기를 글을 쓰니 ,그때 '사표서'를 수리하지 않고 나를 근무를 시키면서
공부를 할수 있도록 배려한 처사를 생각하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눈시울이 적시기도
하여진다
지금의 서울시의 9 급공무원의 경쟁이 86.2의 치열한 경쟁을 하던시대를 생각하니 옛날의
감회가 새롭다. 그래도 지금생각하니 그대 현직에 있을때는 사표서를 낼만큼 박봉이지만
퇴직이후에는 자녀들도 다 키워 났으니 나혼자 연금을 쓰고 있으니, 이보다 더 효자가 어디
있냐고......
그리고 내 인생에 공직이란 신분으로 평생을 근무하여 서울 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하여
근무를 하였다는 긍지도 한 편으로는 갖을수 있는 내가 되고 보니 그것도 나의 보람이리라
지금은 서울시의 변모가 지하철은 수도권을 거미줄처럼 연결 되어 지고 있으며,한강은
말끔히 맑은 강물로 서해로 흐르고 ,한강변이나 저지대의 침수는 사라지고 산비탈의 판자촌은
찾을수가 없이 아파트 촌으로 가히 상전벽해라는 말이 여기서 나 온 것 일 게다.
고지대에 공동수도에 물이 나오지 않아 새벽에 물지게로 져다 먹는 모습이 이미 사라 진지도
오래 되었으며 고지대에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산더미 같이 쌓이던 모습도 이제는 사라지고
공원과 주민의 휴식터로 변모를 하고 있다.
첫댓글 정말 고마운 분이었네요
근데 만장봉님이 워낙 성실하고 잘했기에 그런 특혜?도 받은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마도 총무국장(지금 부구청장)까지 보고가 되었던 같습니다
동사무소에 이야기를 하여 공부를 할수 있도록 배려를 하라고 아마도 지시를
한것 같습니다
내가 나쁜짓거리를 하여 그만두는것도아니고 ,5식구가 그 월급으로 먹고 살기힘이 들어서
사표를 낸다는데.......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말 공직의 첫출발이 어려웠고 그래서 사표까지도 .....
공직의 애환을 그려가니 눈물도 날려고 ,어렵사리 살아가는 모습이 하두 안타까워
감사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70년대 30대초중반 남자 선생님들이 교직 때려치고 유명 종합상사 대리-과장급으로 갔습니다.
비젼 없고 급여 적다고..근데, 몇년 안가 그회사들이 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더군요. 인간만사 새옹지마~~
저도 구로공단에 있는 모 회상에서 총무과장으로 자리를 준다고
유호이 들어 왔습니다.그래서 집안의 분들하고 상의를 하니 ...NO
감사합니다
그리하야
오늘날 연금이 선물로~~^^
좋으시겠어요.
인복이 있으셨던게지요~^
감사합니다
그때는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간사 진인사 대천명 이로소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지요 ㅎㅎ 옛사람은 그대로인데 ..
그러고 보면 옛 조선시대에는 변함이 없었지요 대원군 때 와서 마구 개화가 시작되고
혼란했지 그 외는 .. 그리고 긴 일제시대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것이 신기해요 ㅎㅎ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노력이 아닌가요?
서구화와 서구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들이 노력을 하고
교육,그리고 의술,과학등이 발달하여 우리나라의경제성자을 가져오게 된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