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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퓨리턴(Puritan), 즉 청교도란 16~17세기에 영국에서 영국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 내에 남아있던 로마가톨릭의 제도와 의식 일체를 배척하며 개혁을 주장하던 개신교도, 즉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일컫는다. 이들은 엄격한 도덕, 신성화된 주일(主日: 일요일)의 엄수, 향락의 절제를 강조했다. 1559년 엘리자베스 1세가 국교 통일령을 내린 이래, 찰스 1세 때 비국교도로서 국법을 지키지 않은 과격파 청교도들은 박해를 받았다. 그 박해를 피해, 청교도들은 홀란드와 기타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 “필그림 아버지들”도 이때 조국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 가운데 한 무리였다. -p.23
1831년,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감옥제도를 연구하기 위해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과 귀스타브 드 보몽(Gustave de Beaumont)을 미국에 파견했다. 토크빌은 프랑스의 유망한 외교관이자 정치과학자, 역사가였고, 보몽은 치안판사였다. 토크빌은 9개월 동안 미국을 방문하고 나서, 1835년과 1840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mocratie en Am?rique)』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미국 사회에서 “청교도 정신”은 종교적 의미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정치이론도 아우른다는 것을 꿰뚫어보았다. 미국은 사회계층도 없고, 인간 사이에 평등관계를 유지하며, “풀뿌리 민주주의(Townshipdemocracy)”가 뿌리를 내렸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스스로 일으켜 세운 민주주의 국가라는 둥, 말 그대로 “놀라운 별천지”인 양 묘사했다. 물론 그 공적의 주인공이 청교도였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책이 나오자마자, 온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 바람에 “공화주의”의 열기가 온 유럽에 유행병처럼 퍼져갔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20세기까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p.33
“제로니모(Geronimo)!”
세계최강 “그린베레(Green Beret)” 미 공수부대원들이 하늘에서 낙하산 점프를 할 때,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외치는 구호다. “그린베레”의 구호가 된 제로니모는 백인들에게 최후까지 저항했던 용맹스런 아파치 족 추장의 이름이었다. 군율이 서지 않은 오합지졸처럼, 어머니나 애인이름 등을 제멋대로 외쳐대는 우리나라의 공수특전대원들의 경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처럼, 인디언의 말이나 이름들이 미국사회의 구석구석에 뿌리 깊이 박혀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겉으론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론 그들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티 없이 순수하고 고귀한 인디언들의 영혼은 오로지 장사꾼 습성만을 지니고 실용주의만을 좇는 타락한 백인들로서는 결코 깔볼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p.110
케네디 대통령을 위해 지은 「헌정시(Dedication)」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로마의 신화와 역사, 예언이 되살아나 숨 쉬고, 고대 로마와 미국이 겹치는 환상이 그려져 있다. 미국의 건국 과정은 고대 로마를 닮았고, “공화주의”가 시의 행간에서 꿈틀거리고,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질서(novus ordo seclorum)”로 그려졌다. 모든 인류의 꿈인 생명, 자유, 평등, 행복추구권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품은 “공화주의”를 그들의 「독립선언문」에 담았다. “미국식 공화주의”가 낳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부는 모든 서구 선진국들의 롤 모델이 됐다. -p.112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엔 “열린사회”를 상징하는 건물이 있다. 바로 미 의회 의사당 ‘미국 캐피톨(U.S. Capitol)’이다. ‘캐피톨빌딩’ 동쪽정면의 한가운데와 좌우 양쪽 윙은 로마제국 때의 판테온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건물이 차지하고 있다. “판테온”은 모든 민족의 신들을 모시던 신전이어서, “열린사회”의 상징이었다. 의사당 건물의 이름도 “열린사회”였던 고대 로마에서 끌어다 썼다. “캐피톨(Capitol)”은 고대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였던 카피톨리움(Capitolium)에서 따왔다. 카피톨리움은 고대 로마에서 가장 중요했던 유피테르 카피톨리누스 신전이 있던 언덕이었다. -p.168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Si vis pacem, para bellum!)
이 아이디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지은 『노모이(Nomoi: 법)』에서도 나타난다. 이 구절은 직관과 반대되는 통찰의 개념을 품고 있다. 즉, 평화로운 상태는 필요할 땐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함으로써 유지된다는 것이다. 미국 국장(the Great Seal of the U.S.)의 앞면은 이 구절의 아이디어가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독수리의 오른쪽 발톱으론 올리브 가지, 왼쪽은 열셋의 화살 다발을 움켜쥐고 있다. 올리브 가지와 화살은 평화와 전쟁을 상징한다. 이 유명한 라틴어 구절은 여러 나라의 군부대에서 모토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영국 해군, 영국 공군, 노르웨이 육군사관학교, 리투아니아 무기재단, 미 해군사관학교 동기회, 미 해병대 기지 여러 곳, 미 공군기지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p.192
https://www.youtube.com/watch?v=LGn13IaNj_s
70여 년 전, 우리는 운명적으로 “미국식 공화주의”를 택했었다. “미국식 공화주의”는 수천 년의 우리역사에서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길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불과 반세기만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했다. 이 같은 성과는 오롯이 “미국식 공화주의”의 가치를 좇은 결과로 보인다. 일찌감치 그 가치를 좇았던 서유럽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그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독일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베스트셀러 『총·균·쇠』와 『대변동』의 저자로 유명한 미국의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문명사회에선 제도가 국가발전의 변수라고 했다. 이처럼, 인류 역사의 커다란 물결은 “공화주의”를 싣고 오늘도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미국 독립혁명’이 낳은 독특한 미국적 이념인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도 바늘 가는 데 실가듯 “미국식 공화주의”에 묻어와, 우리사회 구석구석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자유, 평등, 개인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장경제 같은 이상과 이념이 지금 우리의 의식과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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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월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열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어떻게 그 같이 막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미국은 과연 그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이른바 “제국주의”를 좇아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자처하는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미국의 애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지은 「헌정시(Dedication)」에서 찾았다. 아메리카 대륙에 “시와 힘의 황금시대”가 올 것을 점친 그 시엔 청교도들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 ‘독립선언’과 “신세계”, “서부개척”과 “열린사회”, 법치주의와 그것을 지키려는 용기, 그리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같은 주제들이 담겨있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헌정시」에서 시어로 선택된 말이나 시의 행간에선 고대 로마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랬다. 그의 시 속엔, 수천 년 전 고대 로마제국 때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드(Aeneid)」와 전원시 「에클로가(ecloga)」가 올빼미처럼 소리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프로스트는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끌어들여 고대 로마와 미국을 살며시 포개놓고는, “시대들의 새로운 질서(novus ordo seclorum)”, 즉 로마제국의 영광이 아메리카 대륙에 다시 나타날 것을 점쳤다. 고대 로마의 역사를 들춰보니, “공화주의”, ‘기사도’, 군대문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열린사회”, 그리고 법치주의도 그 뿌리는 모두 거기에 있었다. 수준 높은 서양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관습도 그렇다. 한마디로 미국의 뿌리가 고대 로마라는 얘기였다.
프로스트는 그의 또 다른 시 「빚지지 않은 선물(The Gift Outright)」에서, “서부개척”과 그 소명, 즉 “매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를 외쳤다. 그러고는 미국은 “아직 얘깃거리도 없고, 문화도 없고, 미개척인 땅”이라고 역설적으로 호소했다. 그런데, 이런 주제들은 어떤 뜻을 품었을까? “서부개척”에 대한 신비로움에서 비롯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오늘날 미국사회에 어떻게 정착했을까?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이나, 미국의 “서부개척”의 역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적수였다. 하지만, 시인 프로스트도 그렇고, 다른 미국인들도 겉으로는 그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럼에도, 세상에 사납고 몹쓸 야만인으로만 비쳐진 인디언들의 말과 이름, 그리고 정신문화가 미국사회의 구석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국엔 국가기념물이나 국가기념비가 왜 그렇게 많은 것일까? 유대인들은 어떻게 미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됐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일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 독립선언문」의 핵심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남북전쟁을 치렀다. 도대체 어떤 이상과 가치가 담겨있기에, 미국인들은 「독립선언문」을 마치 『성경』처럼 떠받드는 것일까?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9개월 동안 미국을 둘러본 뒤,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다. 그 책을 읽은 유럽인들은 왜 아직 애송이 같은 미국을 그토록 놀랍고 두려운 눈으로 바라다봤을까? 미국은 먹고 입고 보고 즐기는 문화, 즉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도 세계를 이끌고 있다. 국력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하드파워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같은 소프트파워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 조지 프리드먼 교수의 말대로, 온 세상의 젊은이들이 “젊고 야만적인” 미국의 문화에 이끌려가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이제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이웃과 같은 존재가 됐다. 그렇지만, 앞서 쏟아진 숱한 의문들은 우리가 미국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와 정체성, 문화와 전통, 그리고 미국인들이 좇는 가치와 집단무의식 등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아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